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스클리프

나의 히스클리프 11화

Espre5S0 by 이화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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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는 테네시 주의 낮은 한적도하다. 집 앞 단풍나무는 온통 붉어지다가 잎이 떨어졌다. 아침공기는 맑고 한결 숨쉬기가 좋아졌다. 집 앞을 쓰는 것은 자신의 일이라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알콩달콩 싸움을 해대는것을 보면, “으엑—!”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면서 보기가 퍽 나쁜 것은 아니었다.

"순이, 이거 봐." 앨리스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호박 모양의 장식을 가리켰다. "이게 할로윈 장식이야. 이번엔 네 첫 할로윈이야. 기대되지?"

순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할로윈이 뭐예요?"

앨리스는 눈을 반짝이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할로윈은 사람들이 코스튬을 입고 사탕을 받으러 다니는 날이야. 무섭기도 하고, 재미있는 날이기도 하지!"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코스튬?"

“귀신이 못 알아보라고! 난 있지, 마녀가 될건데—.”

“…그래요?”

순이는 여전히 의아한 듯한— 무언가 가라앉아 생각을 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할로윈이라는 개념이 그에게는 낯설었지만, 앨리스의 열정적인 설명을 들으며 조금씩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는 거 같았다. 앨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사탕- 사탕- 하고 노래를 흥얼거리었다.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가 부엌에서 애플 파이를 만들고 있었다.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가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순이는 부엌 테이블에 앉아 파이 반죽을 구경하며 물었다. "이건 뭐예요?"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건 애플 파이란다, 순이야. 가을엔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야. 오늘 저녁에 함께 먹을 거야."

순이는 파이 위에 올릴 데코레이션을 도우며 점점 더 편안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은 잎사귀 모양의 반죽 조각들이 파이 위를 장식했다. "예뻐요," 순이가 작게 말했다. 순이는 손 끝으로 하는 것은 뭐든 잘하는 거 같앝다. 피아노도 그렇고, 이렇게 작은 장식을 만드는 것도 잘하였다. 그러니 이따금씩 궁금하였다. 한국에서 순이의 가정이 어떠하였는지.

그리고 아버지는 허밍으로 가을 노래를 하면서 저녁 바베큐파티를 준비하고 계셨다. 오늘 저녁은 아주 달콤하겠구나.

저녁 무렵, 아버지는 허밍으로 가을 노래를 부르며 마당에 작은 불을 피웠다. 가족들은 따뜻한 담요를 들고 둘러앉았다. 아버지는 마시멜로를 꼬치에 꽂아 불에 구웠고, 순이는 그 과정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앨리스는 작은 손전등을 들고 할로윈 전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게 제일 유명한 이야기야. 무시무시한 호박귀신 잭 오'랜턴. 사람들이 그를 무서워해서 이렇게 호박으로 등불을 만들었대."

순이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호박으로?"

“응, 그렇대.”

앨리스는 장난스레 미소지으며 조각칼을 순이의 손을 쥐여주었다. 둘은 나란히 앉아 호박 조각을 시작했다. 앨리스는 익숙한 솜씨로 웃는 얼굴을 새겼고, 순이는 조심스럽게 작은 눈과 입을 새기며 자신의 호박을 완성했다. 완성된 호박 등불은 창가에 두었고, 따뜻한 빛이 방 안을 부드럽게 밝혔다. 순이는 처음에는 이러한 음식을 장식하려고 찌꺼기가 버려지는 것까지 아까운 양 가족이 남긴 음식까지도 먹었으나 이제는 배가 부르다며 음식을 남기기도 했다.

앨리스는 식사가 끝난 후 방으로 순이를 이끌었다. 작년에 한 마녀분장을 또 하는 것은 영 아니었으나 조금의 개조를 거치면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 순이가 같이 하니깐, 다른 색의 리본으로 잔뜩 장식을 해서 공주마녀가 되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았다. 아니면 단순히 유령이라도 순이는 눈동자가 까마니 강아지 같아서 귀여울 거 같았다.

