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토우] Cyber 11120525 (上)

3차x3차

적폐캐해 및 묘사 주의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거리는 겉으로 보기엔 화려해 보였다. 사람들은 어딘가로 바쁘게 전화하고 있었고, 비틀거리는 취객은 거리를 돌아다니는 안내용 로봇의 도움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눈이 아플 정도로 반짝이는 간판과 격자 형식으로 된 바닥, 시각적으로도 자극적인 이곳은 평화로워 보였으나 속은 곪아있었다. 무정부 상태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질서라고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로봇이 잡아주는 게 다였다. 또한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기술을 토대로 불법이 성행하고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가져온 것뿐만 아니라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안드로이드가 탄생했으며 팔이나 다리 같은 장기 정도는 기계로 대체하기 일쑤였다.

 

아토비스는 임무 완수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였다. 군사용 안드로이드가 만들어지는 거야 별일도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어딘가의 군부대에서 만들어진 로봇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정도로 생각했다. 총을 들고 목표를 포착하였는지 저벅저벅 걸어가는 그는 항상 무미건조한 얼굴이었다. 밤에 빛나는 그의 눈은 자기를 제거하려고 온 목표물 입장에선 섬뜩해 보였지만 임무가 아니라면 콘크리트 사이를 비집고 피어있는 꽃이나 날아다니는 참새를 보는 게 일상이었다.

어떠한 목표도 없이 단지 시키는 대로 명령을 이행하는 게 일상인 그는 자기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아갈 뿐이었다. 어차피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 한들 생각도, 감정도 없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가 무얼 알겠냐며 일부는 그에게는 감정 회로가 없다고 코웃음 치기도 했다.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교류를 목표로 하기에 감정 회로를 심어두고, 인간과 함께하며 느끼는 감정에 에러가 뜨지 않도록 설계가 되어있지만, 군대에서 쓰거나, 임무를 목적으로 한 안드로이드는 달랐다. 모든 걸 배제한 채로 사는 존재기에 목표 의식이 없었고 혹시 모를 반발을 우려하여 주기적으로 메모리칩을 건들어 초기화시키기도 했다.

그들이 간과한 것은 아토비스는 사람을 닮았어도 똑같은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제어하는 게 전부였다. 아토비스를 만든 누군가가 제법 별난 건지, 아니면 악감정이 있어 엿을 먹으라고 한 행동인지는 몰라도 아토비스는 지나칠 정도로 순수했다. 임무를 하고 나면 어딘가 지친 기색이기도 했다. 새가 다친 걸 보면 지나가지 않고 몰래 보살펴 주기도 했다. 그들의 손을 거친 새들은 다 나아 하늘을 향해 날아가기도 하는 반면에, 그대로 눈을 감기도 했다. 그가 가끔 느끼는 안쓰러움은 아토비스 같은 안드로이드라면 느낄 수 없었다. 다른 동료들에게는 다가오지 않는 동물도 아토비스에게는 다가오며 도망가지 않기도 했다. 그는 이런 마음을 느끼는 게 이상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에러를 지우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던지라 임무를 지시하는 이도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잠깐의 변덕이라 치부하며.

 

그날도 어김없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마천루에 걸린 초승달은 신비로웠다. 어둠이 짙게 깔린 무기질적인 밤 풍경은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는 아케이드 게임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도시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돌아간 조용한 거리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도둑고양이나 암매상, 소매치기로 먹고 사는 놈들이 활보하는 때였기에 주머니를 털리지 않기 위해선 정신을 차려야 했다.

