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현테디

[최시현] 관계로그 백업

비밀을 나누다


비밀을 나누다

1,

시현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 시동을 끈 지 30분이 지나도록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떡할까. 핸들에 박고 있던 이마를 들어 조수석에 놓인 흰색의 서류 봉투를 쳐다보았다. 크게 한숨을 내쉰다. 저걸 어떻게 쓸지는 결정했다. 다만 고민한 게 며칠인데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내용을 어떻게 요약해서 전할지는 물론 목소리와 어조, 표정, 분위기 전부.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치부라 어떤 방식이 최선일지의 데이터가 없다. 당장 지금 설명하러 가야 하는데.

  

내기에 이것을 건 것부터가 잘못이었던 것 같다. 출생의 비밀 같은 거, 드라마에서나 재밌지 않나? 그리고 이건 너무 그를 이용하려는 속셈 아닌가?

하지만 항상 뒤를 계산하고 행동하는 시현이기에 충동이나 취기 때문에 이 비밀을 내기에 건 게 아니었다. 그때도 분명히 명확하게 계산하고 저지른 행동이다. 밝혀져도 자신의 손해는 어머니와의 관계뿐이고, 가끔 이 진실이 너무 무거워서 짓눌려버릴 것 같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그라면 감당할 수 있는 연륜이 있고, 그리고…… 그라면 자신을 쓰레기라고 욕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이건 그때의 그 기준이다. 지금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그라면……..

 

 

 

주차한 지 한 시간이 지났을 때에서야 마음을 다잡고 차에서 내렸다. 이렇게까지 고민했는데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 앞으로도 시간을 얼마나 들이든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다. 시간 낭비였다. 자신답지 않게 계산 없이 움직이는 자기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실내등까지 전부 꺼져 있던 차에 라이트가 켜졌다가 차 문을 잠그자 꺼진다. 다시 한숨. 서류 봉투를 든 채로 A동 현관으로 들어가서는 엘리베이터로 곧장 가는 게 아닌 옆으로 꺾었다. 서늘한 눈으로 103호라는 글자를 한참 노려보다 초인종을 눌렀다. 늦은 밤이라 자고 있으려나. 연락도 하지 않고 불쑥 찾아온 거라 못 만날 가능성도 있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다행히도 문이 열렸다. 시현이 자신보다 큰 키의 용팔을 올려다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오늘도 매끈한 턱이다. 입부터 맞추고 싶다는 충동을 손을 꽉 그러쥐어 간신히 억눌렀다.

 

“드린다고 했던 거, 오늘 받았습니다. 시간 끌 거 없이 바로 드리려고요.”

“이 시간에?”

 

그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원래 미간에 주름이 져서 화난 것 같이 보이는 얼굴이지만 지금은 진짜 뭐가 못마땅한 눈치다. 그가 시현을 위에서 아래로 한 번 쳐다보고는 들어오라는 듯 옆으로 비켜주었다. 한 번 와봤다고 퍽 자연스럽게 그를 지나쳐 들어가선 구두를 벗고는 코트도 벗으며 들어가려는데, 커다란 손이 시현의 양쪽 어깨를 짚어왔다.

 

“검사님, 일단 그거 입고 있어. 그런데 차는 버리고 걸어왔어?”

 

말끝에 새파랗게 질려서는, 하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덧붙이더니 어깨를 짚은 채로 식탁 쪽으로 몸의 방향을 돌려주었다. 그 손에 이끌려 식탁 의자에 앉은 시현이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식탁 위로 올려놓다가 제 손끝을 보았다. 핏기 없이 하얗게 질려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걸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김이 올라오는 머그컵이 시야에 불쑥 들어왔다.

 

“이 시간에 커피 같은 거 마시면 못 자니까 물로 마셔. 차는 없다.”

“……고맙습니다.”

 

다음에 올 땐 차를 선물해야겠다 생각하며 쿡 웃고는 따뜻한 컵에 언 손을 녹였다. 시현은 그제야 자기 몸이 전체적으로 떨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긴, 이 겨울에 시동 걸린 차도 아니고 꺼진 차에서 한 시간은 있었으니 몸이 식을 만했다. 긴장한 것도 어느 정도의 영향이 있을 거고.

시현은 그가 맞은편에 앉자마자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최대한 평소와 같은 어조로 말했다.

