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미루어 말하건대

개인서고 by 새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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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에는 시나리오 VOID와 HO1의 설정 및 날조, 그리고 HO1 관련 NPC에 대한 극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알뇌 외에는 열어보지 마세요!!!!!!!


“과장님, 오늘도 일찍 퇴근하십니까?”

“그래, 수고하도록.”

 

쿠로다 야시로는 경시청에서 퇴근한 후, 최근 몇 주간 일상이 된 일과를 수행했다. 책을 사서 병원으로 배달하는 일 말이다. 고장 난 기계마냥 멍하니 창밖만을 바라보거나 누워있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인 아이였지만, 적어도 책만큼은 전부 읽고 쌓아둔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병원으로.”

 

최근 들어서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자동운전 자동차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다. 야시로는 자연스럽게 목적지를 이야기하고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인공지능……. 자신에게 부탁하던 목소리, 그리고 기계를 볼 때마다 발작하는 어린 아이……. 야시로는 홀로 움직이는 자동차 안에서 잠시 상념에 잠겼다가, 목적지에 도착하고서야 이에서 깨어났다. 혼자 사용하는 병실 안은 적막하다. 기계에 격렬한 트라우마 반응을 보이는 데다가 살인사건에서 가족을 전부 잃고 홀로 살아남은 피해자였기에 휑하고 넓직한 병실에는 보호자 하나 없이 아이 혼자 몸을 웅크린 채 누워있었다.

 

“렌, 이제 몸은 괜찮니?”

“…….”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던 아이가 그 인사에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무기질적인 유리알 같은 눈동자에 잠깐 반짝, 하고 빛이 들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아마기를 닮았는지 영민한 아이인지라 호의를 가진 사람과 아닌 사람을 금방 구분하고 경찰들을 전부 쫓아냈다고는 들었지만……. 렌이 보기에 자신은 받아주어도 괜찮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몇 주째 찾아와도 귀찮아하거나 밀어내지 않고 어느 정도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 말이다.

 

“…….”

 

야시로의 말에 렌은 어물거리며 무언가를 답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색색거리는 숨을 뱉고는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작게 젓고는 몸을 웅크리며 돌아눕는 행동이 대답의 일종이라는 것을 안 야시로는 침대 근처의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처음에는 간단한 고갯짓조차 하지 않고 반응 없이 웅크려 있던 것을 기억했으므로.

 

“그래……. 렌, 그래도 오늘은 네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 것이 있구나.”

 

탁자 위에 책을 올려둔 야시로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경계하며 듣지 않는 것 같지만 전부 듣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쿠로다 야시로가 아마기 렌에 대해서 알고 있는 또 한 가지였다. 기억을 잃고 아물기 힘든 상처가 생겼음에도 여전히 상냥한 아이여서.

 

“퇴원하고 나면 시설에 가야 하는 건 이미 들었겠지만…….”

 

시설이라는 말에 이불이 움찔하고 떨렸다.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겠지만 혼란스러울 터였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아이는 목숨만 건져냈을 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으므로. 처음 깨어났을 때 렌은 형사들에게 무어라 제가 기억하는 단편적인 것들이라도 말해보려 하였으나, 제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 직감했는지 그 다음부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정보가 많지는 않았으나 저 아이가 사람이 많은 곳을 두려워하는 것은 명백했다.

 

“내가 네 아버지가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단다.”

“…….”

“네가 원한다면 입적은 하되 쿠로다라는 성은 쓰지 않아도 괜찮아.”

“…….”

“지금 답해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천천히 고민하고 답해주겠니?”

 

그 말에 문득 몸을 들썩이던 렌이 벌떡 일어났다. 이렇듯 격렬한 반응은 그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라 야시로는 조금 놀랐다.

이윽고 붉은 눈이 데구르르 굴러 야시로가 사온 책을 잠시 스쳤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불을 꽉 말아쥐고 있던 아이는 애처로울 만큼 턱을 덜덜 떨며 입을 벙긋댔다. 한참을 그렇게 야시로를 노려보고 있던 렌이 갈라진 목소리로 얼기설기 엮은 문장을 뱉었다.