주황빛과 파란빛 네온사인으로 깜빡깜빡 빛나는 간판은 수명을 다해 가는지 어두워졌다. 간판을 뒤로하자, 옷에 달려있던 후드로 주황빛의 머리카락을 가리고 있던 남성이 아토비스의 앞에 나타났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시간을 내달라는 듯, 앞을 가로막고 있던 아토비스는 빠르게 앞에 있는 남성의 정보를 스캔했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녀석일 수도, 그의 잔당일 수도 있었다. 아토비스가 목표물과 남성의 모습을 비교하며 회로를 돌린 결과 일치 0%가 떴다. 캄캄한 밤에서 빛나는 눈은 다음 행동이 어떤 것일지를 예측하는 듯했다. 남성은 아토비스를 빤히 바라보더니 어깨 정도의 높이로 두 손을 들었다. 제 앞에 있는 녀석에게 투항한다는 의미는 아니었으나, 공격할 의사도 없다는 뜻이었다.

“내가 마음만 먹었으면 진작에 널 습격했을 거야. 안 그래?”

“…무슨 의미.”

“싸울 의지가 없다는 뜻이야. 오히려 너도 그걸 바라는 걸 아냐?”

평화를 바란다는 건 어쩌면 아토비스의 회로에는 입력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앞에 있는 목표를 섬멸하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지시에 충실히 따를 뿐이었고, 본인이 원하던 것이 정확히 어떤 건지. 앞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그들처럼 목적이 단순한 안드로이드는 폐기 처분을 면하는 게 고작이었다. 만약 감정을 알고, 본인이 하고 싶은 걸 알게 된다면 실패작으로 간주 되어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학습된 공포를 각인시키려는 듯 폐기 처분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행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처분을 면하고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도망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임무로 마모되어 가는 녀석들이 저런 방법을 고안할 리는 없었다. 지시를 따르는 게 전부인 그들이 여기서 뭘 더 생각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앞에 있는 남성은 자신을 매드니스라고 소개했다. 달빛에 비친 그림자 탓에 얼굴이 자세히 보이진 않았다. 어딘가 위험하다는 분위기를 풍긴 것이 아토비스가 일차적으로 느낀 것이었다. 물론 매드니스는 진짜 이름은 아니고 일종의 코드네임이었다. 어디 소속인지도 밝히지 않은 그는 의아해하는 아토비스를 흘깃 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다른 녀석들이었다면 총을 겨누고도 남았을 텐데. 아니면 진작에 날 쐈거나. 너는 꽤 신중한 성격으로 만들어졌나 보지. 네 이전의 녀석들이 분간도 못 해서 멋대로 학살하고 다니기라도 했나?”

아토비스는 이전의 상황을 잘 알지 못했기에 매드니스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아토비스의 입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건 매드니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어느 쪽이어도 좋았다. 그러나 매드니스의 말투에서 들리는 건 진짜라는 걸 알려주는 듯했다. 남들이 잘 보이기 위해 했던 거짓말 등은 목소리나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에서 알 수 있었다.

이전에 있던 사고의 파일은 아토비스에게는 전달되지 못한 모양이었다. 크게 사고 치는 녀석들이 많아서 안 보이는 걸 보면 들켜서 처리되었다거나. 뒷말은 회로 수신에 이상이 생긴 건지 노이즈가 껴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중간중간 끊기는 말이었어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아토비스가 이러는 것도 누군가의 눈에 발각된다면 메모리가 지워지거나, 심하면 데이터와 같이 소각장에서 처리될 수 있었다. 아무도 보는 것 같지 않은 시간이었어도 관망하는 자는 어딘가에 있기 마련이었다.

매드니스가 굳이 다 꺼져가는 곳으로 자리를 잡은 이유가 있었다. 은밀한 만남을 하기엔 이곳만큼 좋은 장소도 없었다. 오래전부터 주시한 것 같기도 했다. 둘이 만나는 장소는 달빛도 밝지 않아 가까이 가지 않는 이상 제대로 존재를 식별할 수 없었다. 드론을 띄우는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으나, 드론을 띄울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었다. 모든 게 0과 1의 데이터로 이루어진 것 같은 세계는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었어도 인간으로의 도리는 지키자는 것이었다. 기계가 모든 걸 판별하고, 속이 곪을 대로 곪은 도시라 하더라도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마저 침해된다면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라는 의미가 없었다. 나름의 매뉴얼을 만든 곳이라 하더라도 모두에게 상식이 부여되는 건 아니었다.

