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겸

[윤겸] 내 얘X 좀 들X줘 下

괴담st. (2024.03.04)


 *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아무리 가족을 떠나 도망쳐 왔다고 할지라도. 연고지 하나 없이 외로움에 눅눅하게 절어 있더라도. 마침 시작한 아르바이트 직장 내 사장님이 친절했으니까. 마침 이사를 갈 수 있는 좋은 집도 찾았으니까. 서울 내에서 그 정도의 집을 찾아 자신의 명의로 전세를 갈 수 있는 돈도 모일 만큼 열심히 했으니까. 코피 쏟아가며 공부 해 결국은 장학금의 허용 범위까지 들어가게 되면, 그 땐 정말 행복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모든 일은 사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아니, 사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분명 자신이 모르는 어느 순간부터 모든 일은 자신을 위해 계획되어 있었다.

 

  그 모자 중 아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가게를 찾아오던 손님이었다. 나이는 한 60쯤 되었을까. 나중에 사장님에게 들었을 때 성씨도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고 했다. 과연 무슨 관계인지, 알 수도 없었지만 그는 이석민이 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직후부터 자주 찾아오기 시작했었다. 다만 그 연관성을 모르기에 사장님도 처음에는 단골이 생긴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했다.

 

  유독 친절했다. 그는 석민에게 가끔 이것저것을 묻곤 했었다. 나이는 몇인지, 여자친구는 있는지. 참하고 예뻐서 아들 같다며 가끔씩 팁도 챙겨주곤 했었다. 처음엔 거절했지만 이제 단골로써 자리매김하게 되면 그것도 거부하기 힘들었다. 그 때가 일 년 전이었던 가.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고 나면 사장님과 단골은 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고, 석민에게는 친구 아버님 같은 관계가 되어 있었다. 연고지를 떠나 홀로 온 그를 위로도 하며, 자신을 아버지처럼 여기라 했다. 착한 이석민은 마냥 그것이 반갑고 정에 겨워 그 자리에서 울 뻔 했었다. 물론 창피할 것 같아 겨우 울지 않았다. 울지 않기를 잘 했다. 쓰레기 같은 아저씨야.

 

  그로부터 반 년이 지나고. 고시원을 전전하며 살던 이석민은 겨우 돈을 모아 전세금을 만들었다. 가진 짐도 얼마 없어 이사 비용이야 얼마 안되겠지만, 당장 사람 살 만한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허나 근래 들어 고시원 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최대한 빨리 나와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무언가를 찾는 듯 이 방 저 방 뒤지며 다니는 괴한이 침입했다는 이야기였다. 아직 석민의 방까지 온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인원들을 세 보면 아직까지도 잡히지 않는 그가 결국은 자신의 방까지 올 것만 같았다. 

 

  그런 이야기를 그 아저씨에게 토로한 적이 있었다. 측은한 얼굴로 보더니, 전세금이 얼마나 모였냐며 물었다. 정직하게 대답하고 나면 갑자기 어디론 가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밝은 얼굴로 이야기 했다.

 

  “내가 너 살 만한 집 얻어 줄게.”

 

  서울은 눈을 뜨고 있어도 코를 베어 가는 곳이라는 것을. 이석민은 이미 그 전에 사기를 당해서 라도 알아야만 했었다.

 

 *

 

  그로부터 며칠 뒤. 주소지를 먼저 보내 준 덕분에 공인중개사도 없이 그 곳을 둘러 볼 수 있었다. 중개 비용까지 생각하면 직거래가 나은 것도 같으니. 살펴 볼 수 있는 것만 살펴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게다가 제시한 금액도 사실 터무니 없었다. 위치에 비하면 사실 터무니 없는 것은 제가 모은 돈이었는데도, 그 돈에 맞춰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 이석민은 인간 예찬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장님이 늘 예배 이야기를 하며 사람은 원래 선하다고 말씀하실 때만 하더라도 웃으며 예예, 했었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로 인간의 선의를 통해 자신이 제 자리에 매김 할 수 있을 줄은 몰랐지. 

