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겸

[윤겸] 나와 너의 가시나무 上

느와르물 조각글 연재. 설계자x운반책. (2024.02.24)


  이 바닥은 돈을 원하는 이라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 했다. 그 더러운 샐러드볼 안에 유난히 샐러드같이 생긴 남자애가 나타나도, 다들 그러려니 했다. 저렇게 푸릇푸릇한 놈이라도 이 바닥 며칠이면 숨 죽은 야채처럼 점차 마르고 썩어가겠지. 굳이 마련된 미래를 신경 쓸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윤정한 역시도 그 동양인 남자애에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자기 할 일을 하고, 그 바닥의 입지를 넓히는 데에 집착했다. 최대한. 최대한 높은 곳까지 올라야 했다. 그래야 이 지긋지긋한 작전도 끝이 나니까.

 

  잠복근무. 미디어에서도 수도 없이 나오는 이야기지만, 미디어도 현실도 그 광경을 그리 멋지게만 그리지는 않았다. 현실은 현실보다 더 징그러웠고 더러웠다. 그곳에서 살아남고, 어떻게든 정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선 악보다도 물불을 가릴 수 없었다. 정한은 비 오던 날마다 창고 안에서 자신이 죽인 동료의 얼굴을 떠올리곤 했었다. 정체를 들킨 덕에 그를 처리해야만 했다. 그대로 두면 더 험한 꼴을 보니까, 그러니까. 그런 말을 뒤로 하고 그의 목숨을 얻어낸 뒤 이 바닥의 신임을 얻었다. 그 때부터 윤정한은 문득 의심이 생겼다. 정의를 지키는 것에 대한, 의의에 대한 의심이었다.

 

  동료를 사살한 것에 대한 보고는 거짓말로 무마했다. 그대로 덮기엔 자신의 입지가 이상할 정도로 높아졌으니, 그에 대한 거짓말을 짜 맞춰 보고서를 올렸다. 기밀로 인해 곧 태워지긴 했지만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 보는 윗배의 눈길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그 길로 윤정한은 고랑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길로도 가기 힘들다는 생각. 고립되었다는 생각.

 

  그러던 날 중에, 그 소문의 샐러드 같은 남자애를 만났다. 여러 종류의 사람이 오가며 일거리를 받아 가는 사무소 앞에, 캡모자를 쓰고 앉아 있는 까무잡잡한 동양인 남자애. 조금 긴장한 얼굴이지만, 그에게 아는 척을 하는 임시 동료들을 보면 또 금세 안심한 듯 풀어졌다. 해봐야 고작, 임시 동료일 뿐인데. 그런데.

 

  알 바가 아니었다. 윤정한은 고개를 돌렸고, 자신에게 배정된 임무를 체크했다. 운반책에는 보지 못했던 이름이 있었다. 도겸. 괄호 열고 DK. 보안의 이유로 사진은 없었지만 얼추 그 이름이 가리키는 쪽을, 윤정한은 금세 알아챘다. 바보같이 웃고 있는 남자애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르고 바보같이 웃는 놈인데, 운전이나 순발력은 기가 막혀. 얼핏 들은 남의 감상을 떠올렸다.

 

  *

 

  보통 팀이 모이면 윤정한의 역할은 대개 보안 프로그램과 현장 요건을 파악하고 루트를 짜는 것이었다. 덕분에 초반 작업을 위해 모인 인원엔 이를 안내할 운반책과 해커, 그리고 설계자 윤정한 셋이 있었다. 약속한 자리에는 배정된 차를 살피던 운반책이 먼저 있었고. 

 

  “안녕하세요.”

 

  그는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정한은 그것을 무시하고 한숨을 쉰 채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다가 금세 애매하게 웃었다. 그러다 저 멀리서 오는 해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영어였다. 정한이 껄끄러워 하는 것이라 느꼈는지, 그 뒤로 도겸은 정한에게 말을 걸 때도 꾸준히 영어를 써주었다.

 

  “여기가 그 물건이 보관되는 은행이에요.”

  “이번에도 뭔지도 모르는 걸 훔쳐야 하네.”

 

  익숙한 듯 서로 말을 건네는 해커와 운반책을 바라보다 정한은 신경 쓰지 않고 노트북으로 외부 보안카메라 위치를 체크했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올리면 백미러로 도겸이 자신을 쳐다 보고 있었다. 이내 곧 시선이 데구르르 굴러가는 게, 넌 정말 거짓말은 못하겠구나 싶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죄다 쌀쌀 맞네. 쌀밥 먹는 건 난데, 왜...”

 

  명백한 한국어였다. 꿍얼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면 정한은 이마를 짚었다. 웃기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멕시코 출신인 해커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도겸을 쳐다 보았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커브를 돌아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는 내내 조용했다. 영어로 하라고 욕을 해도 생각보다 그는 차분하게 미안하다 이야기 하고 쉽게 넘겼다. 그마저도 조금 의외였다.

 

  사전 작업이 끝나고 나면 해커는 곧바로 자리를 떴고, 어색하게 그와 자신 둘 만이 남았다. 옛날이라면 피지도 않았을 담배를 물고, 캡슐을 깨물어도 그 소리가 들릴 정도로 주변은 고요했다. 그럼에도 운반책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자신을 슬쩍 쳐다 보았다.

 

  “나 요리 잘하는 편이에요.”

  “뭐?”

