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행동의 심리학적 이해

커미션 작업본

앞마당 by Mii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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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심리학적 이해

HxS

W. Miiin

 

 

 

“논알콜 마티니 온더락 젓지 말고 흔들어서.”

 

S가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제 옆에 앉은 미친놈이 뱉는 말 덕에 면상이 궁금해졌다. 오백짜리 맥주잔이 S의 손에 들려 입으로 향한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옆을 바라보자 익숙한 얼굴이었다.

 

“… H?”

“어, S네.”

 

뭘 어 S네, 같은 씨알도 안 먹힐 연기를. 웃음이 픽 터진다. 근데 방금의 말도 안 되는 주문이 통한다. 심지어 칵테일 바도 아니고 고작 맥주나 파는 펍이면서 말이다. 마티니 같은 게 있긴 한가? 없겠지. 논알콜 마티니 어쩌구 주문을 받은 주인장이 오백 잔을 하나 건네주었다. H가 얌전히 잔을 두 손으로 받아들며 홀짝였다. 하이. 눈짓으로 인사하며 고개를 꾸벅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 너 왜 여기 있냐? 물 마실 거면 집에나 쳐 가지.”

 

그 말에 H는 오랜만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 내가? 분명하게 얼음이 동동 떠있는 잔을 내려두며 작게 말한다. 아닌데….

 

“나 약 하러 왔는데.”

 

주머니를 뒤지더니 노란 고무줄을 꺼내 들고 제 머리를 낮게 묶었다. 아무렇게나 묶은 덕에 곧 풀릴 것처럼 잔머리가 삐죽였지만 다시 묶을 생각은 없는지 다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손바닥만 한 틴케이스가 주머니에서 나왔다. 주머니 크기도 하네. S가 맥주를 홀짝이며 생각했다.

틴케이스를 열고 롤링 페이퍼를 왼손에 든다. 미리 그라인딩을 해둔 걸 가운데에 올리고, 말고, 필터를 함께 만 뒤, 끝은 침을 발라 마무리한다. 자연스럽게 입에 물자 금방 다가온 주인장이 불을 붙였다. 한 번의 숨을 빨아들인 H가 S를 바라봤다. 뭘 봐. 연기를 삼킨 입 모양이 말한다. 이새끼가? S의 이마 위로 빠직 마크가 떠올랐다. 문득 자연스럽게 조인트를 하는 H나, 불을 붙여주는 주인장이나. 이 상황이 뭔가 묘하게 다가왔다.

 

“근데 둘은 언제 친해졌냐?”

“H가 너,”

“악.”

 

눈에 띄게 큰 모션을 한 H가 S의 옆으로 무너졌다. 어으, 뭐야. 얼떨결에 H를 받아든 S가 미간 사이를 좁혔다. 뭔데. 미아안. 늘어지게 말한 H가 다시 제자리로 앉으며 꾸벅 사과했다. 얼떨결에 함께 고개를 끄덕인 S가 주인장에게 주문했다. 오백 하나만 더.

 

“… 좋냐?”

“… 그럼…. … 안 좋을 리가….”

 

주인장이 뒤를 돈다. 벌써 종이가 삼 분의 일이나 사라졌다. S와 H의 눈이 마주친다. H는 꼭 약을 하면 말이 늘어지고, 느려지고, 눈을 평소보다 더 낮게 뜨고, 키스하기 딱 좋게,

 

“야. 나가서 해라.”

“아?”

 

S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떼어냈다. 가볍게 오간 입맞춤의 촉감이 아직 입술 위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맥주와 마리화나가 섞인 그 중간 지점의 맛. 가볍게 아랫입술을 씹었다. 고개가 떼어지자 그 짧은 새 눈을 감았는지 다시 뜨는 H의 속도가 느렸다.

둘을 아니꼽다는 듯 쳐다보던 주인장이 S의 앞으로 맥주잔을 내려두었다.

 

“한 번만 더 걸려봐. 아주 쫓아낼,”

“어이, 여기 맥주 오백 둘!”

“아, 예 간다!”

