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LLEL WORLD

[D-6]

PARALLEL WORLD by Iy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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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도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눈을 내리깔고 웃는 도영의 모습은 냉소를 쏟아내는 미남 그 자체였다. 와…. 알파는 다 이렇게 잘생겼나봐….

“좋죠. 저는 아버지로부터 현시현씨를 지켜드리겠습니다.”

“저…. 근데 왜 하필 저인 거에요? 저는 분명 입 다물고 아무것도 못 봤다고 했을 텐데요….“

시현은 자신의 눈앞에 잇는 알파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래, 자신이 하필 그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에 그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라고 치자. 근데 그건 충분히 다른 방법으로도 입막음을 할 수 있지 않나?

“말했잖아요. 아버지한테 복수하고 싶다고. 그리고,”

그리고…?

“현시현씨가 마음에 들기도 하고요.”

“네?”

순간 시현은 자신의 귀가 잘못 된 줄 알았다. 뭐? 마음에 든다고? 아니, 뭘보고서?

자신의 생각과는 너무나도 다른 갑작스러운 상황 반전과 흘러가는 분위기에 시현은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 상황 속에서 시현은 생각을 정리하려 했다.

그러니까…. 어제 일을 시간 순서대로 사건을 정리하자면…. 알판지 오메간지 모를 사람들에게 박강우 회장에 대한 찌라시를 우연히 듣게 되었고, 그걸 듣기 거북해 화장실로 향하던 중 박강우 회장과 박도영씨의 실랑이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직접 봤다는 것을 박도영씨한테 들키고 말았고…. 그대로 넘어갈 줄 알았지만 이렇게 지독하게 엮이고 말았다지…. 음, 내가 마음에 들 장면은 단 한 장면도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뭐를 보고서 마음에 들었다고 한 걸까?

시현은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앗지만 정리를 하니 더더욱 이해가 안 됐다.

대충 정리를 끝낸 시현이 정신을 붙잡고 도영에게 뭐라고 말을 꺼내려는 순간, ‘실례합니다.’ 직원이 문을 열고 주문한 음식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시현이 하려던 말은 입구에 막혀 직원이 나가기 직전까지도 말을 하지 못하고 끙끙대며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

“시현씨가 베타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취향이라고도 해두죠.”

“아…. 베타, 취향….”

이 사람 베타 좋아하나…. 시현이 급격하게 경계심을 갖추며 작게 도영을 경계하니, 그런 시현을 본 도영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이래서 마음에 든다니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정에서부터 보이는 시현을 보는 도영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 자신의 오른손을 시현에게 내밀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현시현씨.”

“네, 네! 저도.”

시현이 긴장된 손을 풀며 도영에게 내밀었다. 맞잡은 손이 위아래로 흔들리며 이들의 계약이 성사되는 순간이다.

-

시현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상태로 식사를 마쳤다. 시현의 눈 앞에 있는 도영은 아주 만족스러운 듯 밥도 잘 먹고, 잘 먹지 않는 것 같은 시현을 챙겨줘 정말 연인이 된 듯한 착각을 들게 하였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건가….

시현은 부담스러워 체할 것 같은 것을 꾸욱 참으며 도영이 챙겨주면 챙겨주는 대로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시현이 할 수 있는 것은 도영의 챙김을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 저기.”

“박도영.”

“네?”

“박도영입니다. 제 이름.”

“아, 박도영씨. 애인 대행 지금…부터,”

머뭇 거리며 말하는 시현에 도영이 뭘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시현의 말을 끊고 대답했다.

“네. 지금부터입니다. 이렇게 해야 소문도 빨리 타는 법이니까요. 여기가 이렇게 보여도 입소문이 빠른 곳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여기로 왔구나…!

애초에 큰 그림을 그리고 있던 도영에 시현은 K.O참패를 당한 선수처럼 충격을 감추지 못 했다. 소문내기 싫다고 그랬더니 직접 소문을 내러 온 거구나…! 결론적으로 시현도 동시에 소문을 같이 내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도영의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게임 끝난 경기를 시작한 셈이었다.

