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의 끝에서

커미션 작업본

앞마당 by Miiin
9
0
0

이 시간의 끝에서

S

W. Miiin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선생님은 수업이 끝났다고 고지하며 교재를 정리하고, 그 앞의 아이들은 저마다의 짐을 싸느라 바쁘다. 야자 할 거야? 놉. 오늘은 안 해. 넌? 난 학원. S는 오가는 대화를 듣다 무선 이어폰을 가방에서 꺼내 들었다. 왼쪽을 먼저 귀에 넣는다. 손가락 끝으로 화면을 조작했다. 재생, 영어 문장,

 

지이잉.

긴급재난문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가급적 야생 동물과의 접촉을 피하고 위치하신 곳의 개방되어 있는 곳을 모두 닫아주시고 섣부른 이동은 삼가십시오.

아래와 같은 증상이 있는 환자는 격리해주시기 바랍니다.

각혈, 붉은 또는 검은 반점 및 잦은 기침, 이외의 상기도 감염과 흡사한 증상.

 

“… 야 이거 뭐야.”

 

S의 손이 멈췄다. 긴급재난문자. 여섯글자를 가만히 쳐다본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선 영어단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infectious. 야아 무섭게 왜 그래. 아이들이 마주 보고 웃는다. 웃지 않고서야 할 수 있는 행동이 없었다. 웃기라도 해야 했다.

 

“… 창문부터 닫자. 닫으라고 되어있잖아.”

“어? 어 그러자. 그러자! 얘들아 창문 싹 다 닫아.”

 

S가 입을 열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창문을 닫고 있자 종례를 위해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아이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며 선생님을 바라본다.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어른의 등장으로 가라앉았다. 퍽 안심된다는 듯이 표정부터 풀린 아이들이 의자에 앉아 교탁을 바라봤다. 오늘따라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는 걸 깨달은 담임 선생님의 눈썹이 한차례 까딱였다.

 

“어쭈 이것들 봐라. 왜 이렇게 분위기가 떠 있어?”

“쌤 문자 못 봤어요?”

“무슨 문자.”

“재난 문자 왔잖아요.”

“아 나 핸드폰 교무실에 두고 왔어. 됐고, 성적표나 받아 가라.”

 

아—. 아이들이 길게 탄식한다. 어쩌면 지금 제일 무서웠을 재난 문자의 존재는 선생님의 손에 들린 저 종이 뭉치에 잠시 밀려났다. 가만히 듣던 S가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린다. 잘 나왔을 거 안다. 가채점 같은 거 죄 S의 답지를 보고 메겼는 걸. 하나둘 출석 순으로 이름이 호명되면 교탁 앞으로 나갔다. 누군가는 절망하고 누군가는 방긋 웃고.

 

“S?”

“네.”

“그래 이번에도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이며 성적표를 받았다. 숫자 하나 틀린 거 없이 죄다 1의 행진이다. 당연한 건데도. 그 숫자를 가만히 바라본다. 얘들아 선생님 교무실 좀. 어으 핸드폰 없는 거 의식되니까 되게 신경 쓰이네. 그 말에 아이들이 작게 웃는다. 종례 끝났고, 갈 애들은 가도 된다. 네에. 길게 대답이 이어진다. 선생님이 나선 앞문의 문이 닫히자마자 누군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긴급 속보다. 가벼운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야 누가 인방 틀었냐.”

“아니 유튜브라도 봐야지!”

 

[ 얘들아 이거 완전 속보임. 지금 전국적으로 뭔 이상한 전염병이 돌고 있다고 문자 왔잖아. 보니까 사람 대 사람으로 감염 사례는 아니라고 하거든? 그러니까 너네도 항상 조심, 쿨럭. ]

- 야 쟤 왜 저래.

[ … 특히 야생동물 조심하고, 밖에서, 오는, 공기, ]

 

“… 뭐야?”

“… 끊겼어.”

 

교실에 적막이 감돈다. S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어폰부터 빼낸다. 아직 인터넷이 되고 전기가 된다. 아무 인터넷 사이트부터 들어가 검색했다. 전염병. 감기. 증상. 격리.

