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테라 / 스낵 타임
페닝님 커미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테트라 지오메트릭은 철학자는 아니었으나, 가끔 그것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아니, 아마 그녀뿐만 아니라 이 연구실에 있는 대부분의 직원들은 한 번쯤은 생각할 터였다. 사람이 이러고도 살 수 있나? 그런 생각 따위를 하면서 바쁜 일정에 치이고 살고 있으니.
그러나 테트라만큼 고달플까. 박사과정 준비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쓰고 있는 논문은 또다시 막혔다. 이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에 앞서 해결해야 할 수식 계산도 있었고, 최근 학계에서 새로 발표된 것에 대한 것까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피곤한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쑥 나타나는 살인 청부업자나, 제 친구를 붙잡고 있는 못된 상원의원이나, 그 외 기타 등등 능력자들과 얽혀 있는 사건들까지. 세상엔 테트라를 괴롭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당장 오늘도 공성전에 참여해야 하는 터라. 오늘도 대충 끼니를 때우고 약속 시간에 맞춰 나온 테트라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피곤하고, 머리는 더 안 굴러가고, 앞으로 공성전에서 전장을 파악하고 적을 막으며 버틸 생각에 지끈거리기까지 했다.
이럴 땐 어떻게 했더라. 피곤해할 때, 가끔 헤나투 교수님이 자기는 잘 못 먹겠다면서 사탕 같은 걸 주시기도 했었는데. 그래, 단 것. 테트라는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옆에 있는 건 레몬을 떠올리게 하는 금발의 헌터 한 명뿐이었다. 레몬 사탕이라도 입에 물고 쉬면 살만할 것 같은데. 테트라는 지금은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당신, 듣고 있습니까?”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뻔히 보여 루드비히가 불러도 테트라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이런 상태로 제대로 된 파악을 할 수 있을지. 루드비히가 대놓고 한숨을 쉬면, 테트라는 그건 무시하고 다른 소리에 집중했다.
“아까부터 부스럭거리던 거 뭐예요?”
“예?”
루드비히의 주머니에서 나는 소리였다. 코트 주머니에서 들린 소리에 테트라는 다짜고짜 주머니를 뒤지려 했고, 루드비히는 뒤로 물러났다.
“피곤해 죽겠으니까 그것 좀 내놔봐요.”
테트라는 루드비히의 코트를 붙잡아 당기고, 주머니를 다시 뒤적였다. 손힘이 생각보다 센 것에, 그리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에 루드비히가 조금 당황하면, 그러거나 말거나 테트라는 그의 주머니에 있던 것을 꺼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겁니까?”
“아, 있네. 초코바?”
혼자만 이런 걸 다 챙기고.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정상적인 사고가 되질 않는지, 테트라는 그걸 꺼내서 바로 먹었다. 루드비히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경멸이나 짜증이 아닌, 정말 놀라기만 한 얼굴이었다.
“테트라, 그건, 사람 말 좀……!”
“나중에 다시 사줄게요. 진짜 힘들다고요.”
와작거리며 초코바를 전부 먹어버린 테트라는, 당이 머리에 좀 돌기 시작하는 것 같아 한결 편한 표정이 되었다. 그런 저를 보고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는 루드비히는 알 바가 아니었다. 편한 얼굴. 그것이 곧 생각도 뭣도 없는 멍한 얼굴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봐요, 당신. 그렇게 테트라를 한 번 불렀던 루드비히는, 부름에도 대답 없이 멍하니 있는 것에 테트라, 하고 그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러나 테트라는 멍한 얼굴로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딱, 루드비히가 그 얼굴 앞에 손가락을 튕기면 깜짝 놀라긴 했다. 반응은 한다. 제 말도 듣고는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생각이 흐려지고, 그 생각조차 몸에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이래서 약은 식품과 구분되게 만드는 게 맞다. 가지고 있던 것은 초코바처럼 생기긴 했지만, 강화킷이다. 임팩트라고 부르고 있는, 능력자의 능력을 일시적으로 극대화하는 약품의 일종이었다. 능력자의 능력에 맞추어 제조되는 것이기에 능력이 아예 다른 이, 혹은 능력자가 아닌 다른 이가 먹게 되면 부작용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필 지금. 본인에게 맞추어진, 본인과 맞는 강화킷을 먹었다면 모를까. 심지어 테트라는 탱커의 역할을 하느라 따로 그것을 먹을 일이 없었다.
