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LLEL WORLD

[D-7]

PARALLEL WORLD by Iy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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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시현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자 남자는 커다란 손을 시현의 앞으로 내밀었다. 시현은 어떨떨한 표정으로 남자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저…. 아까 본 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러기엔 부어오른 왼쪽 뺨이 신경을 쓰이게 만들잖아요….

딱 봐도 아파보일 정도로 빨갛게 부어오른 뺨에 시선을 거두지 못한 시현이 뭔가 결심한 듯한 눈빛으로 남자의 양 팔을 세게 붙잡았다. 이건 인간의 도리로써 차마 외면할 수 없다.

“저, 잠시만요!”

시현은 남자의 양 팔을 붙잡은 상태로 화장실 위치를 겨우 찾아내고선 가지고 있던 손수건에 찬 물을 묻혀와 남자의 왼쪽 뺨에 대었다. 남자는 놀란 듯이 눈을 살짝 크게 뜨고선 시현을 가만히 바라만 볼 뿐이다.

“아까 본 것은. 아니, 전 아무 것도 몰라요.”

혹시라도 봤다고 하면 어떤 불이익이 시현에게 떨어질지 몰라 남자의 입이 떨어지기도 전에 시현이 먼저 가로채며 입을 열었다. 봤어도 못 봤고, 들어도 못 들은 거다. 이 남자는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아버지가 이랬던 적 한 두번이 아니었는데요, 뭘.”

박강우 회장의 아들이다.

-

‘이 못난 놈. 네가 감히 나를 망신시켜?’

-짜악.

살끼리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홀 가득히 울려퍼졌다. 남자는 아프지도 않은 모양인지 뺨이 빨갛게 부어오르는데도 불구하고 박강우 회장이 때리는 족족 맞고만 있었다.

‘…….’

‘그래도 아들이라고 받아주고 먹여주고 키워놨더니 이렇게 배응망덕한 짓을 해? 네가 감히???’

열이 오를대로 오른 박강우 회장은 열이 잔뜩 올라 흥분한 상태로 길길이 날뛰며 남자에게 삿대질을 해대며 소리쳤다.

‘소문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전 거절하겠다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아버지께 있는 극우성 알파 아들이 고장난 알파라고 보여주고 싶지 않으시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고장난 알파? 그래. 그 고장난 알파 안 버리고 키워놨더니, 내 일을 망치려 들어?’

박강우 회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남자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에 기분이 더더욱 상한 박강우 회장이 다시 한 번 손을 올려 남자에게 내리치려 할 때 였다.

‘그러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혹시 알아요? 보는 눈이 있을지. 아버지 소문에 예민하시잖아요. 어디서 무슨 소문이 돌지 어떻게 알아요?’

남자는 박강우 회장 뒤에 있는 벽면에 아까부터 귀를 막고서 벽면에 기대앉은 시현의 모습이 보여 재밌는 표정으로 박 회장을 향해 입을 열었더니 박 회장은 주위를 황급히 둘러보고선 손을 내렸다.

‘다시 한 번만. 이 애비의 일을 망치려 들면, 그땐 각오해야 할게다.’

박강우 회장은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분노에 가득찬 목소리로 말 한 뒤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장소를 이동했다.

그리고 남자는 뭔가 재밌는 일이 생각난 모양인지 시현의 모습을 그대로 보다가 시현에게 다가갔다.

-

이 사실을 알 수 없는 시현은 그저 동물원에 갇혀 있는 시베리아 호랑이 한 마리로 보일 뿐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호랑이인 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말이다.

“그, 그래도, 오늘 본 건 못 본 걸로 하겠습니다. 전 이 장소에 없었던 사람이에요.”

시현은 남자를 향해 두 손을 저어가며 안심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다. 귓가에 꽂힌 인이어에서 시현을 찾는 한성연의 목소리가 들릴 때 쯤에서야 두 손을 내리고 남자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지나가려 할 때였다.

“근데,”

남자의 목소리에 시현이 가던 길을 멈추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날카로운 눈썹을 한 번 꿈틀거리더니 그를 쳐다보는 시현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베타이신가요?”

“네? 네. 근데 죄송한데, 제가 지금 좀 바빠서요. 죄송합니다! 오늘 전 정말 아무것도 못 봤어요! 죄송합니다!”

시현에게 엄청난 사건을 보여준 보여준 남자를 뒤로 한 채 시현은 뛰다싶이 걸음을 빨리해 파티장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흐음…. 베타라. 괜찮네.”

뛰어가는 시현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남자가 조용히 입꼬리를 올리며 시현이 건네준 손수건을 내려다 보았다. 이내 비릿한 웃음을 감춘 남자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장내 안을 바쁘게 움직이는 시현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

파티장 안으로 들어와 다시 바쁘게 움직이는 시현은 자신의 빈자리를 채웠을 다른 알바생들에게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사과하기 바빴다. 모두에게 너무 민폐를 끼친 것 같아 시현은 거듭 사과하며 전보다 더 바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움직였다. 다른 알바생들은 시현의 계속된 사과에 괜찮다고 말하며 시현을 달래주었고, 한성연 역시 시현에게 괜찮다고 마랗며 이제 곧 파티가 끝날 것 같으니 손님 배웅 준비를 해달라며 지시를 내렸다.

그래, 제발 끝나라. 나도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오늘 하루 유난히 고단했던 시현은 일분일초라도 시간이 흘러 이 화려하기 짝이 없는 사교 현장이 빨리 끝나길 속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방금 전 일어났던 일을 목격을 하고 났더니 사고회로가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상 시현은 멘탈이 나간 상태로 어떻게 일을 했는지 기억조차도 나지 않는다. 높으신 분들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갔다. 오죽했으면 다른 알바생들이 시현에게 다가와서 괜찮냐고 말을 걸어오기도 했으니 말이다.

