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얀 후일담

Ederlezi by Ederle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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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얀은 톨마쵸바 공항의 복도를 따라 걸었다. 창밖으로 설원이 지평선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흰 눈꽃 모양의 로고가 눈에 반쯤 묻혀있었다. 이 눈 때문에 비행기는 아주 오래 연착되었다.

그러니 공항에서 데얀을 맞이할 이들도 따라서 오래 기다렸을테다. 데얀은 자신에게 접근하는 두 남성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동행을 요청했다. 마침 바라던 바였다. 그들이 오지 않았으면 데얀이 그들을 찾아야 했는데 그것을 꽤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일이었다. 또 다른 이점으로는, 데얀이 굳이 줄을 서서 기다려가며 출국수속을 밟을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 있었다.

같은 비행기를 탔던 승객 중 가장 빠르고 운이 좋은 사람이 출국장에 다다르기도 전에 데얀은 공항을 빠져나갔다. 검은색 벤이 흰 벌판을 가로질렀다. 그러니 흰 지평선을 계속 바라보는 것은 지루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무뚝뚝하게 침묵을 지켰고 데얀은 공항의 카페를 떠올렸다. 커피라도 한잔 사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 두 사람과 동행하는 통에 다른 길로 샐 틈이 없었다. 그리고 이는 두 사람과 이들을 보낸 자의 의도에 부합했을 테다.

데얀은 얼마나 남았냐고 물으며 보채지 않았다. 얼마나 걸리는지는 데얀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알라티라니움 무기 연구소로 간다. 데얀은, 돌아오자마자 바로 직장으로 복귀하는 건 꽤 피곤한 일이라고 오랜 시간을 들여 생각했다. 곱씹을 거리가 그 외에는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을 횡단하던 열차나 벨로베자 숲, 시칠리아의 집은 굳이 떠올리지 않았다. 이 흰 대지와는 관계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느릿느릿 생각을 갉아먹은 후에야 비로소 연구소가 보였다. 들어가는 데는 신분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 군 시설이기도 한 이곳은 군인이 입구를 엄중히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벤은 간단한 증명만 거치고 통과했다. 그리고 안내된 곳은 연구실과 군 시설 중 군 쪽에 더 가까운 구조물이었다.

그리고 데얀을 맞이한 이는 정보요원이었다.

“데얀 아르세니예비치 연구원. 맞습니까?”

취조실의 분위기는 생각만큼 억압적이지 않았다. 넓은 매직미러가 벽면을 뒤덮지 않았고 데얀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지 않다. 제대로 설치된 형광등은 방안을 전부 환하게 비추었다. 테이블만 집중시키며 수사관의 얼굴에 음영을 드리우는 방식의 삼각등은 할리우드 기준으로도 꽤 구식이다. 그러나 어디선가 감시카메라가 돌아가겠지. 데얀은 손을 편하게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 모든 일은 데얀을 긴장으로 몰아가지 못했다. 새삼스러운 짓이다.

“맞아요.”

“휴가를 신청하셨지요, 그 후로…….”

“미국, 이탈리아, 폴란드를 다녀왔죠.”

“그래.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정보요원 둘 중 하나가 성급하게 묻는다. 어쩌면 저 자가 나쁜 경찰 역을 맡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너무 단순하고 널리 알려진 수법이다. 데얀을 상대하려면 좀 더 교묘한 수법이 필요할테다. 하지만 순순히 입을 연다.

“그러지 않아도 전부 털어놓을 예정이었어요.”

이제 데얀은 기자를 두려워하는 아이가 아니다. 정보요원을 제법 놀렸던 직위이다. 이 이야기가 끝나면 그 직위를 한동안 박탈당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말하지 않을 때 어떤 협박을 할지 데얀은 이미 안다. 데얀은 딱히 다시 듣고 싶지 않았다.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으려는 시도는 지겹고 골치 아프다.

오래전, 아나스타시야 한은 말했다. 너희들에게 입단속을 시키지 않을 거라고.

그의 뜻이 지금도 같기와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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