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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미션][짓큐사니] 여름 감기

[오마카세 타입] 김제스님이 신청하신 글커미션

written by. @saniwa_jeyeon CM

 

 

 

 

 

 

 

 

 

여름 감기

 

 

 

 

 

 

 

 

 

 

 

 

0.

 

 

 

 

 

그래도, 카호로서는 무척 큰 결심을 하고 한 말이었다.

 

- 그러니까, 짓큐씨가 괜찮다면. 우리, 같이 사랑을 하는 방법을 알아가도록 해요.

 

- 좋아. 카호씨가 불안하다면, 내가 내 도생을 걸고 노력할게.

 

- 잘 부탁해요, 짓큐씨. 고마워요.

 

- 나도 잘 부탁해, 카호씨. 고마워.

 

그렇게 연인이 된 지 일주일. 카호와 짓큐 사이에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하루하루가 정신 없이 바빴고, 카호도 짓큐도 딱히 달라진 게 없었다.

 

마냥 뭐든지 좋다거나, 이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사냐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같이 있으면 충분하고 좋았다.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친밀하고……그 모든 것은 연인이 되기 전에도 그러했기 때문에.

 

사실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고, 그러지 않아서 카호는 안심이 되었다. 이게 카호와 짓큐, ‘우리’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싱숭생숭하고 미지근하게 일주일이 지나갔을 때 즈음, 짓큐가 감기에 걸렸다.

 

바보는 안 걸린다는, 여름감기 였다.

 

 

 

 

 

 

 

 

 

 

 

 

 

 

 

1.

 

 

 

 

 

이불만 펴서 옷도 안 갈아입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깨어난 토요일 아침. 드물게 카호가 짓큐보다 눈을 먼저 떴다. 눈을 꿈뻑꿈뻑 뜬 카호가 옆 이부자리를 바라보자, 짓큐가 여전히 꿈나라를 헤매고 있어서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짓큐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자리에서 일어난 카호는 아침 식사로 뭘 만들지 고민했다. 아주 오랜만에 아침식사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늘 짓큐가 먼저 일어나서 만들어줬으니까.

평소에는 계란후라이를 먹으니까, 계란말이나 찜이 좋을까? 아, 구운 소세지도 먹고 싶다. 칼집까지 내는 건 귀찮으니까 안 할거지만.

 

메뉴를 정한 카호는 시끄럽지 않게, 부지런히 움직였다. 계란말이를 하고, 결국에는 칼집을 내서 문어 소세지를 만들고, 토마토도 씻어서 먹기 좋게 썰었다. 만든 음식을 식탁에 옮기고, 수저를 챙겨놓을 때까지 짓큐는 일어나지 않았다. 어지간히 피곤했나보다 싶어 더 자게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때맞춰서 식사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 카호는 짓큐를 흔들어 깨웠다. 먹고 다시 자라고 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한참을 못 일어나던 것과는 달리 짓큐는 카호가 살짝 손을 대 흔들자마자 눈을 떴다. ‘카호씨…’하고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이상하게 갈라지는 것처럼 들렸다. 이때부터 카호는 좀 이상함을 느꼈는데, 이어지는 짓큐의 말이 그게 맞다, 고 카호에게 확신을 주었다.

 

"카호씨. 나, 몸이 좀 이상한 것 같아."

 

평소에도 느긋한 말투였지만, 그 배로 느릿했다.

 

"힘이 잘 안 들어가네......“

 

“어떻게 이상해요?”

 

카호의 질문에 잠깐 생각하던 짓큐가 한 대답은 이랬다.

 

머리가 무겁다. 손발이 따로 노는 것 같다.

 

어딘가에 닿으면 아픈데, 아프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기운이 없다.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짓큐의 있는 그대로의 가감 없는 표현에 단번에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감기다. 그것도 몸살감기다.

 

“감기네요.”

 

“…감기에 걸리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이번 주가 바쁘긴 진짜 바빴지. 매일 야근이었고, 일주일의 반은 귀가도 못해서 휴게실 침대에서 눈을 붙이기도 했고. 다만 의외인 점은 아파도 카호 자신이 아프게 될 줄 알았지, 짓큐가 앓아누울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막말로 블랙 혼마루 정화를 나가서 부상을 입은 것도 아닌데. 하긴 그랬으면 수리를 하면 되니까 좀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다치는 거보다 이렇게 아픈 게 백배 천배 더 낫다.

