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온라인 게임은 무법지대
8화
신속배달은 옛날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재료만 가져오면 뭐든 요리해주겠다고.
건실한 청년은 닉네임 값을 하듯 중국집 배달 일을 했다. 엄격한 부모님과 다소 폭력적인 누나 밑에서 자란 그는 가업이나 다름 없는 요리를 즐겨 했다. 그러니 물론 SAO 안에서도 요리하지 않고는 못 배기지 않겠는가.
“스위치!”
신속배달이 외침과 동시에 뒤에서 광안파도주먹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튀어나왔다. 길고 긴 사냥 끝에 그들은 49층 필드 보스 ‘마운트 브라운 베어’를 잡을 수 있었다. 남성들 파티는 환호성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이내 윈도우로 보상 알림이 도착했고, 일행은 그것을 살피며 신나게 웃고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신배 형.”
“하, 진짜 힘들었다. 너도 폭딜 넣느라 수고 많았어.”
신배는 퀘스트 클리어 보상을 쭉 살피던 도중, 시선을 사로잡는 아이템을 발견했다.
‘곰 고기x2’
전혀 신기할 것은 없었다. 그냥 평범한 식재료 보상이었다. 그러나 조금 특별한 게 있다면……. 그것이 S급이었다는 사실이다.
“우아, 형. 그거 S급 식재료 아니에요!?”
“뭐, 뭐야! 그게 신속배달한테 드롭됐어?”
남자 두 사람이 후다닥 달려오더니 신속배달의 윈도우를 빤히 들여다봤다.
“진짜네! 야, 너 로또 다 샀다…….”
“그런데 형, 이거 요리할 수 있어요? 요리 스킬이 적어도 9는 되어야…….”
이 게임에는 전투 스킬 외 스킬이라는 것이 있다. 제작 스킬이라 불리는 대장장이 스킬부터 시작해 요리, 재봉, 추적, 감별 등등…. 수도 없이 많지만 플레이어가 사용 가능한 스킬은 한정적이었다. 바로 스킬 슬롯 때문이다.
“요즘 누가 요리 스킬 같은 걸 올리고 있냐? 살기도 급급한데….”
“스킬 슬롯이 아깝죠.”
보통 전투 스킬 같은 것들을 끼워넣고 있느라 슬롯이 비지는 않는다. 조금 별난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그런데, 신속배달은 그 조금 별난 사람 중 하나였다.
“하아………….”
“신 형님. 땅 꺼지겠어.”
49층 주거 구역인 ‘뮤젠’은 붉은 지붕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많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신속배달과 스테노가 함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스테노의 말에도 변함없이 푹푹 한숨을 쉬어댔다.
“고민 있어?”
“스테노, 나…… 원 없이 요리하고 싶어.”
그렇다. 신속배달은 실시간으로 요리 금단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가게 일을 도울 땐 쉬지도 못하고 냄비를 흔들어 댔는데, 그 손맛이 없어서야.
“요리라니…….”
“알아, 안다고. 요리 같은 전투에 하등 쓸모없는 걸 만렙까지 올린 내가 바보라는 건! 그치만 이건 나의 삶이란 말이야.”
“그런 말 안 했어.”
“더군다나! 요리 뿐 아니라 낚시까지 올려버린 내가 멍청이지!”
“오.”
스테노가 작게 박수치는 소리에 신속배달이 고개를 들었다. 스킬 슬롯 열 두개중 두 개가 요리와 낚시.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생각보다 쪼들렸다. 방패와 한손검 스킬을 같이 올릴 때부터 슬롯이 모자라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는데, 그럴 때마다 요리를 해댄 덕분에 어느덧 만렙이 되었다.
“하면 되잖아.”
“그렇긴 한데, 오늘 내가 S급 식재료를 손에 얻었거든? 그걸 보니까 좋은 재료로 푸짐하게 한 상 차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
“그렇구나. S급이라…….”
확률적으로 0.00023% 정도라는 S급 식재료다. 몬스터를 몇 십, 몇 백 마리를 잡아도 하나 건지기 어렵다. 신속배달의 곰 고기는 정말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팔기는 팔아도 금액을 몇 배로 불리기 때문에 구하기 힘들다.
“아무튼, 미안하다 야. 괜히 하소연 해서…….”
“가능할 것 같은데.”
“무, 뭐?”
“가능해.”
스테노는 그날 묘하게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내가 왜?”
마린이 쏘아붙였다. 그러나 스테노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다시 한 번 물었다.
“신 형님이 원 없이 요리가 하고 싶댔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22층.”
“……?”
마린의 의아해하는 표정에도 스테노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남서쪽 호수에 터주신. 아직 못 잡았다고 했지?”
“…….”
“낚시 스킬이 없었으니까. 포기했을 거야.”