매드니스는 상황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이번에는 말이 통하는 상대라 다행이네. 나에 대한 정보를 말했으니 이젠 네 차례야. 가볍게 이름 정도만 말해도 돼.”

“아토비스다.”

간단히 이름만 말하는 상황임에도 지금 아토비스의 목소리에서는 평소에는 찾아볼 수 없던 무미건조함이 드러나지 않았다. 무슨 변화인지도 모를 아토비스에게 매드니스는 입력 오류와 같은 변수와도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복잡한 감정은 도화선에 붙여진 불씨 같았다. 식었다고 아무렇지 않게 방치한 것이 바람을 만나면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아토비스가 마모되어 가는 걸 안 매드니스는 선의나 동정을 베푸는 게 아니었다. 그저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매드니스는 앞으로는 여기서 만나자며 기약 없는 약속을 한 채로 달이 구름에 가려지자마자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마모라는 건 단순히 금속에 덧입힌 칠이 벗겨지거나 기능 저하와 같이 낡아가는 게 아니었다. 깎여나가고 닳아서 사라지는 것 같은 사전적 의미는 보이지 않는 것에도 통용됐다. 인간이 느끼는 계속된 노동이나 피로함으로 감정이나 생각을 잃어가는 것처럼 아토비스와 같은 부류는 임무를 지속하면서 의지를 잃어갔다. 돌연변이로 감정적으로 태어난 안드로이드였어도 한 번이 어려웠지. 그 이상은 쉬웠다. 밖으로 나가면서 교육을 받고, 이들은 실패라는 걸 용납할 수 없었기에 목표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나고 자랐건, 무슨 감정을 느끼건 상관없었다. 한 번 포착한 건 놓치지 않는 것. 이곳에서는 이러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정에 휘둘려선 안 된다는 압박을 수도 없이 견디다 보면 이들에게도 상황이 지배하는 것이 응당 그러했다.

지속된 임무는 동정심 같은 얄팍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아토비스는 본인이 지치고 있는지도, 마모되는지도 모르는 채로 살아갔다. 지령을 받고,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가는 게 고작이었다. 시간에 제한은 없었으나 평소에는 바로 돌아갔기에 이런 상황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데이터 같았다. 처음 딱딱한 침대 위에서 눈을 떴을 때도 전력이 공급되고, 그동안의 정보가 동기화되는 과정에서 과도한 정보가 입력되는 바람에 회로가 뜨거워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와 한동안 벽을 짚고 돌아다녀야 했다.

정보를 받아들일 대로 받아들일 즈음 아토비스는 실전에 투입됐다. 간단한 훈련을 거치면서 안드로이드에겐 적합한 무기가 배정되었다. 언제든지 적을 제압할 수 있도록 완력도 길렀다. 그들은 인간을 대신하여 싸우는 전투 병기와도 같았다. 아토비스는 항상 총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남들보다 빠른 동체시력과 스피드로 총을 빼어 들고 소리를 지를 새도 없이 머리가 관통되는 걸 보고 마지막으로 목표를 스캔했다. 상대의 심장이 완전히 멈춘 걸 확인하고서야 돌아가는 것. 이게 아토비스를 비롯한 녀석들에게 주어진 매뉴얼이었다. 어찌 보면 손을 더럽히기 싫은 인간들이 기계를 빌려 눈치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단체를 이루어 임무를 다녔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진위는 불분명했다. 기능이 좋지 않던 시대였다면 납득이 가는 말이었다. 요즘은 한 명이 하나의 목표를 제거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자기의 앞길을 막아 출세에 걸림돌이 되어 불안한 정적이기도 했고, 위협을 하는 반역자기도 했으며, 뒤를 캐내려는 기자가 대상이기도 했다. 몇몇 안드로이드는 자기가 제거한 게 거물이라며 자랑하기도 했다. 인간의 성격이 제각각이듯 안드로이드는 창조자에 따라 성향이 달라졌다. 모두가 무뚝뚝하고 목소리 톤이 일정할 거란 것은 어쩌면 편견에 가까웠다. 거들먹거리기를 좋아하는 안드로이드는 매번 대장의 역할을 자처하려고 했다. 자만하는 걸 빼면 실력도 좋았기에 무리를 지어 활동하는 녀석은 임무가 있으면 망을 보고, 철저하게 행동했다. 인간인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아닌 그들은 하는 행동도 조금씩 위에서 가만히 앉아서 배를 불리는 인간과 닮아가는 구석이 있었다.

