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레이 Alphalay

[알파레이] Love or Lie...?

ⓒ유엘쓰(@Scarlet_Express)

Love or Lie…?

ⓒ유엘쓰(@Scarlet_Express)



삼 년이라는 시간은 길었다. 크게 길지 않고 딱히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레이시 스칼렛은 오랜만에 평화와 안정을 맞이했다.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으로부터, 자신의 가문, 마법세계까지.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온전히 레이시로서 보내는 시간이었다.

 

자신을 이루던 것을 내려놓는 것은 두려웠으나, 새로운 것으로 다시 채울 생각을 하니 즐거웠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 마법이 없는 세계. 머글들의 사회에서, 레이시는 새로운 자신을 찾아나섰다. 물론 머글세계에서의 생활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녀의 부모님이 머글친화적이었대도, 그녀는 머글이 아니다. 머글로 살아본 적이 없으니 어딘가 어색하고 서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도움으로 접한 지식들과 레이시 특유의 끈기있는 노력 덕분에 어렵지 않게 머글세계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처음엔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던 이웃집 머글들도, 날 선 눈매와 다르게 친절한 레이시의 태도에 마음을 열고 다가와 주었다. 특히 맞은편에 사는 40대 중반의 중년 부부와 친해지게 된 것은 정말 행복했다. 그들은 레이시에게 부모님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그들과 있으면 레이시는 자연스레 웃을 수 있었다.

 

더이상 괴로워하지 않고 부모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에는 그 부부의 공이 매우 컸다. 여전히 슬펐지만 이제는 부모님의 사진을 볼 수 있었고 그들과의 추억을 떠올려도 아프지 않았다. 사랑이 빼앗아가는 게 있다면, 사랑이 주는 것도 있다는 걸, 머글 부부로부터 배웠다.

 

그 덕분에 머글세계에서의 생활은 충분히, 아니. 매우 만족스러웠다. 비록 여전히 장미꽃을 시들게 하지 않고 잡거나 만질 수는 없었으나 장미 향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어쨌거나 장미는, 그녀의 부모님이 생전에 가장 좋아하시던 꽃이었으니까.

 

레이시는 파혼 이후로 오랜만에 자신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또 느꼈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세상이란 의외로 레이시의 적성에 잘 맞았던 것이다. 그러니 레이시가 살아숨쉬기엔, 삼 년이란 시간은 만족스럽게도 길었다.

 

하지만 알파드 블랙을 잊기에는 짧았는지도 모른다. 어두운 밤이 되면 레이시는 이유 모를 슬픔과 외로움에 잠겨야만 했다. 벽난로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두꺼운 이불을 뒤짚어 쓰다 못해, 온 몸에 둘렀는데도 추웠다. 그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았다.

 

해가 뜨는 낮까지 번진 추위에 덜덜 떨고 있을 때. 차마 버리지 못하고 챙겨오고야 만, 어릴 적에 알파드와 찍은 사진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보자 마자 마치 누가 마법을 부린 것처럼, 눈 녹듯이 사라진 추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레이시가 헛웃음을 흘렸다.

 

삼 년 동안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인데도. 잊기는 커녕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네가 없어서 외롭고 슬프고 추웠다는 사실을. 그 사실에 레이시는 괴로웠으나 기뻤다. 사랑이 아닌 줄 알았는데 어쩌면 널 정말 사랑한 걸지도 모른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그래서 레이시는 아주 오랜만에 마법세계에 방문할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돌아간다거나 오래 머물 생각은 아니었으므로 짐은 아주 간단하게 챙겼다. 짐이래봤자 손수건과 부모님 앞으로 썼던 편지, 읽을 소설책, 그리고 지팡이가 전부였다. 마법세계로 떠날 때는 이웃 주민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짧은 쪽지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삼 년 만에 방문한 마법세계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모든 것이 그녀가 기억하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고 있었으니까. 다만 사회 분위기는 썩 좋지 못한 모양새였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것을 듣자하니, 톰 리들이 기어이 그 한심한 계획을 실행에 옮긴 것 같았다.