덕분에 시현은 밥도 채 다 먹지도 못 한 상태로 가게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저게 얼마짜리 밥인데…. 하지만 더 먹을 기운은 없었기에 포기를 선택한 시현이었다. 음식값은 제 애인인 도영이 계산해 생활비는 지켜낼 수 있었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시현은 도영의 뒤에서 천천히 걸어가며 도영을 따라 나섰다. 대신 달라진 것이 있다면 소문의 근원지라고 들은 후였기 때문에 저와 도영을 향한 시선들이 박혀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 있다는 것 뿐. 아까도 이랬을라나…. 아마도 그랬으리라 생각하는 시현이다.

잠시나마 알파 간접체험을 마친 시현이 그대로 도영의 차에 올라 탔고, 도영은 그 전날 처럼 시현을 집 앞까지 데려다 주는 수고를 해주었다. 물론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애인 대행으로써 말이다.

“현시현씨, 다 왔습니다.”

“…….”

“현시현씨,”

불러도 대답없는 시현을 바라보니 생각 많은 베타 시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제법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저 조그만한 머리통으로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집 앞까지 도착했건만 시현은 도통 자신의 생각 밖으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못 하고 있다.

역시, 생각이 많은 사람이 좋다니까. 도영은 그런 시현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고, 날카로운 표정과 달리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조수석 창가를 똑똑 두드리며 시현의 정신을 찾아왔다.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시현은 자신의 앞에 와있는 도영에 한 번 더 놀라며 입을 손으로 가렸다.

“아니. 왜, 왜.”

“너무 생각에 잡혀 계시는 것 같아 깨워드렸습니다.”

“아…. 감사, 감사합니다. 그럼….”

얼빠진 표정으로 차에서 내린 시현은 복잡한 표정을 하며 도영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도영은 곧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긴 채 시현의 배웅을 받으며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 차와 함께 조용히 빌라촌을 떠났다. 차를 출발하는 동시에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온 도영은 백미러로 자신의 차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돌부처처럼 서있는 시현을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 뒷조사 해줄 사람이 있어. 이름? 현시현.

-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시현은 곧장 작은 소파에 엎드렸다.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휘몰아친 하루에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아차리지도 못 할 정도였다. 그리고 무슨 정신으로 집에 들어왔는지조차 기억도 나지 않았다. 소파에 엎드려 있던 시현은 더부룩한 속에 집 안 어딘가에 굴러다니고 있던 소화제를 찾아 먹으며 폰을 들고선 곧장 강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야, 현시현아. 오늘 하루 내 연락은 다 씹고 이제와서 전화질이네?

- 토할 것 같으니까 먹는 얘기 비슷한 거라도 꺼내지 마.

- 내 전화를 맛있게 씹어 잡쑤셨으니까 체하지, 이새끼야.

전화를 걸자마자 시현을 향한 불만부터 털어놓는 강준의 목소리에 시현은 불편한 속이 더 불편해질 모양이다. 오늘 하루 불난듯이 강준에게서 연락이 오는 것을 무시해가며 도영과 하루를 보내었다. 강준이 충분히 화날만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시현은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부여 잡으며 오늘 점심에 있었던 폭풍과도 같았던 일을 되돌아 보았다. 다시 생각하려니 머리가 절로 다 아파온다. 이젠 두통약까지 먹어야 되나…. 전화를 받기만 하고 돌아오는 대답이 없으니 다시 강준이 시현의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소리 쳤다.

- 아, 좀. 소리 작작 좀 질러봐. 머리 울린다. 최강준아….

- 아니 뭔데? 야 씨, 안 되겠다. 너 지금 집이지? 딱 기다려라.

나 좆된 것 같다. 강준아….

