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LLEL WORLD
[D-7]
여느날과 다름없이 취업 문 바로 앞에서 절망을 맛 본 평범한 날 중 하나다.
[안녕하세요. 귀하의 자질과 역량에도 불구하고 … 불합격된 점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제는 ‘합격’이라는 단어보다 ‘불합격’이라는 단어가 친밀하게 느껴질 정도로 눈에 익어버렸다. 아무리 취업난이 심각한다한들 이건 너무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시현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면접까지 가면 뭐하나. 바로 앞에서 낭떨어지로 떨어지는 것을. 그리고 어떻게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불합격 문자가 떡하니 날아올 수가 있냐는 말이다.
“어차피 떨어트릴 거면서 뭘 안타까워하는 거야.”
빌딩 숲이 가득한 이 곳에서 내가 들어갈 곳이 이렇게 단 한 곳도 없다니. 언제나 최종 면접까지 붙어왔지만 결과 또한 언제나 똑같다. 이런 반복되는 과정도 한 두번이지 계속해서 같은 과정을 겪다보니 이제는 회의감이 들 정도다.
시현은 힘 빠진 걸음으로 알바하는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야 하나 싶은 마음과 함께 졸업한 지도 꽤 됐고 나이도 차차 먹어가는 자신의 처지에 초조한 마음이 한데 어울려 시현을 더 심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합격이 된 거. 이유라도 알면 좋으려만. 시현에게는 그것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언젠가 한 번 불합격이 된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물음에 돌아오는 답변은 ‘죄송합니다.’ 단 한 마디 뿐이었다.
물어보는 것도 내겐 사치인가…. 아니면 내가 베타라서…?
이런 생각을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었다고 한다면 물론 거짓말이겠지만, 시현은 최근 들어 반복되는 불합격 통보때문인지 몰라도 괜히 자격지심이라는 나쁜 마음이 단전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 같았다. 됐다. 됐어. 이렇게 태어난 거 어쩌라는 건지.
“하씨…. 로또나 당첨됐으면 좋겠다.”
시현은 한숨을 크게 쉬고선 카페로 옮기는 걸음걸이에 힘을 실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 전단지 알바, 우유배달, 피씨방, 카페 등 안 해본 알바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말 그대로 알바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몇 년째.
시헌은 회사 채용 공고가 뜰 때마다 사장님한테 양해를 구하고 면접을 보러 다닌 것도 몇 년째인지도 모를 정도다. 그렇게 다녀서 하나라도 합격하면 그만이겠지만 현실은 시궁창에서 허우적거리며 하루하루 취업전선에서 말라가고 있을 뿐이다.
“저기에 내 자리는 있는 거냐고….”
지잉-. 지잉-.
[사장형]
시현은 타이밍 좋게 전화하는 카페 사장형의 존재에 한숨을 크게 쉬며 전화를 받으며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말 그대로 크게 눈에 띄지 않을 뿐, 차별은 언제나 만연하게 깔려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진정한 차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 말은 우리를 향한 말이 아닌가 싶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베타들을 향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
시현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은 지배층인 알파와 부지배층인 오메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비록 알파, 오메가가 베타들보다 수가 현저하게 적다고 하지만 그놈의 페로몬이 뭔지, 페로몬의 유무에 따라 계급의 존재가 생긴다. 그 중에서도 순수한 알파, 오메가들은 말 안 해도 알겠지만 아주 높은 계급 위에 앉아 있다.
이러한 형질 덕분에 알파와 오메가들보다 인구 수가 많디 많은 베타들은 단지 페로몬이 ‘없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언제적 베타 차별이냐고. 그런 차별같은 것은 이제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말이다.
알게 모르게 깔려있는 베타 차별에 의해 취업난에 허덕이는 베타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생활을 모르는 알파, 오메가 국회의원들은 단순히 국회에 앉아서 모든 회사에서의 ‘베타 채용을 권장하겠다’며 탁상 공론만 할 뿐, 정작 바뀐 것은 놀랍도록 없었다.
말이 베타 채용을 권장하는 거지,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그래, 시현은 저 탁상공론일지라도 저 말이 나왔을 당시 저 안건이 제발 시행되길 간절하게 바라고 바랐다. 왜냐, ‘알바의 달인’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눈 앞에 찾아오는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
자신의 처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시현이기에 고등학교 동창회를 외면하며 살아온 지가 어언 몇 년인지 모르겠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만 취업도 안 한 한심한 모습을 동창들에게 보이느니 차라리 나가 죽는게 낫겠다는 것이 시현의 결론이었기에 동창회철이 오면 동창회의 ‘ㄷ’자도 쳐다도 보지 않았다.
-
그렇게 베타 채용의 안건이 발의되고나서 처음으로 뜬 베타 채용 공고에 희망한 시현은 그대로 절망의 구렁텅이로 다이렉트로 땅으로 꽂혀버렸다. 이 나라에서 알아주는 대기업의 베타 채용 공고를 보고 갔던 회사였다. ‘베타 채용’이라는 말만 써놨지 사실은 내정자가 정해져 있는 그 자리. 아마 시현처럼 희망을 가지고 지원한 모든 베타들은 다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그리고 생각했겠지.
좆같은 형질.
이라고.
어쩐지 시현을 포함한 다른 수많은 베타들은 긴장하며 면접 준비로 한창인 면접장 한 가운데 혼자만 다른 세상에 있는 듯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던 한 사람이 있었다. 아주 여유롭게 폰을 꺼내들어 게임을 하거나 거울을 보며 자신을 가꾸고 있던 것이, 어느 누가 보아도 면접을 준비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었더랜다.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나중에 알았더니 그 회사에 내정자가 있었고, 그 내정자가 바로 한 껏 여유를 부리던 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열성. 그래, 베타와 거의 비슷할 정도의 열성 오메가 였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도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었다고. 회사에 연줄이 있어서 낙하산 비슷하게 들어간 것이라는 것이다.
