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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미션][코류송하] 나의 이해 불가 Onion Girl

[오마카세 타입] 만송님이 신청하신 글커미션

written by. @saniwa_jeyeon CM

 

 

 

 

 

 

 

 

 

나의 이해 불가 Onion Girl

 

 

 

 

 

 

 

 

 

 

 

 

0.

 

 

 

 

 

그는 아주 오래전에, 혹은 아주 먼 미래에 후회하는 선택을 한 적이 있다.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으나, 조금 다른 방법을 선택했으면 좋았으리라.

 

부러져 스러지는 순간까지, 코류 카게미츠는 그것을 후회했다.

 

이제는 그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타자의 일.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하고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면 그것은 없었던 일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그의 선택도 후회도, 없었던 일이다.

 

없는 일이 되었다.

 

 

 

1.

 

 

 

 

 

송하가 코류를 본 날, 코류도 송하를 발견했다. 첫눈에 반했다든가, 운명적인 끌림을 느꼈던 건 아니고, 저를 쇼윈도우에 장식된 물건 보듯 하는 눈빛에 이것 봐라? 싶었던 것이 송하에 대한 코류의 첫인상이었다.

 

계속 그런 인상으로만 남아있었다면 코류도 그런가~하고 잊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거듭될수록 송하에 대한 코류의 인상은 변해갔다. 이것 봐라? 에서 왜 이렇게까지? 하는 애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날은, 코류가 필통을 챙겨오지 않은 날이었다. 수업이 아는 내용이기도 해도 뭐, 대충 외우고 나중에 확인해야지 라며 놀고 있는 코류에게 이거 쓰라며 볼펜 하나를 내밀었다. 거절하기도 그래서 고맙다고 받아들고 생각 없이 필기하는 시늉을 하면서, 아, 얘 지난번에 날 그렇게 쳐다봤던 애구나, 떠올렸다. 첫인상만이 전부는 아닌가, 하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다음 수업시간에는 그 애가 필통을 두고 와서, 코류가 필기구를 빌려주었다. 떨떠름하게 쳐다보며 고마워, 라고 말하는 그 애와 연락처를 교환했다. 이런 얼굴도 하는구나, 싶어서 새로웠다. 별 생각 없이 한 일이었는데, 코류가 수업에 빠지거나 할 때면 그 애는 꼬박꼬박 카톡으로 과제나 알림사항을 말해줬다. 그 수업은 중간 기말 점수만 가지고 학점을 주는 수업이라 굳이 그렇게 챙겨줄 필요는 없었는데,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그런 소소한 친절과 호의가 고맙지 않은 것은 아니어서, 코류는 송하에게 술을 샀다. 분위기도 풀어줄 겸 골드벨-어차피 손님도 두 테이블 정도 밖에 없었고-도 울렸다. 그러자 송하의 표정이 달라졌다. 마음을 연 게 느껴졌다. 목구멍을 열고 술을 들이붓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재미있었다. 함께 어울려노는 게 즐거웠다.

 

함께 지내면서 알게 되는 새로운 면면들이 많았다. 산미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커피를 좋아했다. 단 걸 좋아해서, 해장으로는 보통 흰우유를 고르던 코류가 저도 모르게 초코우유를 사게 만들었다(송하는 코류가 원래 초코우유를 즐겨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되는대로 떠드는 집안 식구들에 대한 투덜거림을 잠자코 귀기울여 들어주었다. 먹고 마시고 울어도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지만, 그래도 속이라도 시원해지겠다고 감정을 털어내듯 소리내어 엉엉 우는 모습이 흉하기는 커녕, 애처로웠다.

 

함께 있으면, 즐거웠다. 주는 것 보다 받은 게 더 많은 기분이라,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보답하고 싶었다. 내가 즐거워하듯, 너도 즐겁기를 바랐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거 보다 신중할 걸?”

 

그 말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등짝을 때리는 것도 하나도 안 아팠다. 사실은, 이미 그때도 알송달송 했다.

 

다만, 확신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2.

 

 

 

 

 

코류는 제 선택에 후회가 없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고명하지만 엄격하지는 않은 집안과, 어렸을 때부터 그가 선택한 것을 밀어주고 도와줬으면 도와줬지 막거나 훈계하지 않았던 집안 식구들과, 길을 걸어가면 백이면 백 다 저도 모르게 돌아보게 만드는 뇌리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외모. 코류는 스스로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그의 선택은 그가 생각하는 최선의 것이었고, 그는 대부분 그런 선택만 하면서 살아왔다. 운 좋게도, 그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늘 그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있었고, 자부심이 있었고, 실망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타인에게 실망할 일도 거의 없었다. 무엇에 기운을 쓰고, 무엇에 기운을 쏟을 필요가 없는지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있었고, 그랬기에 혼란스러웠던 적도 거의 없었다.