 

아토비스는 매드니스가 말한 것처럼 조용하고 신중한 성격이었기에 아무나 공격하지 않았다. 돌발적으로 튀어나가지도 않았다. 도주를 우려해 위치를 전송받은 후에야 움직일 정도였다. 다른 안드로이드였다면 매드니스는 몸 어딘가에 바람구멍이 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임무를 방해하는 자에겐 자비가 없어야 한다. 이 또한 지침이었다. 순응하는 기계가 있는가 하면 반대의 경우도 존재했다. 아토비스는 안에서 꿈틀거리는 반발심이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매드니스를 만나기 전부터 있었던 게 그를 만나고서부터 격동하기 시작했다는 것. 단순히 지나갔을 감정은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 것처럼 아토비스도 모르는 사이 회로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입력되지 않은 정보를 받아들일 때면 오류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기능이 우선적으로 작동했다. 일종의 필터인 셈이다. 에러 창이 뜨는 건 불순한 정보로 판단하여 지우기를 반복하고, 에러 창이 뜨지 않는 건 필요한 것으로 판단하여 입력한 뒤 습득했다.

감정의 근원이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는 채로 아토비스는 매드니스와의 만남을 거절하지 않았다. 애초에 만난 순간부터 비키라고 하던지, 남들이 하는 것처럼 방해물이라고 여기면 그만이었다. 그럼에도 매드니스가 만났던 순간을 기억하는 건 왜였을까. 얼굴이 보이진 않아 어떤 표정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왜인지 안에서부터 느껴지는 답답함을 해소해 주는 열쇠일 것 같았다. 예전부터 지금 드는 생각을 말하거나 떠올릴 때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회로처럼 가슴이 답답해졌다. 왜? 라는 질문을 던져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은 허공을 맴돌았다.

 

밝아오는 아침은 여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임무가 내려오지 않는 이상 자유행동이 가능했다. 밥을 먹고, 맛을 입력하고. 몸이 굳지 않도록 별도로 마련된 시설에서 운동하는 등. 커다란 빌딩 꼭대기에서 술을 마시며 자기들끼리 이득을 나누려는 누군가는 그들을 억지로 통제하려 하지 않았다. 함부로 기억을 엿보지도 않았다. 반란으로 이어지면 곤란하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아토비스는 잠시 열어둔 창문을 통해 참새가 어깨에 앉은 걸 보곤 가만히 있었다. 뭔가 먹이가 있지 않을지 그의 어깨를 콕콕 쪼다가 수확이 없는지 무리와 함께 돌아간 참새는 전깃줄에 앉아 있다가 저 멀리 날아갔다. 불빛으로 가득했던 도시가 아침에는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네모 모양의 인간수용소가 되었던가. 남들이 잠들어 모르는 일의 이야기는 영원히 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만 알았다.