 

  만나게 된 집주인 할머니는 묘하게 그 아저씨와 닮아 있었다. 차마 관계를 묻는 건 실례일 것 같아서, 그런 생각만 하는데 그 어르신도 상냥하기는 정말 상냥했었다. 자신의 손주 같다며, 만약 들어오게 되면 필요한 건 언제든 말하라며 자주 웃어주었다. 사람의 웃음에 약한 석민은 그저 기분 좋아 웃으며 자신의 할머니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그렇게 옥탑방을 둘러 보았을 때. 분명 방의 상태도 괜찮고 무엇보다 내는 비용에 비하면 정말 후한 방이었기에 석민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냥 굴러 들어온 복에 가까웠다. 그 집은. 집 주변을 둘러 보다가, 문득 발견한 창고를 보아도 사실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었다. 자물쇠로 꼭 잠겨 있으니, 시덥잖게 물은 적은 있었다.

 

  “저게 무슨 창고예요?”

  “아, 저거? 우리집 그냥 잡동사니 창고. 신경 안 써도 돼.”

 

  *

 

  이사를 온 날, 곧바로 확정 일자를 받으러 주민센터에 간 순간부터 모든 것이 틀어졌다. 알고 보니 옥탑에 있던 방은 아예 주소지가 등록되어 있지 않은 곳으로 불법증축이 의심된다고 했었다. 그 외의 모든 조건들은 샅샅이 둘러 보아도 괜찮았었는데. 예상치도 못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머리가 새하얘지고 나서는, 돈을 잃어버릴까 싶은 생각에 판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사실에 관련하여 어떤 일이 일어나도 본인이 책임지겠다는 계약서를 쓰고 나서야 확정 일자를 받았다. 이걸 받아도 돈은 살릴 수 있나. 월세도 아닌데. 그런 생각만 가득할 뿐,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도 까마득했다. 

 

  집에 도착해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난 뒤에야 집주인 어르신에게 전화를 했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미안하다며, 나중에 꼭 보증금은 돌려 준다며 안심하라고 했다. 누구 의지할 곳도 없는 와중에 그 목소리가 친절해서, 그리고 따뜻해서. 이석민은 마르는 입안에도 알겠다고 밖에 말을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3개월. 이상할 정도로 그 집은 고요 ‘했었다.’ 다세대 주택이라 분명 반지하와 1층, 2층 모두 사람이 사는 집이었고, 분명 누군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유독 고요했기에 그저 방음이 잘 되는 것이라고만 생각 했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나서는 집을 오가면서도 한 명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3개월. 그 때서야 뭔가 잦은 대화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밤에 잠을 자려 누우면 바닥에서부터 중얼거리는 소리처럼 무언가 들려 왔다. 정확히 무슨 대화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래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그 때부터 조금 안심을 하고 잠에 들곤 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그 사람들을 본 건 아니었다. 그들은 낮에도 조용하다가, 꼭 밤이 되면 밑에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음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작았기에, 가끔은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 때도 있었다.

 

  *

 

  문제는 5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일어났다. 그 날 따라 손님이 많아 12시에 일찍 잠에 들었던 석민은 정확히 새벽 2시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깼다. 누구냐고 물었지만 문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공포 영화 클리셰처럼 문을 열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불 속에 숨었다가, 바로 옆에 있는 불투명 창문을 쳐다 보았다.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면 그대로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 때 처음으로 사장님에게 문자를 했었다. 사장님. 저희 집에 누가 계속 문을 두드리는데,

 

  처음에는 그저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매일 반복되고 나면 결국은 사장님의 도움으로 문 앞에 둘 보안 카메라를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을 제대로 설치하고, 작동하는 지까지 분명 살폈지만... 새벽 2시가 되었을 때엔 소용도 없었다. 어플을 켜 확인해 보아도 잡음과 함께 고장 났다는 표시만 떠 있었다. 그게 6개월 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 석민은 정말 집 밖으로도 못 나갈 뻔 했다. 겨우겨우 울면서 사장님에게 전화하여,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진정된 뒤에야 출근을 했다. 사장님은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그를 달래 가며, 혹시 라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같이 가주겠다고 이야기 해왔다. 그 말에 오늘 하루만 버텨보겠다고 하며 갔는데.

