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이형
나중에 단편에 참고할 프롤로그
할아버지의 낡은 보트 근처에서는 언제나 퀘퀘한 석유 냄새와 눅은 쇠냄새가 섞여서 났다.
아버지와 함께 이 섬에 돌아와 뭍에 돌아가지 못 하고 몇 주를 묶여있어야만 했던 겨울 방학이면, 할아버지는 언제나 창고 안에서 보트를 꺼내다 우리 남매를 데리고 바다까지 나가서 시간을 보내려 하셨다.
먼지가 잔뜩 얹어져 그외 다른 이유로 쓰이지 않는 것으로 보였던 그 보트는 언제나 창고의 한구석을 꿋꿋이 차지하고 있었다. 또래 아이 하나 없는 마을, 아무리 주파수를 맞춰봐도 파열된 전자음만 들리는 라디오, 텔레비전조차도 없는 할아버지의 집, 이 섬의 무엇을 들이밀어도 마뜩치 않아했던 누나가 유일하게 즐거워하는 놀잇감이 바로 그 보트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보트를 타고 물놀이하는 것을 누나만큼 좋아하지는 않았다. 보트의 몸체 양 옆으로 치솟는 포말에 시선을 빼앗기는 일은 잠시일 뿐 곧 지겨워지고, 살을 에는 바람과 구식 엔진 소리는 요란하게 드드득거리며 고막을 아프게 때린다. 물 위에 떠서 어지럽게 휘청이는 겨울 바다 한가운데 놓여진 것이 나는 그다지 즐겁지 않았건만, 누나는 조용하던 입을 열어 ‘조금 더 가요, 조금만 더 멀리까지 가봐요’하며 할아버지를 보채며 달아오른 뺨을 제 손으로 문지르며 재잘거린다.
항구가 저 멀리 선뜩하게 보일 때까지, 물살을 가르며 바다 한가운데 나아가 결국엔 줄을 풀어줬던 동네 어민의 얼굴이 하나의 점처럼 깜빡거리다 사라질 정도로 멀리 나아가는 일을 누나는 정말로 즐거워 했었다.
겨울 바다는 여름보다 해수가 맑다. 수면에 모래처럼 부서지는 햇빛이 신기해서 보트 외곽으로 목을 빼고 물 아래를 들여다 볼라치며는, 할아버지는 꼭 바다 괴물 이야기를 꺼내어 우리를 겁주곤 하셨다. 꼭 인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추위를 느끼는 바다 괴물이 저 깊은 바다 아래에 살고 있는데, 1월의 깊은 바닷속은 다른 열한달보다 뼈에 사무치게 추워서- 추위를 견디지 못 한 괴물은 한줌이라도 온기를 느끼려 해수면 위까지 기어나와 물에 닿아 이어진 아이의 손을 날쌔게 붙잡아 바닷속 저 밑 깊은 곳으로 끌고 내려간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고기처럼 미끌미끌거리겠죠?
그럼, 둥그렇고 큰 눈과, 기다란 손가락을 가졌지.
얼마나 커요?
아이 하나를 잡아먹을 정도로는 커다랗지.
내가 정말로 무서워져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지 않았느냐며 애타게 떼를 쓰면, 할아버지는 바람 빠진 풍선같은 웃음소리를 내면서 보트의 앞머리를 섬 쪽으로 돌렸다. 그쯔음이면 우리의 물놀이는 그날엔 끝이 나는 거다. 그러나 그와중에도 우리 누나는 괴물 이야기에 겁먹지 않고, 언제나 아래로 아래로 기어코 팔을 뻗었다가, 내 눈에는 튀어오른 물방울조차 그 팔에 닿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도 찬 바닷물이 닿은 것마냥 손을 뒤로 흠칫 내빼곤 해사하게 웃으며 ‘닿았다, 방금 닿았어!’하고 참 해맑게도 기뻐했다.
그럼 나는 무서움도 잊고 궁금해져서 누나를 따라 슬금슬금 보트 아래로 손을 뻗었다. 어린 나의 손은 아무리 아래로 뻗어도 누나의 반만큼도 수면에 가까워지지 않는다. 누나는 여보란 듯이 내 옆에서 다시 손을 뻗었다가, ‘또 잡았다, 또!’ 하고 소리치며 즐거워 했다.
소금기로 뭉친 머리카락에 대야 가득 지하수를 부어 말리고, 뜨거운 장판에 덮힌 이불 위에 비집고 들어가 함께 마주 본 채 잠에 들 참이면 나는 낮의 바다괴물 이야기가 떠올라 누나에게 칭얼거렸건만, 누나는 나처럼 무서워하는 일 없이 꼭 그리 무섭기만할 이야기는 아니라며 나를 안아 달랬다.
그게 무엇이던 그저 춥고 외로울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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