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불협화음
*자캐커뮤니티<그날의봄>, 이타와 유우토
공방의 판자문에 매달린 풍경의 새파란 유리판이 맑은 소리로 울렸다.
똑같은 계절이 되어 내려앉은 우사기야마 상점가의 여름은 유우토와 같았다. 한낮의 햇빛은 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 끝에 붙은 그림자를 끌어당기며 무덥고, 해질녘이 지나 보랏빛으로 촘촘히 어둠이 내리면, 그제서야 숨 돌릴 틈을 비집고 들어와 선선한 바람이 이마 위를 스쳐간다.
언제나와 같은 여름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소한 풍경들이 모여, 어딘지 모르게 달라진 것만 같다.
하나. 상점가의 고양이는 여전히 유우토의 손을 타지 않는다. 단정한 짧은 털의 회색 고양이는 잰걸음으로 길을 가로질러 반대편 골목으로 몸을 숨긴다. 유우토는 그 한결같은 모습에 안심했다가도, 어째서 저 고양이가 내게 오지 않는걸까, 하며 마음 속으로 작게 떠올리면 어쩐지 뜻 모르게 불안해졌다.
하나. 벤치 위에 앉아 내리쬐는 햇빛을 이마 위로 받는 일은 여전히 기분 좋았다. 허나 연한 갈색 머리카락 하나하나마다 햇빛을 머금고나서도 잠에는 들지 못 한다. 나른해진 눈동자를 깜박이다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불편한 것이라도 삼켜내 목이라도 막힌 것처럼 깨어나곤 했다. 여전히, 학교보다 밖이 좋았다.
다시 하나. 조용히 뱉어내는 말들은 천천히 늘어져 바닥에 흐른다.
좋아하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때때로 그것은 명확하게 다르게 부딪쳐오곤 한다. 유우토에게 있어서 오르골이란 물체는 그런 식의 문장으로 어지러이 섞여져 있었다. 오르골이 내는 소리, 점점이 이어진 악보들이 만들어낸 멜로디를 한결같이 좋아해왔지만 직접 만드는 것만은 도무지 손에 익질 않는다. 여전히 만들지 못 한다. 자신이 만든 오르골 소리는 삐걱거리고 불쾌한 불협화음이 난다고, 유우토는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만든 것과는 다르다. 어떻게 만들어도 좋은 점이 생기질 않아서, 오기가 생겨 오랫동안 손에 붙들고 있다가 소년은 지나치게 예민해지곤 했다. 오래 전부터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에는 질릴만치 서툴렀다. 할아버지는 그런 유우토를 등 뒤로 넘겨다보며 종종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해주셨을 뿐, 한 번도 서툰 모습에 화를 내지 않았다. 재촉 하는 일도 없었다. 다만 한 번, 어느날엔가 유우토가 기를 쓰는 모양새를 의자 위에 앉아 무릎 위로 손깍지를 끼고서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가엾은 손자에게 뭐가 그리 너를 어렵게 하느냐고 물어왔을 뿐이다. 유우토는 대답하지 못 했다. 대답하지 못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 어려웠을 것이다. 목구멍 안으로 혀끝이 말려들어간다.
좋아한 것은 오르골이 아니다. 좋아한 것은 단지 따스함이다.
그건 말이지요, 오르골이 아닌 다른 것이었더라도 괜찮다는 뜻이 되지요. 대답은 비겁하게도 안으로 숨어 들어간다. 공방의 진열대에 나란히 놓인 오르골들은 하나같이 할아버지의 손을 거쳤기에 따스함이 담겼다. 종종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공방 안에 홀로 서있는 꿈을 꾸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거라 생각했다. 유리창 너머로 스며들어오는 햇살이 노란 빛으로 공방 안을 전부 물들일 때, 공방의 모든 것이 유우토의 이목을 끌어당기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이 할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작은 세상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제 것은 아무리 들어보아도 따스하지 못 하고 미온하기만하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나, 형이나, 친구에게 준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명확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주어질 것들은 만들고 싶지가 않아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위선이기에 따스함은 되지 못 하는 것 아닐까.
유우토는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대답 없이 어색하게 웃어보인다.