 

  퇴근하자마자 돌아온 집 창문에는 손바닥 자국이 잔뜩 찍혀 있었다. 무언가 두드리듯이 여기저기 난잡하게 자국이 나 있었다. 귀신을 무서워 하기에 매번 친구들이 장난치듯 들려 준 괴담들이 떠올랐다. 귀신이 많기로 소문난 터널 안으로 차를 몰고 갔는데, 계속해서 누군가 달리는 차창을 두드렸고 터널을 나오자 그곳에 손자국이 잔뜩 남았다던 그 이야기. 손자국을 닦으려 밖에서 닦았는데, 닦이지 않았다고 했다. 안에서 닦으니 닦였다고 했다. 그 말인 즉슨...

 

  석민은 거의 울 듯한 얼굴로 창문에 조심조심 다가갔다. 소매를 들어 손바닥을 조금 닦아 보았다. 닦였다. 자신의 방 안에서. 석민은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집 밖으로 뛰쳐 나갔고, 피씨방에서 꼬박 밤을 샜다.

 

*

 

  그 뒤로는 모든 이야기가 그대로였다. 결국 석민을 도와주러 찾아온 사장님은 가위에 눌리며 귀신에게 협박을 당했고, 석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널 그렇게 끔찍하게 여기던 저 아저씨를 죽일 거라고. 피를 뚝뚝 흘리며 협박하는 어떤 남자가 제 몸 위에 탄 채 이야기를 했었다고. 그 땐 공포에 질려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사장님을 내쫓고 난 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울고만 있었다.

 

  아직은 낮이라 괜찮아. 아직은 낮이라 괜찮아. 수도 없이 자신을 어르고 달래고. 조금씩 차가워지는 몸에 석민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상할 정도로 추웠다. 등부터 서늘한 기운이 들었다. 누군가 자신을 감싼 것처럼.

 

  그 날 밤부터 이미 들어왔다는 것을 티 내듯, 밤이 되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을 둘러 보듯 차분한 소리였다. 석민은 그저 덜덜 떨며 이불 속에서 나오지 못했고, 그렇게 밤을 새다가 결국 체력에 못 이겨 잠에 들면 그 남자를 보았다. 이번엔 이상할 정도로 깨끗한 얼굴이었다. 그가 자신을 안은 채 정면에서 바라 보고 있었다. 분명 예쁘장한 얼굴이었지만 그것에 정신이 팔릴 만큼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석민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고, 남자는 석민의 볼을 닦아 주었다. 내 말만 들어주면 돼. 석민아. 그럼 널 해칠 일은 없어. 이상할 정도로 다정한 말에, 이석민은 동아줄이라도 붙잡듯 깜빡 넘어갈 뻔 했다. 이걸 스톡홀름 신드롬이라 했던 가.

 

  다행히 바로 넘어가진 않았다. 잠에서 깬 석민은 집 밖으로도 나가지 못하는 대신, 사장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목소리를 내면 귀신이 들을 까봐. 이불 속에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뒤에서 숨소리가 들려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석민은 뒤를 쳐다 보지도 못하고 휴대폰을 껐다. 계속해서 답장이 오는 데도, 보지도 못했다.

 

  석민아. 휴대폰 꺼.

 

  경고는 단 한 번일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석민은 생애 처음으로 차분하게 휴대폰을 끄고 숨을 몰아 쉬었다. 등 뒤에서부터 다시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때, 또 다시 문득 생각했다. 그 때, 이 사람이 날 껴안고 있었던 거구나.

 

  *

 

  잠을 자지 않고 겁에 떠는 것도 체력에 부치는 일이었다. 계속해서 시린 기운이 등에 붙어 있었지만, 석민은 결국 울다 지쳐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차라리 잠에 들어 모든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맘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를 그렇게 두지 않았다. 오히려 잠에 들자 석민의 앞에 늘어지듯 앉아 있는 모습이 선명했다. 석민은 꿈에서도 울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요. 그런 말을 하면 남자가 다가와 다시 안아 주었다.

 

  너도 갈 곳이 없잖아. 나도 그래서.

