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성녀는 개종하기로 했습니다 24화
돌아온 성녀 10
*본 작품은 어한오 팀의 오리지널 창작 작품입니다. 무단 도용 및 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본 작품은 포스타입, 글리프(전 펜슬)에서 동시 연재 중에 있습니다.
돌아온 성녀 10
루블, 보쓰, 히즈
***
“어라. 분명 깨어있는데. 이상하네요. 제 말을 못 들었을 리가 없는데.”
분명 아마데아는 에메로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각도였으나 놈이 실실 웃고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자동으로 그려졌다. 저절로 이가 악 물렸다. 힘이 실린 손 틈새로 가득 움켜쥐었던 모래가 빠져나갔다.
‘날 알아본 건가?’
아마데아가 느끼는 지금의 감정은 분노보다도 두려움이 컸다. 등이 식은 땀으로 축축해지고 있었다. 설마 가짜 놈이 저를 알아보고 접근한 건가. 머릿속이 복잡했다. 차마 얼굴을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결국 보다 못한 에메로스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마데아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친절히 손을 뻗었다. 일으켜주려는 의도가 보이는 행동에 아마데아가 움찔했다. 여전히 눈을 내리깔고 있던 아마데아는 잠깐 입술을 짓씹더니, 이내 에메로스의 손 위에 손을 얹었다.
“고맙······습니다. 저는 이만······.”
더는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마데아는 장소를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일으켜 주며 잡힌 손을 에메로스가 놓지 않았다.
“아가씨. 혹시나 해서 묻는데 우리 구면이던가요?”
그 말에 아마데아가 숨을 훅 들이키며 반사적으로 내리 깐 눈을 들었다.
오랜만에 다시 본 원수는 처음 본 그 순간과도 같이 순한 인상에 눈꼬리를 휘며 미소 지었다. 아마데아는 손이 떨릴까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수상한 움직임을 보여선 안됐다.
그런 그녀의 노력 덕에 손이 떨리지는 않았으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아, 아니요. 어찌 서, 성자님께서 저를 만난 적이 있겠습니까.”
다시 고개를 푹 숙여 표정을 숨긴 아마데아는 최대한 숨을 죽였다. 제발, 알아보지 말아라. 지금 그녀는 헬레니온의 능력으로 얼굴도 바뀐 상태다.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다. 괜히 찔려서 혼자 초조해하는 것일 터다. 계속 되뇌는 내용은 머리로는 알지만 점점 참기가 힘들었다. 조금씩 떨리는 몸을 더는 막을 수 없었다. 이럴 때조차 제 몸 안에 있을 것이 분명한 신성력은 미동도 없었다.
에메로스는 가만히 벌벌 떠는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지레 겁먹은 아마데아만이 거의 혼절할 듯이 몰리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으나 아마데아에겐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흐른 후 에메로스가 입을 열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요, 아가씨. 그런 의미로 제게 이름을 알려주시겠어요? 정말로 고맙다면 말이죠.”
아마데아는 겨우 에메로스의 말을 알아듣고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디아나······ 입니다.”
“디아나라. 디아나. 좋아. 기억해둘게요. 언제 또 만나요. 다음엔 조심하고요.”
장난스레 덧붙이는 말에도 아마데아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에메로스는 개의치 않는 듯 그녀의 손을 풀어주었다. 그가 잠시 빛나나 싶더니,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제야 아마데아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차라리 아까 그 남자 서너명에게 둘러싸였을 때가 겁은 덜 났다. 온몸을 감싸던 두려움이 가시자 이번엔 분노가 밀려들었다. 저절로 이가 갈렸다.
‘반드시. 반드시 복수하겠어. 내 자리를 뺏은 놈들 모두!’
그러나 이내 피시식 감정이 사그라들었다. 그와 동시에 어깨도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뭘 할 수 있지? 조력자마저 내 편이 아니었고, 도망쳐 나왔지. 이제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의지도 의욕도 모두 사그라지는 기분이다. 길게 한숨을 내쉬는 아마데아는 우울감에 젖어 들었다.
그런 그녀를 멀리서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녹음을 품은 눈이 이채를 띄었다. 어딘가로 가버린 줄로 알았던 에메로스가 흥미 어린 눈으로 그녀를 관찰하고 있었다.
“신성력이 느껴지지 않는 여자라······.”
그의 얼굴은 순진무구한 인상이었으나 아마데아를 바라보는 눈에 과도한 흥미가 담겼다.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어린아이의 모습과 비슷했다.
“재밌는데.”
손가락으로 턱을 쓸며 에메로스는 시선을 돌렸다. 돌아본 쪽에는 다른 사람이 비췄다. 혼자서 빠르게 디아나에게 접근하는 자는 다름 아닌 헬레니온이었다.
에메로스는 턱을 쓸면서 무언가 생각했다. 흐음,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며 둘이 합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내 결론을 내린 듯, 그의 손이 멈췄다.
“한 번 더 만나봐야겠어.”
그는 마치 악동처럼 씨익 웃었다. 누군가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 헬레니온은 다시 찾은 그녀를 보며 안도했다.
“여기 계셨군요.”
아마데아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풀어졌다. 그는 아마데아에게 거짓을 말했다. 믿어서는 안된다며 도망쳐 나온 주제에 그의 등장에 안심하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그녀는 일부러 그의 시선을 피했다.
“아무래도 뭔가 단단히 오해하신 듯합니다. 대화로 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헬레니온은 외면하는 그녀를 보자 가슴 한 구석이 따끔거렸다. 강제로 돌려 이쪽을 보게 하고 싶다는 충동이 치밀었으나 눌러 참았다. 여전히 그에게는 그녀가 소중했다.
“······.”
계속 시선을 땅에 고정한 채 묵묵히 있는 그녀에게서 고집이 느껴졌다. 헬레니온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 옆에 살포시 앉았다.
“아마 제가 그레이스와 나눈 말을 들으셨겠지요.”
여전히 아마데아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귀는 착실히 기울이고 있었다. 헬레니온도 이를 알아챘는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을 그저 이용할 목적으로서 데려왔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답은 없었으나 아마데아의 시선이 땅에서 헬레니온의 반대편으로 옮겨졌다. 누가 봐도 토라진 모양새라 헬레니온은 웃음을 삼켰다. 이 상황에서 웃었다간 그녀가 정말로 화를 낼 수도 있었다. 다채로운 아마데아의 표정을 보는 건 즐겁지만, 화내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첫째. 저는 그레이스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수장의 정확한 소재는 현재 알지 못합니다.”
그 말에 아마데아의 손이 의미 없이 손장난을 했다. 아마 진지하게 생각할 때의 습관이리라. 헬레니온은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치솟았다.
“둘째. 아우레티카에 가고 싶다고 먼저 당신이 얘기했습니다. 제가 당신을 이용하기 위해 데려왔다면 당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끌고 가지 않았겠습니까?”
그 말에 아마데아가 움찔 놀라는 기색이 느껴졌다. 잠시 침묵하던 그녀가 그제야 고개를 돌려 헬레니온을 바라보았다.
“······그럼 전부 내 오해였다고?”
“상당히 순진한 분이라는 건 알았지만. 다음부터는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죄송합니다.”
헬레니온이 먼저 일어나며 손을 내밀었다. 부드러운 에스코트에 아마데아는 마음이 녹아내렸다. 다시 속는 셈 치고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 카테고리
- #오리지널
- 페어
- #H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