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뚝에 그림이 있는 명명랑랑

8회차, HBD

B에게 by H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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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뚝에 그림이 있는 남자애가 말했다. 개도 잠을 자느냐고. 나는 평생 개가 눈을 번뜩이며 맞이하러 달려 나오는 장면밖에 본 적이 없다고. 그러면 난 그의 팔뚝을 톡톡 두드리며 조금 웃어버리고 만다. 물론, 개는 잠을 자지 않는단다. 그들이 얼마나 충실한 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면 넌 지금보다도 훨씬 더 놀랄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러면 그 애가 안심이라는 것처럼, 예상했다는 것처럼,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웃는다. 그러고는 조금 망설이더니 두 팔로 목둘레를 꽉 감싸안아 엉겨 붙어 오는 것이다. 남자애의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카락에서는 산뜻한 녹음의 냄새가 난다. 어떤 들을 얼마나 뒹굴다 왔길래 이 여름에 봄동의 냄새를 풍기는 거니. 할 수만 있다면 그 팔에 입 맞춰 주고 싶다. 날개가 돋아나지 않은 평평한 견갑뼈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그의 살거죽 아래로 침투한 잉크는 빛바래고 흐려져 연한 청새치색. 어느새 흐리멍덩해진 덩어리는 혀를 내민 채 성글게 웃고 있다. 그것을 그가 ‘착한 개’라 칭하므로 너는 다른 무엇도 아닌 개가 된다.

개가 된 너는 곧장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누군가 핸드포크로 엉성하게 삐뚤삐뚤 그려준 막대 같은 그것으로는 충분히 그를 사랑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 상대를 전환해 그에게 질문한다. 이걸 누가 그려줬는지 기억하니. 그러면 남자애는 곤란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도리질 친다. 이제 더는 기억나지 않는 친구를 여기로 불러오라고 호령하는 것은 아무래도 잔인한 일이다. 그래도 그가 유령은 아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바로 이 개라며, 남자애는 다시 한번 신실하게 팔뚝을 척 내 보인다. 어깨선까지 꽉 말아 올린 흰 티의 피륙이 조각조각 길게 주름진다. 단단하게 꽉 힘이 들어간 굴곡 면에서 네가 다시 한번 크게 짖는다. 운다. 웃는다. 왕, 하고. 나를 하릴없이 둘에게 완패해버린 심정으로 그의 꼬리를 잘라간다.

이제 막 준비를 끝마친 너는 평화롭다거나 온순하다기보다는 전에 없이 활기차 보인다.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데도 그렇게 즐겁니, 다시는 네가 너로서 살아갈 수 없을 텐데도 그렇게 행복한 거니, 물어보면 그는 아주 희한한 것을 묻는다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가 깨끗한 두 팔로 안은 품에는 꼬리가 잘린 개 한 마리가 있고, 그 둘은 내게 이게 마지막 인사라며 허리 숙여 정중히 발음한다. 안녕히 계세요. 몹시 즐거웠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그가 구덩이를 향해 명명랑랑하게 걸어가고 나는 몇만 년 뒤에 그 자리에서 걸어나올 어떤 두 사람을 상상해 보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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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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