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겸

[윤겸] 나와 너의 가시나무 中

느와르물 조각글 연재. 설계자x운반책. (2024.02.29)


*

 

  그의 이름은 이석민이었다. 무당이 말하길 너는 팔자가 사나워 그 이름으로는 고향 땅에 발 붙이고 못 살 것이라 했다. 그리고 정말 사나운 팔자 덕분이었는지 그는 혼자가 되고 나서야 그 운명에서 도망치듯 미국 땅에 올랐다.

  곧바로 운전을 배워 운송업을 했다. 어느 날은 내기 경주를 하고 돈 모으는 방법을 알았다. 생각보다 재능이 있었던 그는 금세 펍에서 동네로, 동네에서 시로 이름을 조금씩 알려 갔다. 그런 그에게 어떤 남자가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세 달 뒤였다.

 

  일을 같이 하자고 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업이 있는데, 그들의 동료인 척 옆에서 일하며 감시를 해주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불법적인 일이지만 우리의 뒷배가 된다면 목숨을 보장함과 동시에 여기에 발 붙이고 살게 해 준다고 했었다. 목숨을 보장 받는 것에 혹했는지, 여기에 발 붙이고 살게 해 준다는 이야기에 혹했는지. 석민은 고민했지만, 곧 그러겠다고 했다. 대신 사람을 죽이고 싶진 않다고, 그것 만큼은 봐달라고 했다.

 

  “운반책은 사람 죽일 일 없어. 모든 건 우리가 해. 그래서 네 이름이 뭐야?”

 

  DK. Don’t Know. 모르고 싶은 이름. 이석민은 자신의 본래 이름에 부정이 탔다고 생각했다. 그 이름을 쓰면 이곳도 떠나야 할 지도 모른다고, 괜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과거 한국인 동료의 아들 이름을 떠올렸다. 이도겸이요. 그가 이곳에 와 처음으로 한 거짓말이었다.

 

  “발음하기 어려우면 DK라고 불러요.”

  Don’t Know. 나도 정말 내가 어떻게 굴러가는 지 모르겠으니까. 생각보다 괜찮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 인종 샐러드볼에 참여 하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운전 실력이라면 내노라 하는 그였으며, 생각보다 순발력이 뛰어나 여러 작전에서 성공을 했고 덕분에 그 바닥에서도 점차 이름이 팔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건실하게 일을 하면서도 뒷배로써 팀원의 수상한 낌새는 금세 보고 했다. 그는 본래 정직하고 선했으나 더 이상 선하지는 못했기에. 늘 정직하게 모든 일을 대했다. 그리고 정직함은 단단하지만 그는 물렀다. 수상했던 누군가 들이 없어질 때마다 정직함은 곧 그의 양심을 거적때기로 만들었다. 그래도 해야만 했다. 발을 들이민 이곳은 일종의 덫이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빠져 나갈 수도 없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한국 사람을 만났다. 도겸은 단번에 그를 한국인이라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온 터라 한국인으로서의 편견이기도 했었다. 생각해 보면 그가 미국에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일 수도 있는 거였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한국어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그를 보며, 도겸은 생각을 그쪽으로 고쳤고 괜스레 그게 미안했다.

 

  그래도 그렇지. 반가움은 곧 서운함으로 바뀌었다. 가뜩이나 이전부터 마른 동양인 남자애라고 배척도 엄청 받았었다. 그러다 만난 동향이라 좀 반가웠는데. 외모도 차가운 미인상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차가울 줄은 몰랐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죄다 쌀쌀 맞네. 쌀밥 먹는 건 난데, 왜...”

 

  절로 투덜거림이 나왔었다. 그리고 그 때, 고개를 푹 숙이는 그를 보면서 모종의 확신이 들었다. 나한테 사기 쳤구나, 저 사람. 동시에 그런 그를 웃겼다는 사실에 오랜만에 성취감 마저 들었다. 그래. 저 사람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 도겸은 아직도 사람의 선함을 믿고 있었고, 그 역시 그럴 거라 꿋꿋하게 생각했다. 일종의 자기 위로와 같았다. 

 

  위태위태하던 시기였다. 사람이 사라지고 나타나는 것을 보며, 제 정신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 그 때 나타난 윤정한은 이도겸에게 동아줄이었다. 그게 튼튼한지 썩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일단은 잡아야만 했다. 곧장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가 별안간 자신을 죽이려 든다 해도, 그걸로 끝내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은 그럴 만한 놈이니까. 그래도 되는 놈이니까. 그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마음의 위안을 조금이나마 얻고 죽는다면. 그런 죽음도 조금은 괜찮을지도 모른다. 바보 같고 어린 생각이었지만 그를 나무랄 사람은 주변에 없었고, 다행히도 윤정한은 이도겸의 뒤를 곧 따랐다.

 

  마침 해놓은 반찬도 넉넉했기에 미리 장 봐온 것들로 요리를 했다. 이따금씩 거실에 있는 그를 살피고 싶었지만, 그를 선행의 대체제로 쓴다는 사실이 계속 가슴을 찔러 쳐다 보지도 못했다. 자신이 그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한국인이라서? 내가 말하는 것에 웃어줘서? 잘생겨서?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서 일지도 몰랐다. 근데 그 거짓말이 자신을 해치지 않아서. 자신과 다르게 자기 앞가림을 잘하는 사람 같아서. 근데 결국은 감추지도 못해서.