 

“저 지금 매우 긴장하고 있어서 말이 한 번 끊기면 횡설수설할 것 같으니 일단 끊지 말고 들어주세요.”

 

그가 가라앉은 푸른 시선으로 시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오냐. 9시 뉴스에 뜰 수 있는 인간 최시현의 약점, 들어보자고.”

 

시현은 그가 제 앞에선 부러 가벼운 척하는 가면을 벗는 게 꽤 만족스러웠다. 굳은 입가에 작게 미소가 떠올랐다가 바로 사그라졌다.

 

“이거 알고 있는 사람은 저와 제 할아버지뿐인데, 이제 경감님도 추가되네요.”

 

시현이 서류 봉투에서 종이 한 장을 먼저 꺼냈다. 가족관계증명서였다. 식탁 위에 올려두고 그가 제대로 읽을 수 있게 방향을 돌려주었다.

 

“제가 8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기준의 가족관계증명서입니다.”

 

 

시현이 ‘부’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아버지의 부, 그러니까 제 할아버지는 태유 그룹 회장입니다. 저 재벌 3세예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 중 하나였다.

 

“상식적으로, 저보다 성격이 나쁜 사람들도 다 참고 사는데 저처럼 참지 않고 마음대로 살면서도 문제 안 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친가가 절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는 친가가 저를 내치지 않는 이상 직계 신분 덕분에 감당할 수 있는 선이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높아요.”

 

직계 가계도는 정, 재계에 당연히 퍼지니 일정 신분 이상의 사람들은 시현의 가족을 알고 있고, 그 때문에 그룹 이름이 은연중에 자신을 지켜주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 방패가 어느 정도 선까지 커버하는지 파악한 건 시현의 재주지만.

 

“그런데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재벌 3세처럼 호화롭게 살진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제가 8살 때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외가로 가셨거든요. 친가와의 연락도 다 끊었고 저도 친가와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연락은 자주 왔는데 무대응으로 대처했습니다. 외가로 온 후 친가의 금전적 지원도 전부 거절했고, 지금도 아무것도 안 받고 있습니다.”

 

외삼촌이 양육비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나, 하는 말을 했었지만 시현의 어머니가 거절했다.

 

“저 외가에서 풍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함도 없이 자랐어요. 외사촌 형들도 다 좋았습니다. 뭐, 어릴 땐 왜 친가에서 나왔지? 라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만 여쭤보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나서 먼저 말씀해주셔서 그 이유를 알았어요.”

 

서류 봉투에서 모서리에 스테이플러로 찍혀 있는 몇 장짜리 서류 하나를 더 꺼냈다. 유전자 시험 결과서였다.

 

[모 김수안자 최시현 사이의 친생자 관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총 16개 STR 유전자 좌위를 분석하였습니다. 성염색체를 제외한 총 15개 STR유전자 좌위를 분석한 결과, 7개 STR유전자 좌위가 불일치하여 친생자 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며,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 집에 있었다간 저를 친가에 뺏길 것 같아서 어머니가 그전에 데리고 나오셨던 겁니다. 사별이지 이혼이 아니니까 친권은 어머니께 있어요. 친자관계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친생자 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을 하지 않는 이상. 어머니는 항상 그걸 두려워하셨습니다. 그런데 소송, 안 걸더라고요.”

 

시현은 그의 얼굴을 보는 게 무서워 시선을 위로 들지 못한 채로 말을 이었다.

 

“저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태어났고, 어머니는 저를 키우는 조건으로 급하게 결혼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어머니는 저를 아버지와 옛 애인 사이의 아이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여기까지는 어머니께 들은 얘기고, 여기까지만이었으면 그래도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일이었을 텐데.”

 

그의 표정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서류 봉투에서 또 다른 유전자 시험 결과서를 꺼내 올려두었다.

 

[부 최연흠자 최시현 사이의 친생자 관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총 16개 STR 유전자 좌위를 분석하였습니다. 성염색체를 제외한 총 15개 STR유전자 좌위를 분석한 결과, 공동의 STR 유전자 좌위가 모두 일치하여 친생자 관계가 성립되며,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할아버지의 혼외자라는 걸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말씀을 안 해주셔서 친어머니가 누군지는 몰라요. 확실한 건 호적상 아버지가 사실은 생물학적 형이고, 호적상 할아버지가 생물학적 아버지인 겁니다.”

