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미
행맨 드림
*쓰다 만 글
그 애가 다쳤단다.
버드 스트라이크, 고장, 탈출. 달리는 와중에도 저 말만큼은 선명하게 들렸다. 속이 울렁거렸다. 급하게 멈춰서 입을 틀어막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어째서? 그 단어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아, 젠장. 꼭 뱃멀미하는 기분이다. 나는 배에 타고 있지도 않고, 뱃멀미 따윈 하지 않음에도.
“괜찮아?”
“전혀.”
피닉스의 물음에 대충 답한 행맨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피닉스는 그런 그의 등을 두드려 주다 그의 부대가 멀리 있다는 걸 생각해 냈는지 의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탈영한 건 아니지?”
“휴가야.”
“그래, 그럼 난 마실 거라도 사 올게. 병실은 203호야.”
대충 고개를 끄덕인 행맨은 다시 뛰어가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어렴풋이 병원에서 뛰시면 안 돼요! 라는 말이 들렸던 것도 같았다. 무슨 정신으로 달려온 건지. 하마터면 병실을 지나칠 뻔했다.
막상 문 앞에 서자 다시금 울렁거림이 덮쳐왔다. 저 문을 열었을 때 그 애가 누워있다면. 나는. 문을 열기 위해 들었던 손이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저 문을….
“정신 차려야지.”
조용한 복도에 짝 소리가 울렸다. 여전히 속은 울렁거렸고 손은 떨렸지만 조금 전보다는 한결 나아진 기분이 들었다. 저답지 않게 약한 생각이나 하고. 행맨 정말 다 죽었구나. 에리얼이 보았다면 10년은 놀려 먹었을 거다.
겨우 문고리에 손을 올리곤 옆으로 밀었다.
“아.”
“피닉스 벌써왔…. 뭐야?”
병실 침대에 앉은 에리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 곁으로 다가가자 어이없어하는 에리얼의 얼굴이 보였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살아 있네…?”
“그거 무슨 뜻이야.”
에리얼이 얼굴을 찡그렸다. 남들은 저게 찡그린 거라고? 라 하겠지만 행맨은 알 수 있었다. 미묘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딱 탑건에서 제 시비를 맞받아치던 얼굴이었다. 그제야 에리얼이 살아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평소랑 똑같은 얼굴에 같은 반응. 물론 시비 걸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 얼굴을 보자마자 저 말이 생각난 걸 어떡하란 말인가. 듣기 싫었으면 다치지나 말든가.
그제야 몸의 긴장이 풀렸다. 휘청거리는 몸을 에리얼이 잡아 주었다. 얼결에 안긴 모양새가 됐다. 평소였으면 바로 몸을 땠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안기기 쉽게 몸을 수그렸다. 자연스레 목에 얼굴이 묻혔다. 심장박동 소리를 듣고 싶었다. 살아있음을 확인했지만 그래도.
“누가 환자인지 모르겠네.”
“너지.”
“아니. 이 꼴을 보면 너라고 생각할걸.”
위에서 에리얼이 어이없어하든 말든 얼굴을 묻은 채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바다 향과 약 냄새는 맡아졌다. 아 정말. 바다 위에 떠 있는 기분이다. 여전히 속은 울렁거렸고, 손도 떨렸지만. 아까와 같은 불쾌감은 없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조금만 더.”
불만스러워하는 게 느껴졌지만 아직은 고개를 들 수 없다. 이렇게 흠뻑 젖어버려선. 누가 봐도 바다에 빠져버렸다는 걸 눈치챌 테니까. 전투기 조종사라 해도 명색이 해군인데 바다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꼴을 보이는 건 자존심이 용납 못 한다. 나만 빠졌다는 게 억울하기도 하고. 아니 애초에 얘는 에리얼이니까. 얘가 날 끌고 들어간 걸지도 모르겠다.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음료를 사러 간다던 피닉스가 돌아왔나 보다. 에리얼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제 어깨를 툭툭 쳤다.
“이제 떨어져.”
“본부대로.”
냉큼 떨어진 행맨의 얼굴은 평소와 같았다. 능청스럽고 에리얼을 짜증 나게 하는 그 얼굴. 에리얼이 조금 전 일에 대해 추궁하려는 순간 타이밍 좋게 피닉스가 돌아왔다. 행맨에게는 다행이었지만 에리얼은 아니었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그 모습마저도 귀엽게 느껴져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럼 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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