 

야 이거 격리하는 거 걍 각혈하고 기침하면 다 격리하셈

인적 감염 안 된다고 막 그러는데 애초에 걍 감염이 개 빨라. 따라잡을 수가 없음 이거 중대본에서도 수습 안 될 걸? 차라리 보건 쪽이 공지하지; 암튼 이거 무조건 격리하셈. 각혈하는 애들이 진짜 위험하고 보니까 각혈하면 한 세 시간? 세 시간도 못 버티고 죽는 것 같음.

야생동물 조심하라는 게 맞는 것 같음. 야생동물 조심하셈. 막 새 벌레 이런 거 있잖아 쥐? 요즘 쥐는 안 보이긴 하던데 암튼 쥐나 고양이 그런 것도. 시골이면 들개도 조심하고 암튼 사람 말고 다 조심하셈.

 

우리형이강화쪽에연구시설에있었는데그때뭐생화학관련된거한다했는데

삭제된 게시글입니다.

 

정부

가 구조해주는 거 아님? 뭐 막말로 좀비?ㅋㅋ 같은 것도 아니고 걍 감기 그런 것 같은데 마스크 쓰고 정부 기다리면 되는 거 아님? 나 병원 일하는 지인 아는데 정부 쪽에서 병원이나 학교 이런 취약시설?부터 구조한다고 하는 것 같음. 주변에 병원 보건소 학교 있으면 다 그쪽으로 가는 거 추천 ㅇㅇ

 

눈을 감는다. 생각을 해보자. 중간에 본 삭제된 게시글은 어그로성일 거다. 그러니까 그렇게 빠르게 삭제되지. 손목에 걸린 시계를 또다시 만지작거린다. 두어번 돌리며 생각을 이어간다. 인적 감염이 안 되는진 확실하지 않고. 감염의 증상은 각혈 및 반점 그리고 기침. 각혈은 하면 바로 죽는다던가. 아니, 믿지 마. 인터넷 믿어서 뭐 할 건데.

 

“S!”

“아, 어?”

“… 우리 어떡해?”

 

반의 아이들 모두가 S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교무실에 두고 온 휴대폰 가지러 간다고 하며 종례를 마쳤다. 분명 문자에서 그러지 않았나, 섣부른 이동은 삼가라고. 그렇다면 여기에 남아 있어야 할 텐데. 만약 그게 맞다면 이제 의지할 버팀목이라곤 반장뿐이니까. 그게, S니까. S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별거 아니겠지. 뭐 죽을병이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 증상 있는 사람도 없잖아? 그리고, 그. 뭐…, 야생동물? 도 없고. 괜찮을 거야.”

 

동급생의 말이면서 그렇게까지 신뢰가 가는 걸까. 아이들이 아까처럼 안심하는 게 눈에 보였다. S는 속으로 제가 한 말을 곱씹는다. 죽을병이 아닌데 각혈을 한다고. 증상이 감기면. 가볍게 반을 훑는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던데 개가 아니라 그런가. 아침부터 묘하게 기침하는 애들이 많았다. 가방을 힐긋거린다. 혹시 몰라서 매번 챙겨 다니던 마스크가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쓸까.

안 쓰는 건 멍청한 짓이다. 공포감 조성의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르잖아. S가 느린 손길로 가방을 열고 마스크를 꺼내 썼다.

 

“… S 뭐 해?”

“혹시라도 나 기침하면 격리해야 되잖아. 미리 예방하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이 술술 나온다. 금방까지 경계하던 친구의 눈이 다시 풀린다. 그런 거면 뭐. 기침을 참는 게 보인다. 입을 벌렸다가 다시 손바닥으로 막는 애들이 그랬다. 격리라는 두글자가 기침도 못 하게 만들었다. 너네 아침부터 기침 한 거 다 아는데 뭘 그래. 격리를 해야 한다면, 그냥 교실 하나에 애들 다 몰아두면 되나. 그런 생각을 하며 교과서를 챙겼다. 성적표도 고이 모신다. 죽을병이라고 아무도 안 그랬고, 고작 인터넷 찌라시고, 금방 진정될 거니까.

 

쿨럭.

“… 야.”

“쟤, 쟤 방금 뭐 한 거야?”

