2
짐승아, 짖어라.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나는 일찌감치 신화와 전설의 대지에서 무신론의 바다로 넘어간 사람이었다. 무신론의 바다는 말 그대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험난한 장소였지만, 신화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뭉뚱그려 낭만적으로 넘기기 위해 만들어진 소재에 몸과 마음을 기대 인생을 넘겨주고 싶진 않았다. 의문을 가지는 순간 무너질 함정 같은 대지 위에서 하늘의 뜻이나 기다리고 있는 족속들이란. 사과와 뱀, 나사렛의 목수, 소금 기둥, 종말, 구원, 해방. 자택의 벽 한 면에 양각으로 조형된 에피소드들을 보면 더더욱 그랬다. 불경(不敬)을 인간으로 빚어내면 나였으며, 가장 태초의 뱀을 몸에 두르고 있는 이도 나였으며, 신화의 영역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서 니힐리즘에 눈을 두고 있는 자 역시 나였다. 그런 선택을 한 건 필시 몸을 둘러싸고 있는 무형의 신화나, 매달리고 집착해 한 가지에 너무 많은 열매를 맺게 하려고 하는 인간의 집착 탓이리라. 염증을 느꼈다. 아주 오래전부터.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순간부터. 아주 오래.
본부가 직접 호출할 사항까지는 아니라는 말과 함께 정해진 이번 목적지는 유럽의 영국 지부였다. 12월의 영국은 언제나처럼 춥고 습하며 음(陰)했다. 비를 맞아 더 짙어진 비리디안 색의 가로수는 이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거리를 둘러싼 창살처럼 곤두서있었다. 별 하나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 하늘 아래에서 영국 지부는 대체 어디에 있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본국으로의 출국 전까지 내게 하룻밤이라는 시간을 주었다. 런던 아이가 끝까지 불경함의 상징으로 남아있었다면 고려할 수 있었겠지.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북적일 레스터 스퀘어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이드 파크나 웨스터 민스터 사원은 너무 멀었으며, 호텔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관광명소는 내셔널 갤러리가 유일했기에 나는 발을 옮겨 영국 지부가 내게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 과연 무엇인지 어디 한번 보기나 하자는 심산으로 발을 옮겼다.
축축한 신발창에 나뭇잎이 묻어 미끄러웠다. 박물관 입구에 마련된 깔개에 발을 두어 번 비비고 나는 서쪽 건물로 들어갔다. 동쪽 대신 서쪽 건물을 택한 것에 대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1시간 뒤에 폐장이에요. 관람에 유의해 주세요. 데스크 직원의 기계적인 음성에 간단히 고개를 끄덕인 나는 복도, 상점, 카페를 지나 쭉 직진했다.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구리로 만든 주화나 청동이나 테라코타로 조각상이 모여있는 전시관이었다. 거룩하게 박제된 실존하는 자들, 낭만과 예술을 표현하는 신화의 존재들. 사냥하는 디아나, 목이 잘린 세례 요한, 연인, 사과를 먹는 이브. 이브가 사과를 먹고 있었다. 정체 모를 돌이나 나무 같은 것에 다리를 올리고, 목과 등선이 보이게 머리카락은 앞으로 쓸어 넘긴 채로.
Eve Eating the Apple, c. 1885.
Auguste Rodin(sculptor) French, 1840-1917.
