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어스 커미션 샘플

시리어스 4

공포 5984

오메가버스 AU 작업물입니다.

“저 이거 진짜로 먹어도 괜찮슴까?”

M은 턱을 괴고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지워지지 않는 미소가 입가에 걸린 채로였다. 그러나 표정과 목소리의 톤은 또 달랐다. M의 목소리는 기본적으로 사나운 편이었다.

“그런 느끼한 건 난 별로야. 너나 실컷 먹어라.”

그런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N은 상대에게 두려움이나 위압감 등을 느끼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곧장 깐족대며 되물었다.

“헐. 그러면 누님은 대체 세상을 무슨 낙으로 사는 검까?”

M은 헛웃음 소리를 내었다가 칼같이 끊었다.

“이만 닥치고 빨리 먹어.”

“옙, 알겠슴다.”

N은 희희낙락하며 피자의 가장자리를 깨물었다. 갓 나온 피자는 따끈따끈했고, 치즈가 쭉 늘어났다. N은 치즈가 어디까지 늘어나는지 시험하듯 죽 당기는 등 장난을 쳐보다가 곧 전부 입에 넣고선 피자를 야금야금 해치워 나갔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묘현은 영 나쁘지 않은 기색이었다.

“그게 그렇게나 좋냐?”

“넵.”

“난 속이 느글거리기만 하던데.”

“맞슴다. 그래서 이런 걸 먹을 때는 콜라나 사이다를 꼭 같이 마셔줘야 함다. 근데 이게 피자 한 판에 음료 한 캔으로는 모자라는데…….”

“눈치 보지 말고 시키고 싶으면 더 시켜.”

“옙! 여기요! 콜라 한 캔이요.”

N이 손을 흔들었고 피자 가게 종업원은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다 내주었다. N은 밝은 표정으로 새 캔을 따서 빨대를 옮겨 끼우며 말했다.

“솔직히 지금이 꿈만 같슴다. 누님을 처음 만났을 때, 제가 조폭들에게 둘러싸인 상황 아니었습니까? 저는 그때 제 생은 여기서 끝난 줄 알았습니다.”

“난 그 자식들이 약한 놈이나 건드리는 게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야.”

M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러나 N의 목소리는 맑았다.

“그래도 그때 누님 아니었으면 저는 죽었슴다. 왜, 뒷동산에 생매장당하거나 드럼통에 넣어져서 어디 바다에 던져지거나. 제가 언젠가 잘못 걸리면 꼭 그렇게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말임다.”

N이 콜라를 쪼르르 빨았다. M은 그런 N을 지켜보다가 예고없이 딱밤을 날렸다.

“아야! 왜 그러심까?”

“살날 한참 많이 남은 어린 녀석이, 뭘 벌써 죽는 생각이나 하고 앉아있어?”

N이 이마를 감싸 쥐고 열심히 항의했다.

“저는 오메가 아닙니까? 뉴스에서 오메가 관련 실종 사건 같은 거 못 들어보셨습니까? 오메가로 10년 살면 그런 생각 한 번쯤 하게 됨다.”

“아직 그리 세상을 단정 짓지 마. 넌 머리에 피도 안 말랐다.”

“알파, 베타, 오메가한테는 나이고 뭐고 없슴다. 어려도 알파는 알파이고 오메가는 오메가인검다.”

N이 투덜거렸다. M은 딱밤을 한 대 더 먹이려다가 말았다. 이 세상은 종족에 따라, 즉 알파와 베타, 오메가로서 묘한 위계가 생기고 계급이 갈리는 것은 안다. 하지만 M은 제법 지독하게 살아온 인간이었다. 조폭으로든, 염라라는 자리의 후계자로서 내정된 사람으로서든. 그러니 눈앞의 꼬맹이가 벌써 삶을 포기한 듯이 구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M은 N의 머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쓸데없이 체념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 살다 보면 상대가 누구든 뒤엎을 순간은 얼마든지 온다. 알파든 뭐든 칼 맞으면 한 번에 죽는 건 모든 사람이 똑같다, 쫄 것 없어.”

그렇게 M이 인생에서 우러나오는 충고를 기껏 해주었는데도 N이 시선을 피했다.

“……어쩐지 방금 무서운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저 지금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님까?”

“뭐야? 그럼 튀던가.”

“싫슴다. 그럼 누님한테 먹을 걸 못 얻어먹지 않슴까?”

N은 꿋꿋하게 들러붙어 피자를 마저 먹었고 M은 피식 웃었다. 얼굴에 고정된 표정이 아니라 진심으로 흘러나온 웃음이었다. N도 헤헤 웃었다.

그때 갑자기 공기가 바뀌었다. N이 숨을 멈췄다. 피자 조각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M은 본능적으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N은 덜덜 떨면서 입을 턱 막았다. 자칫하면 방금 먹은 것을 전부 게워 낼 것 같았다. M은 문간에 누군가가 서 있음을 발견했다. M은 상대를 알았다. 낮은 목소리로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L.”