 

가방의 지퍼를 잠그던 손길이 멈춘다. S가 고개를 들었다. 교실 한 가운데에 피가 고였다. 얘들아, 나, 어지러. 빨간 웅덩이를 만든 애가 그렇게 말했다. 입부터 턱까지 흐르는 피를 손바닥으로 받치며 말했다. 듣기 싫은 쇳소리의 목소리였다. 어지, 럽다니까. 그리고 쿵. 쓰러진다. 제가 토한 피의 위로 얼굴이 힘없이 추락했다. 주변으로 피가 어지럽게 튀었다.

꺄아아아악-!

말릴 틈도 없이 아이들이 대거 이탈하기 시작한다. 아무렇게나 열리는 앞뒷문과 그 문을 통해 뛰쳐나가는 아이들. S가 그 꼴을 조용히 쳐다봤다. 몇몇 아이들은 굳어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다리에 피가 튄 애는 더욱이 그랬다. 덜덜 떨면서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S, S…. 처량한 목소리가 S의 이름을 부른다. S가 그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본다. 아침에 기침을 한 애다.

 

“… 보연아.”

“S, 나 좀 도와줘…. 다리가 안 움직여….”

 

불쌍하다.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떻게든 기침을 참으려는 저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와 흐르는 눈물 모든 것이 모여 보연이를 터무니없이 불쌍한 사람처럼 보이게끔 만들었다. … 응. 겨우 대답한 S가 보연의 곁으로 다가간다. 콜록. 보연이 기침한다. S가 자리에 멈추어 섰다. 마주친 보연의 표정은 복잡했다. 울 것도 같으면서 억지로 올라간 입꼬리와 팔자로 휜 눈썹이 절망적인 표정이었다.

얘들, 얘들아. 쇳소리로 이루어진 목소리가 아래서 들려왔다. S의 다리가 휘청인다. 겨우 뒤의 책상을 짚고 제대로 선다. 춥다…. 안 추워? 나 너무 추운데…. 몸을 둥글게 만다. 얼굴을 감싸고 몸을 새우처럼 말자 웅덩이 가운데로 몸이 말려들었다. 춥다…. 기괴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목소리였다. S가 겨우 목을 가다듬는다.

 

“하민아. 담요 덮어줄까?”

“응…. 응 그래 주라…. 너무 춥다….”

 

에어컨은 전원이 꺼진 지 진작이다. 수업이 끝나면 에어컨을 끄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매일이 끝나자마자 전원 코드를 뽑아버리는 반복이었다. 어쩌면 조금 후덥지근하게 느껴질 만도 한 교실의 가운데에서 춥다며 피로 이루어진 웅덩이 위로 몸을 마는 하민의 위로 S가 조심스레 사물함에서 꺼내온 담요를 덮어준다. 고마워…. 고마워…. 떨리던 몸의 움직임이 잦아든다.

 

“보연아.”

“… S.”

 

텅 빈 교실에 둘의 목소리가 울렸다. 일정하게 들려오던 숨소리가 점차 작아진다. S가 고개를 떨궜다. 바닥에 누운 하민을 가만히 바라본다. … 세 시간이라고 했나. 삼십 분도 채 안 걸렸다. 무릎을 접어 하민의 앞으로 기울었다. 조심스럽게 내민 손가락을 하민의 코 밑으로 가져간다. 사람의 생사를 확인하기에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 S. 떨리는 목소리의 부름에 S가 고개를 든다.

 

“보연아 울지 마.”

“나도, 나도 죽는 거야?”

“… 네가 왜 죽긴 왜 죽어.”

 

누운 하민의 몸 위로 덮어둔 담요를 끌어 올려 얼굴 끝까지 덮어주었다. 보연이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다. 나도, 막, 기침하고, 그랬잖아. 울음이 섞인 목소리는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지도 못했다. 기침한다고 다 죽는 거 아니야. 그냥 감기일 수도 있잖아.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연의 양손을 잡았다. 괜찮을 거야. 다섯 글자에 진심을 담아본다. 그래, 괜찮아야만 한다.

진정되어가는 보연의 호흡에 S가 가볍게 손등을 쓰다듬었다. 괜찮지, 이제? 눈을 접어 웃었다. 보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너네가 여길 왜 와?”