 

주인장이 사라진 정면에서 가득 찬 맥주잔을 바라본다. 이슬이 맺힌 표면을 손가락으로 훑는 S의 손목 위로 손바닥이 겹친다. 붙잡힌 손목이 뜨겁다. 손바닥이 왜 이렇게 뜨거워.

 

“진짜 안 해?”

“….”

“좀만 더 해….”

 

지는 약이라도 했지. 고작 알코올만 혈관에 조금 돌고 만 S가 짧게 고민하자 그 틈도 아깝다는 듯 H가 몸을 붙여왔다. 바 테이블을 짚는 손과 뒤틀리는 고개에 S가 짧게 숨을 참았다. 맞춰 고개를 비틀자 다른 손이 S의 목뒤로 감겨온다. 넌 진짜 깨면 뒤졌어. 그런 다짐을 하며 H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짧았던 게 아쉽긴 했나 보지. 입술이 쿡쿡 찔려오길래 얌전히 그 사이를 벌렸더니 기다렸다는 듯 뜨거운 살덩이가 입안을 헤집는다. 아, 마리화나 좀 오랜만인데. 호흡 사이로 들어오는 향이 띵했다.

응, S…. 낮게 터지는 신음에 섞인 제 이름에 S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허리가 꽤 강한 힘으로 붙잡히자 H의 표정이 작게 구겨졌다.

 

“썩 꺼져!!”

 

사자후같은 주인장의 목소리에 S의 고개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허공에 비틀려있던 H의 고개가 느리게 추락한다. 어, 야! 급하게 제 몸을 가져다 댄 S의 어깨 위로 H의 이마가 내려앉는다. 이번엔 주인장이 이마 위로 빠직 마크가 떠올랐다.

서비스직의 미소다. 입은 웃는데 눈으로는 육두문자가 날아오기 직전이었다.

 

“S.”

“… 응?”

“갖다 버리든가 같이 꺼지든가 해줄래.”

 

분명 웃고 있으나 웃지 않았다. 그러나 S는 웃었다. 호탕할 정도로 와하하, 하는 식의 웃음을 터트리며 가볍게 H를 일으켜 세우고 제게 기대게끔 했다. 세 모금도 안 마신 맥주를 앞에 두고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낸다.

 

“미안, 미안. 계산해줄래?”

 

주인장이 눈을 흡사 세모나게 떴다. … 진짜 간다고? 그렇게 묻고 있었다. 원래의 S 같으면 깔끔하게 H 같은 거 버려두고 맥주를 리필해서 몇잔이고 더 마셨을 텐데. 조금이라도 편하게 기대라는 듯 H의 허리를 잡아 고정하는 모습이 주인장에겐 퍽 낯설게 다가왔다. 일주일에 여덟 번을 와서 맥주를 석 잔씩 들이켜도 저런 모습 보는 건 처음이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카드를 받아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응석부리는 것처럼 어깨 위로 고개를 비비는 H에 S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자 계산 끝.”

 

눈을 얇게 뜬 주인장이 S를 본다. 맥주를 이만큼이나 남기고 진짜 갈까, 재보는 짓이었다. S는 거침없었다. 카드를 받자마자 주머니에 넣고, H의 팔을 제 어깨로 얹고 허리를 든든하게 받쳐 들고. 주인장을 향해 뒤를 돌고,

 

“또 올게!”

 

하며 간다. 문이 닫히고 종소리가 끊일 때까지 주인장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둘의 뒷모습을 쫓았다. 어이, 여기 맥주 석 잔 더! 아, 예 갑니다! 그제야 고개가 돌아갔다.

 

 

“… 으음….”

“왜. 뭐 불편해?”

“… 마리이…, ….”

“… 마리가 언년이냐 개자식아?”

“마리이…. …, …, 마리화나….”

 

아. 긴장이 탁 풀린다. 당장이라도 마리라는 이름의 여자를 찾아가 반쯤 죽일 것처럼 굴던 S가 고개를 푹 숙였다. 금방 쳐들더니 또 웃음을 크게 터트린다. 마리이… 마리 왜 자꾸 찾아. 하고 싶어… 그래, 그래. 약이 하고 싶으시겠지.

