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레이 Alphalay

[알파레이] 사랑, 결국은 저주였다.

ⓒ유엘쓰(@Scarlet_Express)

* 본 글은 알파레이 서사 중 1943년 서사를 기반하고 있습니다. (*사실 상 가장 중요한 부분.)

* 알파드 블랙이 드림주의 감정을 눈치챈 이후를 전제합니다.

* 드관캐, 멜리사 칼렌 양이 언급됩니다.

사랑, 결국은 저주였다.

ⓒ유엘쓰(@Scarlet_Express)

“야. 너 그 얘기 들었냐?”

“무슨 얘기? 또 뭔 일 있냐?”

“아니. 알파드 블랙 또 고백 받았대!”

 

야, 야. 스칼렛 있어.  뒤늦게 소문을 몰고 왔던 학생이 눈치를 살피며 친구와 함께 휴게실에서 사라졌다. 소문이 어디까지 퍼졌는지 모르겠으나 휴게실에 남아있던 학생들마저 눈치를 보며 휴게실을 나가는 것으로 보아, 진위여부를 가릴 필요는 없어보였다. 모두가 나가고 레이시만 남은 휴게실은 적막에 휩싸였다. 본의 아니게 눈치 준 꼴이 된 레이시는 정말 억울했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물론 학생들이 왜 눈치를 보는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알파드와 레이시는 약혼한 사이고 그걸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데도 알파드가 고백받았다는 것은 그의 인기를 증명할 수 있는 척도였고 그만큼 약혼녀인 레이시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약혼녀가 있는 걸 알면서 고백하는 것이 문제였지만 알파드와 레이시가 무늬만 약혼 관계라는 것도 암암리에 다 아는 탓에 통제할 권한이 없었다.

 

애초에 무슨 수로 막겠는가. 그걸 막는 행위 자체가 서로를 억압하지 말자던 ‘그’ 약속에 위배되는 행위인 것을. 스스로 사랑하지 말자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찌 레이시가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의 이 관계마저 무너질 지 모르는데 어떻게. 레이시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여기에 있다가는 그리핀도르 사자들이 휴게실에 영영 안 들어올까봐 걱정이 된 탓이다.

 

도서관이라면 원래도 학생이 적었으니 괜찮겠지, 라는 생각에 레이시는 도서관을 목적지로 정했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 학생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귀에서 떠나질 않았다. 처음엔 자신을 향한 것으로 여긴 레이시는 그것을 무시하려 애썼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스트레스가 한계치에 다다르자 더이상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욕까지는 아니어도 무어라 따질 생각은 있었다. 그 수군거림이 자신을 향한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모두의 시선이 한 곳에 몰려있었고 수군거리는 것도 그 내용이었다. 블랙 또 고백받는 거야? 이래서 인기남은 안된다니까. 근데 저 애는 좀 귀엽지 않냐? 음. 블랙도 저 애는 좋아하지 않을까. 그치? 심지어 쟤 순혈 아니냐?

 

그 수군거림에 그제야 사람들이 모인 곳이 눈에 들어왔다. 둥글게 모인 사람들 사이로 알파드가 보였다. 척보아도 지금 상황이 귀찮다는 얼굴이었다. 이만큼 사람들이 모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정작 다른 학생들은 알파드의 표정을 분간하지 못해 긴장한 거냐며 착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레이시는 뒤늦게 알파드의 앞에 서있는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저 아이가 알파드에게 고백하려는 모양이다. 근데 어디서 봤는데… 아. 레이시는 여학생을 어디서 봤는지 떠올렸다. 로시에르.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번에 입학한 로시에르의 자제가 무척이나 귀엽다며 남학생들이 떠들던 것은 기억났다. 과연 모두가 수군댈 만한 미인이었다. 눈만큼 새하얀 은발이 독보적으로 눈에 띄었으니까.

 

뺨이 발그레 물든 것을 보니 알파드가 눈 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모양이다. 아마도 그간 알파드에게 고백했던 모든 애들이 그렇겠지. 레이시는 잠시 연장자의 마음이 되어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로시에르의 막냇딸이라더니 왜 애지중지 키웠는지 알 것도 같았다. 다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알파드 선배님, 제가 선배님을…!”

“미안한데,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다 고백하지도 않았는데 알파드는 말을 끊었다. 그 차가운 단호함에 지켜보던 학생들이 크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차인 것은 둘째 치고 제대로 말하기도 전에 거절하자 로시에르는 제법 충격을 받았는지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알파드는 저를 보고 울먹이는 로시에르를 돌아보지도 않않았다. 저 아이는 큰 용기를 내서 고백한 것일 텐데. 남이 들으면 네가 로시에르를 걱정해줄 때냐고 타박했을 생각이었다.