“뭐?”

“너네 걔랑 같이 있었잖아. … 하민이.”

 

하. S가 탄식에 가까운 웃음을 터뜨렸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옆의 교실로 왔더니 한 시간 전까지 같은 교실에 있던 애들이 경계 어린 눈길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쭈뼛대며 뒤에 서 있던 한 명이 입을 연다.

 

“S 너 아까…, 막 몸 상태 안 좋을 수도 있다고 마스크 했잖아…. 격리…,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격리 대상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파악한 거 맞아? 각혈, 붉은 반점, 기침. 여기서 기침 안 한 사람이 누가 있는데. 다 격리해야 돼, 그렇게 치면. 내가 누가 기침이랑 감기 증상으로 보건실 갔는지 다 읊어줘?”

 

교실이 조용해진다.

 

“그리고. 여기가 너희 반이야?”

“그치만! … 거기엔, 하민이가.”

“… 그건 알겠어. 애들한테 양해는 구했어?”

“어, 뭐. 교실에 좀 있겠다는데 그 정도야….”

 

이때까지 조용하던 교실의 주인이 손을 든다. 뒷머리를 긁적이다 S를 바라보고 웃었다. S 오랜만. 작년까지 같은 반이었던 소윤이였다. 의자에서 일어난 소윤이 S와 반의 아이들 가운데로 섰다.

 

“야야 교실도 빌려줬는데 남의 교실까지 와서 싸우지 말고, 응? 대화로 잘 해보자고. 지금 우리 반엔 아픈 애 없고, 뭐 격리 그건…. 오늘 온종일 붙어있던 게 우린데. 격리해야 할 것 같으면 뭐 다른 교실 이용하면 되겠지. 학교에 빈 교실이 하나 없을,”

 

쾅!

굉음이 들려왔다.

 

“….”

“…!”

 

전기가 끊겼다. 교실이 삽시간에 어두워진다. 아이들이 다시 혼돈 속에 갇혔다. 저마다 휴대폰을 집어 들며 그 작은 빛에 의존한다. 아 어떡해 무서워. 서로를 껴안는다. 소윤이 목덜미를 주물럭거린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뭐, 뭔가 좀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전기… 쯤이야 괜찮겠지. 그리고 여기 학교야. 우리 학생이고. 다 구조해주지 않겠어?”

 

하하, 소윤이 소리 내 웃었다. 그 순간 휴대폰이 일제히 울렸다.

 

긴급재난문자 ㅍ

[국민안전처]

현재 상항구 일대 정전 발생,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얘들아 저기 불난 거 아니야?”

 

한 명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창문 밖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S가 밖을 바라본다. 저쪽에 주유소 있지 않았어? 누군가의 목소리와 동시에 터지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쾅, 하고 쿠궁, 같은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삽시간이 교실이 조용해진다. 색색거리는 숨소리만 가득했다. 누군가 하나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얘들아 나 전파가 두 칸 밖에 안 돼.”

“… 나는 아예 안 되는데.”

 

콜록. 어둡고 조용한 교실에 기침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의 시선이 기침 소리가 난 곳으로 집결된다. 콜록, 콜록. 어떻게든 입을 막아보아도 기침이 멈추질 않는지 연신 입을 막은 채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아니야 얘들아. 쇳소리다.

S가 짧은 고민을 마치고 몸을 튼다. 앞문을 열고 아이를 바라본다.

 

“나가.”

“… 야.”

“두 번 말해야 돼? 나가.”

 

강압적인 목소리였다. 그러나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직접 나가라 할 배짱은 없어도 같이 있기 싫은 건 매한가지였다. 기침해서 옮으면 어떡해. 또 피 토하면 어떡해. 열린 문밖의 복도를 향해 고갯짓하는 S에 뒤에 서 있던 보연이 조심스레 S의 소매를 잡았다.

 

“… S.”

“왜?”

“기침… 정도는 격리까진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요즘 냉방병 환자도 많다고 했고…, 그리고… 너무 가혹하잖아…. 우린 봤잖아, … 하민이.”