 

“……왜, 왜, ……왜요?”

 

가라앉은 줄 알았던 경계심이 뾰족하게 올라오는 것이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평소처럼 무력해하는 대신 경계심으로 형형하게 빛나는 눈을 하고 렌은 몸을 웅크렸다. 이불로 몸을 감싸며 자신을 보호하듯 쭈그려 앉은 아이가 어눌한 어조로 입을 달싹였다.

 

“아저, 씨가, 그, 그렇게……까지, 하실 이유……없으, 시, 잖아요…….”

 

왜냐하면 당신은 나의 가족도 아니고, 나와 어떤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 사건으로 우연히 만난 완전한 타인일 뿐이니까. 그러니까…….

그러나 그렇게까지 긴 생각을 말로 표현할 재주도, 의지도 없어 렌은 입을 일자로 꾹 다문다. 여전히 경계를 놓지 않은 듯 붉은 눈은 깜빡임 하나 없이 야시로를 노려보고 있던 차였다.

 

“렌.”

“…….”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데에는, 때로는 사소한 계기면 충분하단다.”

 

네가 언젠가 내게 장갑을 내밀었던 것처럼…….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 몸을 조금 더 둥글게 만 렌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는 손길이 있다.

렌은 그 손길에 생각했다. 믿지 않아. 그 불신은 당연했다. 렌은 야시로가 저렇게까지 해주는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저렇게 무뚝뚝한 인상이면서 자신을 볼 때나, 자신에게 하는 말은 이유 없이 따뜻하기 그지없어서……. 그래서 이해할 수 없었다. 공포, 분노, 그리고 그보다 깊은 무기력 속에서 흐느적대고 있었기에 이것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지만……. 

 

“……저,”

“응?”

“하, 하겠…습니다, 아, 버지, ……아들.”

 

그리함에도 뱉은 말은 충동적이다. 자기도 모르게 뱉은 말에 지레 놀랐고, 뒤늦게서야 급조한 이유가 얼기설기 따라붙었다.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걸 물어보고 매일 같이 책을 사다 주는 사람이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답을 듣기 위해 답답한 기색 없이 시간을 내어 기다리는 사람이니까, 호의로 건넨 말을 경계해도 저렇게 반응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어쨌거나, 모르는 사람들과, 기계들이 가득한 시설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렌은 야시로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다시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 리고 저는, 기, 기계, 는……싫어요…….”

“그래, 알겠다. 이름은 어떻게 하고 싶니?”

“……쿠로다, 렌……으로…….”

 

그럼에도 피가 이어져 있지 않고, 닮지 않아서. 이유 없는 호의는 거둬지는 것 또한 큰 이유가 필요하지 않으므로. 가족임을 증명할 수단은 같은 성밖에 없으니까.

쿠로다라는 성은 렌이 마지막 보루 삼기로 한 것이다. 고작 성을 같이 쓰는 것만으로 대체 무슨 보루가 될 수 있을지 렌은 알 수 없었지만, 저 이유 없는 친절함이 영영 가지는 않을 것이라 믿었으므로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유 없는 친절을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이유를 렌은 이해할 수 없어서.

 

“그래, 렌.”

“…….”

“앞으로 잘 부탁한다.”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희게 질린 안색으로 하염없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불을 덮어쓴 아이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야시로는 그것만으로도 조금 마음이 놓였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하지만, 그럼에도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려는 듯 행동했던 것을 보면 제 손으로 삶의 끈을 놓지는 않으리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네 시간을 너무 뺏었구나. 그럼 이만 들어가 보마.”

 

그렇게 말을 건네노라면, 움찔, 하고 이불이 한 번 흔들린다. 그 모습을 보며 야시로는 비가 오던 날을,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모든 증거를 없애버린 날을 떠올렸다. 피 웅덩이 속에 쓰러져 있던 아이는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 마냥 약하기 짝이 없었기에……. 문득 입안이 썼다. 돌아서 문을 열자 자그마한 목소리가 뒤를 따라붙었다.