가볍게 주변을 둘러본 S가 하트모양 조명을 잔뜩 달고 번쩍이는 건물을 바라본다.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와, 물침대다. 반쯤 던지듯 H를 침대 위로 내려두자 출렁이는 모습에 감탄했다. 물침대가 아직 있다고. 도대체 연식이 얼마나 된 거야.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내부를 파악하는 S와 다르게 H는 느릿하게 제 주머니를 다시 뒤졌다. 틴케이스를 꺼내 들고 한 짓을 다시 반복했다. 아, 불. 작게 말했는데도 귀신같이 캐치한 S가 옆으로 다가왔다.

 

“불 없어?”

“… 응….”

 

하나쯤 있을 만한데. 침대 밑, 화장대 밑, 쓰레기통 옆, 마구 뒤져보던 S가 마침내 신발장 구석에서 라이터를 발견했다. 열심히 출렁이는 물침대 위에서 용케 조인트를 해낸 H가 앞니로 필터를 잘근잘근 씹으며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앞으로 불쑥 라이터를 내민 S가 부싯돌을 돌린다. 두 번 정도 헛돌며 칙칙 소리를 낸 라이터가 작은 불을 피워냈다. 가스 얼마 없나보다. 씹는 필터 사이로 말한 H가 불 끝으로 대를 가져다 댄다. 깊게 호흡하며 불을 받아낸다. 폐부 끝까지 차오르게 할 것처럼 깊게 패는 갈빗대를 S가 가만히 쳐다봤다. 이윽고 불이 힘없이 꺼진다. 진짜 가스 없었나 보다.

 

“S….”

“어 왜.”

“우리…, ….”

“어.”

“… 아니야….”

 

말을 끝내곤 일정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벌써 다 피웠다고? 손에 든 게 반 마디 만큼도 안 남았다. 와 빨리도 피우네. 피우는 거 구경하는 겸 맥주라도 사 와서 깔까 했더니. H의 옆으로 손을 짚는다. 아오, 물침대. 출렁이는 걸 애써 무시하며 눈을 감은 H의 얼굴을 살폈다. 웃긴다, 진짜.

모로 H를 눕힌 S가 이불을 끌어와 누운 몸의 위로 덮었다. 담배를 꺼내려다 말았다. 남은 불도 없다. 끊은 것도 아닌데 언젠가부터 안 하게 됐다. 누구였지. 누가 분명 마리화나랑 담배 연기랑 섞이는 거 싫다고 해서 그랬던 것 같은데. … 중요하겠냐.

체감상 오십년 만에 오전 강의를 들으러 온 S가 길게 하품했다. 어으, 피곤해 죽겠네. 겨우 1교시만을 들었는데도 졸음이 몰려와 제대로 메모도 못했다. 교수가 뭐라고 했고, 하품을 세 번쯤 했고, 눈을 감았다 떴는데, 강의가 끝나있었다. 띠링. 짧게 휴대폰이 울렸다.

 

어디야

학교

 

짧은 물음에 짧게 대답했다. 무슨 일로 이시간에 눈을 떴대. 아침형 인간 극구 아니라고 열한 시 이전 수업은 재수강 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안 듣겠다던 H였다. 그런 H에게서 무려 열 시 육 분에 연락이 오다니. 물론 답장은 읽씹이다. 읽었다는 표시만 뜨고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기대한 것도 아니다. 휴대폰을 뒷주머니로 깊게 찔러넣은 S가 다시 한번 길게 하품했다. 안 되겠다. 2교시까지는 무리다. 깔끔하게 드랍할 생각으로 동방으로 향했다.

활동도 안 하는데 동방이라 해도 되나. 신청만 하고 제대로 된 활동도 안 한 S가 동방의 문을 벌컥 열었다. 뭐, 나만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여느 때처럼 텅 비어있는 동방에 작게 안심한 S가 소파 위로 제 몸을 던졌다. 가방은 아무렇게나 바닥으로 떨궜다. 휴대폰을 들고 아무 게임이나 켰다. 우주에 쳐들어온 잠자리 같은 놈들을 때려 맞추는 게임. 열심히 하고 있자 동방의 문이 열린다.

 

“뭐야, S?”

