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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 by 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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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짐승이 그렇지

여우는 죽을 때가 되면 살던 굴을 향해 머리를 두고 코끼리는 자신들만의 장례 문화가 있다는데. 고향이나 안식은 심장 가운데 박힌 나침반의 바늘처럼 끊임없이 흔들리며 마음을 쥐고 가지고 논다는데. 그리운 노스텔지어의 깃발은 해무 낀 바다의 한가운데서 하염없이 나부끼며 돌아오라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는데. 원래 짐승이 다 그런 거지. E의 나침반은 북쪽이나, 고향을 가리키지 않고 자기장을 잃어버린 채 불규칙하게 삐걱거리며 회전하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완전히 망가진 엉터리 나침반을 심장에 박아 둔 이상, 목적지는 존재할 수 없었다. 한 방향으로 걸어 지구의 모든 이를 만나겠다는 말 또한 성립할 수 없었다. 목적지를 정할 수도, 겨우 발붙일 피난처를 만들었어도 그곳으로 안내할 수 없는 망가진 고철 덩어리를 가진 이브는 금수가 가지는 감정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결국은 우리가 모두 태어난 땅의 흙을 그리워할 것이야. 다시 그 대지를 밟길 원할 것이야.

묻힐 수 있는 장소를 고를 수 있다면, E의 장(葬)은 사막에서 치러질 것이었다. 동쪽도 북쪽도 아닌 애매한 남서로 향한 머리 위에는 독수리 무리가 저공비행을 하는 그 사막에서.

살이 뜯어지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물고기도, 죽은 새끼를 등에 업고 헤엄치는 고래도, 고향으로 돌아가 사를 맞이한 탕아도 중요하지 않았다. 원래 미물은 그렇지.

미카즈키 이브에게 그런 복잡하고 사치스러운 것은 정말 중요하지 않았다.

 

기억은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E도 그 명제 정도는 알고 있다. 기억을 둥글고 깔끔한 구슬에 비유하면, 이브는 자신의 기억은 구슬보다 구멍 뚫린 바닷속 해면체에 더 가까우리라 생각했다.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하고 뇌는 겨우 두부에 비할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있지. 그런 연약한 기관이 만드는 망각 과정은 생존을 위한 자연적 프로세스야. 망각은 자연스러운 거야. E의 가장 첫 기억은 다음과 같은 연구원의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자란 육체와 텅 빈 삶. 자신과 가깝게 지냈던 이라 소개받은 자에게서는 그 어떠한 친밀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뇨, 완전히 구멍 났어요. 기억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일이 없어서 그런가. 걔는 나한테 쿠키를 줬다고 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어요. 짜증 나게. 이건 네 이질감을 없애고 네 의식을 현실에 묶어두기 위한 일종의 치료 세션이야. H한테 들었던 말들을 해볼래? H가 E랑 있었던 추억을 이야기 해줬잖아. 볼펜을 불규칙적으로 딸깍이며 기록 준비를 끝낸 연구원에게 던진 말은 겨우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치자.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뭔데? 그런 질문을 들으면 E는 더운 8월의 어느 날을 떠올린다. 12월을 고르지 않은 것은 성스러운 그분의 탄생일이 끼어있는 달이기 때문이었고 3월이나 10월을 고르지 않은 것은, 글쎄. 거기까진 이유가 없었다. 아무튼 8월 어느 날이었다. E는 개미들의 행군을 보았다. 머리, 몸통, 배와 세 쌍의 다리로 이루어진 수십이 보금자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갔다. 북쪽을 향해서, 흔들림 없이. 원래 짐승이 그렇지. E의 구멍 난 구슬 사이로 하나의 기억이 실처럼 꿰어 들어갔다. 배가 부푼 여왕개미는 알을 낳는다. 시중드는 일개미는 거동하지 못하는 여왕개미의 턱 아래로 잘게 자른 먹이를 운반한다. 끊임없는 재생산과 만들어진 사회. 필름지 같은 눈은 어디를 보는 것인지 알 수 없고 먹어야 산다는 본능에 따른 저작 운동과 요동치며 떨어지는 알들. 바닥에 툭 툭 툭 떨어지는 것은 점액질에 쌓여있다. 곡선형의 브라운관에서 송출되는 개미 영상을 뒤로하고 E는 밖으로 도망쳤다.