“이보시오, 이제 슬슬 이동해야…….”
아, 이런. 오늘 이동을 돕는 이가 당신이었습니까. 루드비히는 이쪽으로 온 릭 톰슨을 보고 테트라를 슬쩍 보았다. 언젠가 테트라가 저 남자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 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진 이에게 보이는 모습이 고작 이런 모습이라니, 당신도 참 운이 없군요. 루드비히는 테트라를 슬쩍 제 뒤에 두고, 릭이 다가와 기웃거리면 그냥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일행이, 그, 괜찮소?”
“문제없습니다. 맡은 일이나 하시죠.”
으음, 그렇다면야. 릭은 게이트를 열어주고, 루드비히와 테트라, 그 외 공성전에 참여하는 인물들이 이동하면 그 자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향했다.
오늘의 메트로폴리스는 흐렸다. 안개는 여전히 짙고, 매캐한 공기도 여전했으며, 어두운 곳곳의 골목처럼 테트라 지오메트릭의 눈도 여전히 흐렸다. 이미 다른 이들은 내려갔다. 자리로 흩어졌고, 적들 역시 준비를 하고 있을 터였다. 루드비히는 할 수 없이 테트라를 안은 채로 출발 지점에서 내려오고, 테트라를 내려준 뒤 딱딱, 그 앞에 손가락을 몇 번 튕기며 말했다.
“테트라, 집중하세요.”
루드비히의 부름에 테트라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고양감과 피로로 인해 과한 정보를 강제적으로 몸이 차단이라도 한 것일까. 그래도 의사소통이나, 간단한 움직임, 늘 해왔던 기술들은 반사적으로 펼칠 수 있는 것에 루드비히는 잠시 고민했다.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내키지 않는 것에 루드비히는 쯧하고 혀를 찼다.
“오늘만 역할을 바꾸는 게 좋겠습니다.”
테트라가 그 말을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싶었으나 더는 시간이 없었다. 루드비히는 먼저 앞으로 나섰다. 그러면 테트라는 멍하니 있다가도, 루드비히가 다시 부르면 그를 따라 같이 달렸다. 그렇게 구른 보람이 있긴 한가 봅니다. 반사적으로 움직이고, 뛰고, 언제라도 능력을 쓸 준비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제가 시키는 대로, 적당히 잘 따라와 도우면 괜찮을 겁니다.”
“네…….”
그래도 불리하다는 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가 행동하기에 적절한 상황을 만들고,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어떻게 보면 테트라는 그것을 위해 가르치고 있는 하급 능력자였다. 그러니 반대로 제가 그렇게 맞추는 법도 알고는 있다. 내키지 않을 뿐. 루드비히는 테트라를 안개 지역 안쪽에 둔 채, 자신이 신호하면 나오라는 지시를 해두었다. 고개를 끄덕인 것으로 보아 알아들었을 것이다.
휘파람 소리가 제법 경쾌했다. 무언가를 찾듯이, 여유롭게, 그러나 착실히 거리를 좁혀서. 자신이 사냥감이 되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앞에 있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이들을 잘라내는 것. 그때와는 다르게 정면으로 가고 있다고는 하나 루드비히는 여전히 여유로워 보였다. 분명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릴 것이라 생각했던 이가 정면에서 다가올 때, 어떤 생각을 할까. 그의 눈에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친다? 아니면, 먼저 쳐서 위험을 제거해둔다? 아니지, 쪽수로 밀어붙이는 게 가장 편하겠지. 그렇게 판단한 것인지 다른 이들을 더 불러 한 번에 쫓는다. 루드비히는 저를 잡으러 달려드는 이들을 앞에 두고 등을 돌리지 않았다. 그저 발로 가볍게 바닥을 끌며 물러나고, 빛처럼 빠르게 사이를 지나쳐 그들의 뒤를 차지한 뒤, 허공에 사선으로 빛의 선을 그려낸다.