“여어 매그.”

“오랜만이네. 관둔 줄 알았더니.”

“난 내가 잘린 줄 알았는데.”

 

몇 번 대화가 오가고 매그가 킥킥 웃었다. 아니 나는 너랑 H랑 둘이 같이 관두는 줄 알았지. 엥 그게 뭔 상관. 아 죽었다. 결국 침략당한 S가 위로 뻗었던 팔을 그대로 머리 위로 넘겼다. 정수리 위에서 시끄럽게 광고가 뜬다. 플레이만 해도 돈을 준다고. 어쩌고 저쩌고.

 

“야 매그.”

“응, 왜.”

“… 나 어제 H랑 키스했다.”

“…, … 진심 어쩌라는 거지?”

 

익숙하게 동방의 책상에 노트북을 올리며 나름의 세팅을 하던 매그가 표정을 와그작 구겼다. 질린다는 표정으로 마우스를 꺼낸다.

 

“너네 사귀는 거 전 국민이 다 알 걸. 아니? 전 세계인도 알 거다. 근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뭘,”

“좋더라.”

“이, 씹.”

 

결국 못 참고 욕을 짧게 뱉자 S가 웃음을 터트린다. 와, 매그 욕했어? 으하학. 아예 배를 부여잡고 웃기 시작했다. 어쩐지 편두통이 오는 기분을 느낀 매그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노트북의 화면을 켠다. 핀 번호를 입력하시오. 키보드를 몇 번 달칵이는 소리가 들린다. 마우스를 쥐고 휠을 하고 드래그를 하고 클릭을 하고. 교양 과제. 에이쁠 못 받으면 자퇴뿐. 파일을 연다.

인간 행동의 심리학적 이해.

제목을 한 번, S를 한 번 본다. 좋다고 하더니 지 입술을 만지작거리는 S를 본다. 다시 제목을 본다. 나도 궁금하다. S 행동의 심리학적 이해를 하고 싶다.

 

“한 번만 더 해보자고 할까.”

“썅 진짜. 야, 니가 꺼질래 내가 갈까.”

“니가 꺼져.”

“어. 더럽고 치사해서 꺼진다, 미친 것아.”

 

신경질적으로 노트북을 닫은 매그가 꺼냈던 짐을 다시 챙겨서 씩씩거리며 동방을 나선다. 아, 개웃기다. 왜 저래 진짜. S가 쾅 소리가 나며 닫히는 동방의 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조용해진 동방이 어색하다. 자려고 왔는데 잠 다 깼다. 한 번만 더 해보자. 어디야. 휴대폰을 들고 똑같이 연락한다. 답변이 금방 온다. 학교 다 왔어. 바닥의 먼지를 다닥다닥 붙인 가방을 가볍게 털고 어깨로 걸쳤다. 나 갈게. 물음표 두 개가 연달아 온 건 가볍게 씹었다.

 

 

“피곤타.”

“어제 술 마셔서 그렇지….”

“아이 씨발 그러니까 니가 좀 말렸어야지.”

“미안…”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한 H가 카운터의 줄 뒤로 섰다. 얌전히 옆에 붙은 S가 H의 어깨 위로 제 고개를 기댄다. 어제랑 딱 반대네. 중얼거리는 말에 H도 그렇네, 작게 대답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샷 세 번 추가해주시고, … 뭐 마실래?”

“갸또 쇼콜라.”

“… 갸또 쇼콜라도 하나 주세요.”

 

진동벨을 받아든 H가 사인용 테이블로 자리를 잡았다. 구석의 의자로 제 가방을 던진 S가 자연스럽게 제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나름 무해하게 올려다보자 픽 웃은 H가 옆으로 앉았다. 에코백에서 노트북을 꺼내고, 노트를 꺼내고. 마우스를 꺼내는 일련의 모습을 가만히 관찰하던 S가 다시 고개를 툭 기댔다.

지이잉. 눈치 없이 울리는 진동벨과 눈치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H 덕에 어깨로 어퍼컷을 맞은 S가 어으, 작게 신음했다. 아 미안. 또 마음에 없는 것처럼 가벼운 사과를 한 H가 카운터로 가 진동벨을 반납했다. 음료 한 잔과 갸또 쇼콜라를 들고 야무지게 걸어온다.

