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레이] 사랑의 종말
ⓒ유엘쓰(@Scarlet_Express)
* 본 글은 드림-알파레이의 1955년 서사를 기반하고 있습니다.
*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열람 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 드관을 맺은 멜리사 칼렌 양이 등장합니다.
사랑의 종말
ⓒ유엘쓰(@Scarlet_Express)
그녀의 삶은 사랑에 저주받은 것 같다.
예로부터 그랬다. 처음에는 그녀의 부모님이었다. 이뤄지지 못한 사랑을 놓지 못하고 기어이, 그녀의 눈 앞에서 부모님의 목숨을 끊어낸 그 남자. 차마 어린 자신까지 죽이지 못한 것이 미약하게 남은 양심 때문이었는지, 제가 사랑한 여자를 닮았기 때문인지.
두 번째는 자신의 첫 번째 남자친구였다. 고백은 자기가 해놓고 이별도 잠수해서 알려준 남자.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더니 졸업 직전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본인은 졸업하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건지,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는지.
세 번째는 두 번째 남자친구였다. 안 들킬 거라 자신했던 건지, 뻔뻔하게도 숨기지도 않고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남자. 그 이후로는 호그와트 내에서 스칼렛은 남자 보는 눈이 없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누군들 보는 눈이 없고 싶어서 없나.
마지막은 그녀의 약혼자였다. 사랑에 저주받았음을, 미움받고 있음을 열실히 깨닫게 만든 남자. 알파드 블랙. 그 이름 다섯자만 들어도 여전히 심장 떨리는 것이 이쯤되면 부정맥인 것도 같다.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알파드 블랙이 사랑한 건 내가 아니었는데.
대체 내가 뭘 했다고 이리 미움받고 있는 건지. 신이든 사랑이든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사랑도 신도 참 무심하시지. 그 잠깐 따져겠기로서니, 설마 대답을 이렇게 돌려줄 줄은 몰랐다.
그것은 본능과 결이 닮아있었다. 어떻게 그 때 부모님이 보고 싶었을까. 할 수 있는 건 훨씬 많았는데. 하필이면 부모님이 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이게 살아서 볼 수 있는 마지막이란 걸 느꼈던 걸까.
마음 속까지 시린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평소 체력이 적은데다 면역력도 낮아서 쉽게 감기에 걸리곤 하는 레이시 스칼렛으로서는 밖으로 나가면 안되는 날씨였다. 심지어 바로 얼마 전,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저주 때문에 피를 토하는 지경이었지 않은 가. 덤블도어 교수가 찾아와 그 저주를 해독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바깥 구경은 꿈도 못 꿨을 일이었다.
그러니 알파드 블랙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재회한 이후로 레이시의 말이라면 거절할 생각도 하지 않고 뭐든지 들어주었던 알파드였지만 이번 부탁만큼은 들어줄 수 없었다. 저주가 해독되었다지만 몸은 병에 걸려 많이 아픈 상태였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프면서 어딜 간다고 그래? 제발 집에 있자, 응? 로즈, 제발-
알파드의 간절한 말을 듣고 내가 뭐라고 했더라. 그래, 부모님이 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어릴 적, 세 사람이 단란하게 찍은 가족사진이 아니라 부모님의 이름이 새겨진 그 비석이, 무덤이 보고 싶다고. 잠깐만 보고 오면 안되겠느냐고. 레이시가 힘이 없는 목소리로 간청했고 알파드는 그런 레이시를 이길 수 없었다.
아주 잠깐만이야? 약속한 거야? 레이시에게 부모님이 어떤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알파드였기에 반대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레이시에게 기어이 약속을 받아낸 알파드는 겨우 일어선 레이시를 안아들고, 스칼렛 부부가 뭍힌 곳으로 향했다.
시린 빗속을 뚫고 도착한 부모님의 비석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더라. 그러니까… … ……. 레이시는 이제 자신의 의식마저 몽롱해진 것을 느꼈다.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들이 들렸고 흐려진 시야 너머로 흐릿한 형체가 보였다. 또 제 뺨으로 뜨거운 것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액체 같았다. 가령 눈물같은. …눈물? 레이시는 그제야 힘겹게 눈을 떠 제 눈 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 알파드. 내 연인아. 네가 울고 있구나. 평소 레이시라면 뭘 울고 있냐고 타박하거나 놀렸을 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의 레이시에겐 그럴 기력이 없었다.