그렇게 하나를 넘어뜨리고, 달려드는 둘의 공격에 급하게 피하다 코트가 조금 찢긴 루드비히는, 바로 한쪽 다리를 들어 검을 밟아 막았다. 제법 아끼는 구두건만 흠집이 났다. 그것을 그대로 빛으로 녹여내려 했으나 다른 쪽이 총을 쏘는 것에 몸을 피해야 했고, 그 탓에 궤도를 바꾼 검에 팔이 베였다.
“하, 이건 또…….”
얼마 만인지. 계속해서 쫓아오는 적, 부족한 힘에 버티거나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상황, 뒤돌아서 저것들을 전부 태우고, 환멸이 아닌 환희에 웃는 순간이 있었다. 루드비히는 제가 빛으로 열을 올리고, 다시 다리로 쳐내는 것에도 이것들을 죽일 수 없는 것이 답답했다. 그러나 그때와는 상황이 다른 것에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등을 보였다. 여유롭게 사냥을 하려던 헌터가 등을 보인다. 지금 잡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조급함에 안개 지역으로 도망치는 그를 따라간 순간, 쿵. 달리던 이들은 무언가의 벽에 부딪혔다.
“여기, 자르세요.”
휘파람을 불던 이의 목소리가 안개 속에서 들렸다. 흐릿한 시야 앞에 빛이 번쩍인다. 마치 반딧불처럼 작게 번쩍인 빛에 그쪽을 노려 검을 휘둘렀으나, 쿵. 갑자기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 무언가의 장벽에 검이 떨어져 나뒹굴었다. 막혔나? 무엇에? 당황한 이들이 반대편으로 돌면, 손을 가볍게 휘적이고 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 동료들이 이미 그 여자를 공격하고 있으나 무언가에 막혀 부딪히는 소리만 났다. 그러다 그것이 부서지고,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순간, 그들의 눈앞을 채운 건 환한 빛뿐이었다.
“역시 안 어울린다니까…….”
어울리지 않는 것들. 헌터와 사냥감, 멘토와 멘티, 탱커와 딜러, 막고 버티는 자와 끊어 죽이는 자. 그것을 반대로 뒤집으면 어울리는 것이 될까? 그럴 리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가 반대로 사냥을 하는 것도, 제가 판을 이끌어 가야 하는 것도, 결국 적을 죽이는 역할은 그녀가 해야 하는 것도.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방금의 상황 역시 루드비히의 예상보다 길어졌다.
더 빨리 끝났다면 아예 흐름을 이쪽으로 끌어왔을 텐데.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런 행위는 하지 않는다는 걸까. 그대로 검을 뻗은 팔을 잘라내고, 도망치려는 다리를 잘라내거나, 바로 황혼의 틈에 가도록 죽였다면 편할 텐데. 이곳에선 죽음 역시 죽음이 되지 못하고, 살아있는 한 싸워야 하는 곳이라는 걸 알 텐데. 그럼에도 테트라가 평소에 맡은 역할처럼 상대방을 막거나 버티는 것에 집중하는 것에, 루드비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선택과 행동이 한심해서가 아니라, 그럴 것을 알고 이렇게 행동했음에도 상처를 입고만 자신에 대한 한숨이었다. 막기는 했으나 입자의 벽은 평소보다 쉽게 깨져버렸다. 그러나, 그것에 빛을 쏘았을 때 반사가 일어나고, 반사된 빛이 원래보다 높은 위력을 냈다. 임팩트의 영향일까? 아니면, 지금까지 해본 방식과 다르게 연계가 되었기 때문일까.
“확실하게 끊지 않으면, 다음은 아군입니다.”
