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LLEL WORLD

[D-7]

PARALLEL WORLD by Iy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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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생각보다도 더 간단했다. 은색 쟁반에 샴페인이나 와인잔을 들고다니며 필요한 손님들께 드리거나 불편해 보이는 손님들을 응대하는 것. 그래도 혹여나 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 높으신 분들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중이다.

이곳에서 손님들은 하나같이 TV에서 나오는 유명한 연예인부터 시작해 기업인, 정치인들까지 유명인사들 뿐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실수라도 해봐라.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초대된 이들 모두 우성이라고 알려진 이들 뿐이다.

이 조그만한 나라에 우성이 이렇게 많았구나…. 난생 처음 보는 알파, 오메가들을 처음 보았다. 그것도 우성들만 이렇게 잔뜩이라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곧바로 실수를 할 것 같은 기분에 시현은 어떻게 해서든 정신차리고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이런 유명인사들을 한 공간에 이렇게 만히 볼 수 있는 기회도 없으니 실컷 구경하다 가야지. 시현을 제외한 다른 베타들도 다 비슷한 느낌을 받은 모양인지 귓가에 꽂힌 인이어에서 베타들의 감탄사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나오는 것이 들려왔다.

그리고 왜 한성연이 이 곳에서 보고 들은 것들은 모두 잊으라고 했는지 시현은 온 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말이 중요한 행사지, 실상은 그저 그들의 인맥을 넓히고 친분을 쌓기 위한 일종의 사교계라고 볼 수 있는 이 공간은 각종 이슈와 가쉽거리가 오고가는 현장이기도 했다.

‘우성 오메가인 줄 알았던 누구는 사실 열성이라더라.’

‘누구는 사실 순수 알파가 아니다.’

‘어디 우성 알파 누구는 사실 그의 친자식이 아니라고 하더라.’

이들 사이에도 존재하는 보이지 않은 신분제도에 대한 비밀부터 시작해 어느 알파 오메가의 출생의 비밀까지. 막장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각종 스토리들이 난무해오는 혼란 속에서 시현은 그저 아찔해져만 온다. 이렇게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어느 불쌍한 타켓들의 찌라시같은 말들이 오가는 것 외에 여기에는 베타 웨이터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페로몬 전쟁도 한창이었다.

베타인 시현으로써는 절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눈치밥을 먹어오며 커온 시현인지라 사람의 분위기란 것이 있지 않은가. 그 사람의 분위기만 보아도 어떤 상황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시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눈치껏 제 할 일만 하고 빠져나오는 일일뿐.

나는 이들에게 그저 NPC일 뿐이구나.

이들에게 베타 웨이터들은 그저 한 낱 투명 인간일 뿐이다. 그래, 난 내 할 일만 하면 된다 이거야. 난 돈만 받아 가고 가면 끝인 걸. 시현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높으신 손님들을 응대하면서 시간이 빨리 흘러가길 바랐다. 여기 있으니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이 귓가를 때려와 안 그래도 피곤한 몸에 힘을 더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바쁘게 사람들을 응대하며 움직이고 있는데 홀 안에 갑작스러운 어둠이 찾아왔다.

“자, 지금부터 이번 파티의 주최좌. 박 강 우 회장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모두 박수로 환영해주시길 바랍니다.”

어두워진 장내에 유일한 스포트라이트가 번쩍거리며 무대 위를 비추었다. 그리고 강력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여유롭게 등장하는 이에게 사람들은 박수와 찬사를 날리기 시작했다. TV에서나 보던 KW그룹의 회장인 박강우 회장이다.

“안녕하세요. KW 회장 박강우 입니다.”

박강우 회장의 인사에 홀 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그의 인사에 부응했다. 그리고 박강우 회장의 다음 말을 기다리듯 장내 안은 쥐 죽은듯한 정적이 가득했다. 박강우 회장은 자신을 주목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만족한 모양인지 팔자주름이 깊어지도록 웃음을 지었다.

대박. KW그룹의 박강우라니. 이게 지금 꿈이야, 생시야. 시현은 아마 잠시 동안 넋이 빠져서 박강우 회장을 바라본 것 같다. 박강우 회장은 비록 노년의 나이이긴 하지만 박강우 회장의 얼굴이 어땠을 거라 짐작이 갈 정도로 얼굴이 반듯하고 눈빛이 살아있는 것이 생기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오늘 와주신 모든 귀빈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오늘 이 파티는 KW그룹 창사 40주년 축하 파티로 지난 KW그룹과 함께하고 KW그룹이 지금처럼 클 수 있게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릴겸 이렇게 작게나마 파티를 열어 여러분들을 이렇게 한 자리에 모셨습니다.”

박강우 회장의 인사가 끝남과 동시에 커다란 환호성이 장내에 울려퍼졌다. 역시 KW 그룹의 회장이다 이건가. 시현은 자신의 위치와 처지도 모른 채 자신도 모르게 박수치는 사람들을 따라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귓가에 들려오는 한성연의 목소리에 정신을 번뜩 차리고선 다시 서빙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퍽

“아, 죄송합니다! 제가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좆됐다. 실수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던 때가 언제라고 벌써부터 실수를 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시현은 고개를 들지도 못 한 채로 재빨리 허리를 90도로 숙여가며 사과의 인사를 건넸다.

“됐어. 이게 뭐라고.”

자신의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슬그머니 들어올린 시현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검은색 포마드 헤어에 짙은 눈썹. 눈썹과 눈 사이가 가까워서 그런지 선이 더 굵고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을 가진 남자가 서있었다. 전체적으로 조합이 잘 된 얼굴이지만 선이 굵어서 그런지 몰라도 조금 무서우면서도 잘생긴 얼굴을 가졌다.