 

목소리가 조금 갈라져서 시선을 내리깐 채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제가 차장검사를 들이받은 게 그걸 들은 직후였습니다. 정신이 나가서 계산을 못 했거든요. 제정신이었으면 안 그랬을 텐데. 정말 저답지 않은 짓이었죠. 그때 제 자신이 좀…… 더럽게 느껴져서. 사랑한 남자의 흔적이라고 친자도 아닌 아이를 정성껏 키워주셨는데 그것도 아니었으니까 어머니께도 죄송하고.”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그렇게 느끼면서도 계산적인 인간이라 그 배경도 제게 있는 자산이라고 잘만 이용하고.”

 

본심이었다. 시현이 말끝에 웃어버렸다. 그리곤 서류들을 다시 차곡차곡 서류 봉투에 넣고 그의 앞쪽으로 밀어주었다.

 

“믿을 만한 곳에서 이름까지 나오게 뽑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요. 내기의 대가니까 이걸로 뭘 하든 경감님 자유입니다. 할아버지한테 조용히 팔면 안전하게 큰돈 받을 수 있을 거고, 태유 주식으로 숏에 친 후에 터뜨려서 주가 떨어뜨리고 돈 버는 방법도 있겠고, 달리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사람에게 팔아도 되고. 아,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에게 들고 가면 지분 문제 때문에 저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 처리될 수 있습니다. 제 목숨줄도 쥐시겠네요.”

 

시현은 좀 후련하다며 그제야 고개를 들고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웃었다. 그러다 표정이 점차 사라지더니 다시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다.

(2는 제 로그가 아니므로 백업 못합니다)

3.

시현은 제게 던져진 서류에 잠깐의 시선도 주지 않고 오로지 그만을 응시했다. 필사적으로 무표정을 가장하지만 싸늘하게 식는 체온과 입술의 떨림으로 제가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그 조용한 분노를 마주하다 눈을 내리깔았다. 충분히 예상했고 자초한 일이었다. 그리고 가슴을 간질이는 묘한 환희와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에 대한 경멸, 또 그에 대한 미안함, 용서받지 못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온갖 감정이 동시에 목을 조여 숨이 막혔다.

잠시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고민하다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 짜낸다.

 

“제가 좀 계산적인 인간이라서, 경감님이 이렇게 화를 낼 거라고 예상하긴 했습니다. 그럴 화법도 썼고요.”

“그래서, 내가 예상대로 굴어주니까 기분 좋아? 지금 네가 똑똑하다고 자랑해?”

 

그의 말이 칼처럼 꽂혔다. 그새 다시 하얗게 굳어버린 자신의 손끝을 응시하다가 다시 눈을 들어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건 아니에요. 화를 내겠다는 생각까지만 했습니다. 그 이후는 그냥, 계산도 대책도 없이 왔어요.”

 

그가 만약 자신의 비밀을 사용한다면. 그때 필요한 조치는 이미 끝냈으나 지금 같은 상황이 일어났을 때의 대처는 며칠 동안 고민하고도 결론을 못 냈다. 자의로, 계산을 명확히 끝내지도 못하고 움직인 건 이게 처음이었다. 피아를 식별할 수 있는 나이부터 쭉 계산적으로 살아온 시현이었기에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측한 여러 루트 중 시현이 가장 원한 건…… 그가 화를 낸, 지금 같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단 전부 설명하고 용서를 빌어보려고요.”

 

 

시현은 기억을 되짚어 처음 그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누가 봐도 한국인이 아닌 이국적인 얼굴인데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은 유창한 사투리. 이 세상에 비밀 없는 사람은 없다지만 인상과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태도에 언뜻 위화감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대충 둘러대는 자신의 직업을 제대로 밝혀보았다. 검사라는 말에 보인 뭔가 수상한 태도는 너무나 허술해 연기인지 본심인지 헷갈렸다. 어느 쪽이든 경계심을 떨어뜨릴 수 있는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눈에 띄게 티가 나면 함정인가 싶어 더 헷갈리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

 

아침 식사를 하자는 말에, 자신이 포착한 위화감이 궁금해서 철야 후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그를 따라갔다. 그렇게 들은 자그마한 단서. 내부 고발을 직감하고 계속 그를 긁었다. 시현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은 꽤 집요한 편이라 가면을 벗겨내는 건 쉬웠다.