지난 겨울부터 공방 뒤편의 방 한 칸에는 한겹의 이불이 새로 깔렸다.
유우토는 낡은 시집에서 읽었던 죽음이라는 글자를, 창문 아래 드리워진 붉은 거미를 무겁게 머릿속에서 떠올린다.
할아버지는 이불 안에 갇혔다. 날이 밝기도 전에 공방의 초라한 전등을 켜고 블라인드를 올리던 손이 이제는 이불 안에 갇혀 있었다. 노인은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져 있었다. 그 위로 시간이 켜켜이 쌓여 간다. 숨이 막힌다. 혼자서 도무지 어쩔 줄 모를 정도로 짓눌려졌을 때, 작은 손은 자연스레 목 위를 감쌌다. 그 때 즈음해서 유우토에게는 이런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치워내고 싶은 데 치워낼 수가 없다. 무거워서 숨이 막혀올 때 가느다란 목을 감싸쥐면 숨이 덜 막혀왔다. 목 위로 매번 새롭게 파란 멍이 들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란다는 건 어떤걸까.
해가 지나갈 때마다 떠올렸던 생각을 유우토는 다시 떠올린다.
방 한 켠에는 여전히 오르골들이 쌓여있다. 나열된 숫자는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
작은 별. 소중히 여기는 멜로디의 오르골 하나를 제하고, 다른 것들의 태엽은 쇳소리가 거슬리게 느껴질 정도로 뻑뻑해졌다. 어떤 것은 얇게 먼지가 깔렸다. 늦은 오후에도 이른 밤에도, 새벽에도. 좋아했던 것들을 들어도 울렁이는 것이 사라지질 않는다. 한때 그 멜로디는 유우토를 재워주는 자장가와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잠이 오는 대신 이상스레 슬픈 기분만 들어서, 유우토는 그것들을 자주 듣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할아버지는 여전히 아프셨다. 정정해진 모습으로 돌아다니시다가도, 어느 날엔가는 그런 모습이 무색할 만치 심하게 앓아 누웠다. 가족들은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유우토는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달라지지 않으셨는데.
의사는 할아버지의 청력에 경미한 이상이 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오르골 소리를 유우토에게 들려준다. 소리가 제대로 들리느냐고, 어딘가 빗겨나간 구간은 없는지, 깨끗하게 들려오는지, 물으면서 유난히 걱정스러워 하신다. 유우토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정말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렇게 예쁜 소리를 만드는 당사자는 더이상 듣지 못 한다는 것에 대해 유우토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여전히 예쁜 소리가 들려요.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요. 대답했으나 할아버지는 유우토의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다.
조금 더 열심히, 공방 일을 배우려 노력했다. 조금씩 없어질 것들이 무서워졌다.
중학교 3학년.
학급 친구들이 진로에 대해 묻는다. 유우토는 학교에 단 한 번도 오르골을 들고 간 일이 없다. 그러나 친구들은 하나같이 유우토와 공방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유우토는 당연히 공방을 물려받을거지?
성적표를 구겨 종이접기를 하며 물어오는 그 말에 유우토는 미소만 지었다. 사실 웃고 싶지는 않았는데 미소를 지었다. 옆자리의 친구가 한 번 더 묻는다.
정말, 공방을 물려받을거야?
잘 모르겠어.
잘 모르겠어, 는 입버릇처럼 유우토에게서 나온다.
너는 좋겠다, 아무것도 없으면 선택할 일이 있어서. 그래도 너무 낙관적인건 좋지 않아.
끝으로 다른 말은 없었다.
학년이 바뀌고 교실이 바뀌어도, 학교의 풍경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한 치수 크게 입어서 영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던 교복은 몸에 꼭 맞아서 불편하지 않았다. 사람도 풍경도 계절도 달라진 게 없어 마음이 놓인다.
1교시 수업 시간 전, 동급생 여자아이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엎드려 있는 유우토의 귓속을 자연스레 파고들어 온다. 유즈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 아이는 유우토가 알지 못 했던, 이름만 귀에 익어 있던 누군가가 이 동네를 떠났다고 말하고 다녔다.