매드니스가 한 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살아온 습성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었다. 반발감도, 답답함도 전부 오류라고 치부하며 지우길 반복하기만 몇십 번이었다. 며칠이 지났는지 잊어버리는 것처럼. 일부가 되어버린 것에 헤아리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느낄 때쯤, 시간 역시 모두에게 평등한 자원인 만큼 흐름에 맞게 가고 있었다. 그 시간 아토비스는 매드니스를 만나서 다시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임무도 없으니, 밤에 외출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을 터였다. 상부는 일이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은지 사유를 듣지도 않고 아토비스에게 외출 허가증을 주었다. 잉크 냄새가 나는 사인이 휘갈겨진 종이조각에 불과해도 이게 있으면 경찰 로봇이 바로 확인하고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는 소위 ‘깐깐한 인간’이 오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썩어들어가는 도시에서 존재의 필요성을 증명할 수 있는 건 쓸모 있는 게 되어야 했다. 인간이든 기계든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제아무리 이곳에 대해 좋은 점만 늘어놓는다고 하여도 태생부터 부가 많아 재력을 사용하여 환심을 사고 능력이 출중하거나, 가지고 있는 기술이 좋지 않으면 결국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가 되기 마련이었다. 아토비스는 책상에 앉아 주기적으로 교육을 들을 때마다 ‘필요’에 대해 고민했다. 필요(必要)라는 사전적인 정의가 아니라, 정말 몸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면 직접 이해하고 와닿지 않을 것 같았다. 금속으로 된 피부가 느껴봤자 얼마나 느끼겠냐마는.

아토비스는 모두와 같아 보였지만 달랐다. 인간의 언어를 빌리자면 돌연변이. 이 단어로 정의내릴 수 있었다. 딱딱한 기계 같지 않았다. 심장이 있는 존재 같았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 인간이 감정을 갖고 싶어 하던 것처럼 아토비스는 자기가 느끼는 것에 의구심을 품었다. 물론 임무용 안드로이드에게도 감정을 넣어주었다. 어디까지나 복종에 가까운 걸 감정이라 우기는 것에 가까웠다. 부여받은 것엔 한계가 있었다. 자연스러운 얼굴 근육도, 섬세하게 움직일 수 있는 관절도 아토비스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아토비스는 그를 처음 본 시간에 맞춰 나왔다. 전광판은 그때보다 더 어두워졌다. 길을 밝혀줄 정도로 환한 달이 떠 있어도 스산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아토비스는 감시용 드론이 따라붙지 않는지 주변을 경계했다. 저 너머로 “드론을 띄우는 시간이 아닙니다. 아직도 정찰 중인 드론이 있다면 속히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주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드론을 띄우는 시간이 아닙니다.” 소리가 들려왔다. 혹여 이 이야기를 누가 듣는다면 처분을 피할 수 없었다. 아토비스의 상부는 그럴 정도로 치밀하거나 똑똑한 인물은 아니었다. 불법을 행하면서 누구보다 범칙금을 물기 싫어했다. 자기의 이익만을 챙기는 겁쟁이 인간이 권력을 행사하려고 위험을 안으면서까지 나서진 않았다.

 

십여 분 정도 기다리자, 매드니스가 모습을 나타냈다. 오늘은 달빛 덕분에 평소보다 더 자세히 외관을 알 수 있었다. 주황빛의 머리카락은 복슬복슬한 여우 같았다. 주머니에 있던 동전을 튕기며 나타난 그에 아토비스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요즘은 카드에 넣어지는 가상화폐로 모든 거래를 할 수 있었기에 동전은 구시대 유물과도 같았다. 어디서 구한 건지 달빛에 빛나는 은빛의 금속은 이내 매드니스의 손바닥으로 사라졌다. ‘친분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위험이 되는 대상을 제거해야만 하겠지.’ 아토비스에게 명령하는 남자의 음성이 스쳐 지나갔다. 만약 매드니스를 처리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아토비스는 뒤에 있을 일을 상상하기 싫은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렇지만 명령에 불복종한다면.