강준은 되돌아 오는 대답없이 한숨만 푹푹 쉬어대는 시현이 답답해 결국 시현의 집으로 가는 것이 빠르겠다고 판단했다. 간 김에 오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바빠 죽겠는 자신을 알바 대타를 시켜가며 연락도 안 받았는지, 그리고 상태가 왜 그 모양인지 철저하게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

집으로 온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강준의 전화가 끊겼다. 와도 제가 할 얘기는 없을 것 같은데 말이지. 시현은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은 함구하기로 스스로 다짐하며 뭐라고 둘러댈지 곰곰히 핑계거리를 끄집어 내었다.

거짓말에 서툰 시현이기 때문에 조금만 질문을 응용해서 한다면 쉽게 들통난다는 것을 시현 본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잘 정해야 한다. 안 그러면 강준에게 오늘 일은 물론, 어제 있었던 일까지 다 들통나게 될 것이다. 말많고 참견도 많은 오지라퍼 강준이기 때문에 이 모든 사실들은 무조건 숨겨야 한다..

시현보다 몇 배는 더 알파와 오메가들을 싫어하는 강준이었기에 오늘 낮에 도영과 있었던 일들을 꺼낸다면 아마 시현을 반 죽이려 들 터이다. ‘어제 잘못 엮인 알파가 있는데, 어쩌다 보니 제대로 코가 꿰였다.’ 라고 솔직하게 말한다면? 불같이 날 뛸 강준을 지금의 시현은 말릴 기운조차 없다.

이래서 알파랑 엮이면 안 되는데…. 하, 인생….

-

시현의 집으로 달려온 강준은 시현을 보자마자 하루종일 자신의 연락을 씹은 댓가로 시현의 멱살을 붙잡으며 치킨을 요구했다. 시현은 캑캑거리며 강준의 손을 탁탁 쳐가면서 항복을 외쳤고,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치킨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까 낮에 먹었던 음식값에 비하면야 새발의 피다.

“그래서 오늘 바쁜 사람 대신 알바 시켜놓고 그 장본인은 어디서 뭐하고 다니셨대? 내가 좀 알아야겠거든.”

“면접! 그래, 면접!…. 면접봤는데 떨어져서 혼자 한강가서 술쳐마시고 있었다. 왜?”

시현이 생각해낸 최선의 거짓말이다. 평소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하지만 순간적으로 생각 난 것이 면접이었고, 천하의 최강준이라 하더라도 면접가지고는 뭐라고 못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낸 최후의 수단인 것이다. 그리고 거짓말을 위해서 진짜 힘들 때 아니면 안 먹으려고 했던 소주 한 병을 싹 비워낸 시현이다.

“왜, 또…. 나락이냐?”

“그래! ‘나락도 락이다.’ 몰라? 떨어진 김에 술이나 마셨지.”

“아, 시발…. 난 또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아니, 면접 떨어진 건 큰 일이 아니냐고요. 생각해보니 저 말에 안심하는 강준이 아리송한 시현이 술기운에 올라온 분노에 강준의 멱살을 잡았다.

“야, 너! 친구가 면접에서 떨어졌다는데 그렇게 안심할 일이야? 어?”

“그래도 뭐, 뭐. 늘상 있는 일 이잖아. 내가 말했지? 그냥 적당한 곳 잡으라니까.”

“대기업 노예가 되는 게 내 꿈이라니까아!”

“알겠어. 이거나 쳐먹어, 새끼야.”

강준은 시현이 더 허튼 소리를 하기 전에 닭다리로 시현의 입을 틀어막으며, 한 손으로 자연스럽게 리모컨을 들었다. 이 불쌍한 청년을 위해 백색소음이라도 틀어놓을 심산이었다. TV를 틀자 나오는 것은 9시 뉴스 화면이다.

[… 인근도로에서 싱크홀이 발생했습니다. 정부는 이번 싱크홀의 원인을 조사하는 가운데….]

강준은 뉴스가 흘러나오는 화면을 바라보다 이 새끼는 도대체 뭘 보고 사는 거야…. 이딴 게 재밌냐며 시현을 타박하는 시늉을 하다 곧바로 예능 프로그램이 하는 채널로 돌렸다. 뭔가 심각한 내용을 전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자신과 관계하지 않으니 뭐,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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