"목이 아픈 것 같아. 바늘을 천 개쯤 삼킨 것 같이......"

 

"그럴 때는 목이 따끔거린다고 하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아파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짓큐의 표현은 한없이 순수하고 직관적이었다.

 

일단 쌩쌩 바람을 내뿜고 있는 에어콘부터 무풍으로 바꾼 카호는 구급상자에서 체온계를 꺼내와 짓큐의 체온을 쟀다. 도검남사인 그의 평소 체온은 사람의 정상 체온보다 조금 낮았는데, 지금 체온계의 숫자라 40도를 가리키고 있다. 해열시트를 꺼내 짓큐의 이마에 붙여준 카호는 머릿속으로 필요한 물건 목록을 정리했다. 이른 시간은 아니니까 가게도 열었겠지. 어서 다녀와야겠다.

 

“짓큐씨, 저 가게에 좀 다녀올게요. 쉬고 있어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요.”

 

“…눈앞이 좀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야.”

 

“금방 다녀올게요.”

눈 감고 있어요, 하고 멀뚱멀뚱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짓큐의 눈을 살포시 감겨준 카호는 장바구니를 챙겨서 집을 나섰다.

 

 

 

 

 

 

 

 

 

 

 

2.

 

 

 

 

 

카호는 나간지 한참 지난 후에야 돌아왔다. 잠들지 못하고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던 짓큐가 기쁘게 카호를 맞이했다.

 

"카호씨, 뭘 그렇게 사 왔어?"

 

카호는 양손에 뭔가 가득 담긴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이거저거요, 하고 짧게 대답한 카호는 식탁 옆까지 가서야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두었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내용물을 꺼냈다. 커다란 이온음료 두 병, 사과, 푸딩, 아이스크림, 레토르트 죽…카호가 컵과 이온음료를 들고 짓큐의 곁으로 다가왔다. 짓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눈 앞이 흐릿했다. 카호가 두 개로 보였다가, 하나로 보였다가 했다. 카호는 컵 가득 이온음료를 따라주곤 짓큐에게 마시게 했다. 계속 마셔요, 하는 말에 짓큐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어때요?”

“날이 더워서 그런 건지, 몸에서 열이 나서 뜨거운 건지 모르겠어.”

 

“열이 나는 거예요. 지금, 에어컨 틀고 있으니까.”

 

해열 시트를 붙이고 있는데도 숨이 차는 듯한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카호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미지근해진 해열시트를 떼고 짓큐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여전히 뜨거웠다. 쉽게 안 떨어지겠는 걸, 그런 카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짓큐가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카호씨 손 시원해서 기분 좋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잔소리를 해야 할 텐데, 카호는 그런 짓큐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안 그러는데 아파서 그런가, 어리광을 부리는 것만 같아서 귀여웠다.

 

카호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목이 아프다고 했으니 아이스크림을 먹이고-이상하게 목이 따끔거릴 때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덜 아파진다, 경험에서 얻은 지혜다-, 사과를 갈아서 먹이고, 푸딩을 먹이고, 죽을 데워 먹였다. 죽까지 먹인 후에는 해열시럽을 먹였다. 그 후로는 틈틈히 열을 쟤고, 땀으로 젖은 옷을 갈아입혔다. 카호가 열심히 움직인 보람이 있는지, 짓큐의 표정이 좀 더 편안해졌다.

 

그렇게 한숨을 돌린 카호는 벌겋게 열이 오른 짓큐의 얼굴을 보곤, 조금 시덥잖은 말을 했다.

 

“짓큐씨, 이상한 말인데요. 얼굴에 열이 올라서 평소보다 건강 해보여요.”

 

“…평소엔 어때서?”

 

“좀 창백하다는 느낌이려나. 짓큐씨, 피부 하야니까.”

 

침착하게 행동했지만, 사실 카호는 신기함을 느끼고 있었다. 도검남사도 감기에 걸리는 구나, 싶어서. 짓큐를 만나기 이전에도 6년이나 도검남사를 상사로 두고 많은 남사들을 봐왔음에도 몰랐다. 카호의 노리무네 이전의 상사는 야만바기리 쵸우기로, 유독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자기관리의 화신과도 같은 남사였다. 그래서 카호씨는 도검남사도 감기에 걸릴 수 있다는 걸 모를 수밖에 없었다. 막연히 도검남사는 병에 안 걸리나 보다, 하고 생각했을 뿐.

