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태어난 이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러니까, 한참 잘못 태어났다니까...
내가 어디로 가야하는 지 알아? 라고 물으면 다들 각각 다른 대답을 내놓았지만, 영웅이 되어라 - 착하게 자라라 - 라는 말 투성이였다. 그는 몰래 피우던 담배 한 개비를 비벼 껐다. 아직 성인이 되려면 12월 31일이 와야 하지만 그런 것 따위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그는 반항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모범생도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억지로 학교를 다니는, 반항아나 다름없었다. 그 시선들은 일부러 접어두었다. 그는 어차피 태어나기를 잘못 태어난 오류였으니까.
누군가는 말했다. ‘좋은 말을 많이 해주면 올곧게 큰다’ 고. 누군가는 말했다. ‘에리히보다 대단한 영웅이 되면 네가 이기는 거다’ 라고 또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그는 그 어느것에도 동의할 수가 없었다. 시작부터 올바른 태생들이 나에게 말할 자격이 있던가. 뿌리가 이미 썩어있던 양파는 결국 싹을 틔우지 못하고 곰팡이가 슬어버린다. 그리고 그는 ‘영웅’ 이 되어 수확될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런던으로 오면, 영웅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누군가 말해준 것이 떠오른다. 그 사람은 끔찍한 일을 당했다. 런던에 있던 테러로. 이번에도 갈 곳이 사라졌다. 그는 애써 외면한다. 이 세계가 그에게 점지해 준 운명을 거부한다. 왜, 나는 축복받지 못했는데 너희들은 나에게 축복을 바라는가. 어린 아이같은 생각이다.
그는 담배를 한 개비 더 피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담배에 중독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는 아주, 아주 가끔만 담배를 태우기 때문이었다. 중독이라고 하면 엄연히 매일 피우는 사람이 아닌가. 그는 담배를 한 대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 냄새 빼려면 힘들겠군. 이런 생각이나 한다. 그는 일부러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다. 미래는 막연했고, 또 두려운 존재였다. 이것은 회피였으나 그는 그 점마저 회피하려 들었다. 유예기간을 주세요 - 그러나 이제 졸업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고야 말았다. 더 이상은 회피할 수 없다. 어디로 돌아가지. 갈 수가 없구나, 태어나길 어긋나 돌아갈 곳 조차 없는 초라한 인생.
그는 조용히 한 개비를 더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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