괜찮지 않아도 어떻게 해. 괜찮다고 해야지, 시현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괜찮다며 말하며 반 쯤 넋을 놓은 상태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파티장을 움직이며 돌아다녔다.

-

“수고하셨습니다!”

파티가 끝나는 순간마저 넋을 잃은 상태로 돌아다녔던 것 같았다. 유명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도 있지만 그 전에 박 회장이 보여준 충격적인 장면이 시현의 머릿속에서 리플레이 되듯이 반복재생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살면서 그런 장면은 볼 수가 없겠지. 당연하다. 그러니 괜히 비밀 엄수라는 조건이 붙은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파티가 끝나 손님들을 배웅해주고, 파티 뒷정리까지 얼추 끝내고나서야 그렇게 이 비밀이 가득했던 파티장 알바는 끝이 났다. 마지막 손님까지 나가는 모습을 보고나서야 시현을 포함한 다른 알바생들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홀 내부를 정리하며 알바생들은 각자의 무용담을 내뱉었다. 모두 베타라는 형질과 같은 알바생 신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빠른 시간내에 친해질 수 있었다.

서로 각자 누구를 보았고, 대화했고, 스쳐지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들로 이야기 꽃이 활짝 펴졌지만 시현은 단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래. 이걸 어떻게 말 할 수가 있겠어….

말하기엔 제법 큰 스케일의 일이기도 하고, 절대 입 밖으로 꺼내선 안 되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장착하며 다른 알바생들의 이야기만 묵묵히 듣고 있던 시현은 급격히 피로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 상태로 집에는 또 언제가나 하고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채웠다.

시현은 예의상 그들의 장단을 맞춰주고 있을 뿐, 실상은 빨리 집으로 돌아가 침대로 다이빙 하고 싶을 뿐이었다. 더 이상 오고 갈 이야기가 떨어지자 이들 역시 급격한 피로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오자 하나, 둘 피곤에 젖은 얼굴이 되어갔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일한 돈은 오늘 자정이나 내일 오전 중으로 바로 입금 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귀하신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다들 피곤해 죽으려는 얼굴들이 돈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얼굴 빛이 환해졌다. 역시 역시 사람은 자본주의의 노예라니까. 한 쪽에서 조금씩 몰려오는 졸음을 쫓아내던 시현도 돈 얘기가 귓가에 꽂히자마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다들 수고 많으셨구요, 모두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현시현씨, 저 좀 따로 볼 수 있을까요?”

“아, 네. 무슨 일 있나요?”

다른 알바들과 함께 호텔 밖으로 나가려던 시현을 한성연이 붙잡았다. 갑작스러운 한성연의 부름에 시현은 호텔 정문 쪽으로 향하다 걸음을 멈추며 한성연을 향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뭐지? 나도 모르는 사이 나 무슨 사고라도 친 건가? 일을 하던 도중에 비어있던 공백이 생각난 시현은 조금 불안한 눈빛을 하며 한성연을 바라보자 시현의 표정을 읽은 그녀가 별 거 아니라는 웃음을 지으며 시현에게 말을 건넨다.

“별 다른 일은 아니고요, 시현씨 계좌번호를 몰라서요. 시현씨 돈 받으셔야 되잖아요.”

“아아. 계좌요. 적어 드릴게요.”

시현은 아까 본 잔상을 잊으며 멎쩍은 웃음을 지으며 서둘러 계좌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웃으며 그녀에게 웃으며 인사를 한 뒤 호텔 밖을 부랴부랴 호텔 밖으로 나왔다. 뭐라도 물어보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아무 일 없이 끝났다.

“하…. 완벽했다. 이제 나만 입다물면 끝이야.”

한성연, 그녀의 말대로 자신은 아무것도 못 봤고, 못 들었다. 무덤까지 가는 비밀은 없다지만 최대한 숨길 수는 있지 않은가. 호텔에서 나오기만 했을 뿐인데 시현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눕고 싶어졌다. 피곤에 찌든 몸뚱이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싫어 비명을 질러댔다. 거의 온종일 쉬지 않고 움직였던 시현의 몸은 시현에게 파업이라도 하듯 움직이는 걸음걸이 하나 하나가 너무나도 무거웠다.

“아, 집까지 또 언제가….”

몸이 피곤하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지나치게 멀게만 느껴진다. 호텔에서 벗어난 뒤 큰 길을 따라 버스정류장이 있는 방향으로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갔다. 마음 같아선 버스 말고 택시를 타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게 들지만 오늘 번 이 피 같은 돈을 택시로 허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택시 생각을 꾸욱 억누르며 재웠다.

그냥 택시를 불러달라고 할 걸 그랬나. 언제 버스타고 집까지 걸어가냐….

-

‘시현씨, 오늘 자정이나 내일 중으로 오늘 일한 값 들어갈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택시는 따로 불러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

아니요, 괜찮아요. 아니요, 괜찮아요. 아니요, 괜찮아요. 머릿속을 가득 채운 자신의 말이 멤돌았다.

“내가 왜 그랬을까…. 무슨 패기로 택시를 거부했지.”

자신이 한 선택을 후회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버스정류장에 다다랐다. 버스 정류장까지 도착하지마자 정류장 의자와 한 몸이 되었다. 의자에 앉자마자 발끝에서부터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죽겠다. 여기까지 온 김에 그냥 버스타고 갈까? 그러나 버스 시간표를 살펴보니 집가는 버스는 한참뒤에나 온단다. 환승은 죽어도 하기 싫고.

기다리다 잘 것 같은데 그냥 택시 탈까? 시현은 정류장 의자에 앉아 발재간을 부리며 버스를 탈지 택시를 탈지 지금 이 순간 최대 난제에 부딪혀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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