우리 큐레이터가 저 안에서 설명하고 있어요. 저 설명이 오늘 마지막 설명이니 관심 있으면 가보는 게 좋아요. 방향성 없는 염증이 또다시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찰나에 직원이 말을 건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디서 하나요? 모르겠네요. 안으로 들어가 보세요. 아차, 싶었던 것인지 직원은 끝에 즐거운 관람이 되길 바란다는 상투적인 말을 덧붙였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나 역시 그런 말을 덧붙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아 비교적 한가한 시간대, 한산한 곳을 빠르게 지나가며 나는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스쳐 지나가는 유물 중에 그때 그걸 보고 갈 걸, 이라며 훗날 안타까워할 만한 유물이 있을까. 네가 존재하는 한 나는 쉬지 않고 여러 땅을 날아다닐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네가 존재하는 한 영국이라는 땅은 몇 번이고 더 방문할 것이고 그들이 마련한 하룻밤이라는 여유 시간은 또다시 ‘애매함’이라는 이름을 가진 곤란의 늪에 빠뜨릴 것이라고.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겠지. 그런 일이 오래 지속되진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런저런 합리화를 하게 되면 내 걸음은 아까보다는 더 빠르게, 제법 확신이 찬 상태가 된다. 이 너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이크로 증폭시킨 목소리가. 나는 확신했다. 확신하고 그쪽으로 걸어갔는데, 아직도 내가 왜 혼자만의 여유로운 관람 대신 큐레이터의 설명을 택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누군가는 이를 운명이라 뭉뚱그려 설명하고 넘어갈 테지만, 나는 굳이 그것에 어떤 운명이나 누군가의 설계 같은 상위의 개념으로 서술하고 넘어가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12월의 런던은 음하고 습해 혼자보다는 타인과 함께 있는 편이 더 괜찮은 선택이었다 합리화하고 이 이상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이쪽으로 넘어올게요. The Fall of Man. 청동에 도금을 한 작은 동전처럼 보이네요. 자세히 볼까요? 가운데에는 큰 나무와 왼쪽에는 한 남성이, 오른쪽에는 한 여성이 있어요. 아담과 이브는 지금까지도 예술의 재료로 사용되는 신화죠. 이브의 뒤에는 뱀이 있어요. 이브는 웃고 있는데, 그의 배우자인 아담의 표정은 웃는다기보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죠. 배경에 있는 부채질하는 사람들이나, 평화롭게 쉬고 있는 동물을 보면 우리는 일상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가도 이 이후에 일어나는 일을 생각하면 까마득한 감정이 들죠.
6센티의 작은 동전에 새겨진 조각, 그 아래 적힌 The Fall of Man [obverse], 1535/1574, 이라는 제목. 큐레이터와 제목이 말해주는 문장 속 Man이 아담인지, 두 사람인지, 인류인지. 나는 그 셋 중 무엇이 정답이라 확신하지 못했다. 장시간의 이야기로 인해 피로한 것인지, 목이 잠긴 큐레이터는 베이지색 목 폴라티에 붉은 벽돌색의 치마를 입고 있었다. 붉은 기가 있는 곱슬머리를 질끈 묶은 여성의 눈은 장시간의 노동 탓에 제법 탁해 보였다. 검은 뿔테 안경을 만진 여성이 발뒤꿈치를 두어 번 들었다 내린 후 말을 이어갔다.
다음으로 넘어갈까요. ………. 이건 아담과 이브라는 조각상이에요. 이브는, 최초의 죄인이죠. 그런데, 누가 그런 말을 했을까요? 중세 시대에 ■■■가 있었어요. 그들은 아주 철저한 ■■■■를 주장했죠. (고유명사겠지.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그 문장을 넘겼다.)
많은 학자가 이때부터 이브의 죄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여성을 악의 근원으로 보기 시작했거든요. 숙명적으로 위험하고 파괴적인 존재. 유혹에 넘어가는 어리석은 존재. 이브, 데릴라, 살로메, 스핑크스…. 이 조각을 볼까요? 아담과 이브라는 제목을 가진 이 조각도 아까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죠. 여기서도 이브의 표정은 웃고 있네요. 자애롭기도 하고 누군가를 유혹하는 표정처럼 보여요. 우리가 이브나, 이브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신화 속 여성들을 미워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들은 누군가의 목숨을 위협하고 파괴하죠. 그런데, 그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에요. 왜냐면 목숨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건 신화에서 아주 흔하게 나오는 일이잖아요. 유혹에 넘어가서 타인, 남성까지 파멸시켰던 자가 여성이라 그래요. 모든 죄악의 기원에 이브가 있어요. 그가 타인을, 후손인 우리를 낙원에서 추방된 이유를 만든 자라 우리는 이브를 미워해요.
나는 한 발짝 뒤에서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이브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받아 든 아담의 표정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저런 백치가 모든 인류의 조상이라면 그것보다 더한 모욕은 또 없으리라고.
