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님과의 연성교환
[나와]
막심은 휴대전화의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명령형이었고, 다소 협박에 가까워 보이는 메시지였다.
시대는 꾸준히 흐르며 기술은 발달한다. 대세는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갔으며 그에 문자의 영역은 SNS가 차지하게 되었다. 이 시대의 메시지란 실시간 채팅의 성향이 짙고, 따라서 송신자가 딱 저 두 글자만 보내서 적었다고 딱히 나무랄 수는 없다. 공적인 자리라면 예의에 어긋난다고 비판할 수 있으나 상대가 자신과 형제지간이니 그마저도 탓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꽤 무뚝뚝하고 질서정연한 제 형의 모습을 아는 막심은 이마를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니콜라이란 이런 메신저 프로그램에서도 문법을 준수하고 문장의 끝마다 온점은 붙여 보내는 종류의 사람이었으니까. 단,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정신이 알코올에 물들어있을 때다. 즉, 지금 니콜라이는 어디서 거나하게 취해서 동생을 호출하고 앉아있다는 말이다.
막심은 한숨을 쉬다가 신발을 꿰어신고 문을 나섰다. 니콜라이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부모님이라면 영영 못 찾겠지만, 막심은 니콜라이가 즐겨 찾는 술집을 몇 곳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곳은 감성 넘치는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곳이 아니라 포장마차에 가까웠다. 막심은 니콜라이를 예상하던 장소에서 예상하던 모습으로 발견했다. 그러니까 몸이 기울어진 상태로 깡소주를 마시는 니콜라이를 찾아냈다.
“콜랴.”
“아……. 왔구나, 막슈쉬카.”
니콜라이는 조금 혀가 꼬인 채 대답했다. 막심은 반대편에 앉았는데, 싸구려 의자는 삐걱거렸고 불편했다. 니콜라이는 잔을 하나 더 꺼내서 막심에게 내밀었다.
“한잔해.”
막심은 받지 않았다.
“콜랴, 네가 불러서 오기는 했는데, 같이 술 마시려고 온 건 아니야.”
그러자 니콜라이는 두말없이 제 잔에 술을 따랐다. 막심은 이마를 찡그렸다.
“형도 이미 술 충분히 한 모양인데, 그만해.”
“아직 안 취했어.”
“모든 주정뱅이가 그렇게 말하곤 하지.”
“변명 아니야.”
니콜라이는 제 입에 잔을 가져가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정말로, 난 지금 취하려고 마시는데 아무리 마셔도 정신이 맑기만 해. 대체 뭐가 문제지? 답답해 미치겠다.”
니콜라이는 술을 쭉 들이켜 잔을 비웠다. 막심이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형은 이미 많이 마셨어. 더 마셔도 원하는 효과는 얻지 못할 거야. 그러니 여기까지만 해.”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는 소리야?”
니콜리아의 목소리가 조금 올라갔다. 주정이 시작되었다는 신호다. 막심은 담담하게 말했다.
“알잖아. 문제는 술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자 니콜라이의 주정이 단번에 멈췄다. 탁자 위는 한동안 고요해졌다. 한참 후에 니콜라이는 피로한 얼굴을 쓸어내리며 늘어지는 앓는 소리를 냈다.
“막스. 나 정말 너무 답답해.”
얼굴을 쓸어내리던 손이 다시 올라가 얼굴을 비비고, 눈과 뺨을 덮었다. 이번에는 취하지 못하는 상태에 대한 발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막심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니콜라이는 두서없이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너도 알잖아, 막스……. 난 옛날부터 이 길만 바라봤어. 결심했을 때가 고2 때였지. 햇수로 따지면 10년이야, 10년! 그 당시 읽었던 책이 내 책장에 아직도 꽂혀있어. 테오도어 아도르노, 발터 벤야민, 노엄 촘스키, 슬라보예 지젝. 하……. 그렇게 보란 듯이 두었는데 지금까지 숨겼냐는 소리가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애초에 난 숨긴 적이 없잖아. 부모님이 진짜 몰랐을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들은 모르는 척하고 싶었던 거야. 어째서 그런데 이제 와서 집안에 역적이 나타난 것처럼 구는 건지, 원.”
