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LLEL WORLD
[D-7]
“안녕히가세요!”
“수고하세요.”
마지막 손님까지 보내고 조금 이르게 카페 마감을 시작했다. 오늘따라 손님들이 끊임없이 찾아왔고, 덕분에 기우의 입은 빨간마스크를 연상케 하듯 입이 귓가에 걸린 상태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죽어가던 건 시현뿐이었지만.
시현의 아르바이트 대타 시간이 다가올 때쯤 기우가 기분이라며 일찍 퇴근하라고 가게를 일찍 닫았다. 말이 배려지, 계속 찾아오는 손님들을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에 일찍 닫는 것이라고 시현은 확신했다. 뭐, 그래도 다음 알바 갈 때까지 텀이 남아서 조금은 쉴 시간이 생겼다.
“형, 고생하셨어요.”
“그래, 시현아. 너도 고생했다. 너 근데 이따가 알바 갈 수 있겠어?”
“가야죠…. 그게 다 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건데요.”
지독한 놈. 그럼 간다! 기우가 시현의 머리를 격하게 쓰다듬으며 시현에게서 등을 보였다. 솔직히 말해서 집으로 돌아가 침대로 곧장 다이빙 하고 싶은 마음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시현은 통장에 쌓일 돈을 생각하며 그 마음을 억지로 꾹꾹 억눌렀다. 그래, 돈 생각 하면 뭔들 못하리. 오늘 자본주의의 노예가 뭔지 보여주마.
너무 피곤한 탓인지 출처를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시현을 지배했다. 그것도 그거지만 KW호텔 서빙 페이는 시현이 영혼이 갈려도 까짓것 웃으며 갈려보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제법 많이 셌다. 이래서 사람들이 자본주의, 자본주의 하나보다 싶다.
자본주의 만세다. 오예
-
카페 알바가 생각보다 일찍 끝났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KW호텔 정문에 도착했다. 일찍 끝난 김에 산책겸 운동겸 멍때리며 걷다보니 어느새 보이는 건 호텔의 정문이었다. 얼마나 멍때리면서 걸은 거지…. 카페까지 거리가 꽤 됐는데 말이지. 집가면 제대로 뻗겠네. 이 생각을 하며 시현이 천천히 호텔의 정문으로 다가갔다.
확실히 KW그룹에 속해있는 계열사다보니 호텔의 외부부터 장난이 아니었다. 이건 뭐 건물이 사람을 내려다 본다고 해야할지, 웅장하다는 말로도 다 표현이 안 될 정도이다. 하지만 시현은 일개 대타온 베타이다. 여기서 묵을 것도 아닌데 적당히 놀라다 들어가자 생각하며 호텔의 외부를 감상했다.
KW그룹. 주로 알파와 오메가로 이루어진 곳으로 베타가 이 회사에 들어가려면 속칭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베타들에게는 말 그대로 꿈의 직장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아니, 그 누구에게도 꿈의 직장이다. 복지도 좋아, 월급도 높지, 시설은 또 말할 것도 없다. 왜 또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노비가 되어도 대감집 노비가 되라는 말.
다들 그 대감집 노비가 되지 못해 안달 나있다는 말이다. 그 노비들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에는 시현도 당연히 끼어있다. 그도 당연한게 전 세계 top 10 안으로 들 정도로 큰 계열사이기고 국내에선 가장 들어가고 싶은 회사 1위로 손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쯤 노비라도 되어보나…. 싶은 시현이다.
KW호텔은 로비 또한 그 이름에 걸맞게 있는 자들만 오라고 만들어 놓은 것처럼 화려함의 끝이었다. 전세계 반짝이는 것들은 다 여기에 모아놓은 느낌이었다. 뭐, 이건 없는 사람들은 서러워서 살겠나. 시현은 여기도 번쩍, 저기도 번쩍 하는 각종 미술작품들과 조형물들에 구경하느라 눈이 바빴다.