 

짧게 한숨을 내쉰 레이시는 일반 여관에 방을 잡고 호그스미드를 둘러보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호그스미드에도 사람이 적어 한적했고 덕분에 레이시는 느긋한 걸음걸이로 호그스미드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삼 년 간의 부재 덕분인지 레이시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알아보는 몇몇 사람들은 모두 레이시의 부모님을 아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레이시를 반갑게 맞이해준 덕분에 평화로이 안부 인사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그들과 부모님에 대해 대화를 나누느라 날이 저문 줄도 몰랐던 레이시는 뒤늦게 여관으로 돌아가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붉은 노을과 뒤섞여가는 어두운 하늘을 보고 있자니 다시 추워지는 것 같았다. 밤하늘을 보며 대화를 나누던 시절이 떠오른 탓이었다. 이렇게보니 알파드가 제 인생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그런 주제에 그를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자신이 멍청해보였다.

 

하늘만 보고 걸어간 탓인지 레이시는 자신의 다리에 무언가 부딪힌 것을 뒤늦게 깨닫고 아래를 바라보았다. 야옹. 짧은 울음소리를 낸 것은 검은 고양이였다. 마치 그녀처럼. 자신의 애니마구스를 연상케 하는 고양이에 레이시가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안녕, 아가. 미안해, 널 못 봤어. 다치진 않았니?”

 

레이시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지 고양이는 레이시의 손에 머리를 비비며 울었다.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 레이시의 눈에 고양이가 목에 찬 목걸이가 보였다. 자신의 눈색과 똑같은 붉은색 목걸이 끝에는 작은 팬던트가 달려있었는데 그 뒷면에는 체리라고 새겨져 있었다.

 

“아가. 네 이름이 체리니?”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고양이는 야옹, 울었다. 체리라…. 생전에 어머니가 좋아하시고 자신도 좋아했던 과일이라서 그런지 이상하게 더 눈길이 갔다. 넌 나랑 참 많이 닮았구나. 누가 보면 레이시의 고양이인 줄 알지도 모를 일이었다. 레이시가 웃으며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는데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왔다.

 

“체리! 어디 있어?”

“아. 아가. 네 주인이 널 찾나 봐.”

 

레이시의 말에 뒷발로 제 몸의 먼지를 털어낸 고양이가 야옹 울었다. 마치 제 주인에게 자신은 여기에 있다고, 네가 찾으러 오라고 부르는 모양새였다. 고양이를 찾는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레이시는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게 목소리가 낯익은 것이, 갑자기 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체리 블랙! 여기 있었으면 말을 해야―”

 

아. 레이시에 소리없이 탄식을 내뱉었다. 모퉁이를 돌아 나타난 것은 레이시가 너무도 잘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흑단결 만큼이나 고운 검은색 머리와 언젠가 그녀가 별을 닮았다며 칭찬한 은회안이 보였다. 고양이를 오랫동안 찾아다녔는지 흐트러진 차림새였다.

 

레이시가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키며 뒷걸음질 쳤다. 고작 실물 하나 봤다고 주체할 수 없이 뛰는 제 심장이 너무도 낮설었기 때문이다. 멈출 줄 모르고 뛰는 것이 고장난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아니라 꼭 알파드가 주인인 것 마냥 구는 것도 같았다.

 

반면 알파드는 한 발자국씩 다가왔다. 못 알아볼 수 가 없다. 자그마치 삼 년 동안 그가 그리워하다 못해, 어떻게든 찾고 싶었던 사람이었으니까. 꿈에조차 나와주지 않아 원망스러웠다가 네가 보고 싶다고 울었던 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니 꿈일 수 조차 없다.

 

둘 사이에 있던 고양이는 영특하게도 상황을 파악하고 스리슬쩍 자리를 피해주었다. 물론 언제든 알파드가 자신을 찾을 수 있게 가까운 곳으로. 눈치 빠른 고양이가 물러나자 알파드는 망설이지 않았다. 성큼성큼 다가온 알파드는 그대로 레이시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ㅇ, 알파드―”

“보고 싶었어. 로즈, 네가 너무 많이 보고 싶었어.”