상대가 고개를 조금 틀었고, 백금발이 흘러내려 물결쳤다. 우아하고 매혹적인 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흡사 야차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L는 웃으며, 그러나 서늘하게 물었다.

“M. 여기서 뭐 해요?”

“당장 그거 치워. 내가 페로몬을 못 맡는다고 네가 뭐 하는지 모르는 줄 알아?”

“내가 먼저 물었어요. 여기서 뭐 하냐고요.”

“그리고 난 치우라고 말했다. 페로몬 거둬, 당장.”

가끔 알파 중에서 몇 녀석은 페로몬을 무기로 사용하고는 했다. 유혹을 넘어서 상대를 압도하고 정신을 흐트러뜨리려는 의도로 뿌려댄다. 페로몬을 맡을 수 있는 자들의 평에 의하면 마치 질식당할 것 같다고 했다. M은 한 번도 맡아본 적 없었다. 하지만 싸움판에서 구르다 보면, 감이라는 것이 상당히 예리하게 자라난다. 직접 냄새를 맡지는 못하더라도 상대가 무기를 들었다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눈치를 채게 되었다.

L는 마음에 들지 않는 눈길로 N을 흘겨보다가 어깨에서 힘을 풀었다. 공기가 다시 바뀌었고, M은 L가 페로몬을 거두었음을 느꼈다. 지독한 중압감에 짓눌리던 N은 그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저, 저분은 대체 누구길래, 갑자기 찾아와서…….”

N은 겨우 숨을 들이쉬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M은 제 정장을 끌어당겨 제 어깨에 제대로 걸치며 말했다.

“내 와이프.”

N은 턱을 벌리며 ‘예? 누님 결혼했슴까?’라고 물어볼 뻔했으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겨우 입을 다물었다. L는 제 분홍색 선글라스 너머의 눈을 일그러뜨렸다.

“그걸 기억하고 있었네요. 난 우리가 결혼한 사실을 나만 기억하는 줄 알았는데.”

“왜 너만 알겠어? 너희 집안 사람, 우리 집안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 않겠어? 그 결혼을 조건으로 온갖 약속을 내걸었잖아.”

M은 받아치며 그 틈을 타 N에게 눈짓했다. 눈짓을 알아들은 N이 후다닥 도망갔다. 그 도주에 L가 저도 모르게 한 발 내딛자 M이 L를 제지했다. L는 시근덕거리며 내질렀다.

“알고 있다면 저 꼬맹이는 뭐죠? 뭔데 날 두고 저런 오메가한데 눈을 돌려요?”

“신경 쓰지 마. 네 말대로 꼬맹이고, 밥이나 한번 사준 거야.”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요?”

L는 M에게 저벅저벅 걸어와서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바짝 세운 손톱이 M의 어깨를 찔렀다.

“M, 당신이 나를 피하잖아요. 날 피하고 저런 오메가랑 어울리는데 내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요? 응? 계약 결혼이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고 방치하는 건가요?”

L는 매섭게 물었다, M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M은 겨우 이 정도 위협을 느끼는 이가 아니었다.

“그건 아니야.”

그 짧은 한마디에 L는 눈이 커졌고, M에게 확 매달렸다.

“그럼 자꾸 왜 그래요? 나…… 나 정말 당신 좋아한단 말이에요. 내가 M 좋아하는 거 M도 알잖아요. 근데 자꾸 나한테 왜 이래…….”

L는 M에게 바짝 붙었고 매달린 채 바닥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손톱은 점점 깊게 어깨를 파고들었다. M은 얼굴을 찡그렸으나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옛날에 겪은 어느 사고 이후로 얼굴이 웃는 낯으로 고정되어서 웃을 수밖에 없기는 했다.

“L. 진정하고 나를 봐.”

그러나 M은 제 어깨는 아랑곳하지 않고 L의 뺨을 붙잡았다. 물기가 느껴졌다. L의 얼굴을 들어 올리니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M은 손가락을 끌어 L의 눈동자를 직시하며 물었다.

“나를 사랑해?”

L는 마음속에 말이 차올랐다. 그럼요. 당연하지요. 난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당신을 사랑했어요. 그러나 부풀어 오른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M이 단호한 선고를 내렸다.

“그건 사랑이 아닐지도 몰라. L, 너는 어리지. 그리고 알파야. 사랑한다는 착각은 무분별한 충동 때문일지도 몰라. 남이 시킨 결혼을 했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야.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많은 사람을 만나보면 세상이 다르게 느껴질지도 몰라. 그때 가서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마.”

그 말에 L는 심장이 갑자기 확 내려앉았다. 하려고 했던 고백은 갑자기 흩어져 버렸다. 어렴풋하게 밀어내는 것을 느끼자 서늘한 예감이 뇌리에 내리꽂혔다. L는 그 예감을 제 속에서 끄집어내었다.