항상 날카롭던 붉은 눈동자는 그 광채를 잃어가고 있었고, 입가에선 마를 새도 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손을 들 힘조차 없었다. 아침부터 내리던 시린 비는 오후가 넘어서도 그치긴 커녕 더 심하게 내리고 있었기에 그녀의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얼음장과도 같았다.
울지 마. 이렇게 될 거 알고 있었잖아, 우리. 소리없는 유언을 읽은 알파드의 은회안이 좌절하며 간청했다. 그러지 말라고. 제발 포기하지 말라고. 힘없는 손을 끌어다 잡아보아도 얼음장 같은 체온은 되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제발, 로즈. 레이시.
아. 이제 기억났다. 부모님의 비석 앞에 도착한 순간, 그녀가 쓰러졌다. 정확히는 피를 토했고 그 다음에 중심을 잃고 휘청이더니, 기어이 쓰러지고 만 것이다. 레이시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런 저주였구나. 저주가 덜 풀렸다기엔 상대가 알버스 덤블도어였음으로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럼, 남은 것은 저주의 원래 목적이다.
저주가 풀리면 죽는 저주라니. 이토록 모순된 말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긴 그러니 덤블도어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겠지. 레이시가 시큰둥히 생각하며 흐린 시야로 알파드를 눈에 담았다. 음, 우는 알파드라니.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이런 일로 보게 되었다는 게 유감일 정도로.
레이시! 익숙한 외침이 들린다. 자연스레 부드러운 백금발이 떠올랐다. 다정히 웃던 눈동자도. 다시 만나서 화해했을 때 기뻐하던 웃음도. …선배. 멜리사 선배. 닿지 못할 목소리로 레이시는 그녀를 불렀다.
제발 아니길 빌었는데. 덤블도어에게 편지를 받고 얼마나 부정하고 부정했던가. 멜리사 칼렌은 지금 이 순간이 모두 거짓이길 바랬다. 전서조를 받은 멜리사는 자신이 회의 중이라는 사실도 뒤로 한 채, 빗자루를 들었다. 얼마나 시린 비가 내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분명 저주가 풀렸을 레이시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알파드의 품에 안긴 레이시를 보고서 멜리사 칼렌은 무너져내렸다. 자신을 보면 늘 웃으며 맞이해주던 눈동자가 흐릿해져 있었다. 분명 어제 다 나으면 칼렌즈에 방문하기로 약속했었는데. 왜 일이 이렇게 되었지? 제 몰골을 신경쓰지도 않고 멜리사가 레이시에게 다가갔다.
왜, 왜 이러고 있어. 멜리사의 울음 섞인 물음에 레이시는 그저 웃어보였다. 말할 힘도, 목소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난 운이 좋네. 죽는 순간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둘러싸여서 죽으니까. …우리 선배는 웃는 얼굴이 더 이쁜데, 이건 아쉽네. 알파드나 멜리사가 들었다면 그런 소리 말라며 기겁했을 얘기였다.
눈 앞에서 새까만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이제 때가 된 모양이다. 멀리서 아는 얼굴들이 흐릿하게 보이자 레이시가 마지막으로 그 얼굴들을 눈에 담았다. 같은 기숙사인 플리몬트 포터와 루베우스 해그리드가 있었고 의외로 오리온 블랙도 보였다. 쟨 왜 또 충격받은 얼굴이람.
아, 진짜 한계야. 눈 앞이 핑 도는 것을 느낀 레이시가 마지막 힘을 짜냈다. 이 말은 하고 가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알파드. 작은 부름에도 알파드의 시선이 레이시를 바라보았다. 레이시는 마지막 힘을 다해 예쁘게 웃었다. 두 사람에게 이 마지막 순간이 슬프게 기억되지 않길 바라며.
알파드. 사랑해.
……부디 나의 사랑이 단 한 순간이라도 널 행복하게 만들었기를.
그 말이 알파드 블랙에게 어떤 의미일지는 미처 생각치 못한 채.
그렇게 레이시 스칼렛이 눈을 감았다.
1955년 08월 24일.
바야흐로 레이시 스칼렛의 종말이었다.
그리고 알파드 블랙을 이룬 세상의 종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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