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라]과거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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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 바닷가를 상상한 적 있는가? 그렇다면 온기 없는 햇살을 떠올려본 적 있는가? 당연하게 떠오르는 태양과 달이 없는 하늘이 공허가 된 장면은? 당연하게 존재했던 것들이 부재한 이질적인 감각을?
저녁 시간이 되었는데도 나지 않는 음식 냄새, 같은 음률에 처음으로 이어지는 적막감, 온기를 잃어 끈적거리며 발걸음을 늦추는 검붉은 것의 촉감, 감정이 충만했던 눈동자들이 잃어버린 생기,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혈 향,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수십명의 뭉쳐 뛰던 마을의 심장박동, 아이들의 웃음소리, 어른들의 술주정, 표정, 목소리, ……
모두와 수없이 얽혀 있던 감정들이 단절되어 한 명의 몫으로 만들었을 때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어떤 기분이었을까. 주체를 잃고 상대에게 닿을 수도 없어진 감정은 분명 존재했으나 증명할 수 없는 허상이 되어버렸다. 심장 박동도, 체온도 한 명 이상이 함께하면 옮기 마련인데 홀로 된 이는 이제 어떠한 박자로 제 심장이 뛸지. 어떠한 온도의 피가 흐를지 예측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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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겪었을 때는 복수하겠다는 다짐으로 성을 바꾸었지만, 은연중에 단 한 번의 일일 것이라고 믿었다.
두 번째로 겪었을 때는 자신의 멍청함에 한탄하면서도 다시 한번 헛된 기대를 품었고
세 번째로 겪었을 때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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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잡은 무기가 오로지 단거리용으로만 구성된 것에는 오로지 감정적인 이유뿐이었다. 손톱을 비늘 틈에 박아 넣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단검으로 계속 찔러주겠다는 그런 이유. 날개 달린 도마뱀놈이 -그때 화가 나서 한 생각이다- 불을 내뿜어도 좋았다. 냉기에 몸이 얼어도 기뻤다.
살아있음을 더 강하게 주장해라. 죽음이 더더욱 선명해지도록.
고상하게 검을 휘두를 정신조차 없다. 애초에 그런 것은 배운 적이 없다. 마술? 그런 것은 원래도 쓸 수 없었다. 내가 부모에게 배운 것은 악기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기쁨이나, 사랑을 속삭이듯 오선지를 채워가며 노래할 그 무언가를 만드는 법. 그런 것뿐이었는데.
하늘에서 고고하게 날갯짓하는 것들을 끌어내려 개싸움과 같은 꼴을 만들어 주겠다는 의지, 손끝에 날이 달린 내 무기와 단검, 펜듈럼만으로 이룬 복수였다. 그 뒤로 작업을 할 때는 조각칼 같은 것을 들고 있지만, 평소의 무장은 항상 그날과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닌다. 그게 가장 손에 익었다는 이유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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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이라는 삶의 목표를 세 번이나 끝내고 나서는 더 이상 이루고 싶은 것이 없어져 예전으로 돌아가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자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만다.
모두가 행복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결국 마른 땅의 종족 갈등은 해결될 것이다.
사람은 영원히 분노할 수 없고, 과거의 한 사건을 회상할 때마다 같은 농도의 감정을 느낄 수 없다. 분노의 대상인 친족은 심장을 잃었을 것이고, 계약이 끊어진 마술사는 마력을 제공받지 못한다. 천주룡은 용 사냥꾼을 핍박할 이유가 없으니 목숨을 버려가며 맞설 이유가 없다.
피의 값만 다 치러지면, 그렇게 된다면 마른 땅의 종족 갈등은 해결될 것이다. 물론 이 땅에서 사는 것이 아닌 천주룡이 돌아온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믿지는 않는다. 더 오래 감정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종족이라 하더라도 인제 와서 무얼 한다는 말인가?
어떠한 동기가 있어도 이기기 힘들 선주룡을 내가 잡아야 할 상황이 올지도 의문이거니와. 죽일 수 있을 리도 없다. 할 수 없는 것을 있다고 우기는 것은 헛된 객기에 불과할 터. 결론적으로 낮은 확률의 변수를 제외한다면, 종족 갈등은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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