하나하나 자신들의 존재감을 강하게 뿜어내고 있는 것들에게서 위엄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마냥 화려하지도 않아서 고고한 절제미까지 존재하고 있어 단순히 알바 대타를 하러 온 시현에게는 압도적인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한 붐위기를 내뿜어내고 있었다.
“아니, 이런 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야?”
당연하게도 대단한 사람들이겠지? 혼잣말을 내뱉으며 현타도 오지 않을 화려한 내부를 감상하다 이내 혀를 내두르며 시현은 호텔 프런트 직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
“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그…. 오늘 아르바이트 대타 뛰러왔습니다만….”
이름을 알려주시겠어요? 명단을 찾는 직원너머로 보이는 미술 작품에 눈이 돌아간 시현은 얼버무리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저기, 손님? 자신을 부르는 직원의 말에 번뜩 정신을 차린 시현이 멋쩍은 표정으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최강준’이라고 쓰여 있는 곳에 이름을 가져다 댄 직원이 물었다.
“최강준씨 대신해서 오신 현시현씨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사실 이렇게 갑자기 대타를 구하면 안 되는데 갑자기 빠져버리셔서 인원비어서 구하게 된 거거든요.”
“네…. 저도, 그 친구도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혼내려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 중요한 행사라 인원이 부족하면 안 되는 상황이거든요. 시현씨가 조금 빠르게 오셨으니 간단하게 교육 한 번 받고 바로 올라가실게요.”
“네.”
-
대타로 들어가게 된 KW호텔 서비은 전부 베타로 구성되어 있다고 들었다. 지금 받고 있는 교육도 원래 사전에 미리 받는 교육이라고 한다. 최강준…. 이새끼, 교육까지 다 받고 나한테 이 일을 줘? 이걸 감사해야돼, 뭐라고 해야돼. 머릿속으로 교육 내용을 억지로 욱여넣으며 시현은 속으로 신나게 강준의 욕을 신랄하게 하고 있었다.
교육의 내용을 들어보니 정말 말 그대로 간단했다. TV드라마에서 보던 사교 파티에 나오는 웨이터처럼 서빙만 하면 되는 듯 싶었다. 오늘 하는 파티는 높으신 분들의 중요한 행사라 실수하면 절대절대 절.대. 안 된다고 강조에 강조를 더하며 말하는 직원에 겁먹은 표정으로 알겠다며 고개를 있는 힘껏 끄덕였다.
실수 한 번 하면 진짜 목 날아가는 거 아니야? 저정도면..? 하긴 실수해서 좆되면 나만 좆되는 거지.
“유니폼은 맨 위쪽으로 올라가시면 직원용 탈의실이 바로 보이실 거거든요? 거기서 옷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교육을 다 받고 위층으로 올라가려는 시현을 직원이 뭔가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한 표정으로 붙잡았다. 아까 교육할 때보다도 더 단호한 표정으로 시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잊고 말 안 한 게 있는데요. 명심하세요. 다른 무엇보다 이곳에서 보고 들었던 모든 것들은 이 호텔을 나가는 순간 다 잊으셔야 합니다. 꼭이요! 무조건 다 잊어버리셔야 해요. 아셨죠?”
“네…. 네,네….”
넋이 나간 시현의 대답에도 만족한 듯한 직원이 웃으며 엘레베이터로 친절히 안내를 해주었다.
뭐 얼마나 대단한 행사길래, 보고 듣는 건 다 잊으라는 거야. 시현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강조에 강종를 당부한 직원에게서 드디어 벗어난다는 생각을 하며 위층으로 올라가는 직원용 엘레베이터를 탑승했다. KW호텔은 KW 계열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호텔로 현재 국내에선 제일 높은 층고를 자랑하며 시설 또한 그에 걸맞게 후륭해 해외 유명인사들이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하며 찾아올 정도로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다.