 

그런 코류에게 송하는, 드물게 등장한 난제였다. 송하에 대해서는 선택조차 섣불리 할 수가 없었다. 늘 자신을 가지고 선택했는데, 왜 그 애와 관련된 것은 선택하는 것 자체도 힘들고 망설여지는지 모를 일이다.

 

경험치가 어느 정도 쌓여있으니, 타인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게 당연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만심이 아니라,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랬다. 이성의 경우, 그것이 연애감정으로 변모하는 것도 얼마나 흔한 일이었는지. 그런데 송하의 눈에서 그것을 읽었을 때 코류가 느낀 것은 ‘또 이렇게 되는구나’가 아닌 ‘기대’였다. 나를 더 좋아해주길 바라는 기대하는 마음이 코류에게는 있었다. 세상은 대체로 그의 편을 들어주었으므로, 코류는 이번에도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니까. 아직은 확신을 내리지 못했고, 그렇기에 선택을 하지 못했으니까.

 

코류는 제가 주목을 받는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제가 한 말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 왜곡되기 쉽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 확신을 내리지 않았는데, 괜히 송하가 오해하는 것이 싫어서 그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리 대답하고 말았던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 없는데?”

 

 

좋아하게 될 것 같은 사람이라면 있지만, 코류 카게미츠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띠었다.

 

그는 확신까지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신중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천천히 지켜보면서, 제 마음이 무엇인지 백퍼센트 결론을 내리는 게 코류에게는 필요했다. 그래서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너도 알게 될 거라고, 알게 될 거라고 했지? 하고 놀리듯 말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가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3.

 

 

 

 

 

시간은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코류는 당황했다. 송하가 코류를 피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작은 함께 듣는 수업 시간 시작 직전에 들어와, 코류가 앉은 곳으로 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앉은 것 부터였다. 처음에는 이상함을 못 느꼈다. 늦잠을 잤나 싶었다. 송하에게 주려고 사 온 커피는 수업이 끝날 때쯤이 되자 식어버렸다. 송하에게 가서 식어서 맛 없어도 너 주려고 산 거니까 마시라고, 그러게 작작 좀 섞어마시라고 웃으면서 말하려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고개를 돌리자, 송하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왜 무시해ㅜㅜ

-송하야아

-저녁에 올리브 갈래?

-너 좋아하는 곱창볶음 내가 쏠게;;;;;

-내가 뭐 잘못했어??

 

그렇게 애교를 섞어 보낸 카톡 메세지에서 1이라는 글자가 사라지질 않았다. 읽씹도 아니고, 아예 무슨 메세지를 보냈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것이다.

 

연애를 해본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코류가 먼저 좋아해서 시작된 적은 없었다.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코류를 좋아하는 타입들은 대체로 늘 넘치는 자신감만큼 자기중심적인 경우가 많아서, 대체로 연애의 끝은 좋지 않았다. 한눈에 봐도 송하는 그동안 코류가 만났던 사람들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지만, 그런 경험이 있는 한 코류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그게 자만이나 기만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자신에게는 충분히 논리적이고 납득이 가는 이유였으므로. 함께 있으면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좋아하게 되기도 하나? 의구심이 들기도 했고.

 

유예기간을 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섣불리 좋아한다고 말했다가 그런 마음이 아니었으면 어쩌나. 상대도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정도 마음까지는 아니었으면 어쩌나. 잘되든 잘되지 않든, 둘의 관계는 지금과는 달라질 게 뻔했다. 친구 관계에서의 송하를 좀 더 보고 천천히 결론을 내리고 싶었다. 그래서 당장에 행동에 옮기지 않았던 건데, 극과 극은 통한다고 반대쪽으로 행동하는 실행력이 송하에게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스스로가 한 선택이 틀린 적이 없는 게 아니라, 그가 그렇게 믿고 있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4.

 

 

 

 

 

함께 어울려 지내면서 시간표를 맞춰 놀고 술자리도 가졌던 덕에, 코류는 송하가 어떤 수업을 듣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송하는 보기보다는 성실해서, 술을 섞어서 들이부은 다음날에도 과제나 시험을 빠뜨린 적이 없었다. 그래서 송하의 마지막 시험이 끝날 때까지, 코류는 그 건물 앞에서 기다렸다. 그도 시험이 하나 남아있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수업 하나쯤은 재수강하면 될 일이다. 1분 1초가 천년 같았다. 시험지 들여다본다고 다 풀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빨리 내고 나오지, 란 생각마저 들었다.

 

드디어 건물 밖으로 걸어 나오는 송하가 보였다. 코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귀신을 본 것 같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는 게, 아주 조금은 정말 바빠서 그랬다고 믿고 싶었는데 진짜로 피한 거였구나, 싶었다. 코류는 송하가 도망갈세라 성큼성큼 걸어가 송하의 팔을 잡았다. 송하가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어버리자, 참다못한 그가 먼저 말했다.

