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릭] Lunae lucem in choris*

*월광을 향한 춤 *공백 제외 1532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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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해를 이기는 철이 오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산책하려 밖을 나서면 식어있는 공기가 몸을 감싸곤 했다. 가득히 차올랐던 보름달 이 얇은 초승달이 되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싱그럽게 피어있던 것들이 점점 사그라들어 땅에 떨어져 다시 봄을 기다릴 것이다. 마치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를 바라며 방주 안에 머물기로 한 것처럼.

방주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달이 햇살을 온통 머금었다가 흘려내는 것처럼 어둠은 그가 남기는 발걸음과 짙어지는 숨결을 삼켰다가 바람에 그것을 허공에 흩날려주었다.

그는 속단했다. 자신이 싸울 수 있는 길이가 제 팔 길이보다 두 뼘만 길어져도 충분하다고.

그는 자만했다. 편한 옷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기성복으로 된 정장과 구두면 족하다고.

정처 없는 발걸음에도 결국 목적지는 존재하여, 그는 전투에 잿더미가 된 숲 가에 도착했다. 생명이 자라나다 비어버린 공간, 미리 온 겨울처럼 재가 눈처럼 쌓인 모습을 보곤 그는 턱을 치켜들어 항상 자신의 위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것을 마주했다.

몇백 년을 뛰어넘는 한결같음은 인간에게 어찌나 멀고 아득한지.

한여름 한창 타오르는 생명력의 색을 가진 눈동자에 서늘한 달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면, 그는 온몸을 적셔내는 눈부심에 숨이 막혀와 목에 걸린 크라바트를 풀어내어 내려놓았다.

그에게 달빛의 온도는 죽음을 맞이할 때 그의 몸에서 흘러나와 식어가는 피의 온도와 같이 차가웠고, 달빛의 반짝임은 제 이복동생의 열등감에 죽어가다 제 죽어가는 몸뚱이 앞에서 되찾은 희망과 같이 찬란했다. 그렇게 형체 없는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들면 그는 젖어 버린 심장의 무게를 떨쳐내려 양손에 가지고 나온 무기를 잡았다.

사라진 기억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태양에 녹아 땅에 스며들었나, 달빛에 홀려 구름에 파묻혔나.

팔보다 더욱 긴 다리가 원을 그리 듯 땅에 스치면, 발이 초승달처럼 얇게, 뜨겁게 타올랐던 것들 위로 커다란 원을 그렸다. 생각의 흐름처럼 그의 양손에 쥐어진 날붙이는 그렇게 땅으로, 하늘로 뻗어 나가 날카로움을 드러냈다.

바람을 가르듯, 달빛을 쪼개듯, 시간을 깎아내듯, 무형의 것을 베어낼 수 있을 것처럼 허공에 팔을 거칠게 뻗으려 들면, 단추가 완벽하게 채워진 셔츠가 팽팽하게 당겨져 그의 움직임을 제지했다.

앞으로 계속 저렇게 한결같을 수 있을까.의문과 함께 풀어버린 단추에 셔츠 깃이 느슨하게 벌어졌다.

기억을 더 잃고 싶지는 않다. 하 지만 싸워야 할 일에 무기를 들지 않는 것은 그가 살아온 방식이 아니기에.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달빛을 반사해 밤하늘을 가르고, 낮게 바람을 일으켜 가라앉아있던 재들이 다시 하늘에서 춤을 추도록 움직이는 그의 움직임은 필기체로 쓰인 하나의 문장처럼 끊어지는 법 없이 유려하게 허공에 기록되고 있었다.

모래사장에 아무리 정성을 들여 모래성을 쌓아도 커다란 파도 한 번이면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왕이면 오래오래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 또한 사람의 마음인지라. 집착하며 모든 물결을 걷어낼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미련하게 한 번 더 시선을 두게 되지 않던가.

찻잔에 가득 담긴 홍차에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질 때 퍼져나가는 파동처럼, 한정된 공간 안에서 그의 움직임은 범위 안에서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과 함께 끊어지지 않는 너울처럼 일렁였다. 비어있는 오선지에 음표를 기록해 하나의 온전한 악보가 되듯, 그의 움직임은 전부 합쳐 하나의 선율이었다. 고저의 음이 어우러지듯 그의 손끝부터 발끝은 일체감을 이루며 나무를 중심으로 흩날리는 꽃잎과 같이 허공에서 유랑한다.

손에 쥔 날붙이가 허공으로 떨어 지는 나뭇잎을 느리게 흘려보내기도, 빠르게 베어내기도 하며 팔과 다리가 닿는 공간 안에서 그는 마치 고요한 음악처럼 흘렀다. 점점 우러나 진해지는 한 잔의 차처럼 짙어지는 농도의 숨결과 스스로 일으키고 있는 공기의 흐름에 조금씩 흘러내리기 시작한 머리 카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빛에 취해 이어지던 무도는 그가 헤집어 놓은 곳의 재가 전부 다 흩날리고 나서야 잦아들었다.

미리 온 겨울의 눈꽃이 낙화하는 동안 그는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옷차림으로 가만히 서서 그저 모든 것이 내려앉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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