즉, 그 수많은 베타들을 기만한 이것은 쇼였다는 말이다.
알파 또는 오메가는 기본적으로 금수저 아니면 은수저다. 내정자였던 그 열성 오메가 역시 금수저와 은수저 그 사이의 어딘가 일테지. 그러니 낙하산으로 들어간 것일 터였다.
뭐, 지금도 낙하산 비리라면 크게 논란이 되는 문제지만, 저 때당시에도 사람들. 특히 베타들의 반발이 심했었다. 인사비리라니. 그때 기사로는 채용한 열성 오메가의 채용을 취소한다고 본 것 같았는데 그것도 과연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 역시도 보여주기 쇼였는지 알 수 없다.
-
그때 맛 본 절망감이 어찌나 컸는지 취업말고 창업을 할까 싶었지만 그것도 자신이 없었던 시현인지라 잔말말고 이젠 눈감고도 쓸 수 있는 자기소개서를 쓰기위해 컴퓨터 앞에 자리한 시현이었다. 자본주의의 노예인 시현이기에 여전히 베타 채용 공고가 뜨면 부리나케 준비해 채용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렇게 간 이번 면접에서도 이렇게 대차게 떨어졌다.
하…. 진짜 살기 싫게 만든다 진짜.
-딸랑.
“사장님, 저 왔어요.”
저 인간 또 자네. 손님이 언제 올 줄 알고. 시현은 카페에 들어가 카운터에 팔을 괸 채 졸고 있는 사장을 살짝 건드려 깨우곤 익숙하게 앞치마를 둘러 입으며 졸린 몸을 일으키고 있는 사장에게 다가갔다.
시현이 현재 알바하고 있는 카페의 사장인 기우는 시현과 겨우 5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물론 시현에 앞에 있는 기우도 베타다. 기우 역시 시현처럼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가 뜻대로 되지 않았고, 낙하산 인사채용 사건 이후로 크게 현타를 맞은 기우는 부모님께 빌고 빌어서 카페를 차렸더랜다.
인생에 없던 창업이기에 대출과 기우의 부모님에게 부탁에 부탁을 해서 당겨 받은 돈으로 카페를 차린 기우는 차라리 이게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베타가 차린 가게라 그런지 처음엔 역시 힘들긴했지만 그래도 나름 번화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바쁠 땐 장사가 제법 잘 되는 편이라 매출이 잘 나오는지 기우의 직업 만족도는 꽤나 높은 편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뭐 좋은 소식 있어?”
“아니요. 오늘은 건물 밖에 나오자마자 이렇게.”
“진짜 회사 놈들은 뭐가 무제일까? 이런 유능한 우리 시현이를 불합격이나 시키고 말이야.”
기우의 옆으로 다가가며 말하자 기우는 장난치듯 시현의 머리카락을 뱅뱅 꼬며 오늘 본 면접 결과를 물어보았다. 말해 뭐하나. 언제나 같은 결과인 것을. 기우가 면접 결과를 물어보는 동시에 시현의 표정이 눈에 띄게 우울감에 젖어 들어갔다. 우리 시현이는 표정을 숨기질 못해. 기우가 시현의 내려가있는 입꼬리를 쭈욱 잡아당기며 위로 올려 당겼다.
“형, 저 지금 진짜 기분 안 좋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은 건들지 말아주실래요….”
“어이구, 우리 시현이 기분이 많이 안 좋아요? 그럼 위로주 어때? 이 형아가 쏜다.”
“오늘요? 안 돼요.”
“왜?”
이런 날 별로 없어~. 기우가 자신의 지갑을 여닫으며 시현에게 장난을 치자 시현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기우의 장난을 말렸다. 평소의 시현이였다면 이런 날을 절대 놓칠 수 없었겠지만 오늘은 안 된다. 회사 면접도 떨어졌는데 놀아서 뭐하나.
“오늘 KW호텔 서빙 대타 뛰러 가요.”
“어디 호텔? KW? 그런 곳도 대타를 구하는구나.”
“그러니까요. 저도 부탁받고 가는 입장이라서요. 꽤 급한가봐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이 귀한 기회를 놓치고 말이야~. 엉?”
“이건 킵해 놓을 거에요.”
내가 순순히 지갑을 열까봐? 자본주의의 노예 다 됐다며 기우가 시현에게 헤드록을 걸어왔다. 켁. 켁. 거리며 기우의 팔을 치는 시현에 기우는 다음을 기약하며 시현을 풀어주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속으론 벌써 언제 어디서 뭘 먹을지 일정부터 짤 인간이다.
장난을 조금 심하게 치는 편이긴 하지만 자기 사람들은 알뜰살뜰 잘 챙기는 기우이니. 장난만 조금 덜 심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일 것이다. 시현은 괜한 반항을 한 번 시도하다가 다시 한 번 헤드록을 다시 걸어오려는 기우의 팔에 갇힐 뻔 할 때였다.
-딸랑.
“형, 형! 아니, 사장님. 손님. 손님오신다. 어서오세요.”
결국 기우의 헤드록은 시현을 구원해줄 손님의 등장에 의해 시도되지 못하자 기우가 아프지 않게 팔을 툭 치고선 손님을 맞히했다. 요근래 오늘처럼 손님이 반가운 날은 없었던 것 같다. 시현은 기우 몰래 손님에게 서비스라도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선 환하게 웃으며 커피를 주문하는 손님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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