마린은 스테노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해준 적이 없었다. 한 가지, 22층 근처를 돌아다녔을 때 몇 번 마주친 적만 있었지. 그렇다는 건 스테노는 그 몇 번 마주친 걸로 마린이 터주를 잡으러 왔다는 것, 낚시 스킬이 있어야만 잡을 수 있는 S급 몬스터라는 걸 알아챈 것 같았다.
“이제 와서는 딱히…….”
“마린은 잡고 싶을 것 같았어. 하나라도 놓치는 걸 원치 않을 테니까.”
“……넌 진짜.”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냐 하고 싶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알았어. 도울게.”
“고마워.”
“그 탱커 분을 위해서기도 해. 보스 공략 때 신세 졌으니까.”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는.
“뭐, 뭘 잡아?”
“터주.”
“스테도 참……. 매번 뜬금없다니까.”
스테노가 뜬금없이 슈크림의 집까지 찾아오더니, 22층에 함께 가자고 말했다. 그냥 메세지를 보내도 될 법 한데, 일일히 이렇게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게 싫은 건 아니었지만.
“신속배달 씨가 요리하고 싶대?”
“응. 그래서….”
“그래, 스테의 마음은 알겠어. 나도 도울게.”
그렇게, 터주신(고기)잡기 대작전이 막을 올렸다.
22층, 모든 플레이어 사이에서 이 층은 가장 기억에 남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즉슨, 몬스터도 적게 나오고 던전도 없어 단 이틀만에 보스를 잡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거칠 기나긴 싸움 중에서는 가장 임팩트가 적었다.
“야, 스테노. 갑자기 이 층에는 왜 오자고 한거야? 휴양이라도 하자고?”
“응.”
“뭐야~ 미리 말이라도 하지. 그런데 이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뭘 하게?”
그때 스테노가 인텐토리를 열어 무언가를 오브젝트화 시키더니 신속배달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것은 번들번들한 낚싯대였다.
“낚시?”
주거구역 코랄에서 지내는 플레이어는 주로 40대에서 60대 사이의 사람들이었다. 이곳은 SAO라는 전투 위주의 험악한 분위기에 지친 노인들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스테노는 22층에 사는 주민 몇 명과 아는 사이였다.
“아이고, 스테노 씨 ~ 어서 오세요.”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스테노의 등을 두드렸다. 함께 온 슈크림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오늘은 그 터주신을 잡아준다고?”
“네.”
“고마워요, 고마워. 안 그래도 골칫덩어리였는데…….”
“대신 비밀로 해 주세요. 저 빨간 머리 남자에게는 특히.”
“어휴, 그럼 그럼.”
할아버지는 ‘영호’라는 닉네임이었는데, 아마도 본명을 그대로 채용한 것 같았다. 게임을 즐기는 아들이 체험해 보라고 사준 것이라고 했다. 슈크림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스테노를 살폈는데, 그 이야기를 듣던 스테노의 표정은 어딘가 서글퍼 보였다.
“마린, 왔구나.”
“뭐, 뭐야?”
영호 할아버지와 스테노, 슈크림, 신속배달이 한 데 모인 곳에 태연하게 걸어온 마린. 그녀를 본 신속배달이 화들짝 놀랐다.
“내가 귀신을 봤나?”
“아니.”
“너… 너도 낚시해?”
“그러면 안 돼?”
신속배달은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마린이 낚싯대를 든 모습이 상상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네 사람이 호숫가로 향했다.
22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호수의 수면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참으로 평화로운 곳이다. 신속배달이 그렇게 느끼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야, 근데. 사람이 너무 많지 않나?”
낚시 터라고 불릴 수 있는 곳까지 오자 어쩐지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많다고는 해도 열 다섯 명에서 스무 명 사이 정도였지만.
“신 형님, 낚시 레벨 몇이야?”
“나? 이제 9지.”
“충분해.”
스테노가 뒤에서 신속배달을 밀었다. 근력 스탯이 높았기 때문에 신속배달은 텅 빈 상자마냥 밀렸다. 그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인파 사이에서 조용히 대기하고 있는 마린과 슈크림.
“내가 달라고 하면 낚싯대 줘.”
“이게 뭐 하는 건데?”
“잡는거야, 엄청 큰 놈을.”
“큰 놈이 있어? 뭐, 그래…….”
신속배달이 단순한 편이라 다행이었다. 그는 반박하지 않고 낚싯대를 들었다. “이거 오랜만인데.” 라며 눈을 빛냈다. 낚싯대를 크게 휘두르고는 호수에 담궜다. 찌가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슈크림과 마린은 긴장한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스테노도 조용히 입질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저 순수하게 낚시를 해서 즐거운 건 신속배달 뿐이었다.
