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name: Ariel
로그 11
2191년 X월 X일. 오늘도 어김없이 크리처는 돔을 위협했고 빌은 치유계 펜리르로서 현장에 파견되었다. 큰 피해는 아니었으나 일부 주택지가 완전히 파괴된 탓에 순식간에 집을 잃은 이들이 많았고 가족을 찾고 전화를 거는 등 부산스러웠다.
빌은 간단히 소대 내 정리를 마친 후, 뒷정리를 다른 병사들에게 맡기고 혼자 폐허가 된 마을 일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린 아이나 반려동물들은 가끔 너무 무서운 나머지 구석에 들어가 나오지 못해 발견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빌은 건물 사이와 잔해 틈새를 꼼꼼히 살피며 지나가고 있었고 그러던 중, 작은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보자 녹색의 옷자락이 시야에 잠깐 들어왔다 사라졌다. 그는 생존자일거라 생각하고 기척을 크게 내며 걸어가니 양갈래 머리를 한 7살 정도 되보이는 귀여운 여자아이가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처음엔 덩치 큰 빌의 모습에 놀라 숨을 들이키는걸 봤지만, 곧 고글을 벗고 특유의 미소를 지으니 아이는 그제야 안심한 듯 엉엉 울며 빌에게 매달렸다. 빌은 걱정 말라며 아이의 등을 천천히 토닥이며 안아들었고 이 곳이 마지막이었으므로 아이의 자잘한 상처들을 치료해 준 후, 구호자들이 모여있는 캠프로 발을 떼었다.
"어! 나 알아. 혹시 인어공주님이에요?"
캠프에 도착하기 전, 아이는 진정이 되었는지 점차 울음소리가 잦아들었고 곧 잔뜩 빨개진 눈을 한 채,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종알거리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서 봤다면서 이름이 Ariel-정확히는 코드네임이다-인데 왜 머리가 주황색이냐는 둥, 공주님이 아니라 왕자님이에요? 라는 둥, 여자 아이는 더 이상 무섭지 않으니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바뀌어 빌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아쉽게도 아이를 두 손에 안고 있으니 패드를 꺼낼 수도 없어 빌은 작은 친구의 물음에 난감한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기사단 내에서만 통용되는 별명인 줄 알았더니 밖에서도 그렇게 불리나.'
자신의 이능력도 물거품이고 원래도 인어공주 동화를 좋아했으니 제 코드네임이 싫은건 아니었으나 190에 가까운 성인 남성에게 인어공주라니, 낯간지러워 요 근래엔 조금 후회하고 있는건 사실이었다. 대답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아이의 눈물과 콧물 범벅이인 얼굴을 닦기만 하자, 아이는 빌을 빤히 쳐다보다가 깨달은 듯 한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맞다, 인어공주는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했었지."
제 성별이나 머리색 같은건 그닥 중요해보이지 않은 듯 하니, 빌은 아이의 동심을 위해서라도 맞장구 쳐주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운 기억이 자신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즐거울 수 있다면 인어공주 뿐이랴, 백설공주도 될 수 있었다. 빌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는 기뻐하며 더 크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와아! 진짜 인어공주님이에요? 있잖아요, 저는 인어공주가 제일 좋아요. 바다랑 땅 둘 다 다닐 수 있잖아요? 저는 바다를 제~일 좋아하는데 그래서 인어공주님이 부러워요. Ariel도 바다를 좋아해요?"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어의 지느러미를 가지고 바다를 마음껏 누빌 수는 없었지만 바다를 좋아하는건 맞았으니.
"와~! 그럼 왜 지금은 백야의 기사단에 들어가있는거에요?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는데..."
뒤늦게야 결말이 생각난건가, 빌은 옅게 웃으며 어떻게 말해야 아이의 동심을 지켜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캠프 앞에 도착해 아이를 내려주고 나서 패드를 꺼내들었다.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다시 인어가 될 수 있어.]
[그래서 착한 일을 하려고 기사단에 들어와있는거야.]
패드에 적힌 글을 보고 작은 꼬마 아가씨는 눈을 빛냈다.
"인어공주님도 패드를 쓸 줄 알아요?"
빌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제 목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애쓰며 소리 없는 웃음을 짓고는 빠르게 패드에 새 글을 입력했다.
[그래야 이렇게 이야기도 할 수 있지.]
아이는 이제 어린아이다운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올려다보더니 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 생일 선물로 받은건데 인어공주님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선물로 줄게요."
아이가 손에 쥐여준 것은 얇은 은색 체인 끝에 파란 물방울 큐빅이 박혀있는 귀걸이였다. 하나만 제 손에 있는걸 보니 나머지 하나는 아이의 손에 있는 듯 했다. 정말로 줘도 괜찮겠냐 물으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빌을 안아주며 하나씩 차고 다니면, 세트지 않겠냐고. 받지 않으면 또 울 것 같았으니, 빌은 귀걸이를 받아 오른쪽 귀에 귀걸이를 꽂았다.
아이는 잘 어울린다며 좋아하다 캠프 내에서 아이의 부모님이 뛰쳐나오자 부모님을 만나 기쁜지 또 다시 울음을 터뜨리곤 뒤늦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빌에게 -정확히는 인어공주에게- 잘 가라며 인사했다. 아이에게 손을 흔들고 홀로 남은 빌은 귀걸이를 살짝 만지곤 작게 웃었다.
인어공주라 불리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진 않은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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