 

“왜 연락 안 받아? 왜 피해?”

 

거기에 송하가 한 대답이 가관이었다.

 

“바빠서…”

 

“바빠서.”

 

기가 차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피하지 마.”

 

이 애와 함께 있어서 느끼는 즐거움을, 다른 사람과 있을 때도 느낄 수 있을까? 사소하게 오고 가는 말이 즐겁고, 그 사이를 드문드문 메우는 침묵도 기꺼운 사람이, 이 애 말고는 없는데. 나는 이 애를 계속 보고 싶어. 가능하면 함께 있고 싶어.

 

“아직 확신하지 못하지만, 나는 널 좋아하게 될 거란 생각이 든단 말이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건 아니었지만 무력함이나 좌절 같은 건 모르고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걸 스스로에게 느끼게 하는 송하가 참 야속하기도 했다. 좋아함이란 원래 이런 감정이던가? 확신을 내리지 못한 것도 코류 자신만의 잘못은 아니었을 것이다. 코류는 송하와 상관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없어서 송하가 슬퍼했으면 좋겠고, 그가 없어서 어떤 일이 생기길 바랐다. 송하가 없어서 코류가 그런 것처럼.

 

말을 하는데 눈가가 뜨거워졌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송하가 왜 이렇게 자신을 힘들게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전혀 모르겠어.

 

하지만 너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잖아.

 

무심한, 나의 송하.

 

“왜 확신을 못 하는데…?”

 

“네가 생각하는 거보다 신중한 사람이라니까……”

 

코류는 송하랑 있어서 참 좋았다. 휴게실에서 함께 투덜거리며 과제를 하는 것도 좋았고, 충동적으로 같이 보러 간 심야 영화도 좋았고, 같이 술 마시며 떠드는 것도 좋았고, 같이 초코 우유를 마시며 분수대 주변을 도는 것도 좋았다. 송하랑 있어서 참, 편안했다. 그렇게 깨닫는 것이다. 나는 그 시간들을 참 좋아하는구나. 너랑 있는 게 좋았구나. 너를, 좋아하는구나. 그제야 결론이 난 것이다.

 

나는 너로 결정했어.

잠을 설쳐서 그런가, 좀 더 그럴듯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입에서 나온 것은 그런 말이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는 송하를 코류는 오히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잠깐 침묵이 흘렀을 때, 송하가 말했다.

 

“우리, 시험 막 끝났으니까, 서로 충분히 자고 다시 이야기하자.”

 

일리가 있는 말이긴 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한 말이라서 송하도 당황한 거겠지. 좀 더 멀끔하게 하고, 진정된 분위기에서 다시 말하자. 그럼 괜찮을 거야. 진지하게 들어주고 이해 할거야. 송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한 가지만은 송하에게 당부해야 했다. 코류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연락하면 무시하지 말고 받아.”

 

물론, 송하가 그의 말을 들어주는 일은 없었다.

 

 

 

 

 

 

 

 

 

 

 

5.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카톡은 확인도 안 해, 전화는 받지도 않아.

 

그냥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코류는 송하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순순히 그녀를 보내준 것을 후회했다.

 

과제와 시험만은 성실히 챙긴다는 건, 반대로 그 두 가지만 해결되면 다른 것은 챙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코류는 송하가 자체휴강을 할 줄 아는 앤 줄 몰랐다. 술병이 나도 기어서라도 출석을 하더니, 송하에겐 코류 카게미츠가 술병보다 더 끔찍한 모양이었다.

코류는 송하가 이럴 때마다 울고 싶었다. 멋지지 않은 행동이니 진짜 울지는 않을 것이었지만.

 

그는 이제 정공법은 포기하기로 했다.

 

장수를 쏠 수 없다면 말을 쏘면 된다. 함께 어울려 논 적이 있기 때문에 송하의 친구는 코류의 친구요, 지인이요, 인맥이 되었다. 코류 카게미츠는 여유롭고 유유자적하고 특정한 무언가에 미련을 두지 않는 남자였지만, 작정하면 거머리보다 더 질긴 존재가 될 수 있었다.

 

한편 그 시각, 어딘가에서는 히젠 타다히로와 야만바기리 쿠니히로가 에취, 하고 재채기를 하고 있었다. 친구를 잘못된 죄로 웬 사내놈한테 시달리게 될 미래를 직감한 것이 분명했다.

 

사람의 일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코류 카게미츠는 생각한다. 그렇게 그는 송하의 친구들의 도움으로 송하를 불러낼 수 있게 된다.

 

코류와 송하는 여전히 아무 관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마음먹은 이상, 어떤 관계로든 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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