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야간비행
비가 허공을 사선으로 가로지른다. 사나운 맹수가 발톱 휘두르는 것처럼, 맹렬하게 달려들어 땅에 내려꽂힌다. 그 비 아래서는 나타샤도 웃음을 잃었다. 구름 낀 날의 우울한 천성 때문은 아니었다. “비가 많이 오네.” 나탈리야는 흥얼거리듯이 말했다. 나탈리야의 언어와 몸짓에는 가벼운 장난기가 많은 순간에 어리곤 한다. 따라서 발로 진흙을 지분거리는 모습도 흙장
1. “A.” A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끔벅였다. 옆좌석에 앉은 친구가 키득거리며 속삭였다. “A, 이제 일어나. 나랑 놀자.” A는 별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잦은 악몽은 A를 수면 부족으로 몰아갔고, 따라서 A는 대체로 피곤한 상태였다. 그러나 친구는 그런 사정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듯 A의 귓가에 대고 외쳤다. “이 잠꾸러기야. 일어나라니까! 우리
“저희 내기를 해봐요, 무명.” 파이는 리볼버에 탄창을 채워 넣으며 말했다. 실린더가 돌아가며 달칵거리는 소리를 냈다. “과연 어느 쪽이 진실일지 궁금하지 않아요?” 리볼버가 탁자에 놓였다. 파이와 무명의 한가운데였다. 기회와 거리는 동등했다. 먼저 움직이는 자만이 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파이는 느긋하게 등을 기울여 의자에 기대었
종결의 날이었고 동시에 해방의 날이었다. 갖은 이유로 억눌러놓았던 학생들이 참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경찰은 이 광란의 흐름에서 일어날 시비나 등을 경계하며 학생들을 주시하고는 있었지만, 그 거대한 흐름을 막아서지는 않았다. 좀 더 정확하게는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면서 방임하는 쪽에 가까웠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겨울방학이 시작되어, 고삐 풀린 말과 같아진
[나와] 막심은 휴대전화의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명령형이었고, 다소 협박에 가까워 보이는 메시지였다. 시대는 꾸준히 흐르며 기술은 발달한다. 대세는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갔으며 그에 문자의 영역은 SNS가 차지하게 되었다. 이 시대의 메시지란 실시간 채팅의 성향이 짙고, 따라서 송신자가 딱 저 두 글자만 보내서 적었다고 딱히 나무랄 수는 없다. 공적인
“어쩌시겠습니까?” 지구의 황량한 대지에 서서, 탄 내음이 바람을 맞으며 무명이 물었다. 참으로 그다운 건조한 물음이었다. 어느 때건 동요하지 않는다. 파이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유토피아로 가야지요.” “이제 와서 그들이 받아주리라고 생각합니까?” 또다시 한번. 아무렇지도 않게 건조하고 잔인한 말을 얹는다. 파이는 이를 악물었
오메가버스 AU 작업물입니다. “저 이거 진짜로 먹어도 괜찮슴까?” M은 턱을 괴고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지워지지 않는 미소가 입가에 걸린 채로였다. 그러나 표정과 목소리의 톤은 또 달랐다. M의 목소리는 기본적으로 사나운 편이었다. “그런 느끼한 건 난 별로야. 너나 실컷 먹어라.” 그런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N은 상대에게 두려움이나 위압감 등을 느끼
장르 Fate의 길가메쉬 드림입니다. 길가메쉬는 천천히 눈을 떴다. 흰 안개가 주변을 감돌았다. 바닥에 그려진 주술 진에는 의식 때 뿌린 빛이 아직 은은히 남아 맴돌고 있었고, 그것이 안개 속에 파고들어 번졌다. 희뿌연 안개가 눈 앞을 가렸지만, 길가메쉬는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 이번이 벌써 네 번째이다. 자신을 감당할 힘도 없으면서 감히 이
‘내’가 눈을 뜬다. 흰 속눈썹이 눈앞에 드리워지며 시각 정보를 교란한다. 불편한 구조이다. 나는 묻는다. 왜 이 생물은 시각 기관 앞에 가릴 것을 두었을까? 그 의문을 가지자마자 시각 기관이 세밀하게 움직인다. 눈꺼풀의 미세한 근육이 당겨지며 속눈썹은 시야를 가리지 않게 올라갔고, 눈동자는 좀 더 먼 거리에 초점을 맞추도록 설정되었다. 이렇게 태어난 직후
장르 Fate의 길가메쉬 드림입니다. 두 마술사가 어느 도시의 벤치에 앉아있었다. 한 명은 키가 작았고 한 명은 키가 컸다. 키가 큰 쪽이 카페에서 포장해 온 음료를 마시는 사이 키가 작은 쪽은 사람들 인파의 사람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쳤다. 사람 대부분은 먼저 시선을 피하고 갈 길을 갔다. 몇몇 이는 뭘 그렇게 보냐며 시비를 걸었지만, 키가 큰 쪽이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