 

 

“솔직히 제 비밀을 누가 터뜨려 줬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긴 했습니다만, 굳이 밝힐 이유도 없었습니다. 세상에 알려져도 제게 아주 큰 손해는 없는데 이득도 없거든요. 이 나이에 재벌가 사생아 놀이할 생각 없고.”

 

입술이 바짝 말랐지만 이젠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푸른 눈을 마주하며 서둘러 말을 이었다.

 

“내기에 대가를 걸 때 선택지를 세 개 드렸습니다. 검사인 저의 약점, 제 개인의 약점, 그리고 소원 한 개. 비밀에는 비밀로, 단순히 이 셈법으로 좌판에 올렸어요. 솔직히 경감님이 소원을 선택할 줄 알았습니다. 모르셨겠지만 저는 딱히 도덕적이지 않고 정의감도 없고 직업윤리는 더 없는 사람이라서. 만약 경감님이 검찰에서 수사받게 될 일이 생겼을 때 소원을 말씀하시며 풀어달라 요구하신다면 수사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힘을 썼을 겁니다.”

 

목소리가 점점 갈라진다. 시현은 지금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 경찰의 내부 고발이나 비위 사실이 필요했거든요. 승진욕이 없다고 말했던 건 거짓말입니다. 아주 높게 올라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정상적인 경로에서 이탈되지는 않게끔 수습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쓰러진 건 아닙니다. 필요성도 있었던 데다, 그때 정말 24시간 동안 깨어 있었으니까.”

 

술에 취해 쓰러지는 연기는 할 자신이 없었고 시도도 해본 적이 없다. 표정이나 태도, 몸짓 같은 동작은 원하는 대로 꾸며낼 수 있지만 호흡과 안색, 안구 움직임 같은 신체 반응의 영역은 꾸밈이 불가능했다.

 

“정말 제가 이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졌어요. 그래서 경감님이 선택한 보상을 드린 겁니다.”

 

출생의 비밀을 말한 건 다른 의도 없이 단순히 내기의 결과 때문이라고 고했다. 말끝에 살짝 그러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잔기침했다. 입가를 가린 손이 잘게 떨린다. 손을 내리고 무릎 위에서 반대쪽 손으로 제 손을 감싸 쥐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구구절절 자신의 의도를 설명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지. ……처음인 것 같다. 그가 제 처음을 몇 개나 가져가는지 모르겠다.

 

“여기까지는 경감님께 제 비밀을 밝힌 게 다른 의도가 없었음을 해명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은.”

 

잠시 말을 끊고 몇 번 호흡하다가 눈을 내리깔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 비밀을 밝히는 걸 이용해서 경감님을 일부러 시험했습니다. ……확신하고 싶어서.”

 

한 호흡 후에 덧붙인 말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수습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의 감정을 확인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제 약점을 사용할 방법을 아무렇지 않은 척 주절거렸다. 자극하듯 쏘는 말투와 태도로 일부러 제 목숨까지 들먹이면서.

그리곤 다시 시선을 들어 절박하기까지 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진 것을 파악했다. 그 감정의 단편을 포착한 시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세 호흡. 아무 말 없이 쳐다보다가 말을 잇는다.

 

“……경감님이 화를 냈을 때, 기뻤어요. 만약 제가 경감님에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면 화를 낼 이유가 없잖습니까.”

 

최시현을 아끼니까. 화를 낼 정도의 의미는 있으니까.

 

“죄송해요. 시험하듯 제가 원하는 반응을 유도하고 확신을 얻는 것, 제 나쁜 버릇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

 

취기로 얼굴에 열이 올라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자신의 두 눈 위를 덮었던 차가운 손의 체온을 아직 기억한다. 그 손에 열기가 옮아 체온이 비슷해질 때까지의 시간도. 시현은 그 다정함을 잃고 싶지 않아서, 계속 제 손에 쥐고 있고 싶어서 필사적이었다.

솔직히 이 말들로 그가 자신을 용서한다고 확언할 수는 없었다. 아직 그에 대해 많은 걸 알지 못하는 상태라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표정을 살피던 시현의 시선이 그의 턱에 머물렀다.

 

“……용서해 주세요.”

 

—그동안 그는 매번 자신에게 져 주었다.

그리고, 시현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조소를 지운 채로 가만히 응시하고 있던 용팔이 나직하게 말했다.

 

“똑똑한 검사님은 내가 용서할 것 같아? 이것도 예상해 봐.”

 

시현의 핏기 없이 떨리던 입술이, 이내 호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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