 

  역시나 한국어였지만. 너무나도 뜬금없는 말에 정한도 한국어로 대답 해버렸다. 멀뚱히 쳐다 보다가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다시 한숨을 쉬긴 했지만. 바보같이 웃는다는 평이 자자했던 그 남자애는 정말 바보같이 웃었다. 정한은 잠깐 뭐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정말 뭐에 홀린 게 맞았을 것이다. 어느 새 그의 집 쇼파에 앉아 고추장찌개를 끓이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는 게. 정말 현실성이 없었다. 정한은 마른 얼굴을 쓸어내다가, 마침 자신이 좋아하던 한식집이 문을 닫은 광경이 떠올랐다. 그 뒤로 제대로 된 집밥을 먹어 본 적이 언제였지. 그 때문이라고 자신을 세뇌하면서도, 묘하게 포근한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싫다는 느낌도 들었고.

 

  “다 됐어요.”

 

  그가 불러 식탁으로 향하면, 야무지게도 차려놓은 반찬과 밥이 있었다. 틸라피아를 고등어 조림처럼 해 놓질 않나, 오쿠라와 멸치, 아몬드를 볶은 것도 눈에 띄었다. 김치 만큼은 제대로 된 배추였다.

 

  “요즘은 좀 살기 편해졌어요. 한인 마트 가면 비싸긴 해도 요리 재료들이 많아졌더라고요.”

  “네가 다 한 거야?”

  “요리해서 먹으면 좀 뿌듯하잖아요.”

 

  샐러드 같은 남자애. 푸르딩딩한 풀 냄새가 너무 매울 정도라 어이가 없다. 정한은 잠시 한숨을 쉬었다. 이내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에게 내뱉듯 이야기 했다.

 

  “아무나 이렇게 데려 오지 마. 아무나 믿지 말고.”

  “...그런 말 해줄 것 같아서 데려온 거예요.”

 

  그리곤 또 바보같이 웃었다. 

 

  그 날 식사는, 정말 맛있었지만 어떤 면에선 최악이었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 지. 윤정한은 밥을 먹는 내내 좆 됐다는 생각만 머리에 맴돌았다. 

 

  *

 

  착한 사람. 이 바닥에선 뿌리 뽑히기 딱 좋은 관상. 그가 어떤 루트로 인해서 이곳으로 왔는지, 루트를 밝히는 설계자로써 윤정한은 궁금증이 생겼다. 그의 주변을 살펴 보면 대개 인력에 휘둘리는 사람들이었고 사소한 희망으로나마 그를 대하는 것 같았다. 반대로 그 허물 없는 선함이 역겨웠던 이들은 그에게 혐오를 내뱉었고. 그럴수록 그는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지만 어느 날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회복력을 보였다.

 

  “늘 저렇게 웃고 다니는 놈은 둘 중 하나야. 빨리 죽거나, 빨리 미치거나. 이미 미친 놈일 수도 있고.”

 

  농담을 내뱉는 해커의 말을 적당히 씹어 넘기면, 그는 이미 정한을 여러 번 보았기에 익숙한 듯 휘파람을 불어 그를 나무랐다. 금세 그들을 알아채고 저기서부터 성큼성큼 오는 그 남자애의 얼굴이 밝았다.

 

  “아침은 드셨어요?”

  “왜 맨날 아침밥부터 묻는 거야?”

  “먹어야 힘내죠.”

 

  한국인이란 게 다 그렇지 뭐. 그 사실조차도 우스워서, 정한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노트에 의미 없는 낙서를 했다.

 

  운반책의 역할은 생각보다 넓었다. 그들을 현장으로 인도하고 도망치게끔 도와주는 역할도 했었지만, 미끼 역할을 할 수도 있었고 상황에 따라 거의 심부름꾼처럼 이용되기도 했었다. 도겸의 경우에는 스탠딩 코미디언도 더하는 격이었다. 영어가 그렇게까지 익숙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주변이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금세 신의를 얻기도 했었다. 웃음은 사람의 벽을 허무는 가장 좋은 독소다. 윤정한은 도겸을 보며 그 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렸다.

 

  시간은 빽빽하게 흘러가고. 그들의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다들 이 바닥에서 오래 묵은 인재들이었고, 척하면 척이니 작전 타임까지 준비하는 과정들이 순조로웠다. 그와 동시에, 윤정한이 도겸에게 홀리는 과정 또한 순조로웠다. 이게 다 그 한식집이 망해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모임이 끝나면 정한은 도겸의 집에 자연스레 놀러 가게 되는 사이가 되었다. 고추장 찌개, 순두부 찌개, 생선구이, 여러 볶은 반찬과 절임까지.

 

  “너 나한테 꿍꿍이 있지?”

 

  어느 날 찌개가 미친 듯이 맛있었을 때,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도겸은 에이, 하는 소리와 함께 주방으로 도망쳤고. 윤정한만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쟤 귀가, 좀 빨갰던 것 같은데.

 

  그 순간부터는 더욱 현실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업무에 해이 해진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붙잡는 그 날의 총성은 어느 새 잦아들고. 그가 요리하며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자주 귓가에 남았다. 또 시간이 지나면, 어느 날엔 그런 말을 했다. 자고 갈게. 이번엔 도겸 쪽이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놀랐다.

 

  “형이? 남의 집에서 자고 간다고?”

  “...나 지금까지 너네 집에서 몇 끼를 먹었는데, 이제 와서.”

 

  얘는 사람에 대한 눈치는 빠르면서, 감정에 대한 눈치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 점이 더 어리고, 풋내 나고. 그래서 가끔은 그 싱싱한 냄새가 너무나도 매운 것이다. 따로 잔다고 하는 그의 손을 끌어, 한 침대에서 잠을 잤다. 창문 밖으로 비가 내렸다. 수도 없이 내렸지만, 처음으로 그게 거슬리지 않았다. 처음으로 남의 허리를 끌어안고, 푹 묻으면 이상할 정도로 잠이 솔솔 왔다. 도겸아. 너 내 잠 담당 할래?

 

  처음으로 총성 없이 잠에 들었다. 그 사실이 눈물 나서. 정한은 깨자마자 그 애의 품에서 조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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