며칠 후, 동네에서는 할로윈 축제가 열렸다. 둘이서 사이좋게 마녀 코스튬을 입고 각각 노란색과 하늘색으로 잔뜩 장식을 하였다. 둘은 함께 동네를 누비며 각 집을 돌았다. "트릭 오어 트릿!"을 외치는 무리에 섞여 사탕을 받는 순이의 모습은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사탕을 손에 가득 쥔 채로 순이는 웃으며,

"미국의 가을, 정말 좋아요." 정말로 사랑스런 미소를 지어보였다. 초콜릿을 까서 입 안에 넣고 그 달콤함을 즐기는 모습이 전쟁에서 이제 겨우 벗어나고 있는 거 같았다. 오늘의 축제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는지 유난히 밝았다.

가족은 축제의 여운을 간직한 채 마당에 모였다. 등불과 가랜드가 어둠을 밝혔고, 아버지는 할로윈의 유래를 설명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어둠과 귀신을 두려워했어. 그래서 빛으로 그것들을 쫓아내려고 했지."

순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이건 무섭지 않고 좋은 거네요." 그의 말에 가족 모두가 그러면 그동안은 잭오랜턴을 무섭다고 생각했을 순이를 상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집으로 돌아온 후, 가족들은 따뜻한 파이를 나누며 추수감사절을 계획했다. 순이는 작은 노트에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서툰 글씨로 적어 내려갔다. 단어 하나하나에 새로운 경험의 흔적이 담겨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일기를 쓸 제에 한국어로 한국 글자로 글씨를 썼으나 이제는 영어로 일기를 썼다.

"순, 이제 우리에게 가을은 너와 함께하는 계절이야," 앨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순이는 그녀의 말을 이해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고요한 행복이 담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국에도 하는 거 있어?”

“…응?”

“이맘 때 쯤에 다들 축제가 있다고 배웠잖아.”

“있어, 가족들 집에 다 모여, 멀리 있는 가족도 그리고 죽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부르는거다? 그리고 먹어, 달콤한 거… 쫀득해. 여기서는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어.”

“뭐야, 거짓말.”

“아닌데….”

순이는 볼을 살짝 부풀렸다. 그리고서는 자기도 제 모습이 웃긴 것을 아는지 피식 웃었다. 오늘은 순이가 피곤하니깐 얼른 자자고 일기장을 들고 방으로 토토도 올라갔다. 영어로 일기를 이제는 잘 썼다. 이젠 거실에서 도움을 받으며 일기를 쓰는 일은 없어질지도 모른다. 방문이 바람에 강하게 닫혔다. 그에 지지않게 앨리스도 큰 소리로,

“잘 자—!”

하고서는 방으로 들어갔다.

“최근에 앨리스도 아이다워졌어.”

“맞아, 그동안은… 좀 많이 그랬는데.”

부부는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이 아이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보기 좋았다. 아이들은 일찍 어른이 되기도 한다. 아마 순이와 앨리스도 그럴 것이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순이는 배 곪던 전쟁 고아였고 앨리스는 압박감에 시달리던 아이였다. 그의 압박감을 부모님도 이미 알았다. 모를 수 없었다.

오늘만큼은 앨리스도 압박감을 벗어던진 거 같다고 웃었다. 부부는 그를 위하야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계속 생각했다. 앨리스에게는 부담을 갖지 말라 이야기를 해주면 되지 않겠냐는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리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순이에 대해선 우리가 뭘 더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이가 전쟁을 겪었잖아. 우리가 그의 세상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어머니는 잠시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다 대답했다. “우리도 답을 알 수 없겠지.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사랑과 안정감을 주는 거야. 그 이상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표정은 어두웠다. “앨리스도 순이를 위해 많이 애쓰고 있어. 그런데… 가끔은 우리 딸도 너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

“맞아, 앨리스가 너무 책임감에 짓눌리지 않도록 해야 해.” 어머니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두 아이 모두 지금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어. 우리도 서두르지 말고, 조금씩 아이들에게 맞춰가자.”

그들의 대화는 조용히 이어졌고, 어느새 집 안에는 깊은 밤의 고요함이 감돌았다.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안도했다. 하지만 각자의 마음에는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도전에 대한 작은 걱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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