오늘 와 보니 왜 그런지 충분히 알 것도 같다. 그런 호텔에 대타로 나오게 된 걸 나도 영광으로 알아야 하나…. 이런 일 없으면 시현은 이호텔 근처엔 얼씬도 접근하지 못할테니 말이다.
-띵.
엘레베이터는 호텔의 제일 위층에서 한칸 아래층에서 멈추었다. 직원용 엘레베이터라더니 정말 직원용만 다닐 수 있는 층고에서 멈춘 모양이었다. 조심스럽게 내려서 살펴보니 직원용 복도도 장난 아니게 화려하다. 고급 벨벳을 사용한 것인지 고급스러운 레드벨벳 이 벽면과 바닥을 덮었고, 흰색과 금을 포인트로 하여 고급스러움을 한 층도 업그레이드 시켰다.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 때 쯤, 복도 끝에서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시현에게 찾아왔다.
-
“오늘 일하실 베타분 맞으시죠?”
“아, 네….”
베타. 참 마법의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잠시 환상 속에 살던 시현을 곧바로 현실로 내려 끌어당기다니. 정신차렸다는 소리다. 내가 뭐라고 그저 한 낱 알바생에 불과한데.
“옷은 저 복도 끝에서 갈아입으시면 되시구요, 케비넷 안 에 있는 물건 다 챙겨서 나오시면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시현은 직원이 알려준 방향으로 몸을 움직여 직원용 탈의실을 찾았다. 탈의실에 들어가 강준의 이름이 적힌 캐비닛을 열고 유니폼을 꺼내들었다. 유니폼은 레스토랑 웨이터를 연상시키는 쓰리피쓰 정장에 보타이였다. 시현은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 탈의실에서 나왔다. 물론 안에 든 내용물들까지 전부다 챙겨서 말이다.
탈이실에서 나오니 시현을 교육했던 직원이 다른 알바들을 체크하고 있었다. 시현은 서둘러 알바생들이 있는 대열에 합류했다. 보아하니 시현이 제일 늦은 느낌이다. 제일 빨리와서 제일 늦게 도착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아, 여기 현시현씨 오셨네요. 그럼 처음부터 다시 소개하도록 하죠. 전 이 호텔의 지배인 한성연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지배인이라고 소개한 한성연은 알바들에게 무전기를 나누어 주며 빠르게 설명했다.
“자, 이거 하나씩 받아서 허리에 차시면 됩니다. 탈의실에서 작은 무선 이어폰 하나씩 받으셨죠? 그게 바로 이 무전기랑 연결 되어 있는 통신기구요, 이 이어폰은 귀에다 꽂으시고 다른 물건 또 있으셨죠? 이건 마이크라서 보타이 뒤에 잘 안 보이게 넣어 두시면 됩니다. 이래야 서로 소통하기 편해요. 손님들 놀라시니 괜히 큰 소리로 말씀하진 말아주시구요. 작은 소리로도 충분히 들리니까요? 채널은 제가 다 맞춰놓았으니 딱히 손대지 않으셔도 됩니다.”
설명을 잘 듣던 알바들은 작은 소리에도 잘 들린다는 말에 ‘아-. 아-.’ 하며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무전기 테스트를 해보았다. 작은 속상임에도 귓가에 들리는 소리는 아주 선명하게 잘 들려왔다. 귓가에 속상이는 여러 음성들에 시현도 그들을 따라서 아-. 아-. 그들을 따라서 무전기 테스트를 해본다.
진짜 잘 들리네….
“자, 여러분. 테스트까지 다 끝나셨으면 교육 받았을 때 들었던 공지 잘 숙지하시고 이제 들어가실게요! 각자 자리에 서서 손님들 응대하시면 됩니다. 저도 근처에 있을 거구요”
“네.”
한성연의 안내에 따라 홀에 입성한 알바들이 지정위치에 섰다. 시간이 지나자 슬슬 행사에 초대된 이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 했다. 그리고 홀 끝에서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드디어 그들만의 파티가 시작 되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