한 마디로 강하다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얼굴을 가진 남자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이 남자의 외모는 시현이 지금껏 보아왔던 사람들 중에서 제일 잘생긴 것 같다. 시현이 넋을 잃고 남자를 쳐다보자 남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수트에 묻은 샴페인을 탈탈 털고선 그대로 장내를 빠져나가버렸다.

“와… 진짜 잘생겼다.”

시현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시현은 곧바로 입을 막으며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다행히 시현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휴…. 다행이다. 시현은 연설하는 박강우 회장을 뒤로한 채 조심조심 서빙을 하기 위해 발을 움직였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말 길게 하는 것을 안 좋아한다고들 하죠? 그럼, 말은 이 쯤에서 마치고,”

말을 계속해서 이어가려던 박강우 회장의 말을 멈춘 것은 KW그룹의 사람인지 몰라도, 누군가 올라와서 박강우 회장의 귀에 뭐라고 속삭였다. 덕분에 장내는 뭐야, 뭔데. 술렁술렁 거렸고, 샴페인을 쟁반 위에 옮기던 시현 역시 무대쪽으로 시선을 돌려 무슨 일인지 확인했다.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급하게 해야할 일이 있으니 KW 창사 40주년 파티 모두 즐겁게 즐기시다 편안하게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급하게 말을 마무리하며 박강우 회장과 말을 전달해 주던 남자와 함께 무대 위를 내려갔다. 갑작스럽게 끝나버린 연설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했지만, 이내 다시 파티 분위기로 한껏 달아오르면서 시끌벅쩍 해졌다.

시현 역시 본분을 잊지 않으며 손님들의 부름에 달려가 손님들의 심기가 불편해지지 않도록 응대를 이어나갔다. 멀리서 손짓으로 시현을 부르는 손님들에 시현은 조심스럽게 달려가 그들이 원하는 음료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시현은 박강우 회장의 등장으로 인해 잠시 잊고 있었다.

이곳은 거대한 찌라시 시장이라는 것을.

“박 회장 아들, 극우성 알파라며?”

“박 회장 아들한테 극우성 알파가 있어? 있어도 우성밖에 없잖아. 자기가 뭐 잘못알고 있는 거 아니야?”

“아니야. 자기야 말로 뭐 모르고 있구나? 박 회장한테 숨겨놓은 아들 하나 있잖아!”

이건 또 뭔소린지. 샴페인 잔을 세팅하고 있는 동안 들리는 말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저기 두 분…. 저는 NPC가 아니라고요…. 이들이 알판지, 오메가인지 베타인 시현으로써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이야기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이래서 한성연씨가…. 시현은 한성연이 말했던 공지를 다시금 머릿속에서 되뇌였다.

“근데, 그게 뭐 어쨌다고?”

“원래 이 자리가 그 숨겨놓은 아들 공개하려는 자리였었대!”

“어머, 정말? 근데 왜 그냥 가?”

“글쎄? 내가 알고 싶은 게 그거야. 그 아들! 그 아들에 대한 소문이 있는데 페로몬 향을 맡아본 사람이 없다나 뭐라나?”

“극우성이라며.”

“그러니까! 그러니까 박 회장이 숨겨놓고 키운 자식이라는 소문이 돌아서 박 회장이 오늘 공개하려고 했다는 거 아니야~.”

맛있게 드세요. 못 들은 걸 들은 것 같은. 아니, 절대 들어선 안 되는 말을 들은 것 같은 기분에 시현은 도의적인 말을 남기며 찝찝해진 기분으로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 딱히 남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더 마음이 불편해진 시현이다.

일은 편한데 다른 의미로 많이 힘드네 오늘…. 시현은 귀라도 씻으며 여기서 들었던 모든 말들을 잊고 싶었다. 그들이 사는 세계. 더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다. 시현은 귀 대신 손이라도 씻기 위해 잠시 한성연과 다른 알바들에게 화장실 좀 다녀온다고 작게 보고 한 뒤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그나저나 화장실은 어디야….”

나오면 바로 있을 줄 알았던 화장실을 찾다가 그만 길을 잃었다. 뭐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놨어. 시현은 복도를 두리번 거리며 걷다가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 화장실이 어디있는지 묻기 위해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어가던 찰나였다.

-짜악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가 실내를 가득 메웠다. 시현이 놀라 벽 뒤로 몸을 숨기며 숨을 죽이자 목소리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전 듣고 온 찌라시의 주인공. 박 회장, 박강우 회장이다.

“이 못난 놈. 네가 감히 나를 망신시켜?”

-짜악.

시현은 귀를 막은 채 그대로 벽면에 미끄러져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절대절대 목격해선 안 되는 장면을 그만 봐버린 것이다.

오늘 나한테 도대체 왜 그러는데….

“그래도 아들이라고 받아주고 먹여주고 키워놨더니 이렇게 배응망덕한 짓을 해? 네가 감히???”

몇 번의 소리가 더 오갔는지 모른다. 시현은 그저 귀를 막고 주저앉은 채 그저 이 상황이 끝나길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거기. 상황 다 끝났으니까 이제 나와도 돼.”

처음부터 시현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인지 박강우 회장에게 말 없이 맞고만 있던 남자가 시현에게 다가왔다. 시현은 두려움에 떠는 눈동자를 그대로 올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올려다 보았다.

“어?”

아까 부딪혔던 그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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