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레이] Laicy Scarlet
ⓒ카렌(@K__Charactor) 씨 커미션
* 본 글은 알파레이가 파혼한, 1945년 서사를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전글, < I Envy You >를 읽고 오시면 더 좋습니다.
Laicy Scarlet
ⓒ카렌(@K__Charactor) 씨 CM
알파드 블랙과 레이시 스칼렛의 파혼은 호그와트를 한순간에 달아 올리기에 충분했다. 시끄러워진 호그와트가 조용해지기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두 사람이 포함된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은 물론이고, 두 사람의 약혼 얘기를 알고 있던 몇몇의 다른 기숙사 학생들의 말까지 얹혀져 조금 과장하면 호그와트의 모두가 두 사람의 파흔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다.
그저 파혼한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사실 약혼도 알파드에게는 큰 의미가 있지 않았다. 약혼할 당시에 두 사람은 약혼이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두 사람의 의견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순전히 어른들의 이익을 위해 일종의 희생양으로 사용된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각종 이익을 취득하기 위한 조항들과 조건이 가득한 약혼을 이해하기에. 두 사람은 어리고 어렸다.
그 시절에 한 약혼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적어도 알파드 블랙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그의 삶 대부분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로. 아니. 어쩌면 그 사실마저 아무릴지 않다고 여기며 위안 삼았던 것일 수도.
알파드 블랙과 레이시 스칼렛의 관계는 약혼 관계였다. 어떤 사랑조차 관여하지 않은, 순수 혈통이라는 그들의 혈통 하나를 지키고자 한 정략혼. 분명 첫 시작은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어른들의 말처럼, 혈통은 매우 고귀한 것이었을 수도 있지 않는가. 시작은 그랬을지언정. 지금 와서는 그 의미가 달랐다. 약혼에 사랑은 없더라도, 서로에게 애증만큼은 존재했다.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어쩌면 가족보다 더 친한 사이였으며, 서로가 없는 삶을 상상해 본 적조차도 없었다.
알파드에게서 사라진 그녀의 빈자리는 제법 크게 다가왔다. 두 사람이 지금까지 했던 것을 사랑이 아니었다고 단정짓지는 못하지만, 어쩌면 그는 혼자서라도 그녀에 대해 일말의 관심과 애정이 있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일이 그에게 이리 크게 느껴질 일이었겠는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알파드 블랙은 그녀가 없는 일상에 점차 적응해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레이시는 알파드의 눈앞에서 완전 사라진 사람처럼 굴었기 때문이었다. 고의였는지, 혹은 의도가 아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거의 대부분이 졸업하고 알파드 곁에 거의 남지 않은 지금, 레이시 스칼렛이 그의 곁에서 떠난 건 타이밍으로 보았을 땐 오히려 가장 적합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또 한 번 속였다. 자신의 삶에서 그녀가 사라진다고 해서 크게 변함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실상 알파드는 자기 암시를 걸었던 것이다. 슬리데린 기숙사에서 함께 지냈던 대부분의 학생들이 - 멜리사 칼렌, 톰 리들을 포함해 함께 몰려다니고는 했던 학생들 - 졸업했기 때문일까, 주로 슬리데린 커먼룹에 있던 알파드도 점차 커먼룸에 오는 일이 적어졌다. 시그너스는 원래도 레이시와 그리 친분이 있지 않았던 터라, 그의 앞에서 그녀에 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시그너스의 입장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꺼내 굳이 그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그녀의 말을 꺼내는 건 독이 될지언정 득이 되지는 못했다. 눈치 빠른 시그너스는 알파드에게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다.
한편, 발부르가도 알파드와 레이시의 파흔 소식을 접했다. 졸엄생 치고는 매우 빠른 속도였으며. 가장 먼저 접했다. 알파드의 친누이이자, 블랙 가문의 실세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발부르가는 사실 레이시의 존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레이시 스칼렛, 그녀가 발부르가에겐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다. 그저 그녀는 동생을 앗아간, 적처럼 생각했기에.
적어도 발부르가에게 있어서. 알파드 블랙과 레이시의 파혼은 매우 우호적인 일이었다. 드디어 정신을 차렸나 보네. 발부르가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작 파혼 선언은 알파드가 아니라, 스칼렛의 못이었음에도. 알파드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발부르가는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잘했다고만 할 뿐, 레이시 스칼렛의 이름을 한순간도 언급하지 않았다. 마치 없었던 사람인것처럼.
알파드는 그런 자신의 가문 사람들에게 이유 모를 혐오감을 느꼈다. 가문 간의 약혼도 예언자 일보에 실릴 정도로 대대적인 일인데. 파혼에 대한 파급력은 마법사 세계에 얼마나 크게 작용하겠는가. 뭐, 영향도 물론 중요하지만. 레이시 스칼렛은 알파드 블랙의 약혼녀가 아니던가. 아, 약혼녀였던 사람. 그런 그녀를 없던 사람 취급하는 모습에 알파드는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지만, 애써 억눌렸다.
슬리데린 기숙사, 달이 잘 보이지도 않는 것 같은 칠흑 같은 어둠 속의 늦은 시각. 알파드는 그렇게 그녀를 잊기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문제가 있다면, 눈을 감아도 떠도 그녀의 모습이 뇌리를 스친다는 것이었다. 그는 되뇌었다.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 그저 같이 있으면 즐거웠고, 어떻 때 놀리면 오는 반응도 제법 귀여웠고. 가까이 가면 도망가고 싶어서 발버둥을 치는 것을 보는 게 재미있었을 뿐이었다. 그걸 사랑이라고 정의하던가? 글쎄,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거리가 멀지 않은가. 알파드의 밤은 이유 모를 억울함과 아쉬움에 깊어져만 갔다.
알파드를 진정시키는 건 오리온뿐이었다. 원래의 그와 같았다면. 그도 알파드를 무시하거나 한심하게만 봤을 테지만, 지금의 알파드에게는 오리온의 위로가 절실했다. - 멜리사 칼렌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상담하기에는 그도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느낌이 무의식에서도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레이시 스칼렛과의 파혼 전, 그가 가장 사랑했던 첫사랑이니까. 첫사랑에게 연애 상담 비슷한 것을 하면 안 된다라는 사실 정도는 알파드 블랙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 오리온은 한숨을 쉬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오리온 블랙이 알파드 블랙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다.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