체감상 억겁의 시간이 흐른 끝에, 무언가가 찌를 건드리는 것처럼 움찔거렸다.
“아직이야…….”
신속배달은 신중했다. 아직 때가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반드시 올 것이다.
몇 번 더 건드리는 듯 하더니……순간 낚싯대가 강하게 당겨졌다.
“왔다!…우, 우악!!!”
신속배달이 낚싯대를 잡아 당겼지만, 미끼를 문 그것의 힘이 어찌나 센지 신속배달이 끌려갈 것 같았다. 그는 끙끙대며 어떻게든 당겨보려고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신 형님!”
“어!? 으, 응!”
그 순간 스테노가 옆까지 다가오더니 신속배달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스테노와 눈을 마주치자 아까 했던 말을 떠올리고 낚싯대를 그녀에게 건넸다. 스테노의 힘 스탯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체를 단단히 고정하고는 상체를 뒤로 눕혔다. 조금만 힘을 뺐다간 바로 끌려갈 것 같았다. 그러나 스테노는 힘에서 밀리지 않았다.
“흡!” 기합을 한 번 주고 다리를 움직였다. 그러자 조금씩, 조금씩 물 아래에서 저항하는 그것의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오, 올라온다! 오???”
“신, 형님! 피해!”
스테노의 외침에도 물음표만 띄우고 있던 신속배달이 갑작스레 물벼락을 맞았다. 영문을 모른 채 얼 빠진 표정을 지은 신속배달이 눈을 몇 차례 꿈뻑이더니 고개를 천천히 위로 올렸다.
터주신이었다. 그 터주신의 정체는 적어도 8m는 넘어 보이는 커다란 물고기였다. 물고기 특유의 흰 눈동자를 번뜩이며 신속배달을 노려보았다.
“으아아아악!”
신속배달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다.
그러자 바로 그때, 인파 속에 있던 슈크림과 마린이 달려들었다.
“하앗!”
“흣!”
슈크림은 메이스로 터주신의 머리를 후려 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린이 대낫을 빠르게 휘둘러 터주신의 몸체를 베어냈다. 몇 차례 더 공격을 퍼부어야 하나 싶었지만, 전체적으로 몹이 약하다는 22층의 특징대로 터주신의 HP는 금방 0이 되었다….
폴리곤 파편이 흩날리는 걸 본 슈크림과 마린, 스테노는 각자 해냈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신속배달은 여전히 혼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니, 늬들 이거 다 설명해라…….”
그렇게 스테노 특유의 짧은 설명을 마친 후, 슈크림과 마린이 인벤토리에서 ‘터주신의 고기’를 오브젝트화 시켰다. S급은 아니었으나 A급 식재료였다. 그 고깃덩어리는 두 손 안에 다 담지 못할 정도로 큼지막했다.
“이야, 이거 실한데? 이걸 요리해달라는거지?”
신속배달이 무척 신이 난 표정을 지었다. 어깨를 꿍실거리며 식재료를 자신의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거, 몇 인분 만들면 돼?”
“최대한 많이.”
그 말을 들은 신속배달이 씨익 웃더니 팔을 걷어부쳤다. 신속배달은 영호 할아버지의 주방을 빌려 요리를 시작했다. 그 날은 축제였다. 22층의 주민 대부분이 모여 신속배달이 만든 생선 요리와 곰 고기 스튜를 맛볼 수 있었다. 저마다 맛있다고 웃으며 칭찬을 연발했다. 그럴 때마다 신속배달은 털털하게 웃었다.
“마린, 슈크림! 너희도 먹어.”
“감사합니다.”
“난 됐어.”
마린이 그대로 등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
“에이, 어떻게 그래. 조금이라도 같이 먹어! 밥은 같이 먹어야 맛있잖아.”
신속배달이 활짝 미소짓자 마린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 모두가 한 데 모여 식사하는 모습을 신속배달은 기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스테노, 고마워.”
“응?”
“네가 이번 일을 꾸몄다고 들었어. 좀 당황하긴 했지만…. 나름 즐거웠으니까.”
“나도.”
신속배달이 팔짱을 낀 채 멋쩍게 웃었다.
“뭐, SAO의 요리는 너무 간략화되어 있어서 요리하는 맛이 없지만…. 덕분에 깨달은 게 있어. 난 누군가 내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걸 보는 게 좋다는 걸 말이야.”
“신 형님의 마음이 전해졌어. 그래서 더 맛있는 거야.”
스테노의 말에 신속배달이 코를 쓱 훔치더니 작게 헛기침을 했다.
“넌 뭐 그런 부끄러운 소릴……. 흠, 아무튼. 오늘은 즐거웠어. 많이 먹고 가.”
평화로운 마을 안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늘 전선에서 사경을 넘나들던 플레이어의 표정이 오늘따라 무척 편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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