渴, 望
목마를 갈, 바랄 망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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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레프 중위에게 해줄 수 있는게... 없네요."
무력한 목소리가 주변을 울린다. 그 무엇도 적실 수 없을 메마른 소리는, 유독 악셀의 귀에만 끈덕지게 늘어졌다. 그는 저조차도 틀린 줄 몰랐던 거짓말을 뱉어낸 죄로 마지막이란 선고를 받는다.
어째서 후회는 반복되는 것인지. 마음은 왜 서로를 배반하고 당연한 결말에 충격을 받는 것인지. 이미 날카로운 말을 뱉을 때엔 가장 최악의 선고를 상정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서로는, 각자에게 바라던 진심을 품은 채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악셀은 미약한 체온을 잡은 손끝에 힘을 준다. 낮은 체온은 언제라도 흩어질 것만 같았다. 더운 제 열기가 당신에게 닿지 않는다. 여전히 서늘하게 굳은 손은 실망을 알린다.
이미 우리의 진심이 닿지 못하기에, 이런 미약한 다정마저 건네주지 못한다.
"앞으로는, 마주치는 일 없을 겁니다. 우연히라도요.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휩쓸린 감정,
"상부에는 제가… 다시 보고 하겠습니다."
오해와 두려움,
"...그러니까, ...놔주세요."
연속되는 어긋남.
태양은 거대하나 바다를 태우지 못한다. 가까워지면 증발해 사라질 터라, 맞닿는단 것은 상상도 못 해서.
겨우 거친 손 하나 쥔 채로 비참함을 감내하는 것. 초라한 자신과 당신을 음울하게 바라보는 것.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악셀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것들뿐이었다. 인내심조차 가져본 적 없던 성정은 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다. 무작정 차올라 쏟아낼 뿐.
그러나. 수많은 부딪힘과 대화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것이 아니었다. 상처뿐이었을지라도, 분명히 당신을 향해 내리그은 감정이 흔적을 남긴다. 파헤친 잔해 사이로, 당신의 두려움을 엿본다.
악셀은 그 대답을 분명한 선으로 인식하였으나, 정말 원결의 마음임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편린조차 담기지 않았다는 좌절감이, 정말 온전한 것이었을까?
...생도 시절은 없던 일로 하죠. 앞으로는 서로를 가이드와 센티넬로만 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필요할 때 이용하고, 필요 없으면 말고. 그런 관계요.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레프 중위가 비웃은 그 순간 친구놀이는 끝난 줄 알았는데요.
"
"아~ 그러셔? 그때 속없이 너 좋다고 챙긴 게, 네가 가이드라서였던 걸, 환멸 나도 꼴에 옛 친구라고.
지금껏 친구로 생각했는데. 고작 그거 갖고 끝내셨다? 와~ 내가 존나게 미안하네. 어?"
그는 우리의 기억을 떠올린다. 누구에게도 제 열기를 나누지 못한 채 자신을 태우고 부스러지기만을 바라던. 그런 자신을 붙잡아준 것은 오로지 당신이었다. 저조차도 포기하던 사람이란 정의를 다시금 바라게 만든 존재였다.
그런 행동과는 달리 제게 주어지는 말들은 어쩐지 놓고 도망가기 바쁜 말들처럼 들렸기에.
무엇이 당신을 두렵게 하는지 악셀은 꿰뚫지 못했다. 드러난 결과를 끌어안기 바빠, 일련의 과정들이 당신을 도망가게 만든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당신의 용기는 그의 앞에서 촛불과도 같음이라, 억지로 부딪히면 깨어지고 만다는 것을 왜 몰라주는 것일까.
"... ... ... 왜 넌 항상 그 모양이야?"
휩쓸린 감정,
"네가─!"
오해와 두려움,
"...먼저 붙잡고, 선을 긋고, 그 선 밖으로 도망간건 너잖아!!"
연속되는 어긋남.
악셀 발레리안 레프. 그는 또다시 바다를 태운다. 촛불을 꺼트려 남겨진 잔해를 파헤치려 든다.
기어코 토해낸 감정의 파편이 두 사람을 아프게 찔러왔다.
평범함을 바란 이반과 특별함에 눈먼 보통의 말로는 이다지도 참담했다.
존재 자체가 누군가의 쓰임이던 태양은 쓰이지 않는 것으로 특별함을 말한다.
누군가에게 쓰여지길 바라는 바다는 소속됨으로써 특별함을 말한다.
어쩌면 두 사람의 바람은 영영 성립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태양과 바다는 늘 마주 봄에도 맞닿을 수 없는 것처럼.
그럼에도. 그 날카로운 본능으로 당신의 두려움을 알아본 악셀은 다시금 순간의 찬란함을 향해 손을 뻗는다.
당신이 피하지 못하게 붙들고 잡아채, 시선을 온전히 제게로 가져온다.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왜 바라지도 않은 일을 네 멋대로 해!? "
"그래놓고 왜!"
왜 네 멋대로 도망가려고 해.
그 마음은, 가지 말라는 뜻과도 닮았을까.
모두 쏟아내 남겨진, 초라한 한마디.
그는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당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원하지 않는 것은 지독히도 알고 있기에. 영원히 이루지 못할 추락을 꿈꾸었다.
수많은 울분과 좌절 속에서 겨우 품에 안고 있던 하나의 편린.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어야 했을 가장 여린 면.
당신에게 내보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는, 악셀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저 처음 제 상처를 들킨 짐승처럼 웅크린 채 누군가 알아봐 주길 바랄 뿐.
그는 수많은 감정이 파도처럼 덮쳐옴에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도록 느껴졌다. 이성이 마비되고 감정이 복받쳐 오를 때, 그는 가장 순수한 붉은 빛을 띄곤 했다.
그만이 지닌 색깔에 이름을 붙인다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누가 훔칠까 내보이지도 못하다 구겨져 형편없어진 후에야 당신에게 내보이는 초조.
가벼운 말들로 가리고 거친 손짓으로 옭아맬 줄만 알던, 악셀 발레리안 레프란 사람.
" ... ... '나'는 센티넬이 아니면... ...네게, 아무것도 아니야? "
그의 붉음은 갈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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