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함] 새해 다짐

더 괜찮아질 미래를 약속하는 1월 4일.

줄글 by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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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아이의 묘는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는 말이 옳으리라. 여러 명의 인간이 낱낱이 분해된 구성물은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었다. 그것을 구분하는 건 신이 아니면 불가능했으리라. 머릿속을 뒤덮는 선명한 붉은 참상에 강사함은 잠시 눈을 내리감았다. 기억에 오래 붙잡혀 좋을 것 하나 없으니.

‘오염물’을 처리한 후에, 사고에 휘말린 다른 피해자의 유족 중 일부는 빈 유골함이나마 마련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그러나 강사함은 그조차 거절했다. 새겨 넣을 아이의 이름이 없는 까닭이었다. 이미 찢길 대로 찢긴 가슴만 더 긁어 헤집을 테니 당시에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자기 보호였다. 그럴 정신머리가 없기도 했고.

그래서 도착한 곳이 이곳이었다. 사시사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곳. 물씬 풍기는 소독약 냄새와 바쁘게 오가는 발걸음 소리, 사무적인 문장과 초조함에 찬 고함과 안도를 담은 감사, 희비가 어지러이 뒤섞인 흐느낌,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장소. 병원 로비는 정신이 없었다. 차마 여성의학과 앞까지 갈 자신이 없어 로비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앉아 있기를 두 시간째. 큰 수술이라도 들어가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병원 특성상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 보이지 않는다는 점 하나는 좋았다.

‘그래도 슬슬 일어나야지.’

가뜩이나 사람이 많은 3차 병원이다. 더 간절한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함이 옳았다. 추억 대신 참상만 떠오르기도 하고.

그래도 한 번 오기는 해야 했어. 스스로를 다독이며 강사함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 새해가 다가오기 전이었다.

그다음 한 일은 꽃을 사는 일이었다. 새해 첫날, 일출을 보러 와서는 가장 먼저 한 일이 꽃집을 찾는 일이었다. 운 좋게도 꼭두새벽부터 꽃시장을 다녀온 꽃집을 찾아 싱그러운 꽃을 구할 수 있었다. 헌화를 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꽃집 주인은 알아서 흰색으로 꾸린 꽃다발을 만들어줬다. 국화는 빼달라는 말에 왜냐는 물음이 돌아와 흐리게 웃으며 얼버무리자, 꽃집 주인은 눈치껏 질문을 아꼈다.

꽃다발을 품에 안고 바닷가에 서자 일출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가 흩어졌다. 개중 늘 느끼던 감시인의 시선도 포함되어 있었다. 연초부터 수고 많으십니다, 속으로 심심한 위로를 건네며 수평선을 바라보면 어느새 하늘이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1분, 2분, 3분… 오래 기다리지 않아 해머리가 불쑥 솟아올랐다.

연애할 적에는 구름이 잔뜩 껴 빛이 번지는 바람에 제대로 보지 못했었고 결혼한 후에는 둘이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해가 떠올라 버렸었다. 오늘은 날이 맑아 윤곽이 선명했다. 이 광경을 같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한 채 꽃잎을 뜯어 밀려오는 파도에 뿌렸다. 그동안 꽃을 바치지 못한 이유는 그로써 완전히 당신을 보내야만 할 것 같아서였다. 막상 꽃잎을 흩뿌려 보니 의외로 느낀 감상은 평범했다. 저 꽃 누나랑 잘 어울렸겠다, 하는.

포말과 함께 꽃잎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넘실거리자, 그 광경이 퍽 아름다웠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닌지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으려는 손길이 분주했다. 혹시라도 애먼 시민의 사진에 그림자라도 찍힐세라, 얼른 남은 꽃을 마저 흩뿌리고 사진을 찍은 강사함은 인파에 섞여 자연스럽게 몸을 뺐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정보원의 이점을 꼽으라면 역시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소란스러운 카페 안, 어색함이 꽉 채운 테이블 너머로 거북해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서로 그만 만나자고 합의한 이후로 처음 마주하는 자리였으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반면 강사함의 표정에는 긴장과 온화함이 동시에 흘러, 제법 서글서글한 웃음이 자리했다.

사위였던 이의 부드러운 표정을 본 노부부의 표정에 안도가 스치며 경직된 분위기는 차차 풀렸다. 죽지 못해 사는 것 같더니 이제는 제법 여유가 엿보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이와 누나에게 꽃을 주고 왔습니다.”

달칵, 컵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아지는 소리가 소음 사이를 가른다. 휘둥그레진 노부부의 눈을 보며 강사함 또한 찡그리듯 웃어 보였다. 놀라셨을 만도 하지.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다시금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만큼 많이… 좋아졌습니다. 알려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귀한 자식을 죽게 한 주제에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면 불쾌하시지는 않을까, 걱정과 함께 떠오르는 두려움을 깊이 내리눌렀다. 분노하신다면 그 또한 응당 받아야 할 몫이었다. 어떤 반응을 보여도 감내하겠다는 듯한 모습 위로 따뜻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잘했다.”

“예?”

“그래, 잘했다, 얘.”