니콜라이는 복잡하게 얽힌 제 응어리에 대해 토로하고 있었다. 흘려넘길 수도, 너무 취해서 헛소리 중이라고 얼버무릴 수 없는 복잡한 실타래였다. 막심은 잠자코 들었다. 술을 거절했으니 니콜라이가 이야기하는 동안 입술을 축일 것이 없었다.
“너도 알잖아. 어린 그 날부터 나를 알았잖아, 막스.”
니콜리아는 다시 한번 제 갑갑한 마음을 토해내었다. 알코올 냄새가 섞인 무거운 숨결이 탁자에 훅 쏟아졌다. 막심은 답했다,
“알았지, 그럼.”
나쁘지 않게 지내는 형제 사이에는 둘만이 공유하는 영역이 생기기 마련이다. 서로만 알며 타인에게 말하지 않고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은밀한 영역. 막심의 뇌전증 발작, 마르크스주의에서 시작된 흐름을 따라가는 니콜라이의 흥미. 그 외에도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기인한 신에 대한 막심의 의문, 니콜라이가 어울리는 사람들과 자주 다니는 술집 등. 부모는 모르거나, 알더라도 모호하게 이해하는 부분에서 두 사람은 공모자가 된다.
사실 형제가 아니었어도 니콜라이라는 사람을 충분히 관찰할 기회만 생겼으면 막심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막심의 대학 전공은 철학이다. 저 유명하고 저명한 이름들을 몰라볼 수가 없다. 비록 그들이 철학자라기보다는 사회 운동가에 가깝다고 한들 말이다.
그러나 동조하지 않으며 오히려 껄끄럽고 심하게는 부끄럽게까지 느껴지는 형제의 사상에 대해서 막심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형제가 아니라면 토론 상대로 여기거나 상종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니콜라이가 그의 형제라면, 철천지원수가 아닌 존중과 신뢰를 보내주었고 막심도 그에 따른 대우를 해주었던 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전히 막심은 이 공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주와 여기저기에서 올라오는 음식 냄새. 플라스틱 테이블과 불편한 의자,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음과 괜히 강렬하고 색이 치우친 조명은 막심의 신경을 살살 긁는다.
이상하게도 이런 장소를 선호하는 니콜라이는 손으로 제 머리를 감싸며 말했다. 한층 많이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어쨌든, 막스. 나 머리가 너무 아프다.”
니콜라이는 한탄을 토로할 곳이 필요했다. 해결은 부모나 니콜라이 둘 중 하나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위안과 동조가 있었다면 효과가 더 좋을 테지만, 니콜라이도 제 동생에 무리한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막심은 들어주는 것까지는 할 수 있었다.
“나가자. 나가서 바람을 쐬면 좀 나아질지도 몰라.”
막심은 먼저 일어나 술값을 계산했고, 니콜라이에게 돌아와 그를 부축했다. 이 술집이 있는 골목은 비슷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고, 청결과는 거리가 멀었다. 막심은 행인의 가래침을 피해 기우뚱거리는 니콜라이를 이끌고 나아갔다. 공기 중에는 원하던 시원한 바람 대신, 매연과 담배 냄새가 떠돌았다.
막심은 날이 갈수록 제 부모와 제 형제 사이를 오가며 간첩이 되어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진영을 위한 간첩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막심에게는 이 불안한 진영 사이에서 예상 가능한 전망이 하나 있었다. 형이 이렇게 행동하는 한, 그들의 부모는 막심의 로스쿨행을 유보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부모가 니콜라이의 기행을 로스쿨에서 붉은 물을 들여왔기 때문이라고 여긴다면 말이다.
니콜라이는 보도블록에 걸려 크게 휘청거렸고, 막심은 그런 니콜라이를 붙잡아 단단히 붙들어 맸다. 그리고 동시에 집에 돌아가서 부모에게 둘러댈 말을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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