“M. 당신은 언젠가 계약 결혼을 청산하고 떠날 건가요?”

“내가 그런 말을 언제 했지?”

M은 의아해했다. 그러나 L는 제 생각이 점점 더 확고해졌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을 만나면 달라질 거라고요? 마치 내가 새로운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것처럼 말했잖아요. M! 당신 나를 떠날 생각이죠? 그래서 나를 멀리하고, 내가 자꾸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지도록 종용하는 거죠? 응? 대답해봐요. 억지로 하게 된 계약 결혼이라서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러니 그만두고 싶어요?”

L의 몸이 덜덜 떨렸다. M은 강하게 힘주어 말했다.

“그만해, L. 너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멋대로 상상하고 있어.”

“당신은 그럴 수 없어요. 날 어떻게 떠나? 집안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줄 알아? 염라 자리는 또 어떻고? 당신은 절대 못 해. 내가 그렇게 안 둬. 지옥 끝까지 쫓아갈 거야. 쫓아가서, 그 오메가가 꼬셨어요? 그 자식 죽여버릴 거야! 아냐. 안 그럴게요. 잘못했어요. 내가 잘못했어요. 안 그럴게요. 그러니까 떠나지 마요. 응? 제발…….”

L는 분노했다가 애걸했다가 태도가 오락가락 변했다. 심각하게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문득 M은 L의 몸에서 묘한 열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L의 숨에는 물기가 서렸고, 눈동자가 흐려졌다. M은 L를 확 붙들었다.

“야, L. 너 억제제 어떻게 했어. 일부러 안 먹은거지?”

L의 이상행동이 멈췄다. 그리고 사르르 웃었다.

“이제야 날 봐주네요…….”

L는 아름답게 눈웃음을 흘렸다. 붉게 달아오른 뺨에 눈물이 또 한줄기 가로질렀다. M은 혀를 차며 L를 끌고 나갔다. 아까 M은 느끼지 못한, 그 이상하리만큼 강한 페로몬은 히트 사이클의 전조였다.

M은 곧장 L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까지 돌아가는 과정에서 행인 몇몇이 페로몬에 꼬였고, 택시의 운전기사가 졸도 직전까지 가서 차를 갈아타는 등의 문제가 있었으나 M은 침착하게 대처했다. 정신을 거의 차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본인에게 매달리는 이를 내내 간수하는 일을 동시에 해내야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능력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어쨌든 무사히 집에 당도하였고, M은 L를 가두기라도 할 듯이 현관문을 걸어 잠갔다.

그렇게 집에 왔는데도 L를 내려놓는 것은 또 다른 난관이었다. L는 M에게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L. 놔. 집에 도착했어.”

“나 좀 도와줘요. 제발. 나, 지금…….”

L가 애달프게 간청했다. 그러면서 M을 향해서 손을 뻗었고 M은 그 손을 물리며 말했다.

“그래. 도와줄게. 그러니 이 손을 놔. 그래야 나가서 급성 억제제를 사 오지.”

“안돼, 날 두고 가지 마!”

“그 꼴로 어딜 가겠다는 거지? 여기서 얌전히 쉬고 있어.”

“안 돼요…….”

L가 M을 향해 집요하게 손을 뻗었다. 옷깃을 잡았고 손을 잡았으며 팔을 잡았다. 허리를 끌어안으려 들었고, 몸을 붙였다. 그러나 M은 L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강제로 펴고 떼어 내었다. M은 원한다면 L를 밀치고 바닥에 내리꽂을 수 있었다. 그저 그러지 않고 힘이 빠지길 기다려줄 뿐이었다. 모든 접근의 시도가 좌절당하자, L의 팔이 시든 식물처럼 바닥으로 기울었다.

“나를 조금만 도와줄 수 있잖아요. 조금만 더 바라봐 줄 수 있잖아요.”

L는 마지막으로 자기 목을 내밀었다. 그리고 M의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M은 여전히 L와 거리를 유지했으므로 둘의 입술을 스치다시피 닿는 선에서 그쳤다. 따라서, 그 키스는 아주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L의 눈이 스르륵 감기더니 고개가 팍 꺾였고, 온몸이 축 늘어졌다. 상대를 집요하게 붙잡던 힘이 풀렸고, M은 그제야 L를 내려놓았고 제대로 눕혔다. 상태를 살피니 단순히 기절했을 뿐이었다. 오히려 잘 되었다. 저렇게 한숨 자고 일어나서 약 좀 먹으면 정신을 차릴 것이다.

M은 숨을 내쉬면서 몸을 일으켰고, L를 내려다보았다. L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껴안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처럼. 그것을 보던 M은 눈을 돌렸고 곧 밖으로 나갔다. 약을 사기 위함이었다. 문이 닫히기 전, M은 딱 한 번 돌아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바보 같은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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