“할 거 많아?”

“하기 싫은 건 많아.”

 

이미 열댓번도 더 드랍한 졸작이다. 시안만 오십번 쯤 그리고, 오십 오 번쯤 폐기했다. 하기 싫어. 귀찮아. 안 할래. 매번 H는 그렇게 말했고 옆을 지키던 S는 그러든가, 하고 말았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빨아들인 H가 포크를 집어 든다. 익숙하게 아, 하고 입을 벌린 S의 입속으로 작게 잘린 갸또 쇼콜라가 들어간다. 어우, 달아. 좋다는 뜻인지 싫다는 뜻인지. 초반엔 가늠도 안 갔는데 이젠 그냥 알아서 하겠지 싶다. 싫었으면 주문도 안 했을 S인 걸 아니까.

 

“할 거야?”

“음, 뭐든 해보고.”

 

어깨를 가볍게 으쓱인다. 마우스를 잡는 걸 보며 S가 고개를 기댔다. 졸작 시안. 심플한 제목과 아무렇게나 입력되는 내용에 웃음이 샜다.

 

하기싫름. 머라도 해봄. 아 근데 좀 귀찮; 쩜쩜…. 뭘 하지.

 

진중한 표정으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기는 거 치고 영양가 없는 단어들의 나열이었다. 조용히 손을 뻗은 S가 H의 허벅지를 콱 쥐었다. 크게 움찔한 H가 키보드에서 손을 뗀다.

 

“그건 좀….”

“뭐. 좀 뭐. 아니 내가 좀 만지겠다는데 왜 이렇게 싫어해. 너 나 싫어? 어? 이젠 다 끝이야?”

 

따발총처럼 우다다 쏟아지는 말에 H가 한숨을 푹 내쉰다. 아니야… 눈치를 주던 눈을 거둔다.

 

허벅지…. 카펜데….

 

하루에 한 번씩 빠직 마크를 적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도 있나. S가 표정을 구긴다. 아, 싫으시겠다. 휙 고개를 들고 H를 본다. 태평한 표정이다. 점 개수라도 좀 줄이고 저런 표정 짓던가. 노골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 사타구니 안쪽으로 깊게 파고들자 H가 급하게 몸을 비틀었다. 너, 너….

 

“S 너 혹시, 약간, 욕구불만이야?”

“미친, 여친한테 못 하는 말이 없다. 어? 됐다 좆같은 졸작이나 평생 해라, 그냥.”

 

고개를 들고 손을 떼어낸다. 아오 진짜. 신경질적으로 H의 어깨를 퍽 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말하더니 H 앞의 테이블을 들어 옆으로 조금 치우곤 그 짧은 사이로 몸을 통과해 지나갔다. 고작 제가 잘라서 입에 넣어준 만큼만 잘려 나간 갸또를 보던 H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가려던 발길이 멈춘다. 다시 돌아오려나.

 

… 아마 아니겠지. 아무렇게나 에코백 안으로 짐을 챙긴 H가 발걸음을 서둘렀다. S 같이가아. 길게 늘이는 말투는 S의 취향이었다. 분명 멀어 보였던 S의 실루엣이 좀 커졌다. 발걸음이 확연히 느려진 게 느껴질 정도였다.

재빠르게 옆으로 가 선 H가 가볍게 S의 표정을 살핀다. S이. 또다시 이름을 늘린다. 휙. 고개가 돌아온다. 눈이 마주친다. 같이 가. 이번엔 짧게 말하며 웃었다. 표정을 훑은 S가 다시 걷는다. 확실하게 느려진 걸음에 H가 느리게 따라잡으며 S의 팔에 제 팔을 엮었다. 아래로 내린 손은 손가락끼리 엮어낸다. 분명하게 마주 잡는 힘이 느껴졌다.

 

손바닥이 뜨겁다. 누군가의 손바닥이 특출나게 따뜻한 게 아니었다.

뭐, 손잡으면 열에너지라도 나오나 보지.

이과의 영역에서는 멀었다. 둘 다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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