 

사람들이 아는 레이시였다면 이상한 소리하지 말라고 타박하거나 다그쳤을 것이다. 그렇게 매몰차지 못했던 이유는 그녀를 끌어안은 팔과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파드가, 그것도 레이시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뿌리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알파드의 등을 토닥였다. 그 손길에 떨림은 멈췄으나 끌어안은 팔에서 힘이 풀릴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마치 엄청 소중한 걸 끌어안은 모양새라 레이시의 기분이 묘해졌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더 꿈 같았던 것은, 알파드의 말 때문이었다. 보고 싶었다니. 누가? 알파드가? 누구를? 나를? 이것이 얼마나 낮선 조합인가. 레이시의 오랜 짝사랑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일이었다. 그러니 이것이 설령 레이시를 놀리기 위한 빈말이나 농담이라고 하더라도 기쁜 말이지 아닐 수 없었다.

 

“저기―, 알파드 블랙? 잠시 나 좀 놓아줄래?”

“싫어. 그럼, 또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릴 거잖아. 이렇게 얘기해.”

“……뭐?”

 

이러면 자꾸 오해하게 되는데. 학창 시절, 알파드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던 자신이 떠올라 레이시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정말 자신을 놀리기라도 하는 건지. 혹여 뛰는 심장 소리가 들릴까 노심초사하며 레이시가 안부를 물었다.

 

형식적인 안부 인사였으나 삼 년 동안 편지 하나 주고 받지 않았으니, 레이시나 알파드나 둘 다 진심이 담긴 인사였다. 알파드는 레이시의 예상대로 였으나 멜리사 칼렌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레이시가 의아해했다. 반대로 머글세계에서 산다는 레이시의 말에 알파드는 깜짝 놀랐다.

 

그래서 널 못 찾은 거구나. 알파드의 작은 중얼거림에 레이시도 놀랐다. 자신을 찾을 줄은 몰랐다. 파혼했으니 자유로워져서 자신은 거들떠도 보지 않을 줄 알았다. 설마 찾았을 줄은…. 아, 이러면 안되는데. 심장이 통제를 잃고 마구잡이로 요동치기 시작한다.

 

“……정말로? 정말 날 찾았어?”

“…뭐?”

“왜? 우린 파혼했잖아. 굳이 찾을 필요는 없는데…”

 

스스로가 생각해도 한심한 질문이였는지 말 끝이 점점 흐려졌다. 그러나 알파드는 그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레이시의 뺨이 발그레 물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고 레이시의 뛰는 심장소리를 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불규칙적으로, 고장나버린 것처럼 뛰는 소리를.

 

알파드는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근 삼 년 간, 레이시를 그리워하며 몸부림쳤던 순간들을 단 한 번에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혹여나 자신이 잘못 들었을까봐 레이시의 심장께에 귀를 바짝 대고 심장소리에 귀기울였다. 당황한 레이시가 있는 힘껏 밀어보았으나 당연하게도 요지부동이었다.

 

“……레이시. 로즈. 아직도 나 좋아해?”

“ㅁ,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순식간에 얼굴이 체리처럼 빨갛게 물든 레이시가 작게 몸부림쳤다. 미쳤나봐! 제 마음을 들켰다는 생각에 순간 이성이 마비됐다. 알파드야 워낙 눈치가 빠르고 학창 시절에도 알았으니 지금도 이상할 것이 없었으나, 삼 년 만에 만났기 때문인지 레이시의 리액션이 고장나버리고 만 것이다.

 

“난 사랑하는데.”

“……뭐? ㅈ, 장난하지 마-”

 

레이시는 당연하게도 장난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알파드에게는 학창 시절의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알파드가 자신을 좋아하게 될 리 없다고, 레이시가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상황을 알파드로서도 다 아는지라 무어라 설명하는 대신 레이시의 손을 잡아 그 손바닥에 짧게 입맞췄다.

 

레이시가 움찔거리던 말던 그대로 그 손을 자신의 심장께에 가져다 대었다. 쿵쿵쿵. 레이시의 손바닥 아래로 거세게 뛰는 심장 박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쩌면 레이시의 심장보다 더 빠르고 더 크게 뛰는 심장이. 말도 안돼.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들어 알파드를 바라본 레이시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레이시의 뺨 위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알파드가, 그 천하의 알파드 블랙이 울고 있었다. 역시나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한 레이시가 손을 뻗어 그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 모습을 보니 차마 장난하지 말란 소리를 입 밖으로 낼 수 가 없었다.설마 진짜로? 알파드가 나를?