 

“기분이 이상해.”

 

“아직도 이상해요?”

 

“응, 뜨거우니까.”

 

“아플 땐 속열이 나니까요.”

 

열인가...하고 중얼거리던 짓큐는 뭐가 재미있는지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후후, 불에서 태어났는데 열에 약하다니 공교롭네.”

 

“보통의 사람도 열에 약하니까, 다를 건 없어요.”

 

“그래도 뜨거우니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불에 탔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불에서 태어났어도 불로 돌아갈 생각말고 곁에 있어요. 카호는 불현듯 떠오른 그 말 대신 다른 말을 입 밖에 냈다.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혼내고 싶은데, 아프니까 참을게요.”

 

카호가 조심스럽게 뺨 위에 손을 올려두자, 기분 좋은 듯 웃은 짓큐가 조금 기운이 났는지 너스레를 떨었다.

 

“카호씨한테 혼난 적이 없어서 두근거려.”

 

“짓큐씨, 아프면 솔직하고 말이 많아지네요.”

 

짓큐의 뺨은 따뜻했다. 여전히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라, 짓큐가 편히 잠들기까지는 좀 걸리겠구나, 싶었다.

 

 

 

3.

 

 

 

 

잠들기 위해 노력하는 짓큐는 말이 없었다. 그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카호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니 집안이 너무나 조용해서, 두 사람과 세상이 꼭 분리되어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카호는 가만히 앉아서 짓큐를 바라보고 있었다.

 

몽글몽글 잡념이 피어올랐다.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짓큐가 아파서 누워있으니 어렸을 때의 어제 있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지금은 절연한 가족들과 아직 함께 살고 있었을 때, 카호가 홀로 감기에 걸려 앓아누운 적이 있었다. 그때도 무더운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크거나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냥 아프면, 아프냐고 물어봐주고 걱정해주길 바랐다. 가족이니까 그정도는 바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그럴 권리가 있을 거라고. 돌아온 건 언니한테 옮으면 안 되니까 방에서 나오지 말란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있으니, 바라면 안 될 걸 요구한 것 같아 갑갑해졌다.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라게 해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해야할지도 모르지만, 그게 고마워해야할 일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언니한테는 주고 나에게는 주지 않은 것의 존재를 아는데, 태연히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 나한테만 그럴 수 있을까, 홀로 숨죽여 울기도 했다. 똑같은 걸 원한 건 아니지만, 언니에게는 당연하게 주어진 것들을 왜 나는 욕심을 내야만 하는 건지, 혹여 야단 맞을까봐 욕심조차 내지 못하는 건지. 왜 언니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내가 노력해야하는 건지.

 

언니를 향해 표출되지 못한 감정은 결국 나 자신을 갉아먹고 허물어지게 했는데, 어린 날의 나는 그걸 몰랐다.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그러지 않으면 버틸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뒤로 하는데 익숙해져갔다. 익숙한 사람이 되어갔다.

 

사랑받지 못했단 생각은 들지 않지만, 내가 원하는 사랑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일이라는 게, 노력하고 한 만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지금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순진하게 좀 더 잘하면, 노력하면 될지도 모른다고 믿었던 날들이 있었다. 나만이 그렇게 살고 있진 않았을 텐데,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었을 텐데 왜 그리 서럽고 슬펐는지....

 

약하기 때문이었을까. 좀 더 의연하거나 강했다면, 가지지 않을 마음이었을까. 외롭지 않았을까. 되든 안 되든 말이라도 해봤으면, 뭔가 달라졌을까. 기대하던 결과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건 그것대로 왜 그랬을까 후회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그렇게 약한 사람이었던 것도, 내 탓만은 아니었을 거다. 나는 어리고, 그래서 불안정하고, 약한 게 당연한 '아이'였는데.

 

얻기 힘든 거라고 생각해서, 더 갖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을 버리는 날까지, 참 힘들기도 했는데. 버리고 나서는 참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어져서 도리어 허무해졌다. 좀 더 일찍 알았으면, 마음고생은 좀 덜 했을 텐데. 아닌가, 버린 것도 아니었다. 그냥 툭, 하고 힘없이 바닥에 떨궈버렸지. 그렇게, 잃어버렸지. 그 마음은, 어디로 흘러가 버렸을까.

