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생 보충 수업
7회차, 해일 님
반듯하게 잘린 직사각형 편지지가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문제집 같다
사랑의 해를 구하고자 한다면 답은
2일지 몰라,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5는 아닐까, 어쩌면 오해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골몰하는 내내 그래도
당신의 생각을 하려니 낯선 즐거움
편지 한 줄마다 들어간 한 수식어가
마음의 자물쇠을 푸는 수식이기를
골몰하는 심정으로 쓰는 편지에는
깜박 졸다 쓴 노트 필기처럼 삐뚤한
17x²-16|x|y+17y²=225의 방정식
사랑은 관성의 법칙을 따르는 듯 해
익숙해서 더더욱 멈출 수 없는 거지
짝사랑이 습관이면 고칠 수도 있나
정해진 법칙은 불변이라 진리인데
마주치는 시선과 휘어지는 눈꼬리
속절없이 시작된 심장의 진자운동
붕 뜬 마음이 최고 지점에서 다시
눈꼬리의 곡선을 따라 흔들리다가
이번엔 미소를 따라 미끄러지다가
빙글빙글 돌아서 아주 어지럽다가
사이클로이드 곡선처럼 최속으로
마음이 지면으로 내려앉는 순간에
쿵!
심장이 낙하하는 9.8의 가속도
빛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면서
소리는 파동이라는데, 아닐 지 몰라
사랑에 빠지는 소리는 불연속이고
가늠할 수도 계산할 수도 없는 탓에
이것 봐, 가끔은 온통 제멋대로 튀어나가서
너를 많이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지껄이기나 하고
나는 분명 답이 정해진 것들이 좋은데
너는 답도 없이 좋다고 너만큼은 내 맘대로 되지가 않는다고
오래 전에 영영 증발한 줄 알았던 마음이 와르르 쏟아진다
나는 영원히 학생으로 살 수 있을까
심장의 광학계를 통해 맺힌 스크린 위의 심상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과 표면에 거꾸로 맺힌 너의 얼굴
학교 종이 울린다
하교 중인 학생들은 저마다
우산을 잊어버렸다며 투덜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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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수집하는 나비
우와 이 시 진짜 신기하네요 일부러 직사각형 편지지에 맞게 길이를 맞추신 것도 좋아요 해가 2와 5라는 점도 좋았지만 뜬금없이 등장하는 방정식이 '행간'을 읽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도 좋네요 ㅋㅋㅋ 혹시나?! 하고 검색했더니 역시나! 하게 되는 구절이었어요 솔직히 관성이라는 게 뭔지 전 이해하려고 할수록 이해가 안 되던데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끌려 가는 것'도 아마 관성의 일종이겠죠? 제가 문과라 그런진 몰라도 이 시는 이과인 친구가 사랑에 빠진 것처럼 느껴져요... 라고 생각하고 제목을 다시 떠올렸는데 '이과생 보충 수업'이군요 어떻게 이렇게 의도하신 바를 명확하게 시에 담아내시는 건지!! 얘기가 나온 김에 궁금해지는데 시를 전부 쓰시고 제목을 붙이셨을지, 소재와 제목을 먼저 선정한 뒤 써내려가셨을지 들어보고 싶네요 ㅎㅎ 학교 종이 울린단 연에서 쿵 > 뚝 > 땡 의 심상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좋았어요 하늘에 비가 오는 건 사실 단지 날씨라기보다 화자의 기분에 가깝겠죠? 간지러운 시네요 재미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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