 

하기사 저 애가 알파드를 공략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알파드의 첫사랑과는 거리가 머니까. 알파드는 용건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섰다. 그러다 그걸 지켜보던 레이시와 눈이 마주치자 알파드는 시선을 피했다. 순간 어이가 없었으나 이내 레이시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갑자기 생긴 거리감도. 제가 부르는 걸 듣지 않고 무시하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였구나. 그랬구나. 내가, 방해를 했구나. 하긴 내가 너무 눈치가 없긴 했지. 레이시는 알파드와 한 약속을 떠올렸다. 그것은 자신과 알파드 사이를 얘기하는 약속이었으니 문제될 것이 없었다. 다만 그 상대가 부러워지는 것이다. 알파드의 첫사랑이 부러웠던 것처럼. 무려 알파드가 먼저 좋아한 사람이라니. 그간 알파드 블랙의 다사다난한 연애사를 떠올린 그녀가 울음을 삼켰다.

 

그 때 알파드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모두가 우는 로시에르를 달래느라 바쁜 사이, 알파드는 사람들 틈에서 한 사람을 발견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을. 그 백금발을, 그 푸른 눈동자를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알파드의 입이 절로 호선을 그렸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레이시의 시선도 그를 쫓아 그 끝을 바라보았다.

 

멜리사 칼렌이 소란스러운 틈 사이에 있었다. 왜 소란스워졌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있었다. 그리고 레이시는 그저 가만히 지켜보았다. 알파드가 멜리사에게 다가가는 그 모습을. 알파드의 무심한 눈이 열기를 띄고 멜리사를 향해 다정히 속삭이는 순간을.

 

“멜.”

“아가씨.”

 

야, 야. 왜, 또? 저기, 저기 스칼렛.  학생들이 뒤늦게 절 발견하고 눈치보는 것은 시야에 들어오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생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였다. 그렇게 다정한 목소리도, 눈빛도, 손길도. 레이시 스칼렛은 모르는 것이었다. 그래. 오직 멜리사 칼렌에게만 주어지고 허락된 것들.

 

그제야 깨닫는 것이다. 아. 단순한 첫사랑이 아니었구나. 그 사람이 멜리사였구나. 그 사랑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었구나. 유난히 멜리사 앞에서만 약하지던 이유도, 발부르가 블랙이 넌 영원히 안될 거라고 비아냥대던 이유도 전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레이시는 정말 토할 것 같았다. 부럽고 질투가 나서. 하필 그게 선배라서. …왜 하필 선배였을까. …왜 하필 선배여서, 난 노력해보지도 못하고 사랑을 접어야만 할까. 그만큼 속좁은 자신을 견딜 수 없어서 제일 괴로웠다. 왜 마냥 기뻐하지 못하고 또 축하해주지 못하는지. 원래라면 알파드에게 축하한다고 말해주려 했는데.

 

주변의 수군거림은 이제 소음에 가까워지고 레이시는 자신의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제 몸뚱아리가 한계를 호소하는 것이다. 이게 문제였다. 쓸데없이 허약해서 조금만 감정적으로 흥분해도 숨이 벅차오는 것이. 그러나 이런 데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이제 그녀가 쓰러져도, 기절해도 도와주러 올 사람은 없으니까. 괜히 소문만 늘어날 테니까.

 

레이시가 아주 조용히 그곳에서 뒷걸음질 쳤다. 모두의 시선이 다른 곳을 바라볼 때. 당장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을 것 같았다. 레이시가 슬금슬금 멀어지더니 모두의 시야에서 벗어나자 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저거 칼렌 아니야? 맞는데? 야, 블랙 봐. ……에이, 설마? 원래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지 않던가. 모두가 반신반의 하면서도 알파드의 시선이 멜리사만 바라보고 있는 것을 부정하진 못했다. 알파드가 멜리사 칼렌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모든 고백을 거절했음을. …그러면 스칼렛은?

 

이제 모두가 알파드의 마음이 누굴 향하고 있는 지 알게 되었던 그 순간.

 

레이시는 홀로 금지된 숲으로 향했다.

아무도 자신을 보지 못하게 애니마구스로 변한 채. 금지된 숲의 깊은 곳, 겨우 달빛만 비추는 곳에 다다르고 나서야 레이시가 울음을 토해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 고백조차 할 수 없는 마음이, 차마 미워하지도 못하는 우정이 괴로워서 울었다.

 

왜 이럴 때 그 말이 생각나는 것일까. ……그래. 아브락사스 말포이. 네 말이 맞았어. 그냥 시작부터 잘못된 거였어. 호그와트에 오지 말았어야 했어. 아니, 그 전부터. 알파드와의 약혼을 어떻게든 물렸어야 했어. 그랬으면 이렇게 아프진 않았을 테니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모두가 다 아는데 자신만 몰랐다는 사실보다도, 이러고도 끝내 알파드를 포기하지 못한 제 자신이 한심해서. 결국 알파드가 자신을 선택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사실이 끔찍할 만큼 괴로웠다. 어떻게 지켰는데. 이 마음을 들켜서 지금의 관계마저 깨질까봐 얼마나 조심했던가. 친구로도 남지 못할까봐 삼키고 또 삼키지 않았던가.

 

그랬는데 이게 다 뭐란 말인가. 레이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랑이 미웠다. 처음엔 부모님을. 두 번째, 세 번째엔 그녀의 남자친구들. 그리고 이제는 약혼자인가.

 

겨우 지키고 있던 별마저 제 곁을 떠나버릴 걸 알았을 때.

 

그녀는 사랑에 좌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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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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