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겜무

내 온라인 게임은 무법지대

9화

익명 by 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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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층 주거구역 ‘알게이드’를 지나 필드로 나오면, 1시간이나 걸어야 미궁 구역에 진입할 수 있다. 그 정도로 50층은 제 1층 시작의 마을 다음으로 큰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미궁 구역 앞에는 40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목적은 하나였다.

“길드장님. 전부 모였습니다.”

근엄해 보이는 남자가 양손검을 든 길드장 앞에 서서 보고했다.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외모에, 머리는 옅은 갈색이다. 그의 이름은 ‘페스란’으로 SAO내에서 가장 큰 길드인 ‘더 퍼레이드’의 길드장이었다.

페스란은 4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을 쭉 둘러보았다.

“컨코드 사람들도 많이 모였군 그래.”

“오랜만입니다, 페스란 씨.”

하얀 망토를 두른 길드 ‘컨코드’ 멤버들 사이에서 리더가 걸어나왔다. 그녀의 이름은 ‘유진’으로 수많은 길드장 사이에서 꽤 젊은 축에 속했다. 페스란과 유진이 악수를 나눴다.

그러자 페스란 곁에 있던 비슷하게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유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입니다. 부길드장인 온화입니다.”

“저번 달 48층 보스전에서 만나뵌 적 있었죠. 오늘은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눈 수장들이 미궁구역 입구 쪽을 동시에 바라보았다.

오늘 그들이 이렇게 사람들을 모은 이유는, 늘 있는 공략을 위해서였다. 목숨이 달린 게임이 되어버린 SAO에서는 어떤 일이든 조심, 또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보스전 공략 같은 중요한 일은 더더욱.

“우선 저희 더 퍼레이드가 먼저 안쪽을 살피겠습니다. 그 다음에 컨코드 여러분과 교대하죠.”

“네, 그러겠다고 했으니까요. 부디 조심하세요. 두 번째 쿼터 포인트인 만큼 25층 때처럼……. 아닙니다, 불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겠지요.”

“자만할 생각은 아니지만 저희는 강합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페스란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유진은 여전히 걱정스러웠지만, 사망자를 거의 내지 않는 길드였기에 믿고 맡기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스테, 신문 봤어?”

“아니.”

어김없이 슈크림의 레벨링을 돕던 스테노가 쉬는 시간에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곁에 허리를 내린 슈크림이 인벤토리에서 신문을 꺼내 들었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50층 선발대 ‘더 퍼레이드’ 절반 사망]

“…전멸?”

“응. 선발대 스무 명이 50층 보스방을 탐색하던 도중 사망자를 냈다고 해. 그것도 열 명 씩이나. 그동안 별 탈 없던 길드라서 그런지 좀 떠들석하더라고.”

“원인은?”

“……그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문이 닫히고, 곧바로 보스의 공격이 시작되었나봐. 순간 눈앞이 번쩍이더니 곁에 있던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남은 인원은 크리스탈을 통해 도망칠 수 있었지만…. ”

스테노의 표정은 평소와 똑같았다. 그러나 한참동안 그 신문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스테노가 한숨을 쉰다고!?

“스테, 괜찮아?”

“고민이 있어.”

“뭔데?”

스테노는 한참동안 망설이더니 손에 쥔 묵직한 검신에 비춘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길드에 대해서.”

“길드?”

“응, 슈도 알겠지만 더는 솔플로는 살아남기 어려워. 길드에 속하는 편이 안전하지.”

“그건 맞아. 그래서 나도 스테가 어느 길드든 들어가 줬으면 해서…….”

“뭔가 별로야.”

응? 슈크림이 의문을 표했다. 스테노는 몇 차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늘 솔직하고 담백하게 말을 내뱉던 스테노가 마치 말을 고르는 것 같았다.

“어느 길드든, 성에 안 차.”

“배부른 소리 하네…. 요전번에 컨코드에서 스카우트 제의 오지 않았어? 설마 거절한거야?”

“음.”

스테노는 팔짱을 낀채 고민했다. 그러고는 먼 옛날… 까지는 아니더라도 과거를 회상했다.

때는 슈크림과 ‘개미 계곡’에 갔을 시절. 던전 앞을 가로막고 있던 남자들은 바로 ‘컨코드’ 소속이었다. 작은 다툼이 결국 듀얼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스테노와 싸운 상대는 컨코드 제 3 파티의 리더였던 모양이다. 이번 사건이 길드 내에서는 꽤나 파문이 일었던 건지 부길드장, ‘요한’과 길드장 유진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 일로 직접 부길드장 요한이 스테노를 찾아온 것이다.

“안녕하세요, 스테노 님.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펄럭이는 흰색 망토. 부길드장 요한은 훤칠한 키에 빼어난 외모를 가진 남자였다. 온라인 게이머 치고는 상당히 잘생긴 편이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살짝 미소지었다.

“요전번은 저희 길드 멤버들이 실례를 범했습니다. 사죄드립니다.”

