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슬프고 흰 침대 시트

이안 머레이라는 작자

유적 by 량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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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안 머레이라는 작자가 있다. 하루의 8할 정도는 카페인 중독성 두통을 앓으며 지내던 사람이다. 매일 아침 사무실 앞 카페에 출석 도장을 찍지 않으면 하루를 심하게 망치고 마는 부류였다는 뜻이다. 물론 다른 모든 교양 있는 회사원과는 다르게, 그 과정에서 그가 자신의 하루뿐 아니라 남의 하루도 같이 망친다는 것이 눈에 띄는 흠이기는 했다. 그런 그에게 짜증스러울 정도로 집요한 두통은 낯설지 않았다. 그는 항상 최고의 컨디션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당초에 그런 컨디션은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이안 머레이는 쿡쿡 쑤시는 머리를 끌고 그냥 일했고, 매일같이 그런 상태인 그를 거쳐야 하는 일거리는 어마어마했다. 그가 처리해내는 일거리는 더욱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그 유명한 미스터 머레이가 ‘컨디션 난조’로 반차를 내고 조퇴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같은 건물 안의 사람들은 기뻐서 지르는 것인지 절망스러워서 지르는 것인지 모를 비명을 내질렀다. 그중 몇은 그가 아프다는 사실 자체에 기뻐했겠지만, 대부분에게 그것은 오늘 할 일을 미룰 수 있는 정당성과 내일의 일이 늘어났다는 양가감정에서 비롯되는 절규였다.

하지만 그런 것은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자동차 핸들에 머리를 박고 가만히 숨만 쉬고 있는 이안 머레이에게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를 괴롭히는 고통은 카페인 중독성 두통이 아니었다. 만성 편두통도, 스트레스성 두통도 아니다. 이유는 도저히 모르겠지만, 머리가 두 쪽이 나는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내쉬는 숨마다 증기를 토하는 것 같았고, 들이쉰 마른 공기가 닿을 때마다 코와 목 안쪽의 여린 점막이 쓰려 괴로웠다. 사위가 빙빙 돌고, 눈앞의 물건도 또렷하게 볼 수가 없었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부서지는 것처럼 아팠다. 변변찮았던 아침 식사마저 토하고 싶은 심정에 그는 집으로 운전해 갈 생각도 못 하고 이마를 핸들에 기댄 채 얕은 숨만 간신히 쉬고 있었다.

‘환장하겠군.’

그러니까 간단하고 정확하게, 미쳐버릴 것 같았다.

장황하고 두루뭉술하게는, 싫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몸이 나아지고 나서 할 일이 쌓인다는 사실도 싫었다.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건 누워서 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자신이 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안은 침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든 비효율적인 순간이 싫었다. 필요 이상으로 자고싶지 않았고, 누워 있는 건 더 싫었다. 그 휴식이 자기 의지로 찾아간 게 아니라는 부분에서 더욱. 아무튼, 이안은 필요한 만큼만 잘 때나, 처음 보는 사람과 세기의 연인처럼 섹스하는 일이 아니면 침대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 외의 시간은 짜증스럽고 역겨웠다. 쪼개지는 듯한 두통과 쾅쾅거리는 심장 박동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서 다른 긍정적인 생각은 아예 들어올 수조차 없었다. 그냥, 싫었다.

그렇다고 해서 귀중한 반차까지 내고 조퇴한 이 좋은 날, 회사 주차장에서 계속 핸들에 머리를 대고 죽은 듯 숨만 간신히 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도저히 운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지만 이안은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이런 몸을 끌고 출근한 것도 기적인데, 퇴근하려면 좋으신 주님이 조금 더 힘을 써야 한다.

 


이안이 다시 눈을 뜬 것은 몇 시간 뒤의 일이었다. 제정신이 아닌 채로 주차장에 주차까지 하고 집으로 들어와 샤워까지 하고 침대로 기어들어온 것 같기는 한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식은땀에 옷이 푹 젖을 정도였지만 몸이 덜덜 떨릴 만큼 추웠다.

이안은 큰 몸을 침대 위에 웅크렸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쓰고, 차갑게 식은 팔을 매만졌다. 한번 정신이 들자 걷잡을 수 없었다. 잠이 점점 깨면서, 으깨지는 듯한 통증과 오한이 점점 선명해졌다. 힘든 기침을 두어 번 뱉고 이안 머레이는 삶을 저주했다. 막연히 모든 것이 싫었다. 몸은 기절할 것처럼 축축 늘어지는데 정신만 또렷하고 죽도록 아픈 것이 싫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움직이기 전에 상비약 찬장을 생각했다. 진통제나 상처 연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해열제나 수면유도제는 없었다. 그 사실이 그를 더욱……

외롭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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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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