어느 쪽이든 지금은 당신이 끊어내야 한다고. 루드비히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에 테트라는 멍하니 쓰러진 사람들을 보다, 안개가 그들을 삼켜 처음 있던 장소로 되돌려 보낸 것에 고개를 끄덕였다. 감각이 붕 떠 있는 상태인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사람을 가로막고, 잘라낼 것처럼 내려찍고, 실제로 잘라내진 않았지만 깨진 파편 탓에 루드비히의 빛이 번져 그것에 타죽었다. 그것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은 다행이나, 그것을 모르기에 아무렇지 않게 루드비히의 말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은 불행일까.
“따라오세요, 제대로.”
테트라는 일단 루드비히를 따라갔다. 따라가다, 기다리고. 그러다 신호를 주면 입자의 벽을 깨트린다. 전보다 단단함은 덜하나 깨졌을 때 살을 베는 것이나, 루드비히의 빛을 반사 시킬 때마다 위력을 올리는 연계를 내거나. 그런 전투를 이어가는 동안에도 루드비히의 몸에는 자잘한 상처가 생겼다. 처음엔 베이거나 찔린 부분이 있었으나, 중간중간 휴식하고 회복하는 동안 살폈을 땐 타박상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부러졌나? 테트라를 본진으로 복귀하게 둔 채, 아예 한 번 죽고 돌아오는 것이 나을까.
그런 고민을 할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설치해두었던 DT에 무언가 신호가 잡혔다. 앞에 있군. 루드비히가 먼저 일어났으나, 평소에 먼저 나가 주의를 끌고 붙잡아두던 탓일까. 테트라가 반사적으로 DT의 신호음을 듣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테트라, 하고 루드비히가 부르기도 전에 테트라가 앞으로 손을 뻗자 입자의 벽이 적을 가로막았다. 그것에 테트라의 위치를 파악하고 바로 뛰어와, 벽을 깨부숨과 동시에 다리를 걷어찬다. 그 탓에 테트라가 넘어졌고, 루드비히는 급하게 그 앞을 막고선 이미 멍이 든 팔로 적이 내리치는 둔기를 막았다. 아, 부러진 것 같은데. 다리 쪽이 아니라 다행인가.
“후우…… 윽, 잠깐, 막는 정도는 할 수 있습니까?”
루드비히의 말에 테트라는 적의 퇴로만 막아둔 채 다음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할 수 없다. 루드비히는 빛을 터뜨려 적의 시야를 방해하고, 그 뒤 다리로 그 옆구리를 걷어차 옆으로 치워냈다. 떨어뜨린 둔기를 다시 주우며 이쪽으로 달려드는 것에 막아, 라는 짧은 한마디만 뱉었다. 그러면 테트라의 벽이 그것을 막았고, 루드비히의 예상대로 그것이 한두 번 견디다 깨져버렸다. 흩뜨려. 그렇게 말하면 입자의 벽이 퍼졌고, 그러면 루드비히는 너덜해진 코트를 벗어 테트라를 휘감곤 빛을 터뜨렸다. 코트에 가려진 테트라를 제외하곤 주위에 있던 적들은 빛에 눈을 질끈 감았고, 그 뒤 다시 뜨지 못한 채 타버렸다. 그 뒤로도 루드비히는 명령조로 테트라를 다루었다.
루드비히의 입장에선 번거로운 일이었을지 모르나, 멀리서 다른 이들이 보는 두 사람은 꼭,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빛이 되어 빠르게 달려 나간 남자를 따라 바로 벽을 펼치고, 그것이 깨지면 남자의 팔이 여자의 팔을 잡아당겨 뒤로 보내며 빙글, 위치를 바꾸었다. 그리곤 다시 태우고, 공격하고, 또 위치를 바꾸고. 그러나 여자 쪽은 남자의 말이나 움직임에 휘둘리는 것뿐이었다. 적절하게 지시하고, 위치를 조정한다. 실에 매달린 인형을 조종하는 것 같기도 했다. 루드비히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방식이 누군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묶여 흔들리고, 조롱일지라도 춤을 추는 광대를 친구로 삼았다고는 하지만 당신까지 똑같은 꼴이 될 필요는 없을 텐데.