 

“조심, ……히. …….”

“…….”

“…….”

“그래, 알겠다, 렌. 고맙구나.”

 

중간에 끊어진 인사는 더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는 아까보다도 더 복잡해진 심경으로 애써 웃으며 인사를 건네었다. 달칵, 문이 닫히고, 그제야 야시로는 제가 가진 감정이 죄책감이라는 사실을 지각했다. 아, 별 수는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렌에게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말하다니? 그가 한 짓을 안다면 누구라도 손가락질할 테다. 피곤한 낯으로 그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생생하기만 한 그날의 빗소리, 타오르던 집, 그리고 매캐한 연기와 기름 냄새…….

 

미안하다, 렌. 전부 내 잘못이야. 네게 저지른 잘못이 있으면서도 감히 네 아버지가 되어주겠다고 하다니.

아마 나는 평생 네게 제대로 된 아버지가 되어주지는 못하겠지.

 

 

 **

 

 

비가 궂게 내리는 날 밤이었다.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혹은 비규칙적으로 들리던 시간.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사실 문을 두드릴 만한 이는 한 명 뿐이긴 했다.

 

“저, 저기……아버지. 들어가도 될까요?”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으나 오늘따라 불안하게 들리는 앳된 목소리에 야시로는 책상 위에 앉아 읽던 책을 내려놓고 이야기했다. 들어오렴. 렌. 허락에 베개를 끌어안은 렌이 우물쭈물하다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렌은 요즘 들어서는 제법 제 할 말을 곧잘 하고는 했지만, 가끔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늦어질 때가 있었다. 야시로는 인내심 있게 렌과 눈을 맞추고 기다렸다.

 

“무슨 일이니?”

“저……제가, 무서워서…….”

 

웅얼거리며 이야기한 렌이 고개를 숙였다. 번쩍,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자 흠칫 놀란 렌이 몸을 움츠렸다가 아닌 척 몸을 폈다. 그러고 보니 병원에서도 비가 오는 날이면 유독 피곤해 보이더라니……. 야시로는 렌을 구했던 비가 유독 많이 내리던 그날을 떠올렸다.

 

“일하고 계신 거, 방해될 수도 있지만……. 옆, 옆에서 자면……안될까요……?” 

 

이런 행동이 어른스럽지 못한 건 저도…….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그는 하고 있던 일을 아예 멈추고 침대 위에 앉았다. 이윽고 옆을 두드리자 아이는 눈치챈 듯 엉거주춤 옆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비가 내리면 잠을 자지 못했던 걸까. 그 사실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속이 쓰렸다.

 

“자, 마침 자려던 참이란다. 같이 자자.”

“……네!”

 

환한 얼굴로 이야기한 렌이 조금 불편하게 야시로의 옆에 누웠다. 스탠드의 불을 끌까 싶었지만, 아이의 상태를 생각하면 차라리 불을 끄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는 그대로 두었다. 이윽고 어색하게 렌의 등을 토닥이자, 잠시 멈칫했던 아이는 제 아버지의 옆에 조금 더 붙는다.

투둑, 투두둑……. 빗소리가 멎지 않고 들렸다. 한참 그렇게 토닥이며 조금씩 편한 자세를 찾아가고 있자니, 렌이 가물거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 그…….”

“무슨 일이니?”

“아, 아무것도…….”

 

어물거리던 렌이 고개를 젓고,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안정을 찾기를 기다리자, 비가 오던 날에 부모도, 기억도 전부 잃어버린 아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냥…….

 

“잠이 안 와서…….”

 

아마도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겠지만. 야시로는 추궁하는 대신 렌의 등을 계속 토닥였다. 이 시간까지 억지로 버티고 있던 탓에 피곤했던지, 렌의 눈이 가물거리며 감겼다. 이윽고 다급하게 작은 손이 야시로의 손을 쥐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어디 가시면 안 돼요…….”

“……그래, 렌. 가지 않으마.”

