悲痛

슬플 비, 아플 통.

  • 2022. 11. 21


돌아간 고개. 화끈거리는 뺨. 흔들린 시야.

초점이 돌아오고서야, 분노와 실망으로 들끓던 머리가 진탕되고서야. 무엇인지 인지한다.

바닥에 닿은 머리가 통통 외따로 굴러가는 것만 같다. 입술을 잘근 깨문다. 터진 입안의 피를 삼켜내고 시선만 굴려 바라본다.

"... 대체 왜. ... ... ... 내가 왜 그렇게 본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걸 정말 몰라서 물어?"

네 행동을 봐.

네가 날 사람으로 봤으면.

적어도.

우리 사이에 가이딩조차 없으면 뭐가 남느냐고? 그냥 이원결이란 '사람'과 악셀이란 '사람'은 안 되는 거야?

먼저 선을 그은 게 누군데. 

먼저 사람으로조차 보지 않은 게 누군데.

그까짓 거 없어도,

나는,

난.

살점 채로 뜯겨 나간 기대 위로 차오르는 건 실망이라서, 그 위에 분노를 발라내고. 체념으로 동여 매어 꽉 조인다.

그러게, 이것 봐. 가이드 따위랑 잘 지내보긴 개뿔. 기대를 왜 했어. 그 말을 왜 믿었어. 뒤집으면 그만인 말을.

그래도 넌 나 사람으로 본다고 했잖아. 폭주하지만 않으면. 똑같이 다치고, 아프고, 죽는 사람으로 본다고 했잖아. 

믿은 내가 병신이지. 

"...아니면, 말해봐. 내가, 누군가를. 해쳤나? 널, 위협이라도 했어?"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왜 바라지도 않은 일을 네 멋대로 해. 

내 의사는¿ 필요없어¿ 던져주는 먹이나 받아먹으라고¿

"하지 말라고 하면 좀 ─ !"

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 왜.

겁에 질린 목소리 위로 분노를 덮어 감춘다. 익숙한 것은 이것뿐이라. 많고 많은 감정 중 내보이기 편한 것은, 내보일 수 있는 것은 고작 이것뿐이라. 발악하듯 짓씹어 뱉는다. 아슬하게 위에 선 정신이 곡예를 내보일 때마다 고이는 열기는, 차라리 산 채로 불타는 것이 나으리라 여기는 열기는. 평생을 지져와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라서. 닿아올 때마다, 기운이 흘러들어올 때마다 여지없이 무너져버린다.

그러니 혀를 씹어내고, 억지로 고통을 새겨 정신을 깨우고, 이를 갈며 삼켜낸다. 나는 센티넬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절대 순응하지 않겠다고. 갈기갈기 찢어진 자존심을 다시 끌어모아 엮고 기운다. 다만, 그럼에도 다시 찢기기 반복해서 이젠 한숨조차, 탄식조차 흘리지 않고 무감각하게 기워낸다.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유혹을 나락에 처박으며.

" ...그냥, 저를 미워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세요. 그럼 사라져 줄 테니까. "

제 멱살을 쥔 손에 힘이 풀리고 불안정하게 흔들린 숨소리를 기민하게 잡아낸 청각에 허탈한 숨을 뱉어낸다. 

거봐.

내가 뭐랬어.

고작 이 정도밖에 안되는 관계.

먼저 선을 그어낸 건.

그어낸 건,

울컥 속에서 받치는 게 무언지 알아채기 어려웠다. 말을 뱉으려는 입은 달싹이기만 할 뿐. 겁에 질린 목소리는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제껏 새겨온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대수롭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그 손이. 끔찍해서.

"...그래. 네가." 

미워.

네가 싫어.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결국 쓸모없는 발악이라고 다시 되새기는 짓밖에 하지 않는 네가, 끔찍하게 -.

" ...네가. "

다 타버린 분노는 결국 다 덮어내지 못하고 사라진다. 재조차 남지 않고 사라져 고스란히 감정을 드러낸다.

무엇을 무서워하는지도 모르는 목소리가 떨리듯 흘러나오고 그것이 귓가로 닿자 다시 입을 다물어냈다.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한 팔을 제 얼굴 위로 올려내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도 모르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끝까지 밀쳐내지 않는 것이, 제 의지인지, 제 본능의 의지인지. 뒤섞여 골라내기가. 너무 힘들어서.

솎아내던 통을 쓰러뜨린다. 

네가 싫은 게 아니라. 

네가 사라지길 바라는 게 아니라. 

가슴에 닿는 숨을 새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손등을 덮어낸다.

뜨거운 손 아래 맞닿은 손이 시리도록 차가워서, 도저히 밀어낼 수가 없어서. 꽉 잡아내고 힘을 준다. 떨치지 못하도록. 

... 네가...싫어. 가이드인 네가. 치가 떨리게,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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