“괜찮아.”

“마음이 넓으시군요. 아, 이렇게 찾아온 건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제의를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사내의 눈웃음은 어딘가 수상쩍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테노는 별로 개의치 않다는 듯 뒷말을 기다렸다.

“저희 길드, 컨코드에 정식 가입 요청을 하고 싶습니다.”

“나를?”

“네, 그럼요! 이리도 강하신 스테노 님이라면 저희 유진 님이 계신 길드에 속하기 매우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눈을 뜨고는 스테노를 빤히 바라보았다. 순간 스테노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남자,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과 속마음이 정반대다. 그녀는 그렇게 느꼈다. 스테노가 길드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요. 저희 길드의 3번 대장을 가뿐히 쓰러트린 검기만 봐도 알 수 있죠.”

“미안하지만, 거절할게.”

주변이 술렁거렸다.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군중은 부러우면서도, 두려운 듯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스테노의 단호한 거절에 지켜보던 사람들 뿐 아니라 요한과 함께 찾아온 부하 몇 명도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거절하시는 겁니까?”

“응.”

“……그것 참 유감이군요.”

요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슬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스테노는 이것이 연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떠났으나, 내내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왜 거절한거야?”

“슈, 길드가 뭐라고 생각해?”

“으, 응? 갑자기?

한참을 망설이던 슈가 답을 내놓았다.

“게임 내 단체라는 느낌이지 않나? 게임은 정보 뿐 아니라 교류를 위한 커뮤니티를 중요시하니까…. 서로 돕고자 하는 거지.”

“그렇다면 더더욱 거짓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거짓…이라니. 컨코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야?”

“느낌만. 길드장인 유진은 좋은 사람 같지만.”

스테노는 오랜만에 무척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이 어쩐지 불안해져서, 슈크림은 스테노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붙었다.

“그래도 난, 스테… 네가…….”

“길드를 만들고 싶어.”

“으, 에엑!?”

슈크림이 화들짝 놀라 큰 소리를 냈다. 길드를 만들고 싶다니, 고독한 늑대 같은 이미지였던 스테노의 입에서 나올 리 없을 것 같은 말이었다.

“슈, 난 누구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하나로 뭉쳐야 해. 싫은 사람이 있더라도, 누군가는 약하더라도, 죽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건 없어. 물론 뭉친다고 모두가 하나가 되는 건 아니야. 희생자는 어쩔 수 없이 나와. 그럼에도 난 내가 알아간 사람들이 위험한 꼴을 당하지 않기를 바래.”

아마 만난 이래 가장 길게 말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스테노는 말이 많았다. 그러나 슈크림은 그녀의 말 하나하나가 가슴을 깊게 울리는 것을 느꼈다. 진심이 느껴진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래서, 길드를 만들고 싶은 거야?”

“응. 그리고 가능하면 마린을 데려오고 싶어.”

스테노가 어느정도 마린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게 뭐 나쁠 것은 없지만, 어쩐지 조금 부럽기도 했다. 상대가 스테노든, 마린이든…. 그런 강렬한 목표를 가질 수 있다는 것도, 목표가 되는 것도 슈크림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였다.

“그리고, 슈랑, 신 형님도.”

“으응…?”

“난 모두랑 함께하고 싶어.”

참으로 어린아이같은 바램이었다. 그 천진난만한 한 마디에 슈크림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이왕이면 첫 번째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건 슈가 처음이야.”

“그,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한편, 길드 ‘더 퍼레이드’의 본부,

“…유진 씨, 어서오세요.”

유진과 그녀의 오른팔인 모르타가 38층의 컨코드 본부를 찾아갔을 땐 이미 초상집 분위기였다. 반 년 넘게 희생자를 거의 내지 않은 걸로 유명했던 길드가 하루 아침에 두 자릿수 되는 사상자를 내 버렸으니까. 동료의 죽음을 기리려는 듯 로비의 기다란 테이블에는 꽃이 몇 송이 놓여 있었다.

부길드장인 온화의 표정은 어두웠다. 길드장인 페스란 또한 열 명의 희생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두 분은 실제로 부부셨다고…….”

“그렇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진이 고개를 숙이자 곁에 선 모르타 또한 조의를 표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서 죄송하지만, 앞으로 있을 공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길드 더 퍼레이드는 이번 층 공략을 중단하실 계획이신가요?”

“일시 중단할 생각입니다. 입장도 입장인지라, 당분간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저희 길드에게 맡겨 주세요.”

유진이 돌아섰다. 두 사람은 더 퍼레이드 본부를 빠져나왔다. 한참을 말없이 걷던 유진이 입을 열었다.

“모르타. 우리 길드의 모토가 뭐였는지 잊지 않았지?”

“물론이지.”

“난 그걸 지킬 뿐이야. 따라와 줄 거지?”

“그래.”

모르타가 유진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조금 더 굳어 있었다. 어쩐지…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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