 

“…정말로? 나를? 대체 언제부터?”

“잘은 몰라. 그냥, 네가 갑자기 없어져서 알았어.”

“…나를 좋아한다는 걸?”

“응….”

 

아, 어떡하지. 레이시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입술만 움찔거리며 아무 말도 못했다. 아직 꿈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게 말이 되는가? 알파드에게 고백을 받다니. 학창 시절에 바라고 바라던 소원이, 졸업하고 나서 이루어질 줄은 몰랐는데.

 

정말 말도 안된다. 알파드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게. 그도 그럴 것이 사랑은 늘 레이시에게 잔인했기 때문이다. 늘 무언갈 빼앗아가기만 하던 것이 갑자기 이렇게 믿지 못할 것을 가져다 줄 줄은 몰랐다. 역시 거짓말이 아닐까? 아무리 주는 사랑도 배웠다지만, 알파드의 사랑은 레이시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뛰는 심장 박동은 진짜였고 알파드가 고백한 것도 사실이었다. 비록 그 진위 여부를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 순간은 거짓말이 아닌 것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꿈 같은 현실에 레이시가 어쩔 줄을 몰랐다.

 

이젠 뛰는 심장이 제 것인지 알파드의 것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뒤늦게 자신의 얼굴이 붉어져 있다는 걸 깨달았으나 숨길 도리가 없었고 숨길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알파드는 여전히 레이시를 꼭 끌어안은 채였고 대답을 갈구하 듯, 레이시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로즈. 이젠 나 안 좋아해?”

 

그렇게 묻는 목소리가 다시끔 떨리고 있어서 레이시는 더이상 부정할 수 가 없었다. 설령 장난치고 있는 거라 하더라도 뭘 어쩌겠는가. 외로워서 추위에 몸부림칠 만큼 그리웠던 사람이다. 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 말하는데 어찌 안 흔들릴 수 있겠는가.

 

“…좋아해. 아직도 좋아해.”

“응. 나는 사랑해.”

 

레이시는 고백하고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어 또 발버둥쳤으나 그럴 수록 끌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갈 뿐이었다. 물론 알파드가 레이시를 놓아줄 이유가 없었다. 아직도 좋아하고 있다는 말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레이시는 절대 모를 것이다. 그대로 레이시의 눈꺼풀과 뺨에 입맞춘 알파드가 레이시를 바라보며 웃었다.

 

“알파드?”

“로즈. 우리 집에 가지 않을래?”

“지금? 나 여관에서 묶기로 했는데…”

“그건 취소해도 되잖아. 응?”

 

레이시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알파드가 세상 처량해 보이는 얼굴로 레이시를 올려다 보았다. 레이시가 자신의 얼굴에 약하다는 걸 알고 이용한 것이다. 애초에 좋아하는 사람이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데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넘어갈 수 밖에 없는 레이시는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레이시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알파드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사람의 집에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법세계에 있을 동안 만이라면 어렵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어차피 마법세계에선 잠깐만 머물 예정이었으니 숙박하기로 한 여관에 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알파드는 그 잠깐을 기다릴 생각이 조금도 없었던 모양이다. 알파드는 레이시를 내려주지 않았고 어느새 돌아왔는지 모를 고양이가 앞장 서서 걷자 그 뒤를 따라갔다. 레이시가 내려달라고 어깨를 툭툭 쳤으나 여관에는 자신이 말하겠다고만 할 뿐 내려주지 않았다.

 

“뭐하는 거야! 내가 걸을 수 있어!”

“알아. 근데 내가 떨어지기 싫어.”

 

알파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으나 레이시에겐 제대로 된 직격타였는지 당장 터질 듯이 얼굴을 붉힌 채, 얌전히 안겨 갔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레이시가 간과한 것은, 알파드에겐 레이시를 돌려보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는 것이다.

 

레이시가 마법세계에 돌아온 그 날.

그 날 이후, 레이시가 머글세계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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