“효율적이고, 좋은 방법은 무슨.”
루드비히는 비웃었다. 제 말과 행동에 따라 흔들리는 테트라가 아닌, 다른 인물에게 보내는 비웃음이었다. 루드비히는 그 웃음을 흘린 뒤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을 관두었다.
“이제부턴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 죽지 않게는 해줄 테니.”
루드비히는 테트라를 놓았다. 그리고 평소와 다르게, 그녀의 앞에 나섰다. 그렇게 앞서가 버려도, 테트라는 빛나는 그의 등을 쫓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막막하던 때에 비하면, 안개가 좀 끼어 있어도 빛나는 것은 잘 보였다.
*
빛도 더 보이지 않고, 어둡기만 했던 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정신을 차린 테트라 지오메트릭이 본 것은 병원 천장이었다. 공성이 끝남과 동시에 루드비히의 코트가 테트라를 덮어 감싸고, 그가 그대로 안아 들었기 때문이었으나 그 순간을 기억하진 못했다. 그저 기절했다가 깨어났더니 병원이었으며, 아직까지 열이 나고 있다는 것. 그것이 테트라가 파악한 상황이었다.
“이제 깼습니까?”
중간에 해열제를 놓은 간호사가 나간 뒤 얼마 안 가, 루드비히 와일드가 테트라 지오메트릭의 병실을 찾아왔다. 그는 테트라가 입고 있는 환자복과 같은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뺨에 붙어있는 반창고, 팔에 감긴 붕대, 아직 달고 다니는 링거까지. 누가 봐도 환자인 채로 이곳을 찾아온 루드비히는, 아직 침대에 누워있는 테트라에게 느린 걸음으로 다가갔다.
“아까 전부터 깨어 있었어요.”
“그렇군요. 환자 상태를 보러 오지도 않길래.”
저도 환자인데요. 테트라는 그렇게 반박하고 싶었으나 일단 입을 다물었다. 미열도 있고, 근육통도 있고, 멍이 든 곳도 조금 있다고는 하나 루드비히의 상태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래도 여전히 머리가 아프긴 하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테트라가 몸을 일으켜 앉으면, 침대에 걸터앉은 루드비히가 그 얼굴을 좀 살피다 픽 웃음을 흘렸다.
“정말 깨기만 했나 보군요.”
“멀쩡하거든요…….”
“정신만 멀쩡하다고 멀쩡한 거라면, 저도 당장 퇴원해야겠네요.”
뭘 저렇게 쳐다본담. 테트라는 저를 째려보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덩달아 눈을 가늘게 째고 쳐다보았다. 그러다가도 공성전이 드문드문 기억나는 것, 그로 인한 루드비히의 상태가 썩 좋지 못한 것에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중얼거렸다.
“꼴이 그게 뭐예요.”
“당신이 그런 식으로 말할 거면 직접 해보라고 따지지 않았습니까.”
이건 뭐 걱정을 하는 건지, 푸념을 하는 건지. 루드비히는 테트라의 질문에 혀를 찼다. 테트라에게 가르치던 역할을 대신하는 건 가능했으나, 솔직히 테트라에 비하면 제 능력은 그 역할에 걸맞진 않았다. 효율이 떨어진다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안전을 위해, 성공을 위해 그렇게 했다고. 그렇게 변명을 할 법도 했으나 루드비히는 얄미운 소리로 되받아쳤다.
“저보다 형편없어서 그렇게 된 거 아니에요?”
테트라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서도 아직 내리지 않은 열에 두 뺨이 불그스름한 채였다. 과연 열 때문일까. 루드비히는 픽 웃으며 말했다.
“그게 아닐 텐데요.”
그 말에 테트라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곤 제가 공성전에서 루드비히의 지시에 따라 어떻게 했는지 떠올렸다.
