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M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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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말입니까?

당신에게 검술을 배우고 싶어.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의 나이트는 대놓고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황제의 기사가 되었다는 것 만으로도 떠안게된 짐이 많을텐데 개인적인 검술 교습을 또 따로 해야하다니. 귀찮을만한 일이어서, 밀비는 그의 불경함을 지적하지 않았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업무 때문인지 눈 밑에 옅게 그늘까지 드리워져 있는 것이 조금 안쓰러웠지만 그는 밀비로서는 답지 않게 어려운 수를 써서 손에 넣은 이다. 이 정도의 심술은 부릴 수 있지 않아? 스스로 그렇게 납득한 밀비는 조금 뻔뻔해지기로 했다.

설득하는 일은 쉬웠다. 아니, 설득할 것도 없었다. 사흘 뒤, 시간 비워뒀으니까 그 때 동궁 정원으로 오도록 해. 그는 황제였다. 명령을 내리면 되는 일이었다. 기사는 한숨을 쉴 뿐, 명령에 거역하는 일 없이 정원을 찾았다.

누군가를 가르쳐 본 적 없다던 하디는 의외로 훌륭한 스승이 되어주었다. 다만 부당하게 내려진 명령에 보복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가르침에 손속이 없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검이라고는 쥐어본 적 없는 여린 손에 물집이 잡히고 터져나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시중을 드는 궁인들이 만류했지만 밀비가 그들의 말을 들을 이유는 없었다. 몸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색다른 경험이었다.

옛 생각을 지워내려는 듯, 밀비가 검을 휘둘렀다. 황제로 즉위하며 주변의 나라로부터 진상받은 검이었다. 손잡이는 물론, 칼날에도 보이지 않는 음각이 새겨진 화려한 의식용의 검은, 여느 진검과 똑같이 날이 세워져 있었다. 힘을 실어 휘두른 검이 그저 맞춰주듯 가져다 댄 하디의 검과 맞부딪혔다. 온 힘을 다한 탓인지 부딪힌 손으로부터 팔까지 저릿함이 타고 올라와 밀비가 이를 악 물었지만 이미 힘을 잃은 손아귀에서 떨어진 검은 바닥을 굴렀다. 밀비는 흙투성이가 된 검을 집어들어 날을 살폈다. 흠집 하나 없는 하디의 것과 달리, 밀비의 검은 날이 빠져 있었다.

"이렇게 가차없이 굴어도 된다는건 아니었는데."

"정말로 가차없이 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연습용 검을 든 하디가 어깨를 으쓱하며 밀비의 말을 받아쳤다. 날이 서지 않은 검이지만, 하디가 들고 있다면 날이 선 검이나 마찬가지여서 마주하고 있는 밀비의 몸엔 바짝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제대로 갑옷까지 갖추고 대련을 하는 탓에 호흡이 가파르다. 밀비가 검을 다시 쥐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지친 기색의 밀비와 달리 그의 스승이자, 기사는 얄미울 정도로 여유로웠다. 갑주는 커녕 정복도 제대로 입지 않은 가벼운 셔츠 차림에 한 수 접어주겠답시고 주머니에 손까지 꽂아넣고 있었다. 지치셨습니까? 미소 짓는 얼굴에, 멀찍이 대기하고 있던 여관들이 술렁이는 것이 느껴진다.

"스승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 뿐입니다만."

느슨하게 검을 쥐고 있는 손과 아무런 대비도 없는 자세에 밀비는 대꾸도 않고 달려들었다. 분명히 틈을 노린 공격이었다고 생각했지만, 하디는 자세를 고쳐잡지도 않은 채 밀비의 검을 가볍게 흘렸다. 반격을 할 새도 없이 밀비의 미간에 검 끝이 살짝 닿았다. 상처가 나지는 않았지만, 미간을 찌르는 날카로운 느낌이 섬뜩해서 밀비가 움찔하며 몸을 뒤로 물렸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인지, 휘청하며 넘어지려는 것을 단단한 팔이 허리를 감싸 간신히 바로 섰다. 하디가 반쯤 벗겨진 그의 투구를 바로 씌워주고는 검을 갈무리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라는 신호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주군과 가신의 사이가 아닌 스승과 제자로서 예의를 갖춘 인사였다. 끝이었지만, 대기하고 있던 궁인들은 다가오지 않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수련 후에는 늘 쉬었다가 움직이는 밀비의 습관을 알기 때문이었다. 궁인들을 흘긋 바라본 밀비가 투구를 벗어 옆구리에 꼈다. 잠시 검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밀비는 순순히 자신의 검을 건넨 뒤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

"기사로 지내는 것도 좋았을텐데."

"그렇습니까?"

날이 상한 밀비의 검을 살피던 하디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그가 주군으로 선택한 이는 누구보다도 황제의 자리에 걸맞는 이였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내 옆에서 천하를 내려다 볼 수 있게 해줄게. 자신을 찾아온 황제가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라 하디는 밀비를 바라보았다. 적당히 대꾸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기에 개의치 않는 얼굴을 한 그의 황제는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흠. 그럼 하디 당신이 내 선배가 되는건가."

"대련은 커녕 말도 못 거실 정도로 선배일텐데요."

"아하핫. 그런가? 그럼 역시 황제인 쪽이 낫네."

작은 여제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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