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念

끊을 단, 생각 념.

BLUE HOUR by 감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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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11. 25


둔탁한 마찰과 함께 쏟아낸 분노는 사그라들 것이라 여겼으나, 오히려 기폭제라도 된 듯 공기를 진동시키고 열기를 폭발시켰다. 지나치게 선명한 화재경보음과 소란은 그를 더 혼돈 속으로 내던졌다. 불길을 제어하려던 시도는 자꾸 헛손질만 할 뿐. 회로가 꼬인 신경이 제 것이 아닌 감각에 억지로 숨을 들이킨다.

덜덜 떠는 손끝으로 눈가를 눌러내고, 거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그럴수록 더 꼬이는 심기는 익숙한 통제와 제어는커녕 제 감정을 뚝뚝 흘려낼 뿐 답답함을 해소해주진 않았다. 괜히 발끝에 채는 상자를 걷어차며 애써 이성의 가닥을 잡아내려 했다.

다만, 그 행동이 이미 괴일대로 괴여 찰랑이는 잔을 치는 것밖에 되지 않는 몸부림이라. 그 숨을 더 가쁘게 만들기만 했을 뿐이었다. 과도하게 몰리는 산소는 머리를 더 혼몽하게 만든다. 내뱉지 못한 숨은 고여 열기를 더할 뿐 조금도 식혀지지 않는다. 경보음의 소리가, 시끄러운 소리가 제 안에서 나는 소리인지, 밖인지 구분할 여유조차 사라져 얼굴을 감싼 채 제 숨에 집중한다. 다시 자신을 묶어내던, 끌어안던 사슬을, 좌절과 체념이라는 이름의 사슬을 억지로 동여맸다.

"미쳤습니까?! 징계 받고 싶어서 환장했어요?!"

그럼에도 식혀지지 않음에 타들어 가는 갈증만을 부여잡고 억지로 혀를 짓씹어낸다. 고통을 뇌리에 새기고, 익숙한 핏물로 목을 축이는 학습된 패턴을 반복한다. 손목이 잡히고 억지로 트인 시야에 잡힌 것은 당신의 화난 얼굴이라. 모멸감과 자괴감이 짓눌렀다.

잡힌 두 팔에 흘러온 가이딩에 꺼지지 않던 불이, 해소되지 않던 갈증이 쉽게도 가라앉는다. 열에 비명을 지르던 뇌는, 부재의 기간 거부로 점철되어 열기에 시달린 몸은.

그렇게 순순히 굴복했다.

그제서야, 들이키기만 하던 숨이 비집고 새어 나온다. 숨을 들이켜고 내쉬는 당연한 과정을 이제야 배우는것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지기 반복한다. 떨림이 가라앉고, 호흡이 안정될 때쯤 떨어진 손은 점차 멀어진다. 등을 돌린 채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보고 초조함을 숨기려 내려진 손에 힘을 쥐어냈다. 이내, 제 실패의 잔여물을 눈에 담는다.

익숙한 탄내와, 익숙한 자괴감, 그리고 그것을 덮는 체념은 눈을 깜빡이고 제게 지껄이는 욕설로 동여매고,

분노로 물들일 수도, 체념에 넋을 놓을 수도 없는 아득한 현실감을 눈에 새겨넣고 고개를 돌려내 외면하는 꼴이란.

"...꼭. ...집에 가있으세요."

마지막에 남겨진 말이 머리 속을 헤집어 맴돌지만 떠다니기만 할 뿐, 혼탁한 시야처럼 뿌옇게 느껴지기만 했다. 그저 걸어낸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른채.

집.

어디로?

대체.

어디에.

"...알아서 있는듯 없는듯 지낼테니까 저한테 신경 끄셔도 됩니다."

"있는듯 없는듯? 한 집에서도 피해다니겠다고?"

정처없는 걸음은 점차 느려져 이내 멈춰버린다.

"...그게 레프 중위한테도 편하지 않습니까?"

길이라도 잃은 것처럼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채 한참을 멈춰선다.

"...그야 가이딩 필요 없다고 하셨으니까요. 그럼 페어로 있는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마비된 이성은 본능을 끌어내고, 본능에 새겨진 걸음을 옮기도록 만든다.

한걸음.

"그럼 레프 중위가 절 죽이시던가요. 그럼 빨리 처리되겠네. "

다시 한걸음.

"...그렇게 싫으면 죽이라 했습니다. 왜요. 그건 또 못하겠습니까? "

다시, 다시 또 한걸음.

"... 그게 할 말이야...?"

정처 없이 걷는 걸음 아래로 허탈하게 짓씹어 뱉는 말이 떨어진다. 닿지도, 알지도 못하는 감정은 불안만을 자아낸다. 수평선에 스친 물기는 제게 고스란히 흉이 되어 남는다. 어떻게 가려야 하는지도 모르게.

걸음이 멈춘 것은 익숙한 풍경을 인식하고 나서였다. 제 몸이 기억하는 걸음은 처음 걸어본 길 보다 익숙한 길을 선호하기라도 했는지, 아침나절에 나온 관사 앞에서야 멈춘다.

이제는,

모르겠다.

아니, 더 알고 싶지 않아졌다.

서로에게 흉터만 새기는 관계를 억지로 잇는다 한들 부서지기만 할까.

누군가 하나 부서져야 끝이 난다면, 멈춰야 맞지 않나?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이려다 멈춘다. 옅게 스민 불안감에 다시 손에 쥐고 꺾어낸다. 관사 건물을 물끄러미 보다가 들어간다. 계단을 딛고, 오르면 익숙한 끝방의 철문이 몇 시간 만에 반긴다. 잠깐의 고민 끝에 문고리를 돌려낸다. 황량한 방 안으로 몸을 구겨 넣는다.

그래, 단념하자. 처음부터 잘못 끼운 단추는 다시 끼울 수 조차 없었던 것임을 이제 받아들이자.

단정 지어낸 생각과 함께 연 문이.

쾅.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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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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