“그런 식으로 능력을 쓰고 싶진 않았어요.”
“진짜 이럴 겁니까?”
그때의 기억이 모호한 게 다행일까. 아니면 제대로 알아둬야 했을까. 직접 잘라낸 건 아니라고 했으나 사람을 자를 생각으로 썼던 것, 깨진 파편을 다시 모아 벽을 만들지 않고 그것을 유지한 채 찌르게 둔 것. 그런 것을 생각하던 것도 잠시, 그럴 때마다 빛으로 번쩍이던 눈앞이 검게 물들던 것을 떠올렸다. 빛에 피해를 입지 않게 만들기 위함이기도 했으나, 자신이 만들어낸 파편에 베이지 않도록 코트로 감싸 두른 것이었다. 바로바로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팔을 당겨 손자국을 내긴 했으나, 핏자국은 나지 않게 했다.
“……죄송해요.”
“하나 더.”
피곤하다고는 해도 막무가내로 뺏고, 공성을 망칠 뻔하고, 지시를 따르는 와중에도 한 박자씩 늦기도 해서. 미안하다 사과를 하는 테트라에게 루드비히는 그거 말고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인지 답을 재촉했다.
“감사, 합니다.”
끝내 테트라는 해야 할 말을 뱉었다. 그리곤 도로 침대에 누워 루드비히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걸 본 루드비히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사람의 반응이었다. 실에 매달려 춤을 추기만 하는 것보다, 눈을 마주하고. 노려보기도 하고. 따지기도 하다, 멋쩍어하면서도 순순히 사과와 감사를 전하는 것. 루드비히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은 것에 병실에 있던 과일바구니를 뒤적였다.
“당신이 자는 사이 왔던 선물입니다.”
그리곤 사과 하나를 대충 옷에 슥슥 닦고선 껍질째 한 입 베어 물었다. 테트라가 그걸 왜 허락도 없이 먹냐며 말하는 대신 쳐다보고만 있으면, 루드비히는 다른 사과 하나를 테트라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테트라는 그것과, 옆에 같이 놓여있던 과도를 눈짓했다.
“환자에게 깎게 시킬 겁니까?”
“부러진 것도 아니면서.”
아까 사과하고 감사를 전한 게 아직도 머쓱한 걸까. 괜히 틱틱거리는 것에 루드비히는 한숨을 내쉬곤 사과 하나를 깎아주었다.
“다음엔 꼭 맥시머 먹고 제대로 할 거니까 각오하세요.”
“그때도 절 앞에 내세울 겁니까, 설마?”
테트라는 고개를 내저었다. 못하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루드비히가 저보다 잘 버텼던 것 같지는 않았으므로. 그래도, 끝까지 이끌어서 해낸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그것에 대한 감사를 또 전하기엔 머쓱한지, 테트라는 다른 방향으로 그 속을 전했다.
“제 잘못도 있긴 한데, 그래도 간호해줘서 고마워요.”
“간호는 무슨. 당신이 시켰잖습니까.”
둘 사이에 실랑이가 오가는 동안에도 두 사람의 입에는 과일이 들어갔다. 적당히 달고, 새콤한 것이, 정신을 차리기엔 딱 좋은 간식이었다.
*
테트라도, 루드비히도 빠르게 퇴원했다. 먼저 퇴원 수속을 밟은 것은 테트라 쪽이었으나, 먼저 제자리로 돌아간 것은 루드비히 쪽이었다. 이참에 조금 쉬고 오라는 말에 하루 이틀 정도 쉬고 온 테트라는, 자신의 자리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곤 그쪽으로 다가갔다.
“다들 무슨 일이에요?”
“아, 미스 지오메트릭!”
몸은 좀 어때요? 심한 몸살이었다면서요? 그렇게 걱정하는 이들에게 테트라는 이제 괜찮다며 웃어주었다. 약물 부작용으로 공성에서 해보지 않았던 포지션으로 움직이느라 무리하고, 그러다 쓰러지고, 입원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보다 왜들 이렇게 모여있는지. 테트라는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것을 확인했고, 선물 상자 같은 것이 있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한테 선물이요?”