노부부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고백했다. 자신들도, 자네도 힘들어 사이가 멀어지긴 했지만, 그날 이후로 꾸준히 딸자식의 기일을 기렸다고. 함께 했으면 좋았을 걸 뒤늦게 후회가 들었다고 했다. 잠시간 가족이었다가 다시 남남으로 돌아간 사이라도 가끔 한 번씩 얼굴 보며 그 애의 추억을 함께 나누자고, 그런 방식으로 죽은 사람의 공백을 채워나가는 거라고. 강사함은 어렵다는 말 대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온 집은 휑했다. 혼자 사는 사람 집이 흔히 그렇듯 나갔다 오면 온기가 식어 한기가 먼저 반겼다. 출장이 잦고 거처를 자주 옮기는 통에 최소한의 짐만 둔 터라 안 그래도 휑한 집이 더욱 허전해 보이는 효과도 있었다. 결혼생활을 하며 채웠던 두 사람의 추억이 담긴 물건은 장례를 치를 때 상당수를 함께 태웠으며 얼마 남지 않은 나머지는 잘 정리해 창고에 보관해 뒀다. 보고 있으면 괴로울 것 같아 이사 다닐 때 빼고는 꺼내지 않는 물건들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창고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창고에서 상자를 하나 꺼내 거실로 나와 뚜껑을 여니 액자와 앨범, 물품 따위가 담았던 그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기만 하던 강사함은 가장 위에 놓인 거꾸로 덮인 액자에 손을 뻗었다. 뒤집으니, 환하게 웃는 아내의 모습이 두 눈에 가득 들어왔다.

“누나….”

먹먹하게 메인 목소리가 연신 없는 이를 부르다 제법 긴 시간이 흐른 끝에 쌓인 근황을 풀어놓았다. 혼자가 된 지 벌써 9년째가 돼요, 누나. 나는 밥 잘 먹고 지내. 이번에 승진했어. 별로 바란 일은 아닌데 그렇게 됐네요. 어쩌겠어, 잘해야지. 아랫집이 이사 왔는데 매일 피아노를 쳐. 새로 임무를 맡으며 함께한 팀원들이 있는데 제법 즐거웠어요. 누나 부모님도 만나고 왔어. 두서없이 쏟아지고 있었으나 결국 가장 하고 싶은 말은 하나로 귀결됐다.

“보고 싶어요. 사랑해.”

액자를 품에 안고 소파에 가 몸을 뉜 후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최근에 말이죠, 어쩌다 보니 내 이야기를 조금 털어놓게 되었어요. 제법 괜찮아지고 있나 봐.”

사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이 무뎌져야 함에도, 이능력 발현 당시의 기억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각인된 기억은 사슬처럼 발목을 휘감고 있었고 스스로 떠맡기를 자처한 죄책감은 어깨를 짓눌렀다. 그래도 점차 자신은 능숙하게 이 상황을 버텨내가고 있었다. 그 사람 없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즐겁다는 말은 할 수 있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근데 사실 썩 괜찮길 바라는 것도 아냐.”

그러기엔 아직도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다.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만 그것이 당신을 그만 사랑하는 일이 될까 봐 두려웠다. 아직은, 기억 한 자락이라도 당신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엔 괜찮아지겠지. 물조차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하고 주변의 변화를 인식하지도 못하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잘 먹고, 이웃과 웃으며 어울리고, 직장 동료와 시시껄렁한 농담도 나누는 사람이 됐다. 슬픔에 침몰당하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가볍게 굴고 있긴 하지만 아마 앞으로는 더 나아질 것이다.

“누나가… 내가 행복해지길 바랄 거라는 건 알고 있어요.”

얼마 전 답지 않은 허술함 끝에 일부나마 진실을 토설해 내던 대담을 떠올린다. 파편만을 엿봤음에도 당신이 자신의 행복을 바라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그런 말을 들었다. 상담을 받을 때에도 같은 소리를 들었었지. 아내분은 자신으로 인해 강사함 씨가 불행해지기를 바라지 않을 거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당신이라면 분명 이런 나를 안쓰러워하며 행복해지기를 바라겠지만. 강사함이 죄를 지은 건 강사함 자신에게였다. 제 손으로 꾸린 가족을 망쳐 스스로를 상처 입힌 것이 죄였다. 그러니 스스로 용서하기 전까지는 쉽사리 행복해질 수 없으리라.

“나 자신을 용서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듣는 사람은 자신뿐이니 솔직한 본심을 흘리는데 망설임이 없다. 액자를 들어 사진 속 웃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넌 애가 왜 그렇게 미련하니. 그러게, 누나. 나는 왜 이렇게 미련할까. 당신을 떠올리면 스물여섯의 그날로 돌아가기 때문인지도 몰라.

아직은 조금만 더 어리광을 부릴 수 있도록 눈감아주면 좋겠다. 완벽하게 의연해질 날이 머지않은 것 같으니. 아직은 유예가 필요했다. 기대고 싶은 사랑이 있으니.

내일도 출근해야 하니 그만 미적거리고 저녁을 준비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잔업이 조금 남아 집으로 가져왔었지. 그것도 마저 정리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할 일을 정리한 후 소파에서 일어난 강사함은 액자를 다시 상자 속에 넣었다. 이번엔 뒤집지 않은 채였다. 뚜껑을 닫고 다시 창고로 옮긴 다음 부엌으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은 간단하게 파스타를 해 먹을까. 정돈된 마음으로 천장을 여니 건면이 부족했다. 언럭키맨,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파스타가 안 되면 피자나 시켜 먹지 뭐.

피자를 주문하고 새로 받은 연락처를 정리하며 기다리는 동안 홀로 차분히 생각한다.

올해는 더 나아지자. 괜찮은 신년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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