“처음 볼 때와는 다르게 표정이 굳어있는데? 정말 모르는 거냐,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냐. 매번 기다렸는데 오지 않아서 정말로 내뺀 건가 싶었지. 아니면 역시 하고 싶은 게 뭔지도 알기 전에 들켰거나.”

“약속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다음에 보자고 사라진 건….”

“그래도 이곳에 왔다는 건 너도 신경 쓰이긴 했나 보지. 이래 보여도 올 때까지 기다렸어.”

아토비스는 그의 말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하는 게 느껴지면 무력을 사용하라는 방침도 어째서인지 그에게는 쓸 수 없었다. 물론 매드니스가 진실만을 말하는 것도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임무용 안드로이드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그가 의심스러웠지만 간부진 중에서도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는 건 불빛 밖의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도시를 기준으로 불이 꺼진 곳과 꺼지지 않은 곳은 빈부격차가 극심했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밤에는 주변 약탈을 일삼았다. 낮에 가도 슬럼가를 연상케 하는 곳은 을씨년스러웠다. 사람들은 마약 같은 약물에 취해 동공이 풀린 채로 나돌아다니거나 약을 살 돈이 없어 자기 신체나 장기 일부를 팔아넘기기도 했다. 겉으로 보이는 곳만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려주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곳의 사람들은 불빛의 도시 사람들과는 다르게 옷차림이 남루했다. 펑퍼짐한 옷을 입거나, 도시를 동경해 신분 상승을 꿈꾸기도 했다. 염증과도 같은 사회는 누군가에게는 동경이자, 누군가에게는 신물이 나는 곳이었다.

 

달빛이 강하여 별빛은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우주가 아무리 넓고 아름답다 한들. 달이 내는 빛은 별도 품을 수 없었다. 수많은 별이 쏟아지는 것처럼 하늘을 메우지 않는 이상 불가능했다. 도시가 내는 인공적인 빛은 하늘을 더 쓸쓸하게 만들었다.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어도 그저 자기가 있는 곳에서 일주운동을 하며 움직이고 있단 걸 보여줄 뿐이었다. 희미한 곳은 점점 있었다는 사실도 잊게 했다.

 

아토비스의 마모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감정적인 교류도 없이 앞에 있는 것을 좇는 것에만 혈안이 되게 만드는 것. 조금이라도 인간과 만나서 깊은 대화를 나눴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결과는 세상이 그렇게 두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교류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다. 있다고 해도 수직적인 관계에서 오가는 형식적인 말이 전부였다. 매드니스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얼핏 보기엔 비웃음처럼 비추어졌다. 아토비스는 크게 불쾌감을 표현하지 않았다. 매드니스는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아토비스를 보며 주머니에 있던 동전을 매만졌다. 온기가 가시지 않은 동전은 주머니 여기저기를 굴러다니고 있었고, 매드니스는 계속해서 아토비스에게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미 점화 되어버린 건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회로는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매드니스를 보면서 드는 감정이 에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것은 붉은빛의 시야를 지우기를 포기하면서부터였다. 그가 내미는 손길이 무엇인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잡아버린 이상 모든 걸 무를 수는 없었다. 일단은 자각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며 아토비스는 임무가 아닌 평소에는 무얼 하는지, 하고 싶었던 건 있는지 매드니스가 기다리는 사이에 고심에 고심을 더했다. 아직 해보지 않은 게 많아 떠올리는 것부터가 최대 난관이었으나, 아토비스는 자기의 이름과 해야 하는 책무, 평소 일과와 여태 살아있는 생물을 보며 들었던 생각 등을 회로에 입력했다가 이내 삭제하고를 반복했다. 단맛에 한 번 길들어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것처럼 매드니스의 제안은 달콤한 과육이었다.

 

“믿든 안 믿든 자유지만 네가 잊어버린 걸 찾을 수 있게 도와줄게.”

 

길고 긴 방황은 반드시 끝을 내야만 했다.

카테고리
#기타
추가태그
#아키토우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