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버스? 가이드버스?

BL을 읽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새삼스러운 얘기긴 하지만 이번엔 오메가버스와 가이드버스가 어쩌다 생긴 장르고 어떤 장르인지를 다뤄보려한다. 이 장르가, 특히 가이드버스가 때로는 로판으로도 흘러들어오기도 해서 겸사겸사 쓰는 짧은 글이다.

오메가버스. 알파오메가버스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한국에선 보통 오메가버스라고 부른다. 오메가버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역시 성별과 관련된 설정이다. 

이 부분을 자세히 파고들기 전에 일단 가벼운 상식 삼아 젠더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보통 우리는 사회적으로 여성/남성 이 두가지로 육신이 타고 나며 과학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배울 때나 간성, 중성, 자웅동체 등등 자연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성별의 다양성을 아주 쪼끔 곁다리로만 배우다 보니 태어났을 당시의 육신을 육안으로 구별하는 성별(Sex)에 관련된 역할을 충실하길 일평생 강요받는다.

하지만 현실의 성별(Gender)는 스펙트럼에 가깝다. 여성기 남성기를 다 가지고 있거나 필요에 따라 성별이 바뀌거나 하는 동물들도 컨텐츠를 통해 은근히 알려져 있지 않은가. 대표적으로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흰동가리만 하더라도 암컷이 죽으면 그 중 제일 큰 수컷이 암컷으로 변하기도 하고 펭귄의 경우 동성커플이 많이 발견되는 종 중 하나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는데 브루스 배지밀(Bruce Bagemihl)이라는 캐나다 생물학자 겸 언어학자가 약 450 종 이상의 종에서 동성애 및 양성 행동이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생식이 주요 생물학적 기능  중 하나일 뿐이라 주장했고 이 이론이 75년 쯤에 미국 법원에서 받아들여지고 90년대가 돼서야 WHO에서도 받아들여진다. 동성애나 트랜스젠더는 정신질환도 이상성욕도 아닌지 오래니까 혐오자들은 모쪼록 2000년대 이전 논리를 그만 되풀이 해주길 바란다.

다시 오메가버스의 얘기로 돌아와서, 오메가버스는 섹스와 젠더가 교묘하게 뒤섞여 존재하는 설정을 가진 세계관이다. 오메가버스 내에서 섹스는 여성과 남성 모두 존재한다. 다만 육신의 성별과는 무관하게 생식에 관련된 성별이 따로 존재한다. 이게 바로 '알파/오메가/베타'다.

상대방을 가임시키는 알파, 임신이 가능한 오메가, 작품에 따라 세부 설정이 다르긴 한데 기존 섹스의 롤을 따르거나 아니면 아예 생식기능이 없는 베타로 크게 나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여성의 몸이지만 섹스를 해도 임신을 하지 않는 여성 알파/베타, 여기서 삽입까지도 가능한 게 여성 알파고(성교시 몸 안에서 생식기가 튀어나오는 설정인 듯 하더라) 반대로 남성이지만 섹스 후 임신이 가능하기도 한 게 남성 오메가가 될 수도 있으며 베타는 기본적으로 알파/오메가 그 외기 때문에 어떤 설정이든 가능하다. 여성 베타가 남성 오메가와 섹스 후 양측 모두가 임신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설정에 변화구를 주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자유로우니 말이다. 처음 이 세계관을 생각해낸 사람이 프리소스로 남겼으니 저작권 문제도 없다.

그럼 이 기발한 세계관이 어쩌다 나왔느냐. RPS다.

RPS의 약자가 무엇일까? Real Person Slash. 현실의 사람 A, B를 가지고 A랑 B는 사귈 거야 하는 망상이다. 유독 아이돌 사업과 떨어질 수 없기도 한데... 오메가버스의 경우엔 Real Person can Sue you에 가깝다.

농담 아니냐고? 진짜다. 소설 속 인물이 사실은 현실의 사람이다보니 고소를 피하기 위해서(...) 이런 설정이 나오게 됐다. 생각해보라. 현실의 인물에게서 고소를 피하려면 이 현실의 인물이랑 무관해보이는 가상의 인물다운 설정을 붙여야하는데 그냥 종족설정을 사람으로 두는 것보단 새로운 종족 설정을 붙이는게 쉬운 방법이지 않은가.

