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썩어 있더라도
양파에겐 태양이 필요하다
같잖은 생각이 들었다. 너랑 나랑은 태생부터가 다르지. 그래, 그렇지 않나? 그러니 너는 빛나고 나는 빛나지 않는다, 하고 말하기엔 비약이고 억지이다. 너는 나에게 사랑을 주고 자라나게 했다. 태양이겠지, 이 못된 꼬질한 양파에게 자란 기회를 준 건…
그러니 이 이상으로 비뚤어진 것은 자기 자신의 음침하고 못된 심성 때문이다.
*하! 언제까지 그렇게 굴거야?*
귓가에 대고 누군가가 중얼대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약하고, 우유부단하고, 썩어 문드러진 뿌리를 가진 주제에 말이지… 태양을 원했다. 언젠가 올 태양을 기다렸다. 그래. 우습지 않나? 에르빈 그라나흐는 스스로가 싫었다… 그것은 뿌리깊은 자기혐오였고, 애정을 아무리 퍼부어도 채워질 수 없는 검은 구덩이 같은 것이었다.
그런 주제에 에르빈 그라나흐는… 자신에게 사람들이 다가와 주기를 감히 바랐다. 그러길 바라며 언젠가 사람들이 자신을 보기를 바랐다. 스스로를 포기하면서도, 또 누군가가 들여다보길 원하는 것… 그것은 남을 향한 기만이었고 또 자신을 망치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에르빈 그라나흐는 외면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에르빈 그라나흐가 모든 걸 외면하고 싶었던 게? 아마 처음부터가 아니었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에르빈 그라나흐가 다른 이를 갈구하던 게? 처음부터였다.
이건 같잖은 감상. 그렇다면 이제 너에게 답을 할 차례.
“당연한 소리를 하는거지만, 양파가 자라려면 태양이 필요해. 푸른 잎이 나려면 말이지.”
잠시 뜸들인다. 이 말을 하는 순간도 망설인다. 이 것이 네게 부담일 것 같아서. 네 생각은 하지 않는 이기적인 망설임.
“태양같다고 하면, 뭐라고 답해줄거야?”
그저 담담한 목소리로 묻는다. 담백하게, 그러나 간절함은 숨길 수 없을테다.
식물이란, 결국 태양을 갈구하는 존재니까.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