 

  문득 석민은 그 품이 따뜻하다는 착각에 빠졌다. 아마 꿈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그의 품에 저항도 못하고 안긴 채 엉엉 울어도 꿈에서 깨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득 지치고 나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럼 날 데려 갈 거예요?”

  아니. 난 너 못 데려가. 산 사람이잖아.

  “그럼요? 그럼 왜 날 괴롭히는 거예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떼어 석민을 쳐다 보았다. 이제는 익숙해지기까지 한 그의 얼굴이 더 이상 창백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 같아서. 괜스레 안심이 되는 것만 같았다. 그는 망설이는 듯 입을 다물었다. 곧 울 것처럼 눈가가 젖었다. 

 

  내 얘기 좀 들어줘.

 

  그 말을 하는 그가, 이상하게도 예뻐 보였다. 석민은 정말 자신이 미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

 

  당분간은 꿈에 갇힌 것처럼 깨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수그린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결국은 맘 약해진 석민이 남자의 손을 잡았다. 보통 한 맺힌 귀신 이라고들 하지. 생각해 보면 그 귀신들도 불쌍하다고 여긴 적이 몇 번 있었던 지라, 그런 이야기인가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넉살도 좋다만, 그건 다 이석민이라 가능한 이야기일 지도 몰랐다.

 

  “미안해요. 근데 나도 무서워서... 별 수가 없었어요.”

  나도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네가 떠날 거 같아서. 

 

  그렇다고 해서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었는데. 보통 원한을 푼 귀신은 성불한다고들 하는데, 그걸 도와줘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순한 이석민은. 석민은 잠시 쥐고 있던 그의 손등을 무의식적으로 매만지며 생각에 빠졌고 문득 자신의 그런 행동을 알아채면 귀가 빨개져 그 손을 놓았다.

 

  “그, 미안해요. 이것도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그 말에 오히려 남자 쪽에서 다시 손을 잡아 왔다.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기에 더더욱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울고 있던 그가 어느 새 눈물을 그친 채 석민을 바라봤다.

 

  네가 따뜻해서 살아 있는 거 같아.

 

  이석민은 마음이 약했고 본래 선했다. 사장님은 늘 그가 악의 구렁텅이에서 주님과 함께 맞서 싸우기를 원하셨지만, 야속하게도 성선설은 지극히 이석민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극이기도 했다. 그는 맞서 싸우지 못했다. 그저 그 원한을, 자신이 풀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선의에 품어 버렸을 뿐.

 

  *

 

  그의 이름은 윤정한 이었다.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 왔는지도 잊어버렸다고 했었다. 다만 기억이 나는 것은 잃어버린 관계 뿐.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는데 왜 잃었는지도 모른 채로 모두와 헤어져 살아왔다고 했다. 누구에게든 아무리 말을 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내내 여기에 갇힌 지박령 처럼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분명 가족들은 제 명에 살다 죽었을 텐데. 인사도 하지 못하고 보냈다고. 아무리 죽어도 그들에게 갈 수 없었다고. 늘 외톨이였다고.

 

  문득 그 이야기에 홀로 남은 제 자신이 투영되었다. 이석민은 괜히 자신이 더 눈물을 뚝뚝 흘렸고, 정한은 조금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 보았다.

 

  네가 왜 울어?

  “그냥요. 불쌍해서요.”

 

  정한은 유독 휑한 그의 집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문득, 그가 이렇게 수 일을 집에 갇혀 있어도 그가 사장님이라 부르는 이 외에는 아무도 연락하지 않는 것을 떠올렸다. 이렇게 빈 곳이 너절하게 드러난 사람이 다 있을까. 귀신이 불쌍하다고 우는 얘도 참 웃기지만, 그 웃긴다는 사실에 마침 그의 사정까지 신경 쓰이는 것은 분명 별 일이었다.

 

  우연한 기회였지만. 그래도 얘라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문득 했다. 정한은 다시 그를 끌어 안아주었다. 체온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체온이 생각보다 더 따뜻했다. 유독 열이 많은 애구나. 그런 생각도 들 정도였다.

