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렛스테

죽음에 대하여

보관함 by 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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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스테프레즌.

죽음이란 무엇인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저 막연하고 멀었던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다. 누구든 한 번쯤은, 혹은 그 이상이라도 꿈꿀 적은 있지만 목전에 들이닥쳤다 느끼지는 않는 그런 개념. 죽고 보니 그리 다를 것도 없어 보였다. 죽음 대신 생이 멀어 보였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었다. 한없이 멀리서 관망하다가도 불현듯 끌리면 들이닥치는 원치 않는 손님. 그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것. 단단하게 땅을 딛고 서던 두 다리가 무게를 잃고, 자각하지 못했던 호흡이 사라지는 것. 때 이른 죽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죽음은 제때에 늦지 않게 찾아온다. 어린아이에게도, 늙은 노인에게도, 이제 막 삶에 대해 알아나가는 수많은 이에게도. 그러니 누구든 이른 죽음에 대해 슬퍼하지 말고 영롱한 어둠을 향해 평안히 나아가기를 기도하길. 스스로에 대한 애도는 투명한 눈물 한 방울만으로 대신했다. 그게 다였다. 죽은 후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는 걸. 정말 무서운 건 죽음도 내게 가져다주지 못한 것이었다.



스칼렛파이어.

아스라이 흩어지는 호흡의 향연. 쌀쌀해지는 날씨에 하얗게 피어오르는 숨결의 불꽃. 서두른 걸음이 참 허무도 하지, 끝내 죽음이 마음을 앗아간 듯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당신이 떠나간 머나먼 타향의 이름이 죽음이었다. 설원이 되어버린 세상을 원망했다. 뒤따라 걸으며 발자국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지, 기어코 그 먼 곳으로 데려가 흔적조차 좇을 수 없게. 쓰다 만 공책, 창가에서 해를 쬐던 작은 선인장 화분, 혹은 아직 당신의 머리칼이 남아있는 머리빗이라든지. 그런 유품을 하나둘 모을 때마다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나도 함께 죽기라도 한 것처럼 숨이 안 쉬어질 때가 있었다. 함께 웃던 장소에서 혼자 울었다. 쉬어지지도 않는 숨을 억지로 들이마시면서 울었다. 의자 모퉁이를 움켜쥔 손이 그대로 부서질 것 같았다. 이대로 울다가 지쳐 잠들면 당신이 보일까? 온기를 잃은 흔적들을 내 손으로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내 속에 크게도 일렁이던 것들이 같이 죽어갔다. 죽음은 이별이었고, 안녕이었다.



셀레스테프레즌.

삶이란 무엇인가. 홀로 아파하는 당신을 보았다. 그럼에도 아침을 맞이하고, 창문 너머를 보고, 그렇게 인생을 사는 당신을. 고통이 파도치는 날 잠으로 도망치다가도 깊은 한숨과 함께 다음날 눈을 뜨는 당신을. 부는 바람을 버텨내지 못해도 꺾인 채 다시 걸어가는 모습을. 그런 감각을 오래전에 앗아간 죽음 속에서 당신은 잊어버린 삶을 향한 이정표였다. 본래 맑지만은 않은 그런 인생에 대한, 그 속에서 생을 살아가는 당신에 대한.



스칼렛파이어.

삶이란 무엇인가. 당신이 살지 못한 아침을 살고 있다. 어느 때에는 손에 시간을 쥔 채 하루를 죽이고 또 죽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신이 남긴 따스한 세상이 기억으로 나를 채찍질해 당신 곁으로 보내버릴 것 같았는데, 그리되면 또 당신은 기뻐하지 않을 거잖아. 당신의 짧은 생은 축복이었고, 선물이었다. 여전히 이어진 내 삶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죽음이 내게도 제 얼굴을 드러냈을 때 반가울 뻔했다. 어느 찰나에 기대를 품었던 것도 같다. 그래, 당신은 참 공평하니까. 내게도 이제 돌아갈 시간이 온 것이지.



셀레스테프레즌.

붉은 화마가 겨울에도 힘겹게 버티던 녹음을 집어삼킬 때. 건조한 겨울은 산불이 나기 좋은 계절이라지. 당신의 생명이 반짝이는 것이 아름다웠는데. 내심 다시 보고 싶으면서도 이 이별이 조금 더 길어지길 바라고 있었는데. 환하게 타오르는 삶이 찬연해 여기서 기다리는 것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서두르지 말래도 결국 내게 닿는 당신이, 그런 당신을 맞이할 생각에 먹먹해지는 나의 마음이, 모두 가여웠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지도, 여느 이들과 같이 잘 자라는 인사 한 번을 건네지도 못한 당신과 내 생이 멎고 멎은 것이. 당신은 화염이 닿기 전에 잠들었다. 이 하늘의 하나뿐인 별이 그런 영혼을 향해 내려앉는다.



스칼렛파이어.

너무 일찍 왔다 미워하진 말아. 당신은 나도 없이 그 먼 길을 혼자 떠났잖아.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은 내가 돌아갈 고향이었나. 다시 그 품에 안기길 기다리는 안식이었나. 감기는 눈꺼풀에 순응하며 멍해지는 의식을 기껍게 놓아주었다. 늘 묻곤 했던 인생이란. 우리의 삶은 서로 덕에 찬란했던 기억이었다.



셀레스테프레즌.

죽음에 대하여. 나의 죽음에 대하여, 너의 죽음에 대하여. 오랜 시간 울고 사랑한 우리의 죽음에 대하여. 그대 덕에 행복했고, 그대 덕에 사랑했다고.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것에 대하여.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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