 

S에게만 들리게끔 작게 말하는 보연에 S가 고개를 까딱였다. 보연아. 너가 뭘 착각하는 것 같은데. 보연의 키에 맞춰 고개를 비틀었다. 나는 너도 이 안에서 기침하면 내쫓을 거야. 낮게 깔고 있던 눈을 든다. 보연과 시선이 마주친다.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뭐?

 

“야 S, 진짜 기침만으로 격리시키려고?”

“… 불만 있어?”

“없지? 너 나가. 아침에 기침했던 애들도 다 나가. 강시은 나지연 박주혜 차슬아 한지영 나가.”

“조소윤 너 좀 싸가지가 없다.”

“내가? 휴대폰 다시 보던가. 각혈, 반점, 기침, 상기도 감염 증상. 격리하라던데? 걱정하지 마. 나도 증상 나오면 바로 너네 곁으로 갈게. 뭐 무서우면 안아라도 줄까?”

 

소윤이 괜히 팔을 벌리는 시늉을 한다. S가 그 양을 가만히 쳐다봤다. 기이하게 통치하네. 반장을 어떤 식으로 뽑았으면 저래. 강제적인데 실리적이다. 확실하게 잡을 줄 알고 분위기가 있다. 팔짱을 끼었던 걸 풀어내며 S도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우리 반도 가자. 알아서 갈래, 이름 불러줄까? 너네 알지. 우리 담임이 보건실 갔…,”

 

근데 선생님들은 어디 갔지.

 

“… 던 애들 다 명단 적어두라 한 거. 다 외웠는데, 뭐 어떡할까.”

 

진짜 이기적인 것들.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S가 소윤을 바라본다. 소윤은 어깨만 으쓱이고 말 뿐이었다. 열린 앞문으로 아이들이 하나둘 나가기 시작한다. 기침한 애들 다 나가. 감기 증상도 다. 열 나고 목 붓고 했으면 다. S가 사족을 붙임에도 별 반항이 없었다. 어쩌면 좀 무기력하게 보였다. 상태가 좀 이상한데.

교실을 빠져나간 아이들이 반을 넘었다. 열댓명만이 남았다. S와 소윤의 눈이 마주친다. 소윤이 시원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넌 기침 안 하지? S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스크는 왜 했어.”

“혹시 모르잖아.”

“아하.”

 

가볍게 수긍한 소윤이 고개를 끄덕인다. S가 마스크를 조금 더 올려 썼다. 가만히 눈을 맞추고 있던 소윤이 고개를 돌린다. 소윤아 우리 집에 언제 가. 글쎄. 책상에 걸터앉아있던 한 명이 소윤의 어깨로 고개를 기댄다. 배고파. 엄마 보고 싶고. 소윤도 그 위로 제 고개를 기울였다.

 

“… 우리 언제까지 격리하려나, S.”

“글쎄. … 그래도 금방 오지 않겠어?”

 

S를 바라보지도 않으며 물었다. S 또한 소윤이 아닌 제 휴대폰을 보며 대답했다. 엄마랑 아빠 연락이 없네. 생각해보니 성적도 안 알려줬다. 뭐라도 보내야 되는데. 그순간 전파가 한 칸으로 줄더니 사라진다. 동그라미에 대각선으로 사선이 그인 표시가 뜬다. … 통신 끊겼다. 연락을 해야 하는데. 걱정할 텐데. 오늘, … 강화로 출장 간다고 했는데.

우리형이강화쪽에연구시설에있었는데그때뭐생화학관련된거한다했는데,

띄어쓰기 하나 없던 그 문장이 계속해서 S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괜찮을 거야. 괜찮아야만 해. 손에 든 가방이 무겁게 느껴졌다. 이거라도 알려줘야 하는데. 나 잘 있다고, 성적도 잘 받았다고. … 장난스럽게 병원 물려달라고도 해야 하는데.

 

“매점 털러 갈까?”

“… 뭐?”

“아니…. 뭐. 민아도 배고프다고 하고. 너도 고프지 않아? 석식 먹고 야자 할 시간이잖아, 지금.”