“보낸 사람도 모르고, 주인이 안 와서 다들 안 건드리고 있었어요.”
궁금하니까 어서 열어봐요! 다들 테트라가 와서 열어주길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테트라는 지체 없이 상자를 바로 열었다. 그러면 그 안에는 부스럭거리는 것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간식이네.”
사탕, 초콜릿, 비스킷, 초코바, 젤리. 갖가지 간식거리가 들어있는 것에 덤덤하게 말하는 테트라와 다르게, 주변 사람들은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요즘 많이 피곤하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피곤할 때마다 먹으라고 단 거라도 선물해준 게 아닐까요? 그렇게 말하는 것에 테트라는 언젠가 썼던 편지를 떠올렸다.
“전에, 편지를 쓰긴 했는데…….”
고등학생까지 후원을 받아왔던 테트라는, 원래라면 끝났어야 할 후원이 대학생까지 이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물질적인 지원에만 감사하는 것은 아니었다. 후원을 받던 때도, 졸업을 한 뒤 사회인이 된 지금까지도 편지를 주고받는 것. 성장을 함께 지켜봐 준 내 편이 있다는 것. 그런 생각에 덜 외로웠던 것도 같다. 후원도, 아직까지 연을 이어오고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인데, 지나가듯 적었던 걸 기억해주신 걸까. 요즘은 바쁘다고. 그래서 학생이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이것저것 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고. 요즘 들어 자꾸 단 것을 찾게 되는 것 같다고. 피로와 스트레스에 횡설수설 적었던 것 같은데, 그걸 기억하고 챙겨주신 걸까. 테트라는 간질간질한 기분에 배시시 웃고, 상자에 든 것을 사람들에게 건네었다.
“다들 같이 먹어요.”
“정말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다들 사탕이나 초콜릿을 한 개씩 가져가 입에 넣었다. 지금부터 또 머리를 혹사시켜야 한다며 툴툴거리면서도, 단 것이 입에 들어오자 다들 한결 행복한 표정을 했다.
다음에 감사 편지를 쓰는 게 좋겠다. 테트라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달그락. 상자 아래쪽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리가 들렸다. 선물 상자 안에 들어있는 작은 캔디 박스가 하나. 그것을 열면 시원한 향이 훅 끼쳐왔다.
쿨캔디다. 저번에 한 번 하나도 달지 않고 맵기만 한 사탕을 먹었던 기억이 있는지라. 편지에 가볍게 불평도 했었는데, 생각이 깊으신 분이 이걸 굳이 끼워 보냈을 리가 없다. 테트라는 그것을 보고 어쩌면 이것을 보낸 게 루드비히 와일드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에이, 설마. 그런 생각을 하며 캔디를 하나 꺼내 먹으면, 테트라는 놀란 얼굴을 했다. 달다. 시원한 민트향이 나고 적당히 달아 먹기에 좋았다. 잠을 깨기에도 좋았다. 전에도 이렇게 챙겨줬으면 좀 좋아. 얄밉다는 생각에 테트라는 먹고 있던 캔디를 깨물어 부쉈다.
“미스 지오메트릭?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부순 순간, 안쪽에서 매운맛이 확 올라왔다. 이렇게 깨물어 먹을 줄 알고 일부러 이런 걸로 준비한 게 아닐까. 확실하게, 이건 루드비히 와일드가 보낸 게 맞다. 테트라는 얼굴을 구겼다. 역시 고맙다고 하지 말 걸 그랬어. 피곤할 때 단 게 당긴다는 쓸데없는 말도 하지 말 걸 그랬어.
그래도 왜, 병원에서 같이 얘기하는 동안 기분이 좋아 보였는지는 물어볼 걸 그랬나. 테트라는 잠깐은 생각했으나, 금세 지워버렸다. 캔디가 너무 매운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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