그런 일이 있었거든. 그래서 난 네가 곤충을 싫어하는가보다, 했지. 원래 사람들이 그렇잖아. 팔 두 개, 다리 두 개, 눈 두 개가 가장 이상적이고 평범한 모습이라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를 보면 괜한 거부감이 들지. 상대만 알고 있는 과거의 사건을 말하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H를 보자, 전기를 연결한 전구에서 불빛이 번쩍하고 들어오는 것처럼 무언가가 E의 머릿속을 반짝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야, 넌 바보 같고 나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해서 그래. 난 곤충이나, 인간과 다르게 생긴 짐승이나, 그런 금수들 따위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야. 모든 사회는 다 이런 행위의 연속을 통해 만들어지고 내 기원이라는 유명한 악마는 모든 사악한 것의 시초이자, 이 땅에 두 발로 서있는 모든 것의 근본이기도 하다고. 저렇게, 거동도 하지 못하고 기계처럼 생명을 찍어내는, 그 과정에서도 섭취와 배출을 쉬지 않고.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런 생각의 연쇄를 가속 시키기라도 하는 듯, 네가 개미집을 발로 밟은 이야기도 해주겠다는 상대를 향해 이브는 매몰찬 거절의 말을 던졌다. 그런 건 네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 이유를 알겠다고.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H가 이유를 물어봐도 E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된 날이요.

내 기원을 알게 되었고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의 집단을 간접적으로 보게 되었고 그들과 닮은 손톱 크기의 생명체 군집의 삶을, 그들과 닮은 미물, 생명체, 짐승, 피조물이 사회라고 부르는 걸 목도한 날을. 난 내 이름도 성도 나의 것이 아니고 하다못해 이 몸도 온전한 나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삶의 근원, 뿌리는 나와 같은 것들이 자신은 아니고 우리는 우리만의 온전한 사회와 삶이 있다고 자위하기는, 멍청한 것들. 이기적인 녀석들. 팔에 자리한 수많은 주사 자국과 터진 정맥의 흔적이 내게 그 어떠한 이야기도 해주지 못하리라 생각했는가? 오직 나만은 그들과 다르다고 나를 밀어내고 철창으로 나와 자신들을 분리했다는 사실을, 안도와 비웃음을 함께 가지며 나를 바라봤다는 사실을 언제까지 감출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가? 너희는 너희의 요람 속에 있고 그 따뜻함과 만들어진 안락함에서 나를 아래에 두고 관망하고………. 짐승들이 다 그렇지. 원래 약한 것이 다 그렇지. 미물들은 원래 다 그런 거지. 성도 이름도 하다못해 육신도 자신의 것이 아닌 자가 아래를 바라봤다. 손톱보다 작은 3쌍의 다리를 가진 시민들이 한곳에 모여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이었다. 외로운 나는 한곳에 모여있는 집단을 짓누를 수 있고 혼자인 나는 혼자라도 그들의 터전을 망가뜨리기 위해 발로 밟고 나뭇가지로 찌르고 뜨거운 물로 모두를 죽여버릴 수 있다고 증명하거나 표현하거나 말하거나 보여주기 위해서.

역겨워, 역겨워, 역겨워. 거대하게 꽁지만 부푼 녀석의 끝에서 떨어져 태어난 것들이, 점액을 뒤집어쓰고 태어나 걷지도 못하고 꿈틀거리는 것들이.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녀석들이 뭉쳐서 꼴에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 나는 아마 영원히 속해있지 않을 것에 속해있는 것이.

사람은 사람이 있어야 완벽해진다고 하는데, E는 무엇을 사람이라 부르는지 알지 못했다. 단순히 두 팔과 두 발, 두 눈을 가지고 있는 자를 사람으로 부른다면, E에게 사람은 허송세월하고 무용한 것에 금을 칠하고 사상누각에서 평생을 약속하는 존재였다. 무용하고 악독하고 혐오스러운 것이 곁에 있어야 완벽해지는 삶이라면, 차라리 허리에 구멍이 뚫린 채로 혼자 살아가는 것이 나았다. 죽을 수 있는 곳을 고를 수 있다면, 사람이 없는 사막으로 가서 죽음을 맞이하리라. 모든 생명체가 고향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나는 나와 똑같이 생긴 생명체가 없는 사막을 내 고향으로 삼으리라. 하늘에 걸린 초승달이 영원히 채워지지 않고 오직 나와 달만 반 이상 베어 먹힌 허리를 감싸 안고 잠을 청할 수 있는 곳을. 그 무엇도 하나 내 것이 아닌 이 삶을 마칠 때가 온다면 나 그곳에서 내 마지막을……….

 

그렇기에, E는 H가 거슬렸다. 저것은 이름도 성도 몸도 마음도 누군가가 고심해서 가꿔준 것이라, 검고 바글바글한 군집 속에서도 가장 귀하게 작은 것이라서. 저것도 내 팔에 있는 바늘 자국과 흉하게 남은 멍과 구멍 뚫린 내 기억을 알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다가오는 저 모양새가.

난 짐승이 아닌데.

내가 죽을 곳은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사막인데.

내가 벗 삼을 곳은 영원히 차오르지 않는 초승달이나 바닥으로 모래를 전부 내뿜고 텅 빌 순간을 기다리는 유리병이 유일한데.

 

왜 자꾸 너는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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