 

그러니까 지금 짓큐를 간호하는 것은, 그날의 카호 자신을 간호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거침없이 뛰쳐나와 가고 싶어 했던 곳으로 망설이지 않고 달려와서, 걷고 있는 스스로가 참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조각이 아직 그날에 머물러있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했다. 이미 있었던 것은, 그게 좋은 거든 나쁜 거든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까.

 

정말, 쉽게 사라져주지 않으니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생각하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에 더 생각이 난다.

 

대체 그때의 나는 뭐였을까? 여전히, 아직도 모르겠다.

 

잠들어야 하는 짓큐를 방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카호의 입에서는 저절로 말이 튀어 나갔다.

 

“아플 때 혼자 있으면 서러워요. 내가 있으니까, 짓큐씨는 그런 거 몰랐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곁을 지키는 게 내가 아니게 되더라도.

 

더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서 그냥,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 깊은 물 속에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 것 같았던 카호를 단번에 물 밖으로 끄집어내듯 현실로 끌고 나온 것은, 짓큐의 타오르는 듯한 보라색 눈빛이었다.

 

“카호씨는 안 아팠으면 좋겠어.”

 

카호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아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준 짓큐가 고마웠다.

 

이제는 괜찮아.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하면서 눌러 참지 않아도 돼.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지 않아도 돼. 나를 속이지 않아도 돼. 나를 상처입히지 않아도 돼. 지금의 나는, 그래도 괜찮은, 내가 좋아하는 나.

 

그리고 함께 있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같이 있으면 괜찮아.

 

같이 있는 게 좋아.

 

짓큐의 다정함 뿐만 아니라 짓큐의 존재 자체가, 카호에게는 늘 힘이 되어준다.

 

지나간 일에 힘 빼지 말자. 기운도, 시간도 낭비하지 말고. 눈앞에 있는, 소중한 이 사람을 보자.

 

언젠가 함께 있지 않게 되더라도, 지금은 함께 있으니까.

 

지금의 이 사람은 나의 것. 나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의 연인.

 

내가 가진 그대로를 좋아하고, 좋아해 줄 사람.

 

다른 사람과 상관없이 나만을 생각하고 나만을 위해줄, 나만의 것.

 

언젠가 연인이 아니게 되더라도, 서로에게 가장 특별할 사람.

 

욕심을 내도 되는 사람. 그게 욕심이 아닐 사람.

 

“그래도 만약 카호씨가 감기에 걸린다면, 그때는 내가 이번에 배운 대로 할게.”

 

그 말을 끝으로 장장 6시간 만의 해열 끝에 짓큐는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들었다.

 

짓큐의 말에 일렁이는 가슴을 안고, 카호는 지금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4.

 

 

 

 

 

짓큐는 한숨 푹 자고 나서 싹 나았다. 현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건 젊다고 표현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젊은 게 좋구나. 나는 이제 감기에 걸리면 한숨 자고 일어나는 걸로는 택도 없겠지, 하고 카호는 생각했다. 짓큐는 이제 하나도 안 아프다고, 목도 안 따끔거리고 팔다리도 욱신거리지 않는다며 기지개를 켜 보였다. 그 말대로, 짓큐의 목소리는 평소대로 돌아와 있었다.

 

역시 보통의 짓큐의 목소리가, 카호는 좋았다. 짓큐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카호는 저절로 몸에서 힘이 빠지는 기분을 느끼곤 했는데, 한없이 편안해져서, 그대로 스르륵 잠이 들어버릴 것 같기도 하고,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해져서, 먼 훗날 카호 자신이 그리워할 순간은 이 순간이겠거니, 하고 여기게 될 것 같기도 했다.

 

“과로 때문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어.”

 

“그럼요?”

 

“지혜열 이라는 게 있대.”

 

“열이 날 정도로 일이 많긴 했죠.”

 

“일 때문이 아니라니까.”

 

“그럼 무슨 생각을 몸살이 날 정도로 했는데요?”

 

카호의 물음에 짓큐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당연히 카호씨 생각이지.”

 

이렇게 카호의 세상에 있는 짓큐의 존재가 한층 더 선명해진다.

 

또, 나쁜 생각을 하게 된다. 욕심을 부리게 된다.

 

짓큐가 혼자인 것을 못 견디면 좋겠다. 카호가 곁을 비우면, 괜찮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로워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짓큐씨가 외롭지 않게 함께 있어야지. 그러고 싶다.

 

저를 보며 웃는 짓큐를 보며, 카호는 작게 마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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