 

  “아무나 이렇게 데려 오지 마. 아무나 믿지 말고.”

  “...그런 말 해줄 것 같아서 데려온 거예요.”

 

  그리곤 바보같이 웃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자신을 죽이지 않았다. 

 

*

 

  일은 여전히 수월하게 잘 흘러갔다. 남자의 사업은 계속해서 성황을 이루었고 작업 판은 끊임없이 굴러갔다. 자신은 주사위고 팀원들은 게임의 말이었다. 자신들이 주사위라 여기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보고하고. 그들의 말을 판 밖으로 낙오 시키기를 반복했다. 아마도 자신과 같은 위치의 사람들도 여럿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이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도 일이었다. 애초에 이 일 말고는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심리적으로 불안한 그에게는 모든 눈치가 다 자신에게로 향한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웃었고, 어떻게든 버텨냈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마저도 버거울 때가 있었다.

 

  그런 자신을 좀 더 힘 나게 만들어 준 건 어찌 보면 윤정한과의 관계 덕분이기도 했었다. 그와의 시간은 유일하게 쉬는 시간이었다. 그에게 요리를 만들어주고 그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다. 그가 자신에게 꿍꿍이가 있냐 물어도, 굳이 양심에 찔릴 필요도 없었다.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웃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점점 다정한 그에게 말하지 못할 감정의 꿍꿍이 마저 생겨서. 도겸은 거짓말을 했다. 꿍꿍이 같은 거 없어요, 라고. 그를 뒤로 하고 부엌으로 도망쳤을 때, 귀가 너무 뜨거웠고 그곳이 자신의 심장이 된 것처럼 두근거렸다. 정한에게 신경을 쓰면 쓸수록 속이 찔리듯 아팠지만 정직함이 자신을 찌르던 것보다는 괜찮았다. 오히려 고통은 고통으로 덮어졌다. 사라지는 사람들을 보다 가도 정한을 바라보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머리가 새하얘졌고 가슴은 새까매졌다.

 

  윤정한은 한식을 좋아했다. 쉬는 것을 좋아하고, 체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스포츠는 정말 잘했다. 평안하고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가 싶다 가도, 어느 순간엔 갑자기 말린 벌레를 먹어보자고 이야기 하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수도 없이 내기를 하고, 장난을 좋아했다. 어느 날부턴 자신의 집에서 자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안고 자는 것이 습관이었다. 자신보다 약간 작은 품이었지만, 그를 안아 주면 도리어 안기는 기분이 될 때가 많았다. 그는 악몽을 자주 꾸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도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깨자마자 울었다. 왜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은, 같이 살자고 얘기했다. 그러자고 했다. 조금씩 그를 더 알아 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저 친한 동생이라 생각한다 하더라도. 심지어 단순히 바디필로우 로만 생각한다 하더라도.

 

  또 어느 날은 그의 진짜 직업을 알았다. 오랜만에 만난 남자가 말해주었다. 나는 그에 대해서 이제 알아 가야 할 것 투성이 였는데, 남자는 그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선택지도 주었다. 그를 감시할 것인지, 그저 멀어질 것인지. 도겸은 그 사안에서 멀리 도망가고 싶었지만 겁을 겨우 삼킨 채 결정했다. 그를 감시하겠다고 했다.

 

  *

 

  그가 좋아하는 반찬과 찌개를 했다. 오늘도 추웠다며 자신의 허리를 감아 안는 것에 웃었다. 밥을 먹고 집안을 청소하며 혹여 라도 남자가 자신에게 감시를 붙이진 않았는지 살폈다. 취침 시간이 되어 나란히 침대에 누우면, 자신을 익숙한 듯 안아오는 정한의 귓가에 속삭였다.

 

  “형. 나, 형이 경찰인 거 알아.”

 

  품에서 숨이 멈췄다. 그의 등을 쓸어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나도 구해줘. 도와줄게. 나도 여기서 꺼내줘.”

 

  이도겸은 윤정한에게 새로운 꿍꿍이가 생겼다. 그 라는 동아줄을 잡는 것이었다. 이 썩은 우물 밖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 그리고 그 동아줄이 끊기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는 기회. 도겸은 그 밤에 정한에게 모든 사실을 토로 했다. 자신의 역할과, 모든 죄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계속해서 울음을 억눌러야 했다. 몇 번이고 숨이 멎을 뻔 했지만, 정한은 그의 손을 잡아주었고 끝까지 다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토로한 뒤. 그의 품에서 숨을 고르면서도. 자신의 거짓말은 전부 비워지지 않았음을 곱씹었다. 딱 두 개 만이 남았다. 자신의 감정, 그리고 자신의 이름. 도겸은 정한에게 그것 만큼은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의 길에 발 붙이고 살고 싶어서. 혹은, 누군가처럼 자신의 팔자에 그가 훨훨 날아가 버릴 까봐. 무당의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저 밤새 이야기 해주는 정한의 계획으로 그 독을 채웠다. 새로운 거짓말을 해야 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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