 

휴대폰으로 시간을 살핀 소윤이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민아가 누군데. 제 어깨로 걸친 고개에 턱짓한다. 마스크를 쓴 애가 눈을 감은 채 소윤에게 기대어 있었다. 애착 인형을 안기라도 하는 것처럼 소윤의 몸에 제 팔을 감은 상태였다. 오구, 우리 민아 배고파쪄용. 소윤이 혀짧게 말하자 힘없이 눈감은 고개가 가볍게 끄덕인다.

 

“… 뭐 먹을 거 없어?”

“없지. 석식 먹으려고 배 싹 비워뒀는데. 매점에 사람도 없을 걸?”

“그래, 그럼.”

“내가 갔다 올게.”

 

S도 소윤도 아닌 사람이 말을 꺼냈다. 갈 준비를 하는 듯 몸을 풀던 소윤의 눈이 커진다. 하예야? 응. 내가 갈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동공도 한 곳에 정착을 못 한다. 사물함을 열어 체육복을 꺼내 걸치는 모습이 기이했다. S가 입을 달싹였다. 너,

 

“혹시 추워?”

“… 응.”

“… 그래 너가 다녀와.”

 

뭐? 소윤이 멍청하게 대답하는 사이 하예라 불린 친구가 뒷문을 열고 나간다. S가 하예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야 S. 낮은 목소리가 꽤 날카로웠다.

 

“… 왜.”

“니가 뭔데 우리 반 애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너네 반이나 잘 챙기지?”

“오한. 감기의 증상 중 하나잖아. … 우리 반에 죽은 애가 있어. 걔가 죽기 직전까지 한 말이야. 춥다고. 계속해서 춥다고 했어. 이 한여름에 우리 반은 에어컨도 안 틀었는데.”

“… 죽었다고?”

 

S가 눈을 꾹 감았다. 다시 떠올리긴 싫었는데. 느리게 고개를 끄덕인다. 소윤의 입이 다물렸다. 누가 죽었다는데 말을 보탤 수 있겠는가. 조심히 뻗은 손으로 S의 팔을 두어번 쓸어내릴 뿐이었다.

 

똑똑.

 

“…?”

 

똑똑똑. 닫힌 앞문에서 노크 소리가 이어졌다. 민아야 자깐마안. 제게 기대었던 민아를 잠시 떨어트린 소윤이 앞문으로 향했다. 위로 난 창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 심호흡을 했다. 그 순간 다시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누구세요?”

“소윤아…, 소윤아.”

 

쇳소리였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목을 다 긁으며 나오는 소리 같았다. 소윤이 느리게 문을 연다. 문 앞에 한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있었다. 문이 열리자 고개가 들린다. 소윤아. 또다시 쇳소리다. 귀가 따갑다. S가 표정을 구기며 귀를 막았다.

 

“소윤아, 추워. 너무 춥다. 응? 너무 추워….”

 

소윤의 고개가 어색하게 돌아간다. S와 눈이 마주쳤다. 거봐. S가 작게 말했다. 귀를 막은 손을 떼어내고는 엎드린 아이에게 다가갔다. 바닥으로 떨궈진 고개가 발소리를 들려오자 느리게 들린다. 무기력한 눈, 긁는 쇳소리, 오한 … 입가에 묻은 피.

 

“소윤아…. 춥다….”

“… 안아줘도 돼?”

 

S를 내려다보며 묻는다. S가 어깨를 으쓱였다. 감염성은 없는 것 같다며. 소윤이 S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상체를 숙였다. 무릎을 접어 바닥에 댄다. 덜덜 떨리는 작은 몸을 품에 안았다. 소윤아 너 되게 따듯하다…. 쇳소리가 소윤의 귀를 때렸다. 소윤이 고개를 묻는다. 응. 많이 추워? 이제 좀 나아…, 떨림이 잦아든다. 숨소리가 일정해지다 작아졌다. 소윤을 마주 안았던 손에서 힘이 점점 풀렸다. 소윤이 애써 더 힘을 주어 안았다. 춥다며. 그럼 꽉 안아야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다른 애들은 왜 안 올까.”

“궁금하면 가보던가.”

 

근데 난 추천 안 해. S는 눈을 감고도 상황을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은 계속해서 간다.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끊겨간다. 작게 무언갈 토해내는 소리도 가끔 들린다. 위층 아래층 가릴 거 없었다. 당장 옆의 교실부터 그랬다. 눈을 질끈 감는다. 보연이는 어떻게 됐을까.