새로 학급을 맡았던 문학 선생은 자신감 넘치는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수업 시간에는 언제나 유우토를 지목해 한마디 말이라도 하도록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녀는 유우토의 작문이 좋다고 말했다. 유우토는 어떤 것이 좋다는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학교에서 누군가의 눈에 띄었던 일은 없다. 수업 시간에 여러 번 지목당하는 일도 없었다. 이것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유우토는 고서점 안에서 책 속에 파묻혀 보냈던 시간이 나름대로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했다. 선생은 유난히도 유우토를 신경썼다.
할아버지랑 둘이서만 사는거니?
일단은요.
일단은?
어머니가 졸업 후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올라오라고 하셔요. 도시로.
그렇게 할거니? 반친구들도 나도 네가 가면 슬플거야.
저만 떠나지는 않을 거 아니예요? 그치만 저는 싫다고 했어요. 할아버지도 싫으실거예요.
마지막 말은 확신이 섞이지 않는다.
그즈음해서, 유우토는 학급의 몇몇 학생들에게 불편한 시선을 받고 있었다. 유우토가 여러 학생들의 부탁을 받아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편지를 대리해서 써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연서를 쓰는 것은 유우토의 손에 딱 맞는 일이었다. 오르골과는 다르구나. 글씨로 쓰인 불협화음을 알아차리긴 힘들구나. 아아, 오르골과는 달라. 아무도 글 속에서 불협화음을 느끼진 못 할거야… 유우토는 의외의 재능을 발견하고 퍽 기뻐했다.
그래서 어느 가을날의 쉬는시간, 얼굴 한 번 본 적 없었던 검은 단발 머리의 단정한 여학생이 교실로 찾아와서는 자신을 불러내어 제 자신이 언제 썼는지도 기억 안나는 편지들을 눈 앞에 뭉터기로 내던졌을 때,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동자로 노려다보며 사람을 기만한다며 악을 썼을 때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 했다.
유우토는 얼마지나지않아 제 글이 좋다는 선생의 말뜻을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이 전부 떠나간 하교 후의 교실, 네 글이 좋아, 하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유우토는 어쩐지 흔히 교탁 위로 마주 보았던 교사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여자의 시선은 잠시도 한 곳에 머물러 있지 못 했다. 유우토와, 책상. 유우토와, 창문. 유우토와.
짜증나.
그녀가 한심했다.
선생 같지가 않아. 빤히 응시하면서, 듣고싶을만한 상냥한 말을 건네며 버릇 없는 생각은 머릿속으로만 지나간다. 다만 어쩐지 짜증이 나서 웃지는 못 했다. 선생은 보고있는 사람이 어색하다 느낄만치 긴장한 모습으로, 양 손가락들은 서로 겹치어 꼼지락거렸다. 습관처럼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다.
걸쳐 쓴 안경의 유리알 위로 햇빛이 반사되어 비친다. 유우토는 그녀의 눈이 보이지 않아 좋다고 생각했다.
여름 방학, 유우토는 공방을 떠나서 가족들 곁으로 돌아갔다. 연례 행사처럼 자리한 가족 식사, 그릇 위로 쇠숟가락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로 평소와 같은 조용한 대화 소리가 오고갔다.
유우토는 이제 중학생이지?
아빠는 또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벌써 중학교 3학년인걸요. 어릴 때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네- 아버지는 여전하시니? 당신은 왜 또, 물어볼 수도 있는걸-
언제나와같은 식사 자리에서, 유우토는 거진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제 손으로 간신히 만들었던 오르골 상자를 꺼내 들었다. 단박에 가족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나온다. 그 오르골은 앉아 있던 가족들의 손을 한 번 씩은 다 거치고 나서야 유우토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손이 닿을 때마다 삐걱이는 소리가 섞인다. 유우토는 알 수 있었다.
가족들 사이에서 칭찬이 들려온다. 유우토는 그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듣기 좋은 구색을 맞춰 거짓말을 한다고. 그래서, 공방을 잇고 싶은거니? 유우토는 아직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썩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공방이 없어지는 것은 싫다. 혹은 다른 누군가가 가져가버리는 것이 싫다. 어느것도 다 싫기만 하다. 다른 어느것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으면 하고, 유우토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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