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관

파인하펜_조각글

멀리 고가 도로에 나무 대신 가로등이 늘어섰다. 환한 빛줄기를 맞고도 후미등 불빛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흐름이 느려질수록 더욱 강해지는 것이, 게다가 붉은 것이 핸들을 잡은 사람의 표정을 대변했다. 도로 뒤로 고층 건물이 보였다. 차들의 출처일지 모른다. 창문에 불이 켜지고 꺼지고를 반복해 체스판 같았다. 상층부에도 붉은 빛이 점멸했다. 다만 도로 사정과는 달랐다. 헬기나 비행기 따위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누구나 아름답다 말할 야경이었다. 그 달 마저 하나의 요소에 지나지 않았다.

도심이라 해서 내가 차성희인 세계로 돌아온 게 아니었다. 희박하긴 하나 손끝에 마나가 곰질거렸다. 옷가게 주변을 서성거리며 거울을 훔쳐보는 편보다 정확했다. 마력으로 수증기를 냉각 시켰다. 자잘한 얼음 세 조각이 스파크를 튀기며 이어졌다. 오른손으로는 불을 지폈다. 곧 손바닥 위로 물이 떨어졌다. 스며들기도 하면서 살을 타고 흘렀다. 아이스볼트가 아니었다면 소매까지 젖어 찝찝했겠다.

길 한 가운데서 무슨 마법이야.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신경은 오른손에 쏟았다. 금방이라도 불덩이를 불릴 수 있게. 슬리퍼를 질질 끌며 다가왔다. 손에 든 비닐봉투가 흔들려 부산스러운 소리를 냈다. 그는 경계하지 말라며 봉투에 손을 집어넣었다. 육포와 아몬드였다. 포장지에 술 안주로 딱이란 문구가 보였다. 흔한 말에기시감이 들었지만 처음 보는 제품이었다. 편의점부터 마트, 백화점에 진열되는 먹거리를 내가 모를 리 없었다. 내 생업은 상품이라면 그게 무엇이든간에 꾸며낼 말을 지어내는 일이었다. 개중에서도 식품이 주력인 광고회사였다.

그가 뒷주머니에서 줄에 걸린 카드를 꺼냈다. 실루엣이 사원증이었다. 파이어볼트 근처에 오니 글자를 식별할 수 있었다. 소속 탓에 사원증이 아니라공무원증이었다. 부서 이름을 봐선 서지호 씨가 무슨 일을 하는지 감이 오지 않지만.

다 봤으면 불 좀 끕시다.

금요일 밤에 이게 뭐냐 중얼거리면서 손을 거뒀다. 고작 불평 한 마디에 동질감이 들었다. 공무원이란 신용보다는 저 알량한 동질감에, 나는 마력을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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