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판이 보고 싶은데 수인물도 보고싶다.2
깜돌_
당장 그다음 날이라도 만나고 싶었지만... 이제 황후가 왕국의 세자빈이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함. 그 동안은 사실 일 배운다고 맛만 본 거고. 그러니 예준이도 보좌관으로서 세자빈의 업무를 보조하려면 진짜 엄청 바빠질 건 안 봐도 뻔했음. 그래서 자기가 만나자고 말하고도 날짜 정하자고 말 나오자 땀 삐질삐질 났음. 내가 진짜 정말 몹시 바빠질 예정이라 혹시 한 달 뒤에 볼 수 있을까?를 최대한 젠틀하게 말했는데 다행히 냥수인이 자기도 사실 근래에 너무 바빠져서 너무 빨리 보자고 할까 봐 걱정했다며 그러자고 함. 예준이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장소랑 시간까지 정한 뒤 인사 나누고 자기 일 하러 감.
그렇게 둘은 헤어졌고 남예준 보좌관은 코피 터지는 한 달을 보냈다... 일이 끝나도 끝나도 계속 몰아쳐서 하루에 5시간 자면 진짜 많이 잔 수준이었음. 야근은 기본이고 주말도 없었음. 나중엔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어서 일찍 출근하기까지 함. 아무래도 일을 새로 배워야 하니 손이 한두 가지 가는 게 아니었음. 그래도 욕 나오는 한 달을 버틴 건 냥수인과의 약속 하나 때문이었음. 나 한 달 동안 개고생 할 거 뻔하니까 그날에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쉬겠다고 예준이가 박박 우겨서 휴가 처리도 미리 다 함.
그리고 대망의 D-day. 둘은 왕궁의 남쪽에 위치한 문에서 점심시간 전에 만나기로 함. 왕궁의 남쪽으로 시장이 잘 형성되어 있어서 데이트 하기엔 딱 좋은 곳임^^. 너무 꾸미면 냥냥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예준이 꾸안꾸 패션 하고 감. 날이 더워도 셔츠는 포기 못해서 잘 다려진 희고 얇은 셔츠에 장식 아무것도 안 하고 사파이어로 된 커프스 하나만 딱 꼈다. 거기에 안경까지. 일할 때는 머리 감을 시간도 없어서 엉겨 붙은 채로 다녔는데 오늘은 가볍게 반깐정도? 하고 나옴. 남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눈에 익은 놈이 하나 보여.
- 여기서 뭐 하세요, 안 들어가고?
바로 한껏 꾸민 유하민이었음. 둘은 일 할 때 자주 마주치긴 했는데 서로 너무 바빠서 데면데면한 사이랄까...? 물론 초반엔 예준이가 장난도 치고 했었는데 시간이 도와주질 않았음;; 여튼 그래서 아직도 서로 존대함. 오랜만에 보니 은근히 반갑기도 해서 예준이 차려입은 하민이 한번 훑어주고 능글맞게 묻기 시작함.
- 그러는 유 보좌관님께선 뭐하셨길래 이렇게 늦게 출근하십니까?
- 전 오늘 여기서 만날 사람이 있어서 휴가 냈어요.
- 음? 휴가요? 오늘 두 마마들께서 아주 난리가 나시겠군요.
- 왜요?
- 저도 오늘 쉬기로 했습니다. 하하! 두 분께서 오늘로 이 보좌관들의 노고를 뼈저리게 느끼시겠죠?! 그럼 보너스도 받고, 부보좌관도 들이고···, 흐흐흐.
음흉하게 웃는 예준과 멀찍이 떨어진 하민은 시간 체크를 했음. 얼굴도 모르는 채로 헤어졌으니 붙어있다간 상대가 지나칠 것 같아서. 하민이가 아슬아슬하게 약속 시간 전에 도착해서 안도하는 사이 예준이가 슬금슬금 하민과 거리를 좁혀감.
- 왜 자꾸 붙으세요?
- 아니, 같이 기다리면 서로 말동무도 되고 좋지 않나요?
- 상대분이 헷갈리실까 봐 걱정돼서 일부러 그런 거예요.
- 그건 그렇네요. 그럼 이번만 서로 떨어져 있읍시다. 어차피 우리는 은퇴하거나 한명이 지쳐서 왕궁에서 나가떨어지기 전까진 계속 얼굴 봐야 할 사이니까.
예준이는 자기가 말하고도 몸을 부르르 떪. 왕궁에서 은퇴할 때까지 일 해야 한다는 거 자체가 소름 끼쳐서. 하민도 같은 생각인지 좀 떨어진 옆에서 한숨 푹 쉼.
그리고 또 기다려. 기다림에 무한동력이 있다면 지금일 것임. 약속 시간도 한참 지났는데 상대가 안 와. 예준이도 회중시계 들여다보면서 시간 체크하고 하민이도 손목시계 들여다보면서 점점 표정이 굳어감. 이쯤 되니 서로 민망해지기 시작함. 솔직히 직장동료가 아무리 친하다 해도 애프터 까인 것 까지 공유하고 싶진 안잖아ㅠ
둘 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한가지 간과했던 사실을 깨달음. 옆에 있던 사람이 직장동료라 당연히 상대가 아닐 거라고 생각한 것임.
설마 그런 미친 우연이 있겠어...?
생각한 예준이가 굳은 미소를 지으면서 하민이 쳐다봤는데 하민이도 같은 생각한 건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얼굴이 사색이 돼서 예준이 보고 있음. 그... 가설을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물어는 봐야 하지 않겠음? 결국 패닉 온 하민이 말고 연장자인 예준이가 말을 꺼냄.
- 유 보좌관님. 혹시 묘족... 이신지요..?
- 그, 그, 그럼 남 보좌관님은 토족...?
- 렉돌.....?
- 롭이어....?
좆됐다.
둘은 대답 안 하고 서로 묻기만 했는데도 상대의 표정으로 답을 알아버림. 유하민 식은 땀을 비 오듯이 쏟아내며 시선을 한 곳에 두질 못함. 남예준은 헛웃음만 연속 다섯번 흘림.
내가 직장동료랑 무슨...
내가 다섯살이나 어린 놈이랑 무슨...
이런 생각이나 하던 도중 유하민이 정신 잡겠다고 왕궁 안으로 들어가려고 함. 자기 그냥 일하러 가겠대. 그냥 일하게 해달래. 어차피 알게 된 이상 우리가 어떤 사이가 될 것도 아니고 서로 흑역사니까 묻어두고 없는 일로 하쟤. 그치만 남예준이 진심으로 개정색하며 필사적으로 유하민을 붙잡음.
- 미쳤습니까? 어떻게 얻은 휴간데 이걸 그냥 날려요? 창피해서 정신이 나가버렸어요? 이런 일, 살다 보면 별것도 아닙니다. 웃긴 추억하나 만들었다- 하고 그냥 지나가면 돼요. 근데 지나간 휴가는 다시 안 온다고!!!
늘 자기 놀리려고 실실 웃음치던(아니다. 그냥 귀여워했던 것이다.) 남예준이 역정 내는 모습 처음 본 유하민이 놀라서 동작 그만 상태 되자마자 남예준이 유하민 팔목 단단히 붙잡고 잡아 끎. 그렇게 왕궁에서 둘은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 저, 저기,
- 돌아간다는 말 할 거면 입 다무시옵소서, 보좌관 나으리.
- 아니, 그게 아니라... 이 근처에 제가 아는 맛집이 있는데 거기 가실래요?
- 어? 드디어 정신 차리신 겁니까? 전 좋아요.
- 아니요. 그냥 정신을 놓은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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