만약 아담이 뱀의 유혹에 빠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하나요? 아담을 설득한 이브는 인간이었는데, 이브를 설득한 뱀은 인간보다 상위의 존재인 악마였잖아요.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너를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되었더라도 결과는 같았으리라 생각해요. 우리는 모두 유혹에 취약한 존재니까요. 혼자서는 완벽하지 못하니 우리는 아직도 자신의 불완전함을 신화의 영역에 있는 자를 죄인이라 여기고 그 뿌리에서 난 조상을, 부모를, 자신을 본질부터 죄인이라 생각하죠. 내 결함을 절대적 영역에 의탁해 위안을 얻는 것. 그것이 신화의 역할이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곧 성탄절이 다가오네요. 큐레이터는 잠시 숨을 돌리고 말했다. 우리가 성탄절에 만날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렵겠죠? 그렇다면, 미리 말할게요.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는 언제쯤 다시 에덴으로 갈 수 있을까요?
그때 난 생각했다. 태초의 자가 죄를 지어서 낙원에서 추방됐다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죄인이지 않은 자는 어디에 있을까. 그들이 말한 대로 죄가 뿌리에 뿌리를 거듭해 전염되는 질병이라면…. 그 생각까지 끝나면 나는 비로소 네가 했던 행동을 절반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개미를 밟고, 집을 찌르며 역겹다고 했던 너. 젖먹이 개를 보면서도 감흥 없다는 표정을 했던 너. 모르겠네, 관심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잠시간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봤던 너…. 팔에 있는 정맥은 터질 대로 터지고 마침내 정맥은 기이할 정도로 부풀어 살갗 바로 아래서 끊임없이 존재를 과시하는데, 그것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브라운관 속에서 펼쳐진 모래색의 장면이나 바라보는 네 모습이….
한 가지 아래 맺힌 수십의 열매, 기형적인 단내, 바라보는 수천의 눈, 금화와 거래되는 무형의 명성. 그 누가 낙원에 갈 수 있겠는가? 천사가 나팔을 불고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지는 그 최후의 날에, 무덤에서 일어나 태초의 고향, 집으로 갈 수 있는 자가 과연 여기 몇이나 있겠는가? 어른들의 말과는 다르게, 죄의 요람에서 태어났다는 네가 가장 가깝겠지.
짐승아, 짖어라.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유목민은 죄를 지은 자가 개로 태어난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허나, 나는 이 짐승이 인간보다 더 순수한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너는 짐승들의 사회를 원하면서도 그것을 거부하지. 인간에는 결격한, 허나 인간도 포함된 이 짐승이라는 개념 속에.
나는 그 조각상을 마주 볼 수 있는 곳에 놓아진 벨벳 스툴에 앉았다. 다른 관람객들은 다음 전시관으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빛을 받는 아담과 이브의 조각상, 나무를 잡은 뱀, 개는 악한 것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하는데, 조용하기만 한 개. 눈을 내리깐 이브의 눈동자는 어떤 감정을 담고 있는가. 죄인의 표정이라 할 수 있는가?
짐승아, 짖어라. -죄인을 향해-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나는 비로소, 염증 같던 묵은 감정들을 모조리 풀어낸다. 죄를 쌓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들개들이 짖는다. 12월, 아기 예수의 탄생일, 가장 많은 아이가 죽었던 그달의 끝자락에서. 어떤 죄는 전염된다. 대부분의 죄는 본인의 손으로 쌓아 간다. 형상화된 신화를 알고 있지만, 나는 니힐리즘을 눈에 담고 있다. 아이러니로 둘러싸인 곳에서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던 너. 아주 명확하게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다던 그 단호한 말씨. 나는 12월의 끝자락에서 작열하는 태양, 그 열기에 달궈진 뜨거운 모래의 향을 맡았다. 그곳에는 사람이 없고 죽음을 기다리는 독수리만 하늘을 비행하고 있었다.
짐승은 짖지 않았다.
우레와 같은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모래에 반쯤 덮인 백골의 사체를 본다.
결국 네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죄를 뒤집어쓴 채로.
또다시.
나는 환상을 보았다.
짐승의 울음 대신 들려오는 우레와 같은 죄인들의 함성을.
구원하소서.
完.
- 중세 시대에 시토파가 있었어요. 그들은 아주 철저한 금욕주의를 주장했죠.
-5,877자.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