 

그제야 불안에서 벗어난 것처럼 아이는 눈을 감고 규칙적으로 색색거리는 숨을 뱉었다. 무엇이 불안한 것인지 모르지 않아 비가 오는 날, 아버지는 아들의 등을 한참 토닥였던 밤……. 안심한 듯 아버지의 손을 쥐고 잠이 든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 네가…….

   

 

**

 

 

“렌, 축하한다.”

“축하해~”

 

언제고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했다. 야시로는 축하를 건네면서도 담담하게 그렇게 생각한다. 렌이 자신의 경찰증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토오야가 이를 채어가며 웃었다.

 

“하하! 표정이 완전 심각한데? 렌짱, 사진을 엄청 긴장하면서 찍었나 보네? 쿠로다 씨, 이것 좀 보세요!”

“그야……. 혀, 형님!”

 

당황스러운 얼굴로 손을 휘적거리지만 딱히 토오야가 들고 있는 경찰증을 뺏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항상 토오야와 자신에게는 약하게 굴곤 했으니까. 야시로는 1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선명하기만 한 광경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토오야가 내민 경찰증 속, 긴장한 듯 앞을 노려보고 있는 렌의 표정을 보며 약간 웃자, 렌이 마지막 저항까지 결국 멈추고 포기한 듯 손을 내렸다.

 

“이만하던 꼬마가 벌써 이렇게나 커서 형사가 될 줄이야. 하하, 쿠로다 씨, 들으셨어요? 렌이 쿠로다 씨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형사가 됐다고 하는 거 말이에요.”

“정확히는 형님과 아버지, 두 분께 도움이 되고 싶은 겁니다…….”

“그래, 그거~”

 

평소처럼 렌을 놀리기에 여념이 없는 토오야를 보며 야시로는 희미하게 웃었다. 자신과 토오야를 돕고 싶다……. 그렇지만 진실을 알게 되어도 여전히 자신을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렌에게 너무 오래, 많은 것들을 숨겼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속였다. 그 모든 것을 알게 되어도 저런 애정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들을 볼지…….

 

“…….”

“……저, 아버지. 혹시 몸이 안 좋으십니까?”

“응? 그러네. 정말 안색이 안 좋은데…….”

 

야시로는 올라오려던 고해성사를 삼켰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곧장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제 이마에 손을 대어 보는 아들들을, 이 평온한 일상을 깨트리고 싶지 않아서.

 

깨트리고 싶지 않아서…….

 

 

*

*

 

 

언젠가처럼 비가 내린다. 가지 않겠다고 언젠가, 이런 날씨에 약속했는데……. 항상 제대로 된 아버지 노릇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일어난 것은, 10여년의 시간 동안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죄책감 탓일까? 도망치라는 말조차 듣지 못한 채, 창백하게 질린 안색으로 제 손을 잡고 떨어지지 못하는 아들을.

쿠로다 야시로 또한 내심은 알고 있었다. 진실을 이야기하더라도 쿠로다 렌은 자신을 계속 아버지로 여길 것이라는 사실을…….

 

“아아……아, 아버지…….”

 

열둘이었던 아이는 벌써 스물둘이 되었는데,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린 날의 트라우마를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음은 명백했다. 얼어붙은 채로 제대로 된 말조차 자아내지 못하는…….

추적거리는 빗줄기와 누구 것인지 모를 가파른 호흡소리. 그 와중 짙은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퀴퀴한 비 냄새, 기름…….

 

‘저, 저기……아버지. 들어가도 될까요?’

 

의식이 흐려진다. 세상이 붉게, 흐리게 번지고……문득 어린 시절, 비가 오는 밤중이 무서워 문을 두드리던 작은 어린 아이가 겹쳤다. 있는 힘을 다해 쥐었던 렌의 손이 자신의 것보다 더 처참하게 떨리고 있음을 보며 야시로는 시야가 점멸하는 것을 느꼈다.

 

꺼질듯한 숨을 뱉는다.

그러나 달싹거리는 입술 위로, 언제나 담아두기만 했던 말은 역시나 올라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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