어쨌거나 RPS에서 유래했고 RPS에서 요구되는 포르노적 기능을 해소하기 위한 게 목적이다보니 알파/오메가에게 붙은 설정에서 이러한 점이 두드러진다. 캐릭터들이 번개처럼 눈 맞아서 LTE로 섹스하게 만들고 싶다 보니 붙은 페로몬과 발정에 대한 설정, 현실의 섹스에 뒤따르는 어려움을 피하려다보니 페로몬에 노출되면 음료 밴딩머신처럼 성기가 젖는다거나 2세 망상도 하고 싶으니 남성의 몸이라도 임신이 가능하게 되기도 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로운 건 이게 BL로 들어오면서 완전히 로컬라이징 된 지금의 모습인데 BL 또한 여성서사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오리지널 색이 아직 강한 미국에 비해서 한국에서는 오메가 인권 = 여성인권 식으로 치환-반영되어있는 부분이다. 당연하지만 사회 비판적인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덧붙여 흥미로운 지점이 일본이라고 오메가버스가 없는 건 아니며 오메가 인권 = 여성인권까지는 비슷한데 알파에게 뒷목을 물리면 오메가가 알파에게 종속되니까 종속 당하기 싫다면 오메가가 목 보호대를 하고 다녀야한다는 등의 더 억압적인 설정은 있는 반면 크게 사회비판적 성격을 띄는 작품이 나오지 않는 게 특징이다.

여하튼 이렇게 성에 대해 자유롭고 흥미로운 설정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게 오메가버스의 매력이자 특징인데 언젠가 로판에도 이 오메가버스가 유입될 수 있을 거라고도 본다. 아까도 말 했듯 오메가버스는 설정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베타라는 성을 설정할 때 현실의 사람처럼 그냥 임신하는 구조를 유지할 수도 있고 아예 가임 능력을 안 줄 수도 있다. 사회 지배층을 알파/오메가/베타 중에 아무거나 골라 새로운 사회구조를 만들 수도 있거니와 각 성별의 비율을 조절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알파가 흘러넘치고 오메가가 많은 배경에서 알파x베타의 구조로 소설을 쓰게 되면 플라토닉 러브나 겉으로 비치는 모습은 이성애에 가깝지만 주제나 내용이 퀴어소설에 가까울 수도 있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보통 로맨스를 좋아하는 독자층에게서 보수성이 두드러지는 특징이 보여지기는 한데... 재밌으면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다들 읽기 마련이다. 

자 그럼 오메가버스는 이쯤 하고 가이드버스로 넘어가자.

가이드버스의 경우 처음엔 센티넬버스라고 불렸다. 이유는 또 RPS다. 현실의 사람은 당신을 고소할 수 있으니까. 오메가버스와 다른 건 세계관의 이름이 '센티넬'이란 드라마에서 기인했기 때문에 관련된 저작권이 센티넬 제작사 측에게 있다는 점이다. 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저작권에 있어서 고유명사가 중요하다보니 그렇다.

그래서 센티넬버스는 가이드버스란 이름으로 정착되었고 세계관 자체는 이렇다. 초능력자가 있는데 초능력자들이 초능력을 쓰다 보면 과부하가 와서 이 과부하 상태를 해소해줄 무언가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데 이 무언가가 가이드란 존재다. 가이드는 에스퍼를 진정시키는 것 말고는 아무 능력이 없는 게 기본 설정인 편이다. 

이거 어디서 본 듯한 설정인데... 싶다면 아마 맞을 것이다. 이 드라마가 1999년에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실 이 관계 구조 자체는 이미 예전부터 써먹어오긴 했다. 단지 그 관계 구조 자체를 설정을 통해 일종의 공식화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래서 이 세계관 또한 고유명사만 바꿔서 에스퍼-가이드란 관계로 알차게 써먹고 있는 요즘이다.

물론 이 외에도 다양한 ~버스들이 있긴 하나 워낙 많아서 다 꼽기도 힘들 뿐 더러 가장 유명하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두개만 가볍게 소개한 걸로 이만 줄이려 한다.

이 두 세계관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설정으로 애착의 당위성을 부여하려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나 처음으로 독창적인 세계관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샘플 삼아 가볍게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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