 

띠링.

어., 어.

통신이 된다.

 

학교에 있니?

엄마랑 아빠는 아직 출장지야

우린 괜찮아

연락 주렴

 

엄마 나 지금 |

다시 통신이 끊긴다. … 허탈하게 휴대폰을 놓았다. 힘없이 책상 위로 떨어진다. S가 얼굴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애써 넣어둔 감정이 고개를 든다. 보고 싶다. 엄마랑 아빠가 너무 보고 싶다. 성적 자랑도 해야 하는데. 생일이라서, 생일이니까, 성적 잘 받아오면 어디 호텔 코스요리도 사준다고 했는데.

모든 감정이 한 데 모여 S를 덮친다. 무력감, 불안감, 허탈감, 그리고 이어서는 슬픔이.

 

“S.”

“… 왜.”

“… 어떡해, 우리.”

 

옆반을 살피러 갔던 소윤이 금방 돌아왔다. 손바닥엔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었다. 하…. S가 깊게 한숨을 내뱉는다.

 

“그러게 누가 가래?”

“… 말을 왜 그렇게 해….”

 

소윤의 눈가가 붉어진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굴었다. S가 입을 다문다. 말없이 다가서 손바닥을 닦는다. 교복을 들추고 안감으로 핏자국을 닦아냈다.

 

“…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우리가. 우리도 할 수 있는 거 없어. 나도 너도 이 상황 해결 못해. 그냥…,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하나도 없어. 통신도 안 돼. 전기도 안 돼. 먹을 것도 없고, 애들은 죽어가. 우리는 그럼. … 우리는 그럼.

소윤이 팔을 뻗는다. 얼룩덜룩하게 핏자국이 남은 손바닥으로 S의 등을 감싸 안았다.

아무것도 못해. S가 말한다. 소윤은 조용히 S를 안은 팔에 힘을 더 줄 뿐이었다.

 

기침을 하는 아이들을 격리하고, 춥다는 아이들을 달래고, 집에 못 가겠지. 가면 안 되겠지. 하는 소윤의 말에 별 대답이 없자 소윤이 책상을 모아 크게 만들었다. 그럼 잠이라도 자자. 바닥은 차갑잖아. 그리 말하며 아이들의 사물함을 모조리 열어 체육복을 죄 꺼냈다. 큰 담요를 아래 깐다. 두어개 더 만들더니 교실에 남아있는 아이들보고 누우라고 했다. S가 그 모습을 가만히 관찰했다. 기침 조금이라도 하는 애들은 싹 다 몰아낸 바람에 사람이 열도 채 안 남았다.

하예는 정말 매점이라도 털어온 건지 가득 찬 가방을 소윤에게 건네주곤 웃으며 옆의 교실로 향했다. 춥다, 추워. 그런 식으로 혼잣말을 하는 게 들렸다.

마지막으로 제 체육복까지 가져온 소윤이 하나 남은 책상 위를 두들겼다.

 

“S랑 나는 여기.”

“… 응.”

 

먼저 올라가 편하게 눕는 모습에 시선이 따라간다. 담요 위로 몸을 웅크리는 걸 가만히 쳐다보다 입 모양으로 물었다. 추워? 소윤이 대답 없이 웃었다. S가 조심스레 옆으로 제 몸을 뉘었다. 조금 추워. 둥그렇게 말린 몸이 가까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체육복 밖으로 왼팔을 꺼낸 S가 소윤을 잠시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소윤이 다시 웃는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눈이 감긴다.

S가 심호흡했다.

오른손으로 주머니에 넣어둔 펜을 꺼내어 시계로 갖다 박았다. 그대로 시계의 유리가 부서진다.

초침이 헛돌기 시작한다. 시계는 영원히 이 시간에 멈출 것이다. 시계의 중앙에 배경으로 난 날짜를 바라본다. 오늘, 이 시간으로 멈출 것이다.

영원히 이 시간 속에서만 살 것이다.

툭 펜을 바닥으로 떨군 S가 제 배 위로 양 손을 모았다. 잘 자.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