 

  *

 

  이석민이라는 애는 생각 이상으로 순진한 애였다. 자신을 꿈에서 내보내 주지도 않고 내내 붙잡고 있어도, 그 사실에 대해서 의심도 하지 못했다. 그러도록 만든 것도 자신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불쌍하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도와주겠다 말하는 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렇지. 이렇게 자신을 괴롭힌 귀신에게 도와주겠다고 말도 못하지 않나.

 

  알수록 이상한 애였다. 꿈 속에서의 세월이 흘러 한 달이 되었을 땐 자신에게 형이라 부르며 말도 놓았다. 오히려 현실로 돌아가기 싫은 건 아닐까? 그런 의심도 했었다. 물론 그 의심이 반 쯤은 맞았을 것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그 역시 가족에게 못 돌아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

 

  체온이 좋다고 말한 순간부터, 얘는 늘 자신의 손을 잡아 주었다. 역시나 열이 많은 편이라 맨날 이불도 잘 안 덮는다고. 그런 수더분한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었다. 그래서 그가 보고 싶다고 말하면 뭐든 보여주었다. 벚꽃이 보고 싶다고 하면 보여주고, 무지개가 보고 싶다고 하면 보여주었다. 그곳에선 그에게 뭐든 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석민이도 분명 그걸 좋아했다. 걔는 거짓말을 못하는 애였다. 그래서 문득 좋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꿈에서 이정표를 찾지 못한다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석민의 이정표는 현실에도 없었기에, 생각보다 순순히 제 손 안에 들어 왔다. 그 사실이 안타깝고, 어느 날은 그게 너무 사랑스러웠다. 얘와 자신의 차이는, 그저 죽음의 유무 일 뿐이었다. 생각보다 닮았고, 생각보다 달랐다.

 

  그 사실에, 결국은 이 아이구나 하고 결정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석민에게는 다소 잔인한 이야기일 지라도, 결국은 팔자가 우리를 끌었구나 하고 받아 들이는 수 밖에.

 

  이제 손을 끌어 껴안는 것이 익숙해지는 순간이 이어졌다. 동정은 연정으로 변하고, 안타까움은 곧 가엾음으로 변했다. 자신이 아니면 이 사람은 홀로일 것이다. 그 생각이 둘의 사이를 통하기 시작하면, 꿈에서의 시간은 곧 2년, 3년이 흘렀다.

 

  먼저 입을 맞춘 것은 예상치 못하게 이석민이었다. 다소 망설인 것은 윤정한이었다. 이제 아무 데도 돌아갈 수 없을 텐데. 너와 내가 이어진다면, 더 이상 산 사람과도 살지 못할 텐데. 늘 너에게 내가 눌어붙어 있을 텐데.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가 후회할까 봐. 정한은 입 맞춘 것에 화답하듯 석민의 허리를 감아 안았다. 그 날은, 수 해 만에 처음으로 잠자리를 같이 했다.

 

  *

 

  꿈에서 수 해가 지나고 나서야 석민은 눈을 떴다. 분명 그와 몸을 섞었던 기억이 선명하게 나건 만, 자신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현실이 더 꿈만 같았다. 다시 홀로 남은 집은 차갑고, 서늘했다. 석민은 문득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휴대폰을 켜 시간을 보았지만, 수 해가 지나기는 커녕 자신이 잠든 그 다음 날이었다. 모든 것이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떠나간 것 같았다.

 

  다시 누웠다. 다시 꿈에 들기 위해서. 눈물이 계속 뚝뚝 떨어져서, 잠에 들지 못했다. 정한이 형. 그렇게 부르고 나서야,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제 몸에 한기가 들었다. 그대로 몸을 돌려 누웠다. 자신을 쳐다 보는 창백한 얼굴. 자신도 모르게 안도감이 들었다. 곧장 그를 껴안았다.

 

  그 날이 정월대보름의 다음 날, 귀신날 이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였지만, 이석민은 알지 못했고. 혹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윤정한은 그 사실 마저도 알고 있었다.

 

 


- 전통에 대한 재해석 O. 영화 기담에서 소재를 일부 가져왔습니다.  

- 상편이 전체이용가라 하편도 전체이용가로 만들었습니다. 귀접은 나중에 시간 나면 가져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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